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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IB씨] KCGI가 투기꾼?…제 얼굴에 침 뱉은 산은

<10>화승과 항공 '빅딜', 그리고 사모펀드

지난해 1월이었다. 국내 1호 신발 제조기업이 화승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화승은 스포츠의류 상표인 ‘르까프’로 널리 알려진 기업. 1953년 설립된 동양고무산업이 모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를 맞은 뒤 화의 절차를 통해 간신히 회생에 성공. 이후 2000년대 불어닥친 아웃도어 열풍을 타고 한땐 승승장구하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2014년 6,000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이듬해 3,047억원 대로 반 토막 났다. 97억원이었던 영업이익도 66억 적자로 돌아선다. 급작스런 쇠락이었다. 그리고 4년 뒤 법정관리에 들어섰고 지금은 디앤액트로 사명을 바꿔 달고 회생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7개 사모펀드 운용 산은, 사모펀드 '마녀사냥' 앞장섰다?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2015년은 화승의 주인이 바뀐 해다. 그해 12월 KDB산업은행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KTB프라이빗에쿼티와 손을 맞잡고 2,400억원을 들여 화승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간판은 ‘공동’ 무한책임사원(GP)이었지만 사실상 결정권은 산은(편의상 산은PE로 지칭한다)이 쥐고 있었다.(GP는 해당 투자기업의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참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책임이 주어진 사모투자합자회사의 사원을 말한다. PEF의 구조를 알고 싶은 독자에겐 친절한IB씨 2회 ‘홈플러스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의 복습을 권한다.) 당시 언론은 산은PE의 화승 인수를 두고 ‘선제적 구조조정 성격의 금융지원 1호 프로젝트’란 정체불명의 수식어를 달아줬다.

한참 곁길이지만 그 참담했던 결과는 짚고 가자. 2016년 2,878억원, 2017년 2,764억원, 2018년 2626억원, 2019년 2,108억원. 매출액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뒷걸음질했다. 2016년 191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은 2019년 749억원까지 불었다. 심지어 산은PE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대표채권자 지위도 얻지 못했다.(산은은 800억원의 채권을 쥔 제1 채권자였다.) 채권단은 부실경영의 직접적 책임이 산은PE에 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들 채권단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위원회도 특정감사를 통해 산은PE에 낙제점을 주기도 했다.

다시 본론. 화승 얘기를 꺼낸 것은 산은PE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게 아니다. 때아닌 사모펀드 논란 때문이다. 라임이나 옵티머스 같은 자산운용사 간판을 건 헤지펀드 얘기가 아니다.(깨알 광고 하나 더. 친절한IB씨 1회 ‘사모펀드는 마녀가 아니다’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항공업 빅딜을 두고 다시금 사모펀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항공업 ‘빅딜’을 두고 KCGI 등 3자 연합과 산은-한진그룹 다툼의 불똥이 애먼 PEF로 튄 것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항공업 ‘빅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후 연일 언론을 통해 3자 연합을 이끌고 있는 KCGI를, 그리고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심리하고 있는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 19일 예정에 없던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는가 하면 이후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JTBC와도 단독 인터뷰를 했다.이례적이다. /사진제공=KDB산업은행


앞장서 PEF를 향해 화살을 쏜 이는 누구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이동걸 산은 회장이다. 우선 지난 19일 온라인 간담회를 돌이켜보자. 그는 조원태 회장의 지분 6%를 담보로 한 출자가 특혜라는 KCGI 주장을 두고 “강성부 대표는 사모펀드 대표이고 자기 돈은 0원이다. 남의 돈 갖고 하는 거다. 어떤 책임을 (우리가) 물을 거냐”고 답을 했다.(우선 팩트체크 하나. 통상의 PEF엔 ‘GP 커미트’라는 의무출자 조항이 있다. 얼마일진 모르지만 하여튼 자기 돈 0원이라는 이 회장의 말은 틀렸다는 뜻이다.) 지난 23일 JTBC와의 인터뷰에선 “M&A 딜의 실적을 단기적으로 얻는다는 것은 전형적인 사모펀드의 행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을 자르고 항공요금을 인상하고 그런 방법일 텐데, 그 부분은 단기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모펀드의 형태고요”라는 말도 했다. 요금 인상이나 구조조정 없이 실적을 낼 수 있느냐는 앵커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단타를 노리는 투기꾼이란 말과 다를 바 없다.

왜 놀라야 하느냐고 되묻는 독자가 있을까. 앞서 살펴본 화승을 포함해 산은PE는 27개의 PEF를 운용하고 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구조조정을 더 잘해 보겠다며 PEF 운용사인 KDB인베스트먼트도 설립했다. 심지어 KDB인베스트먼트는 산은이 매각 중인 한진중공업의 유력 인수 후보다! 이렇게 되면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해야 할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회장의 말을 받은 한진그룹은 대놓고 PEF를 투기세력이라 지칭하고 있다. 23일 한진그룹은 입장문을 통해 “(KCGI는)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투자자의 돈으로 사적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라며 “단기적인 시세차익에만 집착하는 KCGI는 투기세력에 불과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정도면 마녀사냥이라고 할 수밖에. 대한항공 노조도 KCGI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을 죽이지 마라”고 공개 발언하기도 했다.

PEF 투자기업이 일반기업보다 고용 더해... 이동걸이 틀렸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이 회장의 말이, 한진그룹의 말이 사실일까. 실제로 PEF는 인력을 잘라 내는 방식으로 실적을 낼까. PEF가 투기꾼이라면, 산은은 국민의 혈세로 투기하고 있단 말인가. 다행히도 이 회장이 원장까지 지냈던 금융연구원에서 2019년 펴낸 관련 논문이 있다. 제목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PEF의 역할과 발전방향, 저자는 이준서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PEF 역사가 긴 해외에선 이 회장과 같은 인식의 연구결과가 많았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불가피하게 인력을 줄였다는 것. 다만 최근엔 PEF의 투자로 경영개선이 이뤄지면 되레 순고용이 증가한다는 주장의 연구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좋은 사례가 독일이다. 논문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고용 증가율이 2.2%였던 시기 PEF 투자기업의 고용증가율은 4.5%를 기록했다. 무려 두 배가 넘는다! 근로자의 만족도도 PFF 투자기업이 더 높았다!



한국에선 더 안 맞는 얘기다. 해당 논문의 원자료인 자본시장연구원의 2017년 연구결과를 보자. 2005년에서 2014년 PEF가 투자한 260개 기업의 고용증가율은 일반기업보다 월등히 높았다. 투자 1년 후 PEF 투자기업의 고용 증가율은 4.7%, 일반기업은 1.0%였다. 투자 직후 되레 일반기업보다 3.7%포인트(P) 더 고용을 늘린 셈이다. 투자 5년 후에도 PEF 투자기업은 1.8%, 일반기업은 0.4%였다. (블랙스톤이 투자한 한국게이츠 사례를 되묻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블랙스톤은 미국에 위치한 게이츠 본사를 인수한 사모펀드라 국내 사모펀드 투자 사례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것은 PEF에 출자하는 국민연금과 교직원공제회 등 기관투자자의 성향 탓이기도 하다. 주로 공적 성격을 지닌 출자자들이 많다 보니 인력 구조조정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다. 이유는 또 있다. 국내 기업은 중견·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기업도 주먹구구식 경영을 한다. 선진 경영기법만 적용해도 쉽게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탓에 굳이 인력 구조조정까지 갈 필요가 없다. 심지어는 지배구조만 개선해도 기업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PEF도 있다. 이른바 행동주의 펀드다.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KCGI가 대표적이다.

여하튼 연구 결과가 내놓은 답은 명료하다. “인력을 자르고 항공요금을 인상하고 그런 방법일 텐데, 그 부분은 단기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모펀드의 형태고요”라고 했던 이 회장의 말은 거짓! 안심하시라. 다행히도 당신의 혈세로 운영되는 산은이 투기하진 않았다. 다만 그가 모르고 거짓을 말했는지, 아니면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두고 발언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항공업 빅딜 명분 먼저 허문 산은...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 실패 사과가 먼저

항공업 빅딜의 성공 여부가 곧 판가름난다. 법원이 KCGI가 신청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인용할진 미지수. 지난 16일부터 이어진 이 회장과 한진그룹의 자극적 언사는 모두 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사모펀드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을 이용한 것. 일반인에게 라임과 옵티머스 같은 헤지펀드와 KCGI 같은 PEF의 구분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모펀드란 이름으로 한데 묶으니 같은 이들이라고 볼 수밖에. 더욱이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단기적 이익을 좇는 이들이라니. 또 합병이 무산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공멸한다고 한다.(근거는 없다.) 반면 성공하면 연간 3,000억원의 수익증대 효과가 있고.(이 역시 근거가 없다.) 절대로 투기세력이 기간산업인 항공사를 장악하면 안 되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사모펀드만 가로막으면 된다는 여론도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물론 다급하면 말이 앞설 수 있다. 3만여명에 육박하는 직원을 먹여 살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는 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번 양보해 그게 목적이라면 법원을 겨냥해 합병이 실패하면 공멸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내놓을 수도 있다. 헌데 그 모든 것에 앞서야 했던 말이 빠졌다. 바로 대국민 사과다. 채권단이 주도했던 아시아나항공의 지난 구조조정과 매각 실패를 통감하고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항공업 빅딜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뒤 KCGI의 자격도 얘기했어야 했다. 그도 제 발등 찍은 사모펀드 마녀사냥 방식이 아니라, 국가기간산업을 감당할 만큼의 공적 책무를 짊어질 수 있는지를 물었어야 맞다. 사모펀드의 마녀사냥으로 싸움을 시작한 산은이 스스로 그 명분을 허물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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