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력 6년차의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는 올해 초 10억원 상당의 수출 계약을 연기해야만 했다. 계약을 요구한 해외 기업이 A 대표가 직접 현지에 방문해 계약서를 작성하기를 원했으나 출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출국을 가로막은 것은 병무청이었다. 병무청은 A 대표가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고 당시 석사과정을 마쳐 학업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의 기업은 올해 1·4분기에만 40억원이 넘는 매출을 내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A 대표는 “수천만원 수준의 샘플 계약일 때는 대표를 보지 않고도 체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본 계약을 체결할 때는 검증 차원에서라도 대표가 직접 현지를 방문하기를 원하는데 출국이 막혀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부가 청년 창업을 장려하고 스케일업을 돕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가장 큰 장애물인 군대 문제는 손을 놓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16년 20대 초반에 창업한 B 대표는 창업 2년여 만에 복수의 사모펀드와 기업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을 정도로 빠르게 기업을 성장궤도에 올렸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과 별개로 그는 불안하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군에 입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공무원시험이나 대학원 진학 등으로 입대일자를 미뤄도, 언젠가 군에 입대하면 회사의 경영에서도 손을 떼야만 한다. 이를 우려하던 B대표는 결국 지난해 한 기업의 인수제안을 받아 들였다. B 대표는 “군에 입대하면 회사를 끌고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른 시나리오를 포기하고 인수 후에 합병되도록 세팅했다”며 “만약 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18일 서울경제가 단독 입수한 병무청의 ‘현역병 입영일자 연기 현황’에 따르면 창업을 사유로 군 입대를 연기한 이들은 지난 2014년 8명에서 지난해 60명으로 7.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입영일자를 연기한 이들의 수가 4만4,521명에서 5만5,107명으로 23% 증가한 점을 그친 점을 고려할 때 군 미필 20대의 창업이 빠르게 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18년 대학 창업통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생창업 기업수는 2015년 861개에서 2017년 1,503개로 대폭 증가했고, 이들의 매출액도 83억원에서 201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정부의 청년·학생창업 장려에 힘입어 창업에 나서는 20대가 늘고 있는 가운데 미필 창업가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이들의 군 복무와 관련해 입대를 최대 2년 연기해주는 것 외에는 별도의 정책적 지원이 없어서다. 정부는 지난 2014년 3월부터 창업가가 최대 2년까지 2회에 한해 입영일자를 연기할 수 있는 내용의 현역병 입영업무 규정 제26조 ‘창업가 등에 대한 입영일자 연기’를 신설했다. 이는 △벤처기업 창업가 △벤처기업 예비창업가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받은 사람으로서 창업한 사람 등이 30세 이내에서 입영일자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시 정부는 “대부분의 성공한 정보통신(IT) 업계 창업가는 도전정신과 패기, 상상력이 풍부한 20대에 창업한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20대 청년들은 병역 의무로 인해 창업을 미루거나 학업에 뜻이 없음에도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는 만큼, 도전적인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 군미필 청년창업가의 경영 연속성을 보장하라는 벤처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이 제도는 CTO 등 공동창업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청년 창업이 20대 초중반에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이라는 공백은 스타트업이 스케일업으로 성장하는 데 상당한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청년 창업가들이 입대 연기 및 병역특례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입대와 함께 경영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인복무규율 제16조는 ‘군인은 군무 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거나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0조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시행령 제19조 등도 영리활동을 금지하고 있어 CEO들은 자신이 만든 기업임에도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지난 2009년 창업한 뒤 2013년부터 2년여간 현역으로 복무했던 C 대표는 “군대에서 제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휴가를 나갈 때마다 경영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받았다”며 “제 회사임에도 회사가 가장 성장할 수 있는 시기에 아무런 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입대 전 믿을만한 사람에게 대표 자리를 넘기는 방식으로 겨우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병역지정업체에서 복무하는 전문연구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병역법 시행령 제83조 1항은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의 관리규정 제37조 1항도 ‘민법·상법에 의한 법인의 이사·감사·상무·전무 등 임원의 겸직’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A 대표의 경우 자사를 병역지정업체로 등록했지만 본인이 복무하는 것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는 “제 기업임에도 전문연구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는 동안은 단순히 코딩만 하라는 것이 현재의 병역법”이라며 “눈 앞에서 수십억원의 계약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해외 출장조차 어려운 것도 문제다. 병역법 시행령 제146조 1항 3호는 ‘수출시장개척 또는 수출입계약’ 목적인 경우 미필자도 국외여행이 허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병역의무자 국외여행 업무처리 규정 제5조 1항은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만 국외 출장 등을 목적으로 국외여행이 허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A 대표처럼 전문연구·산업기능요원이 아닌 청년 창업가는 수출입계약을 목적으로 출국할 수 없는 셈이다. 그는 “올해 초 수출입계약 목적으로 현지 업체를 방문해야 했지만 병무청으로부터 거절당했다”며 “병역법 시행령은 수출입계약을 목적으로 하는 국외여행을 허가하고 있지만 병역의무자 국외여행 업무처리 규정에는 관련 내용이 없기 때문에 허가할 수 없다는 게 병무청의 입장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A 대표는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전이었는데, 병무청은 이를 문제 삼아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A 대표는 박사 입학을 한 뒤에야 출국이 가능해졌다. 때문에 이들은 불필요한 석·박사과정을 밟는 방식으로 출장을 다녀오고 있다.
이런 상황은 창업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니콘은커녕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창업가가 미필인 것은 큰 리스크이기 때문에, 공동창업가 등의 대안이 없다면 투자를 못한다”며 “(창업가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기준을 두고 병역특례를 두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 대표도 “미국 벤처캐피탈(VC)로부터 3만달러 상당의 얼리스테이지 투자를 받았었는데 이후 제가 미필인 것을 알게 돼 큰 문제가 될뻔했다”며 “국내 VC들은 대표가 미필일 경우 투자를 접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집행 직전에 거절당한 경우가 수차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련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나 병무청은 이 같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창업가의 미필 여부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있어 현재 미필 상태에서 창업한 이들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고 병무청 측도 “입영일자 연기 대상자의 직업 등은 관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창업을 이유로 군 복무에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행 제도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해 창업가들이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7,000여명 선인 전문연구요원제도의 경우 기술 창업을 하는 이공계 석박사 출신이 많은 만큼 이들이 병역특례의 테두리 안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던가, 최대 2년까지 2회에 걸쳐 활용할 수 있는 입영일자 연기의 경우도 CTO 등 공동 창업가까지 범위를 넓히는 방안 등이 조심스럽게 논의된다.
전문가들은 청년 창업이 빠르게 느는 만큼 정부가 창업과 군대 문제 사이에서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예술·체육특기자 병역특례 제도에 관해 개선안을 고민하는 것처럼 창업가에 대한 특례 마련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철환 카이트창업가재단 이사장은 “창업 활성화를 위해 자신이 만든 기업에서 병역특례로 경영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선의의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매출이나 고용, 수출 등 성과 측정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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