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020560)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면서다. 가뜩이나 돈줄이 말라 버린 상황에서 신용도가 한 단계라도 떨어지면 4,7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조기상환 압박이 시작된다. 자금조달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해 사실상 디폴트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나이스신용평가는 9일 아시아나항공을 ‘불확실검토’ 신용등급감시대상에 등재했다. 나신평은 “코로나19 사태로 현금흐름이 크게 악화한데 이어 HDC현산의 인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무안정성 회복이 더 요원해졌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채권단 역시 선택지는 거의 없다. 매각이 불발하면 산은으로서는 기업 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 또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는 것만 있다. 물론 막대한 자금투입도 병행해야 한다. 산은이 이날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에 대해 재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유다.
투자은행(IB)업계의 한 관계자는 10일 “아시아나로서는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형국”이라면서 “신평사들은 아시아나가 자체 힘으로 재무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BBB-’로 투자 적격 등급 최하단이다. 한 단계만 떨어져도 투기등급이 된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 상승을 기대했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회사의 원매자로 나서면서 대규모 유상증자 등 재무안정성 개선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초 4월 말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인수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도를 등급감시대상에 올리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회사의 재무적 펀더멘털이 크게 훼손된 가운데 HDC컨소시움의 인수 절차가 지연되면서 금융비용 절감 및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인수 과정에서 긴 시일이 소요될수록 회사의 손실규모와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나항공의 2019~2020년 1·4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손실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신용도가 떨어질 경우 4,700억원 규모 ABS의 조기상환 트리거가 발동한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ABS에는 △회사채 신용등급 BBB- 미만 △부채상환계수 일정 기준 미달 △해당 채무 외 차입에서 채무 불이행 중 한 가지 사유라도 발생할 경우 사채를 조기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다. 평상시 유동화전문회사(SPC)는 카드매출대금 등 유동화자산에서 회수되는 돈으로 매달 이자와 원금을 적립하고 나머지를 아시아나항공에게 지급한다. 그러나 조기지급 트리거가 발동하면 유동화자산으로부터 유입되는 현금은 모두 사채를 상환하는데 사용된다. 미래 발생할 매출을 담보로 이미 자금을 빌려온 만큼 향후 노선이 재개돼 항공권 판매가 늘어나더라도 결제 대금이 아시아나항공에 흘러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1·4분기를 지나면서 회사의 회수실적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항공권 구입 대금이 크게 줄어들면서 ABS의 회수실적은 3월부터 전년 대비 약 42~99%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 부채상환계수 미달에 따른 조기상환 트리거를 우려한 아시아나항공은 다수의 SPC에 기내면세품 신용판매대금, 마일리지정산채권 등을 추가신탁하거나 회수실적 대신 현금을 반환하는 등 내용의 계약변경으로 원리금 상환 안정성을 높였다. 외화로 발행한 해외ABS의 공급력트리거(비행기가 뜨지 않을 경우 발동)에 대해서도 팬데믹 사태의 특수성을 감안해 일정기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국내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회수실적 감소나 공급력 트리거 등은 합의를 통해 회사의 대응이 가능한 부분이었으나 신용등급 하락은 어쩔 수 없다”며 “4,700억원에 대한 릴레이 상환 압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빚 갚는 데 쓸 자산은 태부족이다. 지난해 1·4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당좌비율은 26.5%에 불과하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는 4조8,952억원데 반해 1년안에 현금화가 가능한 당좌자산은 1조2,966억원. 쉽게 말해 자산을 다 현금화 해도 1년 만기 빚의 4분의 1만 갚을 수 있는 셈이다.
빚 갚는 데 쓸 현금도 없지만, 막대한 손실을 메울 자본금도 바닥 수준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1·4분기 기준 자본잠식률은 88.6%에 달한다. 남아있는 납입자본금은 2,103억원(연결 재무제표 기준)에 불과하다. 영업손실 2,920억원에 환차손 손실 4,000억원 가량을 더해 당기순손실로 6,833억원을 까먹었다. 매각의 기준 시점인 지난해 상반기 말(1조4,555억원)과 비교하면 14.4% 수준으로 쪼그라 들어 있다. 완전 자본잠식을 막기 위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이달 말 5,000억원 가량의 영구채를 인수하기로 했지만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하다. 지난 1·4분기 1,300원대 턱 밑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내려 환차손은 줄일 수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영업손실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자본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채권단 역시 선택지는 거의 없다. 매각이 불발하면 산은으로서는 기업 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 또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는 것만 있다. 물론 막대한 자금투입도 병행해야 한다. 산은이 이날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에 대해 재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유다.
/김민경·김상훈 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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