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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 수요일] 퀵서비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4.28 17:33:04황주경오토바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다리를 걷어붙인 청년 하나가 빨간약을 바르고 있다 스패너를 든 가게 사장이 다 고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하자, 청년 왈 배달이 밀려 큰일이라며 성화를 부린다 나는 오지랖 넓게 가던 길을 멈추고 “배달이 뭔 대수냐? 빨리 병원부터 가시라”고 말하려는데 청년의 휴대폰이 울린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휴대폰에 대고 쩔쩔매는 청년 -
[시로여는 수요일] 목련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4.07 11:23:27- 성명진복지관 앞 앙상한 그, 무얼 얻으려 서 있나 했는데 아니었어요오히려환한 밥덩이 몇을 가만히 내놓는 것이었어요그곳에도 가셨군요. 이곳에도 오셨습니다. 겨우내 헐벗은 모습 안쓰러워 뜨거운 국밥이라도 말아드리고 싶었는데, 희디흰 주먹밥을 불쑥 내놓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꽃샘바람에 다 식은 차가운 밥이지만 어찌나 가슴 먹먹하게 하든지요. 기초 수급자 할머니가 어느 경찰서에 살짝 건네주고 간 마스크 -
[시로 여는 수요일] 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31 17:12:32- 이성복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버릴수록 남는 것이 강물뿐이랴. 지난가을 천 장의 나뭇잎을 떨군 나무는 올봄 만 장의 잎을 새로 달 것이다. 만 장의 잎이 오롯이 봄나무의 것이겠는가. -
[시로 여는 수요일] 키다리 풍선 인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24 17:29:42- 김중식 신장개업 음식점 앞에서 바람 잔뜩 들어간 키다리 풍선 인형이 미니스커트 아가씨와 함께 관절 꺾는 춤을 추고 있다 기마 체위로 오르내리는 식은 불꽃 순대를 꿈틀거리며 스텝 없이 몸부림만 있는, 흥분하지만 표정이 없는 에어 댄서 무릎 꿇었다 화들짝 일어서는 게 통성기도를 할수록 버림받는 자세다 해 떨어질 때 다리 풀리고 풀 죽은 거죽만 남아 말없이 제정신도 아닌 헛바람 허수아비헛바람 들었다지만 최선을 다 -
[시로여는 수요일] 연두생각-춘화첩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17 17:53:36- 장철문다시 올까? 썩은 가지는 떨어져 부서지고, 목이 없는 해바라기 대궁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발아래 부서지는 서릿발 장다리 꽃필까? 얼음 박인 봄동밤나무 가지에 비닐 걸려 날리고, 다시 싹틀까? 저수지 살얼음 위에 날리는 눈발물오를까? 뒹구는 새의 부러진 뼈 머리는 부리를 달고 육탈을 기다려다시 날아오를까, 연두는 우화(羽化)처럼염려 마슈. 곧 부지깽이도 싹이 날 거유, 불탄 줄도 모르고. 바위도 엉덩이 들썩 -
[시로여는 수요일] 늘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10 17:43:07- 윤이산맞은편에서 남녀 한 쌍이 걸어온다. 잡은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두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 걸어온다. 흔들리는 두 손의 리듬에 맞춰 절름거리는 남자의 다리가 발림을 넣으며 따라온다. 공원 산책길이 이팝 꽃을 뿌려 주고 명지바람도 거든다. 얼핏 스치며 보니 남자는 머리카락이 희끗하고 키가 몽총한 여자는 화상 흉터가 한쪽 눈두덩을 덮고 있다. 한 쌍의 초로(初老)가 지나간다. 팔다리 여덟이, 아니 사십 개 손발 -
[시로여는 수요일] 봄의 동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03 17:42:52매화나무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울타리에 가지 무성한 매화나무 벌들이 구름화물에서 날라 온 석탄 퍼붓고 있다 겨울에 어머니는 고운 옷을 입고 화장하고 외할아버지 곁으로 아주 떠났다 겨울에서 봄까지 나는 아주 쓸쓸해져서 어머니 없는 골목에서 오래 서 있었지만 매화나무 공장에서 야근하는 일벌들 봄을 끌어오느라 분주하다매화나무뿐이랴, 산수유나무에서, 생강나무에서, 귀룽나무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
[시로 여는 수요일] 다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2.25 17:33:37- 성명진문이 열려 있었는지 부엌 안으로 박새 하나가 부리나케 들어왔다 다음 날에 또 들어와 숨을 할딱였다할매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한 입 소리도 내지 않고 저번 때처럼 부러 문을 열어 둔 채 부엌을 나갔다가난한 부엌 살림살이가 밖에 비쳐나는 동안 낮 끼니가 가만히 들고 났다그날 오후 늦은 녘에 새는 또 왔다 짐짓 모르는 척해 주는 할매가 미더워 그 슬하에 참아 왔던 알을 낳았다어쩌다 열어둔 부엌으로 주린 가객이 들 -
[시로여는 수요일] 한바탕 당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2.18 17:15:37- 박이화당신이라는 말 속에는 풍선껌 향기가 난다사각사각 종이 관을 벗기자 얇고 반짝이는 은박지에 싸여 있는 당신, 그 희고 매끈한 몸이곧 구겨질 은박지 속에서 꿈꾸듯 긴 잠에 빠져 있는 듯하다이미 4만 년 전부터 죽은 이의 가슴에 국화꽃 다발을 얹었다는데 그 노오란 꽃가루보다 더 향기로운 포도 맛 당신, 딸기 맛 당신, 복숭아 맛 당신이 마침내 내 혀와 침 사이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해진다씹으면 씹을수록 곱씹히 -
[시로여는수요일] 꽃 중의 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2.11 17:22:12한명희요새는 벌도 나비도 다 내 것 같구나잠시 앉았던 벌 나비는 물론이고 날아가는 것들마저 다 내 것 같구나한 번 꺾이었다 다시 피어났더니못 잡을 벌 나비 하나 없구나쳐다보지도 않고 날아가는 저 새들마침내는저것마저 가질 수 있겠구나 내 것 같은 게 아니라 당신 거예요. 벌도 나비도 당신이 피어서 날아왔죠. 오늘 날아가는 저 새도 내일 돌아오죠. 살다 보면 세상이 선물인 걸 까맣게 잊죠. 빈손으로 왔지만 모든 걸 누 -
[시로여는 수요일] 콩나물 설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2.04 17:02:06- 이순주까만 보에 싸여 어둠 속 웅크린 알 깨어난다고개를 밀어 올리며 세상을 향한 물음표로 자란다한 줌에 딸려 나와 누군가 몸 깨끗이 씻어주는 날 둥그런 들통 열탕에 들어 거듭난다무료 급식판에 담겨 한 숟가락 둥둥 공중에 떠오를 때 일생 딱 한 번 햇살과 눈 마주친다 바람벽에 기대앉은 목젖을 뜨겁게 적시고 또다시 어둠에 잠겨들며 노숙자의 빈속을 달래주는,생을 향한 물음표는 그렇게 사라진다퉁퉁 분 껍질을 벗고 -
[시로여는 수요일] 터미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1.28 18:04:07- 김주대큰 가방을 들고 훌쩍거리던 아이가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자 늙은 여자는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 아이 앉은 쪽 차창에 젖은 손바닥을 댄다 버스 안의 아이도 손바닥을 댄다 횟집 수족관 문어처럼 달라붙은 하얀 손바닥들 부슬비 맞으며 떠나는 버스를 늙은 여자가 따라 뛰기 시작한다 손바닥에 붙은 손바닥이 떨어지질 않아서대개 조금 뛰다 보면 손바닥이 떨어지던데 큰일 났군요. 아하, 가래떡에 조청을 칠하다 나가셨군 -
[시로여는 수요일] 권주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1.21 17:35:04박경희노인정에서 소주 두 병에 버선 벗어젖힌 구십 다 된 할매 두 분이이년, 저년, 사발년 찾다가 아배 찾으러 온 나를 붙잡아놓고 소주 한 잔 따라주며 노래 한 가락 뽑아보란다 술 못한다고, 마시면 온몸에 불이 난다고 재차 밀치자, 글 쓰면 술도 마실 줄 알아야지, 어데서 똥구멍 긁는 소리 벅벅 하고 있느냐는 말씀에 넙죽 석 잔을 들이켜고 부른 노래가 봄날은 간다 인데, 간다 간다 하더니 그여코 취해서 아배 찾으러 왔다 -
[시로여는 수요일] 눈사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1.14 17:42:41-이재무눈 내린 날 태어나 시골집 마당이나 마을회관 한구석 혹은 골목 모퉁이 우두커니 서서 동심을 활짝 꽃피우는 사람 꽝꽝 얼어붙은 한밤 매서운 칼바람에도 단벌옷으로 환하게 꼿꼿이 서서 기다림의 자세 보여주는 표리가 동일한 사람 한 사흘, 저를 만든 이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마음의 심지에 작은 불씨 하나 지펴놓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이 이 세상 가장 이력 짧으나 누구보다 추억 많이 남기는 사람 그 많던 -
[시로여는수요일] 금란시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1.07 17:41:15- 함민복 좌판의 생선 대가리는 모두 주인을 향하고 있다꽁지를 천천히 들어봐꿈의 칠 할이 직장 꿈이라는 샐러리맨들의 넥타이가 참 무겁지 어쩐지 새해 첫 지하철에 비린내가 진동하더군요. 몰랐어요. 요즘 패션 트렌드가 어물전에서 넥타이 고르기였군요. 젊은이들은 날렵한 꽁치 넥타이를 좋아하는군요. 중년 신사들은 점잖은 고등어 넥타이가 어울려요. 삼치 넥타이를 맨 저 분은 부장급은 되는 거 같아요. 복어 넥타이를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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