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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 수요일]우주로 가는 포차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2.02 05:30:00박해성 作방파제를 바라보며 엉거주춤 주저앉은 포장마차는바람이 불 때마다 곧 날아갈 듯 죽지를 퍼덕인다 노가리를 구워놓고 재채기하듯 이별을 고하는 남자 그 앞에서 여자가 운다, 나는 번데기를 좋아하고 당신은 나비를 좋아하지 소주잔을 비우며 그가 중얼거린다 그래,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자, 한잔 더술맛도 모르면서 무슨 시를 쓰니, 밤꽃이 흐드러진 유월 숲을 등지고 서 있던 사람 얼굴을 반쯤 덮은 수염이 고독처럼 -
[시로여는 수요일] 기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1.25 06:00:18내 기일을 안다면 그날은 혼술을 하겠다 이승의 내가 술을 따르고 저승의 내가 술을 받으며 어려운 걸음 하였다 무릎을 맞대겠다내 잔도 네 잔도 아닌 술잔을 놓고 힘들다 말하고 견디라 말하겠다마주 앉게 된 오늘이 길일이라 너스레를 떨며 한 잔 더 드시라 권하고 두 얼굴이 불콰해지겠다산 척도 죽은 척도 고단하니 산 내가 죽은 내가 되고 죽은 내가 산 내가 되는 일이나 해보자 하겠다가까스로 만난 우리가 서로 모르는 게 -
[시로여는 수요일]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1.18 05:05:08박상옥나비는 날아오르는 순간 집을 버린다. 날개 접고 쉬는 자리가 집이다. 잎에서 꽃으로 꽃에서 잎으로 옮겨 다니며 어디에다 집을 지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햇빛으로 치장하고 이슬로 양식을 삼는다. 배불리 먹지 않아도 고요히 내일이 온다. 높게 날아오르지 않아도 지상의 아름다움이 낮은 곳에 있음을 안다. 나비는 길 위에 길을 묻지 않는다.길을 묻지 않으니 삐뚤빼뚤 갈지자로 날아가는군. 내비게이션을 써 보면 달라질 -
[시로여는 수요일] 즐거움 사용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1.11 05:00:17이기철즐거워지려거든 노랑 양산을 펴 봐 다정해지려거든 면장갑을 껴 봐 모란 잎이 양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아 노래를 불러도 즐거워지지 않는다면 면도날로 악보를 갈기갈기 찢어 봐 코. 펜. 하. 겐이라 무의미하게 써 보는 것도 방법이야 다섯 번쯤 쓰면 1그램쯤 즐거워질 거야 음악을 쟁반에 담아 들고 오이처럼 먹어 봐 애인을 껴안다가 호주머니의 앵두가 다 터져버렸을 때를 떠올려 봐 즐거움은 소모품이야 너도 즐거 -
[시로여는 수요일] 한 시간 지나도록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1.04 05:00:02조은가난한 동네에서 돈을 주웠다 꼬깃꼬깃한 삶이 느껴졌다주워도 시원찮을 사람이 잃었을 돈이었다 지갑 하나 못 가졌을 사람의 돈이었다 주운 만큼 더해 돌려주고 싶은 돈이었다무엇에 놀라 내던지고 갔을 돈이었다 그땐 종이쪽 같았을 돈이었다차곡차곡 간추려 들고 서 있었다 문짝 없는 장롱에 기대서 있었다 골판지를 깔고 앉아 기다렸다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예나 제나 돌고 돌아 돈이라 하더군. 처음엔 세상 물정 모르고 -
[시로여는 수요일] 선셋 라이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0.27 17:29:19해가 진다 원효대교 남단 끝자락 퀵서비스 라이더 배달 물건이 잔뜩 실린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휴대폰 카메라로 서쪽 하늘을 찍는다강 건너 누가 배달시켰나 저 풍경을 짐 위에 덧얹고 다시 출발라이더는 알지 못 하네 짐 끈을 단단히 묶지 않았나 강으로 하늘로 차들 사이로 석양이 전단지처럼 날린다는 것을 무엇이 퀵퀵퀵, 달리는 라이더를 멈추게 했나. 무엇이 부릉부릉, 달아오른 실린더 심장을 멈추게 -
[시로여는 수요일] 모래밥 먹는 사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0.21 05:25:23유홍준저기 저 공사장 모랫더미에 삽 한 자루가 푹,꽂혀 있다 제삿밥 위에 꽂아 놓은 숟가락처럼 푹,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느라 지친 귀신처럼 늙은 인부가 그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아무도 저 저승밥 앞에 절할 사람 없고 아무도 저 시멘트라는 독한 양념 비벼 대신 먹어줄 사람 없다모래밥도 먹어야 할 사람이 먹는다 모래밥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는다늙은 인부 홀로 저 모래밥 다 비벼 먹고 저승길 간다모래성은 허망하게 -
[시로여는 수요일] 모루에는 별이 뜨고 말에는 꽃이 핀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0.14 05:00:24김경숙입술은 모루가 아닐까들끓는 생각들을 꺼내 두드리고 자르고 담금질하다 보면 모났던 말들이 불꽃처럼 튕겨 나와 파리하게 식어가는 입술은 상처투성이 모루 같다쇳덩이는 잘 벼려진 연장이 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별을 모두 버리고 평생을 닳아가는 일로 명기가 되어가듯, 파란별이 다 빠져나간 말들이 명언으로 완성되어가듯, 별은 쇳덩이 속에서 뜨고 입술에서 파랗게 진다밤마다 자루가 빠지거나 무뎌진 말 몇 벌 다듬어 -
[시로여는 수요일] 그러했으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10.07 05:00:43문성해날아가는 오리 떼가 슬쩍 행렬을 바꾸어 가듯이 내가 너를 떠올림도 그러했으면오리가 슬쩍 끼어든 놈에게 뭐라고 타박을 하듯이 내가 너를 탓함도 그러했으면날아가는 오리 빨간 발이 깃털 속에서 나란하듯이 우리가 서로를 바라봄도 그러했으면날아가는 오리 떼가 한순간 휙 방향을 바꿀 때 마지막 한 놈도 그 꼬리를 놓치지 않듯이 내가 너를 마냥 떠올림도 그러했으면높고 멀리 날아가는 오리 떼가 그냥 정처 없음이 아 -
[시로여는 수요일] 귀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9.23 05:00:43도종환시외버스터미널 나무 의자에 군복을 입은 파르스름한 아들과 중년의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꽂고 함께 음악을 듣고 있다 버스가 오고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고 차에 오르고 나면 혼자 서 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아들도 어서 들어가라고 말할 사람이 저거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도 오래오래 스산할 것이다 중간에 끊긴 음악처럼 정처 없을 것이다 버스가 강원도 깊숙이 들어가는 동안 그 노래 내내 가 -
[시로여는 수요일] 무지개를 잡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9.15 16:46:41신현정이제라도 무지개를 잡아야겠다는 것이야 무지개를 잡았다 하면 적어도 일곱 색깔 그대로 일곱 번은 친친 감아쥐고서 방금 세차게 지나간 소나기마저 비틀어 짜내고서는 그래놓고서는 지상에 던져놓는다는 것이야 어디로 보나 공작새로는 훌륭하겠지 사육하는 거야 모이를 뿌려주면서 그래서 정오만 되면 날개를 활짝 편다는 도도한 그걸 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공작새를 즐기겠다는 것이야.당신이 잡아놓았던 무지개, 어디서 -
[시로여는 수요일] 귀뚜라미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9.09 05:00:58고진하변소에 들어가면 귀뚜라미들 울지도 않고 못대가리처럼 벽에 조용히 붙어 있네볼일을 끝내고 다시 방에 들어와 있으면 금세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리지귀뚜라미야! 귀뚜라미야!아무도 없는 데서 나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단다 벽에 이마를 짓찧으며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단다 저런, 함께 울고 가시지 그랬어요. 우리도 외로울 때 혼자 우는 모퉁이가 있어요. 울다 지쳐 돌아보죠. 같이 울어줄 누가 없나? 일제히 울면 슬픔도 -
[시로여는 수요일]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9.02 05:01:53정현종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왕자처럼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떨어져도 튀지 않으면 공이 아니다. 높이 떨어트릴수록 더 높이, 세차게 채일수록 더 세게 튀어 오른다. 생명은 저마다 탄력 나라의 왕 -
[시로여는 수요일] 새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8.26 05:01:13정호승새에게 내 밥을 주고 내가 새의 모이를 쪼아 먹는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새에게 내 밥을 다 주고 내가 새의 모이를 평생 쪼아 먹는다 새가 내 밥을 맛있게 먹고 멀리 하늘을 날면서 똥을 눈다 새똥이 땅에 떨어진다 새는 하늘에다 똥을 누는 것이 아니라 결국 땅에다 똥을 누는 것이다 새똥이 있어야 인간의 길이 아름답다고 그 길을 걸어가야 내가 아름답다고새똥에서 꽃이 핀다. 새똥에서 찔레 씨앗이 -
[시로여는 수요일]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8.19 05:00:05박제영선인장에 꽃이 피었구만 생색 좀 낸답시고 한 마디 하면 마누라가 하는 말이 있어야선인장이 꽃을 피운 건 그것이 지금 죽을 지경이란 거유 살붙이래도 남겨둬야 하니까 죽기 살기로 꽃 피운 거유아이고 아이고 고뿔 걸렸구만 이러다 죽겠다고 한 마디 하면 마누라가 하는 말이 있어야엄살 좀 그만 피워유 꽃 피겠슈 그러다 꽃 피겠슈봐야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대나무는 생의 절정에서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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