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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버려진 전화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3.22 11:47:04버려진 전화기-권예자 作 그녀가 하는 일은 남의 말 들어 주는 일 남의 말 전해 주는 일 듣고 본 것 많아도 입 다물고 시앗 여럿 보아도 시샘하지 않았지 사람들은 슬프거나 기쁘거나 들뜨고 화가 나도 그녀를 찾았지 들어 주는 일로 평생을 소일하다 청력을 잃은 어느 날 그렇게 들고나던 사람들이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지 주인은 죄 없는 그녀를 패대기치더니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지 하지만 그녀는 버림받고 나서야 난생 처음 -
[시로 여는 수요일] 둥실둥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3.15 11:28:25둥실둥실- 신현정 作봄에 들판에 나와 풀을 뜯고 있는 염소의 뿔에 풍선이라도 달아 염소를 하늘에 둥실둥실 뜨게 하자 하늘에 염소들이 둥실둥실 염소들이 흰구름도 올라타고 흰구름에 누우며 흰구름에 걸터앉아 담배도 태우며 음메에 음메에 그래 하늘 위에서 쩌렁쩌렁 호령하는 하나님의 음성도 깜쪽같이 음메에로 변조시키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란 오직 음메에 음메에 뿐으로 하자 한나절만이라도 염소들이 하나님하게 하 -
[시로 여는 수요일] 말뚝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3.08 11:46:10作말뚝-심우기 어린 흑염소에겐 힘은 말뚝이다 뿔이 나고 털이 억세져도 말뚝의 끈을 넘지 못한다 강한 뒷다리와 넓은 어깨로도 뽑지 못하는 말뚝은 신 늘 지는 싸움인 줄 알지만 고집은 염소 고집 돌아와 빙글빙글 돌다 제 목을 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될지라도 갈 데까지 가고 본다 밧줄의 길이만큼이 세상인 염소에게 말뚝은 세상의 중심이다 권력이다 그래도 염소는 뱅글뱅글 돈다 천만에! 저 풀밭은 본래 임자가 없었으나 말뚝 -
[시로 여는 수요일] 하루의 사용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3.01 20:44:35하루의 사용법-조재형 作 슬픔은 수령하되 눈물은 남용 말 것 주머니가 가벼우면 미소를 얹어 줄 것 지갑을 쫓지도 쫓기지도 말고 안전거리를 확보할 것 침묵의 틈에 매운 대화를 첨가할 것 어제와 비교되며 부서진 나 이웃 동료와 더 견주는 건 금물 인맥은 사람에 국한시키지 말 것 숲 속의 풀꽃 전깃줄의 날개들 지구 밖 유성까지 인연을 넓혀갈 것 해찰을 하는데 1할은 할애할 것 고난은 추억의 사원 시간을 가공 중이라고 자 -
[시로 여는 수요일] 한솥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2.23 11:05:37한솥밥-문성해 作기껏 싸준 도시락을 남편은 가끔씩 산에다 놓아준다 산새들이 와서 먹고 너구리가 와서 먹는다는 도시락애써 싸준 것을 아깝게 왜 버리냐 핀잔을 주다가 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내가 몇 시간이고 불리고 익혀서 해준 밥이 날개 죽지 근육이 되고 새끼들 적실 너구리 젖이 된다는 생각이 밥물처럼 번지는 이 밤은하수 물결이 잔잔히 고이는 어둠 아래 둥그런 -
[시로 여는 수요일] 위대한 체온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2.16 10:44:04위대한 체온-이덕규 作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위에 돌멩이 하나가 얼음 속을 파고들고 있다 뜨거운 입술로 혓바닥으로 벌거벗은 돌멩이 온몸으로 너에게 푹 빠져 촉촉이 젖은 돌멩이 조금 드러난 등짝으로 지는 저녁 햇빛도 받아 돌멩이, 숨도 안 쉬고 그 두꺼운 동토의 처녀막을 맹렬히 뚫고 있다차가운 돌멩이가 더 차가운 얼음을 껴안고 겨우내 붙어 있다. 불같은 연애는 자주 보았지만 저렇게 뼈가 시린 연애는 낯설다. 미끄럼 -
[시로 여는 수요일] 엄청난 무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2.02 11:10:55엄청난 무기-최영철 作학교 앞 문구점에서 풀 한 통 사들고 나오며 어깨가 우쭐 풀 한 통이면 수십 수백 갈래 흩어진 것들 찢어진 것들 반듯하게 하나로 꿰맬 수 있는데 말하고 싶어 자꾸만 들썩이는 가벼운 입 조용히 아무 탈 없이 봉해버릴 수 있는데 무엇이 걱정 이것 하나면 뿔뿔이 흩어진 창세기와 계시록을 붙이고 비운에 찢겨나간 백제와 가야를 붙이고 마지막 숨 넘어가는 생물도감의 실밥을단단히 단단히 이어 붙일 수 있 -
[시로 여는 수요일] 노래는 아무것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1.26 12:27:29노래는 아무것도-박소란 作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 채 실려 간다한 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 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 보낸 당신이 오래 -
[시로 여는 수요일] 두레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1.19 10:38:12두레반-오탁번 作잣눈이 내린 겨울 아침, 쌀을 안치려고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는 불을 지피기 전에 꼭 부지깽이로 아궁이 이맛돌을 톡톡 때린다 그러면 다스운 아궁이 속에서 단잠을 잔 생쥐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살강 위로 달아난다배고픈 까치들이 감나무 가지에 앉아 까치밥을 쪼아 먹는다 이 빠진 종지들이 달그락대는 살강에서는 생쥐들이 주걱에 붙은 밥풀을 냠냠 먹는다 햇좁쌀 같은 햇살이 오종종 비치는조붓한 우리집 아 -
[시로 여는 수요일] 팽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1.12 20:24:02팽이-최문자 作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하나님,팽이 치러 나오세요무명 타래 엮은 줄로 나를 챙챙 감았다가얼음판 위에 휙 내던지고, 괜찮아요심장을 퍽퍽 갈기세요죽었다가도 일어설게요뺨을 맞고 하얘진 얼굴로아무 기둥도 없이 서 있는이게,선 줄 알면다시 쓰러지는 이게제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무의 꿈이 팽이였겠습니까마는, 나는 잘려서 팽이가 되었습니다. 나무일 적에는 혼자 서 있었습니다마는, 팽이가 되고부터 혼자 -
[시로 여는 수요일] 새해의 기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1.05 11:02:26새해의 기도-이성선 作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서두르다가 숨이 차서 멈추 -
[시로 여는 수요일] 떨어진 단추 하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5.12.29 11:45:36떨어진 단추 하나-이준관 作 해질 무렵,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떨어진 단추 하나를 보았지.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이렇게 단추 하나 떨어뜨리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서쪽 하늘에 깜빡, 해를 하나 떨어뜨리지.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저마다 무언가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하루에 하나씩 해를 떨어뜨린다. 일 년 열두 달 마침내 삼백예순다섯 개째 차례로 떨어뜨리 -
[시로 여는 수요일] 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5.12.22 10:59:16응-문정희 作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나의 문자 "응"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아름다운 완성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응' 한 글자에 생명의 근원인 해와 달과 우리가 디딜 지평선이 다 들어있구나. 그렇다면 국어대사전의 수십만 개 나머지 단어들은 -
[시로 여는 수요일] 그림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5.12.15 10:40:22그림자-박재연 作 그늘진 곳이면 어디든 따라나서는 바닥만 고집하는 낮은 사람 수저를 들다 말고 문밖의 당신을 바라보면 충견처럼 내 신발을 품고 엎드린다 그가 있어 세상은 낯설지 않고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에 힘이 실린다 눈물 글썽이는 젖은 상대를 만나면 슬그머니 물러나 몸을 감추지만 뙤약볕으로 이글거리는 상대를 만나면 자신을 더욱 분명히 하는 사람 그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 키도 줄어들고 허리가 뚱뚱하다 오늘 -
[시로 여는 수요일] 농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5.12.08 10:37:49농담-김중일 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린다면 바다의 수위는 얼마나 올라갈까 세상의 어느 낮은 섬 외진 모서리부터 차례로 잠길까 선잠 위로 차오르는 바다의 수위가 구름까지 닿으면 구름이 철썩철썩 파도처럼 부서질까 필요 이상으로 구름은 또 얼마나 많이 피어나 지구를 빈틈없이 모두 뒤덮고도 남아 우주로 새어나갈까 난민촌 밥 짓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새어나갈까 우주 밖으로 백기처럼 휘날릴까 구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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