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초거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선두 싸움에 나서겠습니다."
정석근(45·사진) 네이버클로바CIC(사내독립기업) 대표는 2일 서울경제와 만나 “한국어 기반 AI에서만큼은 네이버가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는 해외 기업들이 걸어간 길을 뒤따라가기 바빴지만 이제는 앞을 다툴 수 있는 ‘선수’가 됐다”며 인터뷰 내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네이버클로바CIC는 네이버의 AI 연구·개발 전문 조직으로 최근 차세대 AI로 불리는 초거대(Hyperscale) AI ‘하이퍼클로바’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해외에서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주도로 만든 ‘GPT-3’ 등 1년 전부터 초거대 AI가 출시돼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이제 갓 개발을 위한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네이버는 일찌감치 초거대 AI 개발에 나서 국내 기업들 중 가장 먼저 성과를 냈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정 대표다.
정 대표는 하이퍼클로바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영어가 아닌 한국어에 최적화된 점”을 꼽았다. 실제 현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GPT-3가 학습한 데이터는 97%가 영어다. 한국어는 0.0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하이퍼클로바는 97%를 우리말로 학습했다. 그만큼 우리말 자연어(NLP) 처리가 더 매끄럽고 더 한국 사람같은 AI 구현이 가능하다. 정 대표는 “해외 초거대 AI의 경우 한국어로 된 데이터는 극히 일부만 활용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AI의 수준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면서 “네이버는 사실상 모든 한국어 데이터를 활용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 등 다양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높은 AI를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AI의 영어 편향 문제는 우리 뿐만 아니라 일본도 풀어야 할 숙제인 만큼 라인(네이버 자회사)과 야후재팬 경영통합 이후 AI 분야에서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초거대 AI 도입으로 네이버의 기술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는 게 정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AI를 개발하다 보면 갑자기 AI가 과거에 학습한 데이터를 까먹는다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하는 등 여러 문제에 맞닥뜨린다”면서 “이전에는 구글 사례를 살펴보거나, 해외 논문을 뒤져서 해결했는데 이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제들을 발견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전례가 없는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이제 해외 기업들을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무버(개척자)로 한 발짝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최근 서울대, 카이스트(KAIST) 등과 AI 전문 인력들을 끌어모은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키로 한 것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 대표는 네이버가 초거대 AI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한 발 앞서 갈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의 전폭적인 신뢰를 꼽았다. 실제 지난해 3월 GPT-3가 세상에 나온 이후 전문가들마저 초거대 AI에 의문을 제기할 때 네이버는 서둘러 국내 최고 사양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다. 정 대표는 “초거대 AI가 앞으로 IT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창업자인 이 GIO도 적극 지지했다”며 “덕분에 의사결정이 쉽고 빠르고 진행돼 현재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네이버 AI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중화’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동대문 패션매장에서 직원 3명으로 옷 가게를 운영하는 SME(중소상공인) 입장에서 고객 응대나 마케팅 문구 작성 같은 업무만 AI가 맡아줘도 큰 차이가 난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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