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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한양도성] <2> 각자성석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8.09 20:10:33한양도성을 따라 걷다 보면 사진과 같은 '각자성석(刻字城石)'을 흔히 만난다. 각자성석은 성돌에 새겨진 글씨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공사 실명제다. 누가, 언제, 어느 구간을 건설했거나 보수했는가 하는 기록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한양도성의 각자성석은 모두 300여개로 사진은 청와대 뒤편 백악마루 바로 아래쪽에 있는 성곽의 것이다. 오른쪽부터 '가경9년(嘉慶九年·1804년, 순조4년) 갑자10월모일(甲子十月 日) 패장(牌將· -
[역사의 향기/ 한양도성] <1> 백악구간 성곽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8.02 20:34:46한양도성은 세계적인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이다. 전체 길이 18.6km로 조선의 왕도 서울이 건설된 1396년부터 600여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당시 한양주민들은 이 도성을 하루에 도는 '순성(巡城)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도시화를 겪으면서 현재 전체구간의 70% 정도인 12.8㎞가 남아 있다. 서울경제는 '21세기 순성놀이'를 제안하며 시리즈(총 50회)를 시작한다. 도성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주변의 -
[역사의 향기] <100> 공평동 운종가 유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4.22 20:33:56"저 집들만 철거하면 아래에 있는 2,000년 전 황제의 포룸이 복원될 텐데…" "그런 식으로 발굴을 하려면 로마 시가지 전체를 다른 데로 옮겨야 할 겁니다." 고대 로마의 유적 위에 있는 건물 처리에 관한 기자의 물음에 로마시 관계자가 한 답변이다. 현대 로마는 고대 로마 바로 위에 건설됐다. 현대의 서울도 그렇다. 서울은 이성계가 1394년 조선의 수도로 삼은 후 600여년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독자들이 발을 딛고 -
[역사의 향기] <99> 계동 여운형 집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4.15 20:29:05한반도를 분단시키겠다는 시도는 1945년이 처음은 아니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중간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양쪽에서의 침탈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수립된 후 최초의 분단 획책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다. 초반의 승기를 잃고 수세에 몰린 일본(왜)은 중국(명)과의 협상에서 남부의 분할점령을 요구한다. 패전으로 이런 기도는 무산됐다. 두 번째도 20세기 초 러시아와 분쟁 중에 일본이 제기했다. 39도 -
[역사의 향기] <98> 북촌 한옥마을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4.08 20:40:40현재의 서울 도시구조는 많은 부분이 일제 시대에 만들어졌다. 1930년대 들어 서울 인구가 급증한다. 구한말 20만명 수준에서 1925년에 34만명, 1935년 40만명으로 늘어났고 1936년 73만명이 됐다(행정구역 확장으로, 고양·시흥·김포 일부가 서울로 편입). 1942년에는 111만명을 기록했다. 일본인 이주와 함께 먹고살 길을 찾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인구증가는 주택난을 부른다. 현재와 비슷 -
[역사의 향기] <97> 남산 노기신사 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4.01 20:48:22서울 남산의 노란색 건물 리라초 뒤편에는 일제의 신사 터가 있다. 현재의 사회복지법인 남산원을 찾아 들어가면 입구 한구석에 돌로 된 수조가 보인다. '오테미즈야(御手水舍)'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통 일본 신사의 입구에 설치돼 손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는 용도다. 수조 한쪽 면에는 '세심(洗心)'이라는 글자가, 사진으로 보이는 쪽에는 기증자가 보인다. "소화9년(1934년) 9월에 아무개가 기증했다"는 내용이다. 오테미즈야 외 -
[역사의 향기] <96> 상암동 일본군 관사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3.25 20:04:02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고양 쪽으로 가다 보면 국방대 근처에 수상한 건물이 보인다. 오래된 가옥인데 한옥은 아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일본군 관사'라고 적혀 있다. 지난 2005년 상암동 택지개발 과정에서 발견됐는데 1930년대 초에 건축된 일본군 장교용 단독 관사라고 한다. 이런 종류의 관사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1930년대라면 만주사변(1931년)을 거치면서 일제가 대륙침략에 광분하던 시기다. 전까지 다소 조용 -
[역사의 향기] <95> 미쓰코시 경성점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3.18 20:20:37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수탈과 억압·폭력 또는 일본 순사나 독립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루 세끼 밥벌이를 위해 공장에서 혹사당하는 식민지 백성이 많았지만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멋쟁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전쟁(중일전쟁·태평양전쟁) 직전인 1930년대는 일본의 경제가 최고도로 발전한 시기다. 그만큼 흥청거렸고 이것이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백화점이다. 당시 서울(경성)에는 미쓰코시(三越)·조 -
[역사의 향기] <94>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3.11 20:44:22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을 나오면 서쪽 안산 자락에 붙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다. 지난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후 1945년 광복 때까지 일제의 탄압도구로써 작동했다. 이름은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으로,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다. 수감 대상자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이었다. 1911년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관련 인사가 대거 수감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계속 옥사의 증축이 이뤄진다. 해방 직 -
[역사의 향기] <93> 강우규 동상·구 서울역사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3.04 19:52:461919년 9월2일, 쾅하는 폭발 소리가 서울역 광장을 흔들었다. 강우규 의사가 이날 제3대 총독으로 부임 중이던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65세. 대한인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쾌거였다. 3·1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주춤하는 가운데 항일 운동이 본격적인 무장투쟁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린 것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강우규는 이듬해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 -
[역사의 향기] <92> 탑골공원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2.25 20:26:17우연이 바뀌어 필연으로 되는 경우가 세상에는 많다. 1919년 3·1운동과 정재용(1886~1976)의 관계가 그렇다. 황해도 해주출신으로 서울 연지동에 있던 경신학당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정재용은 당시 서울에 와 있다가, 지인으로부터 인쇄물 한 보따리를 서울역으로 운반해서 지방에 부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독립선언서였다. 그는 인쇄물 가운데 한 장을 빼서 주머니에 넣고 탑골공원으로 갔다. 탑골공원에는 -
[역사의 향기] <91> 중앙고등학교 숙직실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2.11 20:24:401919년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일획을 그은 쾌거인데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의 구심점에도 일대 변화가 생긴다. 3·1운동을 계기로 기존의 왕족이나 고관대작 양반들의 시대가 끝나고 국민·인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기존 지배층이 자신의 자리를 걷어찼다. 거국적인 시위운동을 계획한 3·1운동의 주체들은 당연히 처음에는 구한말 관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백성들을 이끌어 달라'는 당연 -
[역사의 향기] <90>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2.04 19:59:47'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그 스스로도 억압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근대 일본에 그대로 들어맞는 표현이다. 메이지유신과 입헌운동으로 이어지면서 20세기 초기 일본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올라선다. 하지만 파멸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국익'을 명분으로 해외 팽창에 나서면서 점차 파시즘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조선을 병합한 1910년 조선총독 개인에게 부여된 권한은 엄청난 것이었다. 입법·사법·행정 -
[역사의 향기] <89> 남산 통감관저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1.28 19:50:21지난 1910년 8월22일 서울 남산 조선통감관저에서 '한일병합조약'이 조인됐다.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서명했다. 데라우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4시 한국병합조약을 통감저에서 조인하고 종결했다. 이완용·조중응과 부통감이 열석했다. 29일 발표한다는 대의를 통지했다. 합병 문제는 이렇게 쉽게 끝냈다. 껄껄(呵呵)." 이완용의 일대기인 '일당기사(1927)'의 기록이다. "8월22일 황 -
[역사의 향기] <88> 남산 한양공원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5.01.21 20:28:20서울 남산도서관에서 남산케이블카 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석비가 하나 서 있다. 파인 부분(총탄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이곳도 남산에 있는 우리의 아픈 역사 중 하나다. 한양공원은 일제가 만든 공원이다. 조선 말 서울에 온 일본인들은 한양도성의 남쪽, 즉 남산 주위에 몰려 살았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북촌의 조선 상권과 대비되는 일본인의 상권이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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