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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 수요일] 내 친구 이발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8.12 05:00:39최병근빨강 파랑 흰색 물감 빙글빙글 돌아가는 삼색 등 아래 이발사라 부르지 말고 예술사라 부르라던 내 친구의자에 앉은 모델 형체를 잠시 살피다 바리바리 깡으로 불사르는 예술혼 직감적인 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짱구인 사람도 평평한 구도를 잡아 깎는다때론 세파에 탈색된 머리카락에 아름다운 색조로 덧칠도 하고 침침하고 더부룩한 면을 찾아 밝고 어둡게 명암을 살려 붓질을 한다투블럭 기법이나 가르마 기법으로 별 초승 -
[시로여는 수요일]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8.05 05:00:00김은경아부지 이제 아무 전화나 받고 공짜로 뭘 준다고 해도 듣지 마세요 예, 아부지? 이거 이 년 약정이니까 해지 못 해요 이 년 동안은 무조건 이거 쓰셔야 해요 안 그러면 또 위약금 물어야 해요- 그랴 내가 그날 뭐에 씌어서그런데 내가 이 년은 살 수 있을랑가 모르겄다그 대목에서 왜 웃음이 났을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제목처럼 죽고 싶지만 새 핸드폰은 갖고 싶은 마음 그 마음 때문에실실 웃음이 난다농 -
[시로여는 수요일] 먼 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7.29 05:30:00박경희아파트로 이사한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사나흘 밥도 안 먹고 먼 산만 바라보는 개 십년 한솥밥이면 어슬녘 노을도 쓸어준다 고개 묻고 시무룩한 모습이 안쓰러워 내 생일에도 끓여주지 않던 소고깃국을 밥그릇에 넣어준 어머니도 먼 산이다 갈비뼈 휑하니 바람이 들락거리는 어머니와 개는 한솥밥이다 저물녘 노을빛 강이다 같이 갈 수 없는 공중의 집이 먼 산에 걸쳐 있다 개장수에게 보낼 순 없다고 가면 바로 가마솥으로 -
[시로여는 수요일] 흰, 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7.22 05:00:00정우영내가 신을 신고 댕기는 줄 알았는디이, 어느 날 보니께 신이 나를 지고 다니는 거시여. 쉬는 참에 벗었는디 고것들 어깨에 핏물이 들었더라고. 평생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이. 여린 몸땡이로 신통히도 젼뎠구나 싶더랑게. 그짝부텀여, 신고 벗고 할 적마다 신께 빌었제. 고맙구만이라, 오늘도 편허니 잘 살았십니다.동네 초입에서 태워지는 흰 신, 할매 태우고 훌훌 승천 중이시다. 할매, 평생 머리 위에 신 있고, 발밑에 -
[시로여는 수요일] 숲속의 장례식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7.15 05:00:00최창균죽은 나무에 깃들인 딱따구리 한 마리 숲을 울리는 저 조종 소리푸른 귀를 열어 그늘 깊게 듣고 있는 고개 숙인 나무들의 생각을 밟고 돌아 다음은 너 너 너 너 넛,다시 한번 숲을 울리는 호명 소리한 나무가 죽음의 향기로운 뼈를 내려놓는다 따르렷다 따르렷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숲을 뚫는다 마침내 그 길을 따라 만장을 휘날리는 나무의 행렬들나무들은 싹이 터서 죽을 때까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평생 태양을 -
[시로여는 수요일] 미니 붕어빵 민희 씨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7.07 17:15:18붕어빵 민희 씨가 빵틀을 돌린다 누구나 직업으로 세상을 헤엄치듯 민희 씨도 세상 위에 연탄 한 장 올려놓고 우리 골목 초입을 열기로 데운다 오늘도 민희 씨는 눈이 많이 내리면 이글루를 지어 들어가서 자겠다던 낭만주의자를 생각한다 차가움을 쌓아올려 더운 열기를 만드는 추운 나라의 건축기술처럼 알코올을 쌓아올려 염병할 행복을 지으려다 술병의 탑을 쌓고 만 그를 생각한다 민희 씨가 데워놓은 훈기에 안겨 꿈의 끝까 -
[시로여는 수요일]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30 17:21:30김해자밥 먹으러 오슈전화 받고 아랫집 갔더니 빗소리 장단 맞춰 톡닥톡닥 도마질 소리 도란도란 둘러앉은 밥상 앞에 달작지근 말소리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도 되작이며 겉만 푸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도 한 잎 싸 주며 밥맛 없을 때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단소리도 쭈욱 들이켜며 달 몇 번 윙크 하고 나믄 여든 살 되쥬? 애썼슈 나이 잡수시느라 관 속 같이 어둑시근한 -
[시로여는 수요일] 할아버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23 16:57:22느티나무 아래서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말복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달려오던 빨간 자동차가 끽 멈춰섰다 운전석 차창이 쏙 열리더니 마흔 살 될까 말까 한 아줌마가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 할아버지! 진소천 가는 길이 어디죠? 꼬나보듯 묻는다 부채를 탁 접으며 나는 말했다 - 쭉 내려가면 돼요, 할머니! 내 말을 듣고는 앗, 뜨거! 놀란 듯 자동차가 달아났다우리나라에는 단군할아버지 말고는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 -
[시로여는 수요일] 외팔이 짜장면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17 05:00:00최달연함양 마천 피아골에 가면 외팔로 탁, 탁 짜장면 가락을 뽑아내는 그 사내가 있다구로공단 생활 25년으로 한쪽 팔을 잃고 웅크린 한쪽 죽지 잃은 새가 되어 절뚝거리며 실상사 근처로 내려앉은 세월 소림사 혜가 스님처럼 살고 싶어 그 근처 둥지를 틀었다 피아골 핏빛 단풍철에 미쳐 밀가루 범벅 휘파람새 같은 마천 골짜기 외팔이 짜장면집 사장이 되어 밥걱정은 면했지만 기울어진 개암나무처럼 외로운 그는 지리산을 닮았 -
[시로여는 수요일] 실패의 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10 05:00:57최병근잘 나가다 실패한 형님을 만났다 자네 풍선을 터뜨려본 경험이 있는가삶도 불다가 터진 풍선 같지 어느 정도 불면 잘 가지고 놀아야 해 풍선을 불다가 터트려본 경험이야 누구라도 있다마다요. ‘조금만 더!’ 미간을 찌푸리며 볼 풍선 속 공기를 고무풍선 속으로 밀어 넣다가 ‘펑!’하고 터질 때 움찔하던 기억 있다마다요. 풍선이야 터지면 그뿐이지만 삶이 풍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풍선이 부풀 듯 승승장구할 때 -
[시로여는 수요일] 두더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03 05:00:00이면우비 갠 아침 밭두둑 올려붙이는 바로 그 앞에 두더지 저도 팟팟팟 밭고랑 세우며 땅 속을 간다 꼭 꼬마 트랙터가 땅 속 마을을 질주하는 듯하다 야, 이게 약이 된다는데 하며 삽날 치켜들다 금방 내렸다 땅 아래 살아 있다는 게 저처럼 분명하고 또 앞뒷발 팔랑개비처럼 놀려 제 앞길 뚫어나가는 열정에 문득 유쾌해졌던 거다 그리고 언젠가 깜깜한 데서 내 손 툭 치며 요놈의 두더지 가만 못 있어 하던 아내 말이 귓전을 치 -
[시로여는 수요일] 웃음 세 송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26 17:21:21고진하하루치 근심이 무거워 턱을 괴고 있는 사람처럼 꽃 핀 머리가 무거운 해바라기들은 이끼 낀 돌담에 등을 척 기대고 있네 웃음 세 송이! 웃음이 저렇듯 무거운 줄 처음 알았네 오호라,호탕한 웃음이 무거워 나도 어디 돌담 같은 데 척 기대고 싶네하, 하, 하! 하루 종일 해님을 바라보며 동에서 서로 고개가 돌아가지. 연모하는 자는 연모하는 이를 닮아가지. 커다랗고 둥근 얼굴 한가득 웃음이 그득하지. 해바라기들은 웃음 -
[시로여는 수요일] 어떤 거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19 17:35:24김형엽 당신은 아주 멀리 있다 싶다가도 새벽녘 오리온 별자리 기울어진 사다리꼴 끝과 끝에 대롱대롱 우리가 산다 생각하면 그런대로 가깝게 느껴지네어느 날 내 뜨락에 날아온 박새가 당신이 사는 마을로도 지난다 생각하면 또한 마냥 가깝게 느껴지네오늘 막 몸을 연 홍매화 당신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당신과 나의 거리는 오전 열한 시와 정오의 간격처럼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느껴지네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아득한 광년 -
[시로여는 수요일] 봄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13 05:00:00- 박기섭하늘 어느 한갓진 데 국수틀을 걸어 놓고 봄비는 가지런히 면발들을 뽑고 있다산동네 늦잔칫집에 安南 색시 오던 날봄 들판 적시는 빗줄기 가늘고 곱다 싶었는데 그 동네에서 보낸 잔치국수였군요. 산골마을 살림 넉넉지 않을 텐데 과용한 것 아닌가요? 이곳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뚝딱 한 그릇씩 말아주시다니요. 앞집 강아지도 밥그릇에 고이는 면발 보며 꼬리를 흔드는군요. 먼 남쪽나라 색시 맞는 늦결혼이라니 그 집 -
[시로여는 수요일] 소화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05 17:44:33종종 찾아가 먼지라도 털어주자할머니는 다급하면 며느리를 찾았고 아버지는 여차하면 여보를 불렀고 아이들은 궁하면 엄마를 불렀지푸르든 그 마음 붉게 물들이고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급한 불이 없는지찾는 손길 없어진 지 오래 먼지를 하얗게 덮어쓰고 앉아 먼 산 바라보며 한숨지으시는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뒷전으로 밀려나 툇마루에 앉아 콩을 고르다 돌아가신 어머니지금도 찾는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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