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7개월간 수사를 끌어온 검찰이 책임회피를 위해 ‘판결이나 한번 받아보자’는 식으로 기소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이번 수사로 삼성이 입은 유무형의 피해를 검찰이 어떻게 책임질지 의문입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재계 관계자의 목소리는 격양됐다.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삼성은 잠시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이 부회장이 또다시 재판에 넘겨지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검찰의 이번 수사가 전례를 찾기 힘든 과잉수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 전현직 임직원 110여명이 430여차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사무실이 50여차례 압수수색을 당하면서 삼성의 경영활동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검찰이 수사 착수 이후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자 수사기간을 늘리면서 삼성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비판도 나온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의 경우 지난 2016년 12월 특검의 수사가 시작된 후 3년 반 동안이나 같은 건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번 수사에 앞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2016년 11월 이후 무려 3년7개월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은 이날 수사심의위에서 검찰의 무리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고 수사심의위원들은 결국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무엇보다 재계에서는 법원이 앞서 민사소송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해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고집한 것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017년 진행된 삼성물산 합병 무효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고 합병이 승계와 관련 있다고 해도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로 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는 기본적인 기소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무리수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삼성은 검찰이 주장하는 시세조종 의혹도 자본시장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상식적으로 미래의 주가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합병 당시 삼성물산에 가장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유리한 주가를 삼성이 선택했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권고함에 따라 이 부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활발한 대내외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뉴 삼성’을 선언한 후 현장경영을 강화하며 위기의식을 주문하는 한편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15일 반도체·스마트폰 부문 사장단과 릴레이 간담회를 가졌고 19일 화성 반도체연구소를 찾은 데 이어 23일에는 수원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했다.
하지만 삼성은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무시하고 이 부회장 기소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남아 있어서다. 삼성 관계자는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검찰의 기소 여부를 지켜봐야 해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 모두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 경제활성화에 온 힘을 쏟고 있는데 검찰은 반기업정서를 바탕으로 무리한 기업 수사를 밀어붙이고 있으니 어떤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와 고용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재용·변수연기자 jy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