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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겨울 시편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1.08 17:29:16- 김경성한겨울 날아드는 철새 떼는 전깃줄부터 팽팽하게 맞춘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음 열고 있는 전깃줄을 오동나무 공명판에 걸어놓고 바람으로 연주한다 산조가야금 소리 들판을 가로질러갈 때 저수지의 물결마저 일시 정지하여 제 몸 위에 얼음판을 올려놓고 새들의 그림자까지 다 받아낸다 춤을 추는 산사나무, 붉은 열매 후드득 떨어트려서 음표를 그려대고 저수지 큰 북을 두드리는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대숲에서는 -
[시로 여는 수요일] 내가 만지는 영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1.01 16:50:22- 이기철내게 온 하루에게 새 저고리를 갈아입히면 고요의 스란치마에 꽃물이 든다 지금 막 나를 떠난 시간과 지금 막 내게로 오는 시간은 어디서 만나 그 부신 몸을 섞을까 그게 궁금한 풀잎은 귀를 갈고 그걸 아는 돌들은 이마를 반짝인다 염원이야 피는 꽃과 내가 무에 다르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겐 배내옷을 지어 놓고 기다린다 한철 소란한 꽃들이 제 무게로 지는 길목에선 불편한 계절이 자꾸 아픈 손을 들어 보인다 저 -
[시로여는 수요일] 겨울기도 1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2.18 17:20:30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의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내가 배부르면 남 배고픈 줄 알기 어렵고, 내가 등 따스우면 남 추운 줄 모르기 십상이다. 남의 일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도 그렇다. 형편이 좋아지 -
[시로 여는 수요일] 빵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2.11 16:59:46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 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함께 있다는 걸 알았다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못 만나 봤지만, 삐뚤빼뚤하지만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아이를 떠올리며 저 집 레시 -
[시로 여는 수요일] 아버지의 금시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2.04 17:15:35[시로 여는 수요일] 아버지의 금시계 - 마경덕아버지 모처럼 기분이 좋으시다 노란 금시계를 내밀며, 이거 봐라 오늘 집에 오다가 횡재했다 십만 원짜리를 삼만 원에 샀다. 허어, 이 비싼 걸 그리 싸게 주다니 검게 그을린 팔뚝에 금시계 눈부시다 주름진 손에 금시계 반짝인다 싸구려 도금시계 조잡한 금시계를 아버진 도무지 모른다 술 한 잔에 보증 서주고 집 날리고 친구들에게 봉이라고 불리는 세상모르는 아버지 그러고도 남 -
[시로 여는 수요일] 답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1.27 17:03:44- 김수복(1953년~) 사람 곁을 떨어져 나간 ‘답게’ 사람답게 한 마리 썰물 빠져나간 뻘밭에서 옆으로만 옆으로만 기어가다가 자갈밭에 턱이 부서진 채로 헤매고 있네보름 달빛 받들고 앞발 들어 환호하는 꽃답게들 평화답게들 통일답게들 나라답게들 아름답게들 사람답게들 잘 살라고“버림받고, 부수어지고 분노를 터트려” 바로 서서 앞발을 드는 갯벌답게 동해 대개, 서해 꽃게, 남해 칠게, 제주 홍게, 파주 참게는 들어봤어도 -
[시로 여는 수요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1.20 17:20:48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 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 -
[시로 여는 수요일] 한 점 해봐, 언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1.13 17:26:18한 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언니,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 -
[시로 여는 수요일] 꽃집에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1.06 17:34:30- 장석남(1965~)나는 꽃이 되어서 꽃집으로 들어가 꽃들 속에 섞여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고 오가는 사람들로 시들어, 시들어나는 빛이 되어서 어둠으로 들어가 어둠 속에 숨어서 오가는 숨결들을 비추고 오가는 숨결들로 시들어, 시들어나는 노래가 되어서 빛나는 입술로 들어가 가슴에 잠겨서 피어나는 꿈들을 적시다가 오가는 꿈들로 시들어, 시들어 꽃집이여 꽃집이여 혀와 입술을 파는 집이여 마른 혀와 마른 입술을 파는 집이 -
[시로 여는 수요일] 느릅실 할머니와 홍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0.30 17:31:56- 신광철(1959~)인생이 짐이라고 아니야, 사랑이야 인생은 홑이불 같이 가볍기도 하지만 비에 젖은 솜이불 같기도 한 거야 등이 굽었지만 앞산보다는 덜 굽은 진천 느릅실 할머니가 장작을 나르며 말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지 인생을 등에 지면 짐이 되고 가슴으로 안으면 사랑이 되는 거야 짐이 홑이불처럼 가벼워지지 농익은 홍시가 떨어지고 있었다 석양에는 홍시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자식도 등에 지면 짐이지만 자 -
[시로 여는 수요일] 나팔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0.23 17:19:42- 이용헌 나팔꽃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거기,아무도 몰래 지어놓은지하방송국이 있다. 세상 밖 전하고픈 깜깜한 소리들을향기와 빛깔로 바꾸어 송출하는벙어리지하방송국이 있다.저 지하방송을 즐겨듣는 사람들은 울타리마다 알록달록 스피커를 올린다. 빨랫줄을 가야금 줄처럼 2층까지 길게 매어도, 레, 미, 파, 솔~ 소리 계단을 만들기도 한다. 이슬 맺힌 얇은 스피커에서 ‘아침의 영광’이라는 시그널 뮤직이 울려 퍼지면 사람 -
[시로 여는 수요일] 소를 웃긴 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0.16 17:17:18-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나주 들판만 그런 게 아니더이다. 나도 곳곳에서 소를 웃긴 꽃을 보았소. 어릴 적 들판에 몰고나간 소들도 풀을 뜯으며 웃고 있더이다. 몽골 초 -
[시로 여는 수요일] 농담 한 송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10.09 16:56:59- 허수경(1964~2018.10.3)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누가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에 가서 농담 한 송이를 따올 수 있겠는가?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이 엷은 미소를 띠고 말하는 농담은 어찌 ‘한 송이’가 아니겠는가? 그 한 송이의 근원이 슬픔일진대 아리고, 비리지 않을 수 있 -
[시로 여는 수요일] 라 라 라 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9.18 17:18:56- 신현정 오늘이 모자라면 모자처럼 날아가고 모자처럼 하모니카 불고 모자처럼 새 되어 모자처럼 옆으로 돌려 쓰고 모자처럼 구름 위에 올려놓고 모자처럼 뒤집어서 새도 꺼내고 토끼도 꺼내고 사과도 꺼내고 오늘이 모자라면 라 라 라 라 모자처럼 공중에 높이 던졌다 받으며 라 라 라 라. 오, 모자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없다. 모자 속에서 나오는 것이 새와 토끼와 사과뿐인가? 모자 속에서 숙녀가 원하는 장미꽃과 신사가 -
[시로 여는 수요일] 큰 거짓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8.09.11 17:29:58- 박재연야! 죽는 게 궁금하다 만구에 어째라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아마 꽃가마가 당도할걸? 보고 싶은 사람들이 나래비로 죽 서서 가마에 태우고 구름 위로 사뿐 날아갈 거야으하하하………그렇다면 오죽 좋겠냐그렇다니까, 내 말을 믿어요어머니 떠나실 때 압축파일 주머니에 큰 뻥 하나 넣어드렸다시인이 뻥치시니 한 뻥 쳐볼까? 나는 사실 도둑이다. 어느 날 우주를 훔쳤다. 둘 곳을 궁리하다 눈꺼풀 곳간에 넣어두었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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