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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FEATURE ¦ 스티브 코언의 펀드업계 복귀 전략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때 월가 최고 펀드매니저로 손꼽혔던 스티브 코언 Steve Cohen의 왕국은 2013년 내부거래 스캔들로 몰락했다. 3년이 흐른 지금, 코언은 재산상의 피해도,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금융업계로 돌아올 채비를 마친 상태다.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에겐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코언은 스캔들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사업 관련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시장을 지배할 계획과 그 이유를 설명했다.

코네티컷 주 그린위치에 소재한 자택에서 포즈를 취한 스티브와 앨릭스 코언 부부. 예전 회사가 법적 분쟁에 휘말렸음에도 두 사람의 재산(130억 달러)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2016년 1월 8일이었다. 스티븐 A. 코언이 타임스 스퀘어 동쪽에 위치한 어느 스테이크 식당으로 들어섰다. 끔찍한 새해 첫 주를 마치고 주식시장이 막 문을 닫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코언의 투자자이기도 했던 친구 앤서니 스캐러무치 Anthony Scaramucci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사람이 만난 이유는 ‘사면의 날(Exoneration Day)’ 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그 날 오후 코언은 인생 최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그의 헤지펀드는 역대 최악의 내부자거래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기록적인 18억 달러의 벌금과 함께 회사가 실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건 코언이 업계에 복귀할 길이 열렸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코언은 스캐러무치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헌트 앤드 피시 클럽 Hunt & Fish Club 식당의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잠시나마 아내들과 함께 도시의 밤을 즐기러 나온 뉴욕 주 롱아일랜드 Long Island 출신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샴페인을 따고 레드와인을 주문하는 동안, 그들의 대화 주제는 인내와 우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헤지펀드 업계 최대업체 중 하나인 스카이브리지 캐피털 SkyBridge Capital의 창립자 스캐러무치가 억만장자 친구에게 재촉하듯 질문을 던졌다. “돌아와서 다시 일할 거지?”

개인 순자산만 130억 달러인 코언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코언은 “생각해 봤는데, 꼭 그럴 필요까진 없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스캐러무치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난 자네가 복귀한다는 데 베팅을 하겠네.” 스캐러무치는 내기를 했다. 그는 훗날 “한번 마음먹으면 승리할 길을 기필코 찾아내는 친구를 향한 진정한 지지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티브 코언을 ‘매도(short)’하길 원하는 투자자들은 결국 처절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언이 헤지펀드 업계 복귀를 고려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놀라운 승리라 할 수 있다. 코언의 회사 SAC 캐피털 SAC Capital 직원 8명이 내부거래로 유죄를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이 중 2건은 이후 판결이 번복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3년 7월 관리 소홀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코언은 일선에서 물러났고 고객들도 투자금을 인출했다. 코언을 대상으로 한 형사기소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헤지펀드 매니저 경력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그는 21년간 SAC를 경영하면서 운용자산 최대 160억 달러, 연 수익률 29%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정부 조사 때문에 그의 업적은 빛이 바랬고, 업계에서 평생 퇴출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1월 SEC가 돌연 코언과의 합의를 선택했다. 코언은 혐의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합의에 따라 그는 외부 투자자금 운용이 금지됐지만, 그건 2018년까지만 유효한 금지였다. 고객 유치의 날을 기다리며 개인 자산을 운용하는 행위는 허용되었다. 정부는 코언이 휘하 직원들의 부당거래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확신했지만, 이를 입증하기에 충분할 만큼 증거를 모을 수는 없었다. SEC는 결국 가벼운 처벌로 만족해야 했다. SEC의 전직 내부 변호사는 “다들 꽤 충격을 받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코언이 SEC를 이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코언은 생존의 기쁨을 만끽하며 다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60번째 생일을 맞았지만, 주말마다 친구들과 골프 여행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생일처럼 보내고 있다. 향후 외부 자금을 다시 운용할지에 대해선 확언을 하지 않았지만, 코언에게 자금을 맡겼거나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그럴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코언이 이번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도 그가 부활을 확신하고 있다는 한 가지 명백한 징조라 할 수 있다. 외부 노출을 꺼리는 그는 자신의 사업을 주제로 언론과 단 3차례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내부거래 사건이 터진 후론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는 코언 소유의 웨스트체스터 Westchester 컨트리 클럽에서 조찬 인터뷰를 가졌다. 단풍이 절정에 다다른 10월 초 어느 토요일이었다. 코언은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 셔츠 위로 윗부분에 지퍼가 달린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평소 옷차림이었다. 코언은 “사실 나는 무척 축복받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내 커리어를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거래 사건을 회상하면서 코언의 밝았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고통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어두운 1년이었다. 친구와 동료들이 이제 잊으라고 충고했던 그 시기에 대해, 그는 아직도 말을 아끼고 있다. 법을 완벽하게 준수하면서도 업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줄 때, 코언의 진정한 부활은 완성될 것이다. 그건 그가 정직한 방식으로 억만장자가 됐고, 다른 사람의 돈을 맡을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한 전직 SAC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그는 아마 평가를 바로잡고 싶어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상당수 동료가 이 의견에 동의했지만, 코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를 증명하려 노력할 생각이 없다”고 말할 때 그의 낯빛은 시멘트처럼 창백했다. “몇 년 전 우리가 겪었던 일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 직원들을 위해서도.” 그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인터뷰 분위기는 우호적이었지만, 그의 법률 고문과 사내 홍보 전문가 두 명이 내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펀드업계로 돌아오려면 코언은 먼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과거 그를 비난했고, 아직까지 그의 부활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들도 그가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내부거래 수사에 참여했던 한 전직 연방검사는 “코언은 승리를 원한다”며 “여기서 말하는 승리란 무엇일까? 온 세상에 자기가 사기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언이 자신이 조사 대상이 됐다는 걸 깨달은 시점은 2012년 5월 3일 선선한 아침이었다. 그는 맨해튼 중심가 있는 SEC 사무실로 출두해 진술을 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루 종일 진행된 조사 기록을 살펴보면, 양 측이 서로를 경멸하고 있었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코언의 변호사들은 (절차 특성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끈질기게 반론을 제기했다. 일반에 공개된 18쪽 분량의 조사 내용 전문에 따르면, 코언은 “기억나지 않는다”와 “그런 기억은 없다” 같은 말을 무려 95회나 반복했다. 얼른 끝내고 일하러 가고 싶다는 투였다.

같은 사무실, 다른 규칙: SAC가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코네티컷 주 스탬퍼드에 위치한 본사 사무실은 코언의 개인 재산을 운용하는 ‘가족자산 관리회사’ 포인트72로 변신했다. 포인트72는 규제 준수 기술 및 빅데이터 분석 수단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당시 SAC는 알짜 정보를 통해 대량의 주식을 전광석화처럼 거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장 평균 및 다른 헤지펀드를 거뜬히 뛰어넘는 실적을 몇 년째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코언의 ‘유리한 위치’ 가 일부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얻어낸 것이라는 소문을 무수히 듣고 있었다. 전담 핫라인이 개설되자 경쟁업체 펀드매니저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월가 중개인들 사이에선 ‘코언에게 고개를 숙이고 정보를 잔뜩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페널티 박스 penalty box’라는 이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이름이 오르면, 코언이나 그의 친구들과의 거래가 한 달 이상 거절돼 일감이 뚝 끊기는 상황이었다. 헤지펀드 투자업체 볼터 리퀴드 얼터너티브 Balter Liquid Alternatives의 브래드 볼터 Brad Balter CEO는 “코언이 월가를 너무 괴롭힌 나머지, 모두가 그의 몰락을 바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편 코네티컷 주 스탬퍼드 Stamford에 위치한 SAC 본사에서도 코언의 잔인한 경영 스타일을 놓고 무성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는 경쟁사에 비해 더 큰 리스크를 감수했고 보상도 후했지만, 실패할 경우(즉시 사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래장 전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SAC에는 100명 이상의 최상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있었는데, 이들 모두는 한 사람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몇몇 직원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2013년 7월 25일, 프리트 바라라 Preet Bharara 뉴욕 남부지검장은 코언에게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 날 기자회견을 열고 SAC를 고소한다고 발표했다. 개인이 아닌 헤지펀드사 전체가 내부거래 혐의로 기소된 건 이 때가 유일했다. SAC의 혐의 중에는 2008년 알츠하이머병 신약 임상시험 결과와 관련, 의사로부터 불법으로 취득한 비공개 정보를 활용해 2억 7,500만 달러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내부거래 역사상 최대 액수였다.

검찰은 코언과 매튜 마토마 Mathew Martoma라는 포트폴리오 매니저 간에 이뤄진 20분간의 전화 통화에 주목했다. 마토마는 이 정보 유출 때문에 현재 수감되어 있다. 코언은 통화 다음 날 아침에 거래를 지시했다. 검찰은 마토마가 코언에게 전화로 정보의 출처를 알려 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코언이나 마토마가 자백하지 않는 한,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10년간이나 조사를 했지만, 코언을 형법상 기소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모으지 못하자, 검찰은 목표를 회사로 전환했다. 바라라는 기자회견에서 “SAC가 시장 내 부정행위자들을 강력한 자석처럼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SAC 인사들에게 바라라의 발언은 날벼락과도 같았다. 회사 임원이었던 레이첼 댄토니오 Rachel D’Antonio는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녀는 현재 코언의 기업에서 회계를 총괄하고 있다. 한 매니저는 학교 앞에 아이를 내려 주던 중, 다른 학부모가 ‘그런 나쁜 회사’ 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식들과는 대화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 야구 경기에 갔다가 버니 메이도프 Bernie Madoff (*역주: 사상 최악의 폰지 사기 주모자) 사건 수준의 반응을 겪은 직원도 있었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응답으로 코언은 잔류 직원들의 보너스를 올려주기도 했다. 2014년 초 SAC를 떠나 폴거 힐 Folger Hill이라는 헤지펀드사를 설립한 솔 쿠민 Sol Kumin은 “극복하기 무척 힘든 시기였다” 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새 피를 수혈한 경영진: 코언의 오른팔인 더그 헤인스 회장은 CIA와 매킨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내부거래 스캔들 이후 SAC의 기존 경영진은 거의 모두 회사를 떠났다.


2013년 SAC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는 우울했다. 스탬퍼드 본사 로비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는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조차 없었다. 불과 몇 주 전, SAC는 내부거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헤지펀드 부문을 폐쇄하는 데 동의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직원들은 회사의 근본적 목적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참석자들은 이 날이 회사의 전환점이 됐다고 기억하고 있다. 코언이 자신의 결심을 확실하게 밝혔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코언은 건배를 제안하며 “우리는 형사기소를 당하고서도 살아남은 최초의 회사가 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3년이 지난 현재, 코언은 자신의 약속을 달성하고도 남은 상태다. 2014년 SAC가 폐업 수순을 밟고 있는 동안 코언은 조직을 포인트72 Point72라는 이름의 ‘가족자산 관리회사(family office)’로 전환했다. SAC의 과거 본부를 대체하는 조직이었다. 직원 1,100명과 뉴욕, 도쿄 등 각지에 포트폴리오 매니저 100명으로 구성된 포인트72는 2016년 말이면 SAC의 과거 최대 직원 수를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가 운용하는 자산 110억 달러는 전액 코언이나 직원들의 소유다. 한편, 연방법원은 내부거래에 대해 검찰의 추가적 입증 책임이 필요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로써 명예를 조금 회복한 코언 측은 SEC와 합의가 가능해졌다. 지난 3월 코언은 포인트72 옆에 스탬퍼드 하버 캐피털 Stamford Harbor Capital이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코언이 지분 25%를 보유한 이 회사는 최소한 2018년까진 외부 자금을 운용할 수 없다.

포인트72의 경영진은 사장 더그 헤인스 Doug Haynes를 포함해 대체로 새 얼굴들로 채워져있다. CIA 경력을 가진 헤인스는 오랫동안 매킨지 경영진으로도 일한 인물이다. 매튜 그러네이드 Matthew Granade는 헤드헌터 소개로 코언과 만났을 때 “(SAC는) 실패했다. 본인의 실수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첫 질문으로 던졌다. 코언은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신뢰하되 입증하라’였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네이드는 현재 포인트72의 최고 시황분석 책임자(chief market intelligence officer)로 일하고 있다.

코언은 조찬 인터뷰에서 어떤 실수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포인트72가 타인의 자산도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회사가 훌륭한 자산운용업체로 성장해 직원들 개인의 직업적 목표가 이뤄지는 공간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2018년 계획에 대해 그는 “때가 되면 세울 것”이라고 답했다. 귀찮게 미리 호텔을 예약하지 않는 태평한 여행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규제당국은 코언의 활발한 움직임이 자신들을 비웃는 행위라 보고 언짢은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Elizabeth Warren 상원의원(매사추세츠)는 “헤지펀드 매니저 상습범이 SEC의 핵심 미션을 농락하게 만들었다”며 당국을 비난했다. 양당 모두 현 상황에 마뜩잖은 분위기다. 헤지펀드 사업이 금지된 코언의 스탬퍼드 하버 설립에 대해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 Chuck Grassley 상원의원(아이오와)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SEC가 본래 목적에 부합할 만큼 강력한 집행기구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코언이 추방 기간 동안 이전 생활 습관을 유지한 것도 비판론자들에겐 눈엣가시였다. 그는 10억 달러 상당으로 추정되는 미술품 컬렉션을 갖고 있으면서도 수집품을 공격적으로 더 사들여왔다. 코언은 “순전히 감으로 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코언의 단골 화상이자 친구인 래리 개고시언 Larry Gagosian은 “그보다 못한 사람이었다면 ‘이제 칩을 회수하겠다. 돈은 충분히 벌었다. 이젠 필요 없다’며 판을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언은 아직 그럴 뜻이 없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코네티컷 주 자택 근처에서 코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티브’로 통한다. 롱아일랜드 섬 그레이트넥 Great Neck 태생인 그는 지금도 고교 동창들과 인근 핫도그 가게나 피자 가게에 자주 들르고 있다. 물론 그는 피카소와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의 그림이 곳곳에 걸려있는 매사추세츠 주 그린위치 Greenwich의 한 대저택에 거주한다. 뉴욕 주 햄프턴스 Hamptons와 LA에도 집이 있으며, 뉴욕 메츠의 주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언은 “나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아내 앨릭스 Alex는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우리는 평범한 취향”이라고 말하곤 했다. 두 사람은 만남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됐고,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세 자녀를 포함해 총 일곱 명을 슬하에 두고 있다. 딸의 애완용 돼지 로미오 Romeo가 피카소 그림이 걸린 집 안을 돌아다니며 저녁 식사 테이블 밑에서 식구들의 발을 물어뜯던 시기도 있었다(로미오는 몸무게가 약 68kg을 넘은 후 농장으로 보내졌다). 목요일마다 코언은 아내와 근사한 저녁 데이트에 나선다. 코언이 정장을 입는 날은 결혼기념일뿐이라는 게 여러 동료들의 전언이다.

코언 부부는 최근 대규모 자선 활동도 시작했다. 속보이는 이미지 개선 시도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그는 이 일에 상당한 개인적 의미를 두고 있다. 그는 미 해병대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아들 로버트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3억 2,500만 달러를 기부해 퇴역군인의 정신의학적 치료 및 PTSD 연구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이 밖에도 코언 부부의 재단은 앨릭스가 7년간 앓았던 라임병 (*역주: 진드기를 통해 전파되는 전염병) 의 치료제 개발을 위해 4,000만 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코언의 자선 활동은 사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이뤄지진 않는다. 지난 9월 워싱턴에서 열린 코언 퇴역군인 치료 회의(Cohen Veterans Care Summit) 때, 그는 아침 8시 15분에 간단한 연설을 했다. 하지만 시장이 열리는 시각인 9시가 되자 건물 저편의 임원실로 이동해 거래를 시작했다. 그는 6시간 동안 그 방에 머물렀다. 그 동안 레드불 세 캔을 비운 두 경호원이 지루한 표정을 하고 꽉 잠긴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조용한 수집가: 포인트72 내 코언의 사무실. 피터 도이그의 ‘가스트호프 Gasthof’가 걸려 있다. 헤지펀드 업계에서 추방됐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10억 달러 상당의 순수미술 컬렉션에 계속 작품을 추가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한때 늘 휴대용 운동기구와 함께 이동했듯, 코언은 어디를 가든 화면 5개가 장착된 트레이딩 장비를 가지고 다닌다. 휴가 때도 예외가 아니다. 지중해에서 1주일간 휴식을 즐길 때에도 그는 뉴욕 증시 개장 시간에 맞춰 선실로 내려가 저녁 식사 때까지 업무를 봤다. 디마크 애널리틱스 DeMark Analytics의 톰 디마크 Tom DeMark CEO는 “그래서 나는 코언이 잘못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 중독자다. 일이 곧 인생인 사람이다. 시장은 그의 마음 속 한가운데에 있다.”

코언의 결백을 확신하려면 그의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디마크는 그의 능력을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코언과 전화 통화를 한다. (고담시 경찰국장의 배트맨 전용 전화처럼) 코언만이 걸 수 있는 별도의 전화도 갖고 있다. 디마크는 거래 타이밍에 대해 조언을 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투자 기법이다. 코언은 투자자 심리, 거시경제 지표부터 연준 관계자 발언까지 온갖 데이터들을 하나로 모아 시장 반응을 예측하고 행동에 나설 시기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과거와 달리 회사에서 가장 큰 포트폴리오를 담당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전체 회사 수익의 5% 정도를 창출하고 있다.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어 예전의 15%보단 낮아졌다. 포인트72의 글로벌 트레이딩 총괄로 15년째 코언과 일하고 있는 필 빌하우어 Phil Villhauer는 “코언은 실수에서 배우고, 절대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S&P지수에 큰 변동이 없었던 지난해, 포인트72는 16%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카이브리지 캐피털의 스캐러무치는 “결국 코언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코언은 순자산이 아무리 불어나도 “나의 정체성은 곧 거래”라는 대답을 고수하고 있다. 시장 없이는 스티브 코언도 없다는 얘기다. “이게 내 일이자 내 밑바탕이다.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이 일을 통해 얻고 있다”며 “나는 여기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 계획을 묻자, 코언은 뉴욕 브롱크스 Bronx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잭 Jack을 언급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은퇴한 아버지가 뚜렷한 목적이나 활동도 없이 조용히 지내며 원기왕성한 시절을 낭비했던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물론 언젠가는 은퇴하겠지만, 아버지처럼 물러날 생각은 없다.” 잭 코언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2014년 3월 93세을 일기로 사망했다. 코언은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벽에 걸린 부친 초상화 앞을 지나친다. “매일 아버지에게 아침 인사를 드린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일주일 뒤 포인트72가 설립됐다. 헤지펀드가 아닌 가족자산 관리회사를 운영하면서 그의 삶은 조금 편해졌다. 실적 발표 의무나 투자자 홍보 업무 등이 통째로 사라졌다. 회사는 코언의 ‘사랑방’으로 되돌아갔는데, 그의 목표는 이를 해체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최고 수익률 달성을 위해선 경쟁자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한 자기진화와 함께, 엄격한 기준을 빠짐없이 준수해야 한다. 한구석에선 늘 정부의 감시가 번득이고 있다.

코언은 처음으로 전직 연방정부 관료들을 영입했다. 검찰 출신 비니 토토렐라 Vinny Tortorella가 최고준법감시책임자(chief compliance and surveillance officer)로, 코네티컷 주 검사장 출신 케빈 오코너 Kevin O’Connor가 법률고문으로 선임됐다. 코언은 토토렐라에게 모든 신규 채용자에 대한 거부권 및 해임 재량권을 부여했다(토토렐라는 이 권한을 여러 번 행사했다). 또 준법감시 부서에 1억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정보분석업체 팰런티어 Palantir의 스파이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도 포함됐는데, 자산관리업계에서 법 준수를 위해 이 기술을 구매한 기업은 포인트72가 처음이었다. 기계학습을 통해 직원들의 이메일에서 위험한 단어와 문장을 찾아내는 이 기술은 한동안 비밀에 부쳐져있었다. 직원들이 시스템을 농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포인트72는 트레이더들이 받는 압박을 줄여 그들이 법을 어길 가능성을 낮추기도 했다. SAC 시절에는 코언이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실행해 수익을 올렸을 경우, 해당 매니저에게 추가 보너스를 지급했다. ‘꼬리표(tagging)’라 불린 이 관행은 이제 사라졌다. 과도한 손실을 기록한 트레이더를 해고하는 ‘실적 저하 시 퇴출(down and out)’ 조항도 삭제됐다. 규제 당국이 절대로 스티브 코언을 다른 업체들보다 더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겠지만, 포인트72는 집중 감시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법무법인 모빌로 Morvillo의 유진 인고글리아 Eugene Ingoglia는 검사 시절 마토마의 유죄 판결에 공헌한 바 있다. 그는 “경계에 너무 가까워지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내 발이 빨라도 사자의 입에 머리를 넣고 싶지는 않은 법이다.”

포인트72는 빅데이터라는 돌 하나로 실적과 준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코언은 실리콘밸리를 찾아가 포인트72에 유용한 데이터를 창출하는 벤처기업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장난감 가게에 간 어린아이처럼 들떴다”고 말했다. 포인트72는 패스트푸드 매장의 신용카드 매출 기록과 위성사진을 활용, 기업 영업이익 등 각종 수치를 예측하는 실험에 돌입하기도 했다. 우주에 떠있는 위성카메라가 비공개 정보를 불법 유출할 순 없다는 것이 이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이다. SAC 출신으로, 현재는 헤지펀드 대상 빅데이터 컨설턴트로 일하는 진 엑스터 Gene Ekster는 “회사가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걸 보여주면 죄가 없다는 것도 입증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72의 공격적 채용 행보와 기술적 확장은 2018년 1월 1일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 외부 투자자 모집을 시작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게 객관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코언이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면 기회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SEC는 코언이 일찍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아주 작은 징후라도 포착하면, 모든 합의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것이다. 그래도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언제 코언이 돌아올지 궁금해한다. 스탬퍼드 하버가 2018년 초부터 활동을 개시할 경우, 이르면 2017년 5월부터 투자자 모집을 시작할 수도 있다. 과거 투자자들은 SAC에 돈을 맡기기 위해 긴 대기를 감내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스탬퍼드 하버를 기다릴 의향을 가지고 있다. SAC의 투자 파트너였던 알파 캐피털 매니지먼트 Alpha Capital Management의 창립자 브래드 앨퍼드 Brad Alford는 코언에게 돈을 맡기기 위해 “다른 헤지펀드에서 돈 빠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옛 투자자 중에는 코언에게 돌아가길 꺼리는 이들도 있다. SAC의 과거 고객 한 사람은 “다시 연관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도 그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비용 문제도 있다. SAC의 수수료는 자산의 3%와 총수익의 50%로,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스탬퍼드 하버의 사전 제출 서류를 검토한 사람들에 따르면, 새 회사의 수수료도 이에 맞먹을 것으로 예측된다. 블루프린트 캐피털 어드바이저스 Blueprint Capital Advisors 의 제이콥 웥트아워 주니어 Jacob Walthour Jr.는 “지금 기준으로나, 예전 기준으로나 높은 수수료”라고 말했다. 연금 및 기타 기관투자자가 만약 ‘사죄의 할인’을 기대했다면 그들은 아마 실망하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옛 고객은 “결국 예전만큼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지가 진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언은 세간의 이런 태도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만약 내 실적이 그저 그렇다면,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하면…”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이 업계에 남아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그래도 사업 부담은 예전보다 덜해진 듯하다. 코언은 요즘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브렉시트 투표가 있었던 날, 그는 투표 결과가 집계되기 몇 시간 전인 아침 10시 반까지 침대에 머물러 있었다. 코언은 “15년 전이었다면 밤새 진행 상황을 지켜봤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요즘은 물고 늘어지는 방향이 좀 바뀌었다” 고 말했다(그는 자신과 바라라의 대결을 소재로 한 케이블 채널 쇼타임 Showtime의 드라마 ‘빌리언스 Billions’를 한두 편 시청했다. “할리우드식 상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감상평이었다). 주식 시장이 조정을 보이던 2015년 8월, 코언은 골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참가한 양일간의 토너먼트는 참가자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코언은 “말도 안 되는 규칙”이었다고 말한 후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오늘은 돈 좀 잃지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넘겼다.”

코언은 파란 야구모자를 쓰고 골프 카트에 오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다음 일정은 딸의 하키 게임 참관이었다. 다행히 시장은 폐장 중이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en wiecz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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