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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마리아나 해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5.30 17:53:47해적의 노래를 부르며 간다 그 동안 얼마를 모았건 얼마를 잃었건 아이야 아오아 양팔에 힘을 주고 타륜을 돌리자돛이 그리는 구름이 물살을 따라 뒤노는 물고기가 모두 내것이라 해도 그저 아오아 아이야 속도를 높일 뿐맥주를 부어라 넌 어디서 왔다고 했지? 네가 저지른 바보 같은 짓이 뭐라고? 아이야 아오야 아오아 아이야어서 부어라 네가 못 이룬 꿈이 너를 찼다는 그이가 맥주의 맛을 좋게 하는구나달을 던지면서 별을 박 -
[시로 여는 수요일] 어머니가 사는 곳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5.23 18:27:11옷이 엄니 손같이 느껴지는 날 나는 아이처럼 엄니가 벗겨주던 대로 옷을 벗는다 물끄러미 앞섶 바라보던 콧날 참 따뜻하다 내 안의 것을 보는 듯한 눈빛 한 종지 미소 같은 단추를 끄른다 눈물 가득 고인 조그만 호수 주름진 엄니 손마디 물결처럼 일렁인다 얼룩진 윗도리 벗어 빨래통에 던진다 던지면서 돌아앉는 뒷모습에 얼른 다시 줍는다 엉거주춤 벌린 두 팔 엄니가 안아 달랬을 세월 안겨 있다 단단히 여며주지 못해 힘들어 -
[시로 여는 수요일] 꽃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5.16 17:43:02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마른 나무에 목단, 작약이 핍니다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 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꽃’, 외자로 된 네 이름을 부르면 캄캄한 세상이 환해진다. ‘밥’, 외자로 된 네 이름을 부르면 차가운 세상이 따뜻해진다. -
[시로 여는 수요일] 아기 한 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5.09 14:08:24붐비는 시장 좁다란 골목, 어쩌다 홀로 나왔는지 아장아장 아기가 걸어갑니다 찬거리 담긴 봉지들이 묵직한 시장바구니들이 아기 곁을 조심조심 지나갑니다 아기를 에워싸는 저 훈훈한 공기막, 비린 잇속에 발 빠른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오늘, 재래시장 좁다란 골목 안에 아기 연꽃 한 송이 피워냅니다봄은 여린 것들 천지다. 새싹, 꽃잎, 병아리, 어린이.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가냘프고 약해서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 -
[시로 여는 수요일] 봄날은 간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25 11:11:18월출산 그늘을 지날 즈음 은밀한 달이 발목을 잡아 지친 몸 뉘러 들어간 여각 베니어합판 꽃무늬 너머 수줍은 소리 들리네사부작사부작 벚꽃이 피네몸이 연주하는 화음에 취한 부끄러운 새벽이 실눈 뜰 무렵 짐 챙겨 여각 앞을 나서려 보니 세상을 다 얻은 청춘이 연분홍 치마를 흥얼거리네우르르우, 르, 르……… 벚꽃이 지네.바위도 꿈틀 엉덩이 고쳐 앉는 봄 아니던가요? 삭정이도 울끈 힘쓰고 보는 봄 아닌가요? 아흔 고개 넘 -
[시로 여는 수요일] 벚나무는 건달같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18 11:09:10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어느 여자의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벚나무는 봄마다 나무인 걸 잊은 채 갓길 걸어간다. 겨우내 주린 벌 나비에게 꽃받침 잔술 팔다가 한 잔 두 잔 제가 비우고 취해 비칠거린다. 바람 불 때마다 한 소리 또 하며 하르르 까르르 웃는다. 꽃을 피운 건 봄이 아니라 제 -
[시로 여는 수요일] 해당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11 14:10:47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못 들은 체 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
[시로 여는 수요일] 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4.04 14:17:33밥은 사랑이다.한술 더 뜨라고, 한술만 더 뜨라고 옆에서 귀찮도록 구숭거리는 여인네의 채근은 세상 가장 찰지고 기름진 사랑이다.그래서 밥이 사랑처럼 여인처럼 따스운 이유다. 그 여인 떠난 후 주르르륵 눈물밥을 삼키는 이유다.밥은 사랑이다.다소곳 지켜 앉아 밥숟갈에 촉촉한 눈길 얹어주는 여인의 밥은 이 세상 최고의 사랑이다.아홉 줄 짧은 시 한 편 밥상머리에 두 여인이 앉아 있다. 연신 경상도 사투리로 구시렁거리며 -
[시로 여는 수요일] 사랑, 당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28 11:17:39앞마당 평상 위 둥근 밥상에서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밥을 가족이 함께 먹던 그때땅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꽃송이 그 꽃자리에 남겨진 까만 꽃씨가 통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때서툰 몸짓으로 머뭇거리리다가 말하지 못한 것이 이별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그때상처가 상처를 보듬어야 새살이 돋는다는 것을 알았던 그때 그때, 늦은 인사가 되어버린 사랑, 당신그때 너는 밥이 땀이라는 것을 모르고 먹어도 될 아이였단다. 그때 너는 -
[시로 여는 수요일] 화장을 한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21 17:14:11벚꽃 구경 간다고 89세의 할머니 이빨은 없고 잇몸만 남은 입술에 화장을 한다. 뚝! 떨어진 동백이 땅에서 더욱 붉고 곱게 피어 있듯 화장품을 바른다. 23살의 손녀 화장품을 빌려서 검버섯 위에 곱게 바른다. 꽃에게 이쁘게 보여야지. 그 뜻을 아는지 벚나무들은 잠시 빌린 허공의 무대를 환히 채운다. 향기로 채우고 색깔과 빛을 공연하면서 잠시나마 세상을 환히 밝힌다. 딸아, 할머니 입술 닿은 립스틱 닦아내며 툴툴거렸지? -
[시로 여는 수요일]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14 17:36:42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너는 혼군의 고막을 울릴 목청을 지녔으나 스스로 소리 지르지 못하고,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주먹을 지 -
[시로 여는 수요일] 길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3.07 11:39:43지난 봄 내 길에서도 돋아나 어여쁘던 꽃들아 아가들아 어디로 갔니 따뜻하던 햇살아 너희들 어느 곳에 가 거기 포근한 품안이게 하니아으 동동다리 겨울 길 위의 두 다리 하나뿐인 길을 가는데 또 걷고 싶어 봄 길은 어디 있나 화창한 봄 길을 걸을 나머지 두 발은 어디 있나 봄이 오는 속도를 아시는가?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봄의 속도를 재어보면 시속 1킬로미터가 채 안 된다고 한다. 처음 걸음마를 뗀 아기의 보행 속도와 -
[시로 여는 수요일] 사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28 17:14:09마흔에 혼자된 친구는 목동에 산다 전화할 때마다 교회 간다고 해서 연애나 하지,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다가 목소리에 묻어나는 생기를 느끼며 아, 사랑하고 있구나 짐작만 했다 전어를 떼로 먹어도 우리 더 이상 반짝이지 않고 단풍잎 아무리 떨어져도 얼굴 붉어지지 않는데 그 먼 곳에 있는 너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으니사랑은 참, 눈도 밝다시인 예이츠는 ‘와인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그것만이 우리 -
[시로 여는 수요일] 지금도 짝사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21 18:01:51사람을 사랑하면 임금은 못 되어도 가객歌客은 된다.사람을 몹시 사랑하면 천지간에 딱 한 사랑이면 시인詩人은 못 되어도 저 거리만큼의 햇살은 된다, 가까이 못 가고 그만큼 떨어져 그대 뒷덜미 쪽으로 간신히 기울다 가는가을 저녁볕이여! 내 젊은 날 먹먹한 시절의 깊은 눈이여!사람을 사랑한다면 세습 왕조의 눈먼 임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설령 서툰 가객이 되어 남의 심금 울리지 못하더라도 제 슬픔이야 종일토록 노래할 -
[시로 여는 수요일] 씨앗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7.02.14 18:01:46이것은 꽃의 압축파일이다감 씨를 반으로 따개면 흰 배젖에 감싸여 오뚝 서 있는 고염나무 한 그루 내 아기집 속에 있던 1mm의 아기 초음파 영상 같은감 씨 속엔 감나무의 숨겨진 전생이 있다 감나무로 성형되기 전 고염나무였다는 DNA 단감을 먹고 씨를 심어보면 안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만, 감 씨를 심으면 고염나무가 된다고 한다. 집개가 풀려나면 들개가 되듯 감나무 또한 쉬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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