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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 수요일] 심은 버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5.07 17:34:52- 한용운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恨)을 잡아맵니다.그대 심은 버들 허리 말고삐를 매렸더니 주련 같은 버들가지 손에 먼저 잡히더이다. 하릴없이 꺾어 쥐고 말 궁둥이 채칠 때에 내 살인 듯 아프더이다. 말과 함께 내닫을 때 온산에 봄빛 찬연한 -
[시로여는 수요일] 제비꽃 머리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23 17:31:55- 공광규띠풀이 단정한 묏등에 핀 제비꽃 한 송이는 누군가 꽂아준 머리꽃핀이어요죽어서도 머리에 꽃핀을 꽂고 있다니 살았을 때 어지간히 머리핀을 좋아했나봐요제비꽃 머리핀이 어울릴 만한 이생의 사람 하나 내내 생각하며 돌아오는데신갈나무 연두 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진달래꽃이 이생의 그분처럼 시들고 있어요나 원 참, 거기만 그런 게 아니구먼요. 팔순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쉰다섯에 가신 아버지 곁에 베옷 지어 -
문화가 있는 수요일, 자연휴양림에서 즐겨보세요
사회 사회일반 2019.04.22 09:23:31이달부터 마지막주 수요일에는 국립자연휴양림을 무료로 여행할 수 있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전국 42개 국립자연휴양림 입장료를 면제한다고 22일 밝혔다. 무료입장 대상은 ‘문화가 있는 날’에 각종 산림문화체험, 산책, 등산 등을 위해 국립자연휴양림을 방문하는 국민들이다. 주차료, 시설사용료(숙박, 야영장), 체험료는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특히 여름 휴가철인 7 -
[시로 여는 수요일] 봄아, 넌 올해 몇 살이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16 17:31:15- 이기철나무 사이에 봄이 놀러 왔다 엄마가 없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다 내년에도 입히려고 처음 사 입힌 옷이 좀 큰가 새로 신은 신발이 헐거운가 봄은 오늘 처음 학교 온 1학년짜리 같다 오줌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어딘지 모르는 얼굴이다 면발 굵은 국수 가락 같은 바람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여덟까지 세고 그 다음 숫자는 모르는 표정이다 이슬에 아랫도리를 씻고 있네 저 아찔한 맨발 나는 아무래도 얘의 아빠는 -
[시로 여는 수요일] 냉이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09 17:32:33-송찬호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 -
[시로 여는 수요일] 자전거 도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02 17:14:52-신현정봄밤이 무르익다 누군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자전거를 슬쩍 타보고 싶은 거다 복사꽃과 달빛을 누비며 달리고 싶은 거다 자전거에 냉큼 올라가서는 핸들을 모으고엉덩이를 높이 쳐들고은빛 폐달을 신나게 밟아보는 거다 꽃나무를 사이사이 빠지며달 모퉁이에서 핸들을 냅다 꺾기도 하면서 그리고 불현듯 급정거도 해보는 거다 공회전하다 자전거에 올라탄 채 공회전하다 뒷바퀴에 복사꽃 하르르 날리며달빛 자르르 깔려 -
[시로 여는 수요일] 봄 편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3.26 17:40:21- 곽재구강에 물 가득 흐르니 보기 좋으오 꽃이 피고 비단 바람이 불어오고 하얀 날개를 지닌 새들이 날아온다오 아시오? 바람의 밥이 꽃향기라는 것을 밥을 든든히 먹은 바람이 새들을 힘차게 허공 속에 띄운다는 것을 새들의 싱싱한 노래 속에 꽃향기가 서 말은 들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새들의 노래를 보내오 굶지 마오 우린 곧 만날 것이오여기도 강물 녹아 흐르고, 남풍 불어오더니, 꽃눈 터지고, 철새들 돌아오고 있습니다 -
[시로 여는 수요일] 구부러지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3.19 17:40:07- 이재무강은 강물이 구부린 것이고 해안선은 바닷물이 구부린 것이고 능선은 시간이 구부린 것이고 처마는 목수가 구부린 것이고 오솔길은 길손들이 구부린 것이고 내 마음은 네가 구부린 것이다 구부리려는 것들은 구부러진 것들을 닮는다. 강물은 강을 구부리느라 뱀 허리가 되고, 바닷물은 해안선을 구부리느라 쉴 새 없이 남실거린다. 시간은 능선을 구부리느라 모난 발꿈치가 둥글어지고, 목수는 처마를 구부리다 활처럼 등 -
[시로 여는 수요일] 신부 입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3.05 17:51:55신미나날계란을 쥐듯 아버지는 내 손을 쥔다 드문 일이다두어 마디가 없는 흰 장갑 속의 손가락 쓰다 만 초 같은 손가락생의 손마디가 이렇게 뭉툭하게 만져진다 둥지 떠나는 새끼 새 인도하는 아빠 새는 나뭇가지마다 옮겨 다니며 한나절을 울지만, 날계란 같은 딸 손을 옮기는 아버지는 발걸음마다 속울음 고였을 것이다.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아깝다 변명했지만, 뭉툭한 손마디를 감추려 마음껏 손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
[시로여는수요일]이슬의 탄생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2.26 17:03:31이덕규 作주로 식물에 기생한다 입이 없고 항문이 없고 내장이 없고 생식이 없어 먹이사슬의 가장 끝자리에 있으나 이제는 거의 포식자가 없어 간신히 동물이다 태어나 일생 온몸으로 한곳을 응시하거나 누군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순간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진다 짧은 수명에 육체를 다 소진하고 가서 흔적이 없고 남긴 말도 없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일설에, 허공을 떠도는 맹수 중에 가장 추하고 -
[시로 여는 수요일] 동피랑날개벽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2.19 17:29:57- 최정란휴일이면 눈이 초생달처럼 가늘어지는 처녀들, 웃음이 절반인 처녀들, 벽을 찾아온다 처녀들 등을 벽에 붙이고 서서, 깔깔댄다 뽀얗고 가느다란 팔을 흔들어대며, 깔깔댄다 어깨에 벽을 떠메고 날아가는 흉내를 내며, 깔깔댄다 처녀들은 왜 늘 바람을 몰고 오나 샴푸냄새가 나는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깔깔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벽은 숨이 막힌다 깃털 하나 남김없이 공기가 차오른다 겨드랑이가 가려워 견딜 수 없어 -
[시로 여는 수요일] 나는 놀고 있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2.12 18:12:54- 이명수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 뭐 하시나 묻길래그냥 놀고 있지 뭐,티라노사우루스와 놀고 구름표범과 놀고 무지개산과 놀고 베두인과 놀고그래, 오늘 잘 놀았다부지런히 노는 것도 공부다잘 노는 것이 하느님이다열린 문틈 사이로 하느님이 보인다일할 때 보이지 않던 하느님, 노는 당신이 열어놓은 문틈으로 슬몃 오셨군요. 어서 손짓해 부르셔요. 낡은 소파라도 미안해 말고 앉게 하셔요. 천지창조 이래 가장 번성하고 있 -
[시로 여는 수요일] 송아지 눈 속 깊은 우물을 본 적 있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1.29 17:29:23[시로 여는 수요일] 송아지 눈 속 깊은 우물을 본 적 있니 - 조길성(1961~) 그 물에 두레박을 내려 달을 길어본 적 있니 그 달을 마시고 꽃을 토해본 적 있니 그 꽃 속에 들어가 한잠 늘어지게 자본 적 있니 그 잠 속에서 꿈을 불러 엄마를 만나본 적 있니 그 품에 안겨 은하 별들을 뚝뚝 흘려본 적 있니아버님, 밤늦도록 학원 가서 선행학습 하는 손자한테 한가로운 말씀 마셔요. 요즘엔 송아지도 아무나 만나 주지 않는 거 모르 -
[시로 여는 수요일] 반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1.22 17:30:53- 손종수할인매장에서 구두 한 켤레 샀어 신자마자 발뒤꿈치 발가락 발등까지 일제히 전해오는 부적응의 아우성 새것은 헌것을 억누르려 하고 헌것은 새것을 길들이려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싸우며 정분나는 일 신축성 좋으니까 곧 편해질 거예요 행여 마음 바꿀까 상냥하게 웃는 점원 쇼핑백 얼른 안겨주고 신용카드 빼앗아가네 오랜 시간 그런 줄 알고 살아왔는데 발톱 깎다 보았지 짓눌려 굳은 새끼발가락 이런, 편해진 건 발이 -
[시로 여는 수요일] 새들의 무렵 같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1.15 17:13:01하루치의 기차를 다 흘려보낸 역장이 역 앞의 슈퍼에서 자일리톨 껌 한 통을 권총 대신 사들고 석양의 사무실 쪽으로 장고나 튜니티처럼 돌아가는 동안과세간의 계급장들을 하나씩 떼어 부리에 물고 새들이 해안 쪽으로 날아가는 무렵과 날아가서 그것들을 바다에 내다 버리려는 소란과이 무소불위의전제주의와(체제에 맞추어 불을 켜기 시작하는) 카페의 술집과 소금구이 맛집들과 무얼 마실래?와 딱 한 병씩만 더 하자와 이 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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