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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 거인족 실제로 존재했을까

소설이나 영화, 게임상의 단골 소재인 거인족. 이들은 역사상 실존했던 것일까. 일각에서는 거인족에 대해 기록된 각종 문헌과 세계 각처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유해를 근거로 거인족이 실존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거인족은 단지 가상의 소재일 뿐이며 유해 발굴 현장 역시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과연 진실은?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대인국의 거인들은 보통 사람 걸리버보다 키가 자그마치 12배나 더 큰 것으로 묘사된다. 추정하자면 대략 18~20m에 이른다는 얘기다. 이들이 사는 대인국에서 걸리버는 곤충의 먹잇감이나 어린 소녀의 인형이 되어 갖은 수난을 겪는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거인족의 세계가 단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거인족은 과거 한때 이 지구에서 인류의 눈을 피해 공존하며 또 하나의 세계를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네피림, 시테카 그리고 길가메시

거인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다. 성경에 거인족 '네피림(Nephilim)'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 종교계 등에서는 이를 근거로 거인족이 실존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네피림은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무렵 신과 인간의 조화로 탄생했다.







구체적으로 창세기 6장 4절에는 "세상에는 네피림이라는 거인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옛날부터 이름난 장사들이었다"고 기술된 부분이 있다.

민수기, 신명기 등에도 네피림이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로 언급돼 있고 네피림이 사는 마을은 '성읍들을 둘러싼 성벽이 하늘에 닿을 듯이 어마어마하다'고 묘사된다. 성경의 이 같은 내용과 관련해 여러 신학자들은 네피림을 권세를 지닌 통치자 혹은 영웅으로 해석해 왔다.

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네피림을 막강한 무력과 잔인한 심성을 지닌 악마적 존재로 받아들였다. 특히 스페인계 유대인 학자 아브라함 이븐에즈라는 "그들을 본 사람들은 심장이 떨릴 지경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약과 구약이 만들어진 중간 시대에 쓰인 외경 '에녹서'에도 네피림은 '타락한 천사의 자손'으로 그려져 있다. 하늘의 천사가 인간 세상의 여인을 탐해 네피림을 낳았지만 하늘의 징벌을 받아 노아의 방주 이후 한순간 사라졌다고 한다.

거인족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전설로는 미국 남부의 파이 우테족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거대하고 사나운 붉은 머리 거인족에 대한 것이다.

'시테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거인족의 신장은 자그마치 3~7m에 달했으며 인디언을 잡아먹던 식인종이었다. 이에 인디언들은 오랜 전쟁을 통해 겨우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알려진다.

이처럼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에서 거인족은 대체로 신적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존재다. 하지만 그 천성이 사납고 포악해 인류와 거세게 대립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때문에 네피림과 시테카가 실재했다면 당시 인류는 거인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걸리버보다 더욱 치열하게 말이다.

이밖에 전설이나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거인으로 지목된 이들도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적 영웅 길가메시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기원전 4,000년경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에서 발원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 수메르의 통치자로서 수많은 서사시에 등장한다. 3분의 2는 신(神), 3분의 1은 사람이었으며 일반 사람보다 훨씬 크고 장대한 거인으로 표현된다.

길가메시와 관련해서는 오늘날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한 수메르 역사서에는 그가 기원전 2,600년경부터 127년간이나 재위했다고 씌어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세부적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라 그 모습은 물론 실존 여부도 확신키 어렵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거인의 유해

이밖에도 많은 기록들에 거인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기록들은 세계 각지에서 인간으로 볼 수 없는 거대한 유해들이 잇따라 발견되며 신빙성을 얻는 듯 보인다.





일례로 지난 1976년 터키 남동부 쿠르드지역에서는 신장 2.7m~3m의 거인 유골이 발견됐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유적 발굴 중 우연히 발견했는데 발견지가 성경에서 요르단 서쪽 가나안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 지역이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이 유골이 네피림일 수도 있다고 믿기도 했다.

지난 1950년 터키 유프라테스강 인근에서도 여러 거인 화석이 발견됐다. 그 중 한 화석의 대퇴골은 길이가 자그마치 1.2m에 달했다. 때문에 당시 학자들은 뼈 주인의 신장을 약 5m로 추정했다. 또한 이곳 역시 길가메시가 통치한 수메르 문명 발원지와 유관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970년에는 아마존강 유역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허리 굽은 거인들이 달리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마치 파이우테족 인디언들의 전설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지난 1911년 미국 네바다주의 한 동굴에서는 이들의 유해로 추정되는 붉은 머리카락을 한 신장 2~3m의 기이한 거인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발견자는 버려진 금광을 탐사하던 광부들이었다. 이들은 누군가 일부러 만든 듯한 인위적 형태의 동굴 깊숙한 곳에서 동쪽을 보고 서있는 3구의 거인족의 유골을 맞닥뜨렸다.

덧붙여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거인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목격담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지난 1850년 미국 중서부에서는 신장이 2m가 넘고 두 줄의 치열이 있는 거인의 유해가 대량 발견됐으며 이중에는 손가락 혹은 발가락이 6개인 것도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04년에도 쓰나미가 휩쓸고 간 태국 피피섬에서 3.1m의 거대 유골이 발견됐고 2005년에는 시리아에서 10m에 달하는 고대 거인의 묘지 두 곳이 발견됐다.

같은 해 페루의 북부 해안에서는 많은 유물들로 가득 찬 고분이 발견됐는데 그 속에 2.8m 이상의 신장을 가진 시신 3구가 확인됐다. 지난 2007년 모로코에서 발견된 신장 2m의 거인족 유골의 경우 분석 결과, 놀랍게도 어린 아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성인이 됐을 때는 키가 9m에 달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판단했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성경 외 각종 문헌의 거인족에 대한 기록들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보탠다. 이를 믿는 이들은 지구상에 거인 집단이 확실히 존재했으며 이들의 활동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유해들의 출처와 진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이들 유해들에 대해서는 아직 학술적으로 명확히 검증된 바가 없다. 목격담에 등장하는 대다수 유해는 종교적 분쟁, 유골의 행방불명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발굴이 중단됐거나 연구가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아예 목격담 자체를 믿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발굴 현장이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음모론자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진들을 합성, 거인의 유해 발굴 현장으로 둔갑시켰을 수 있다는 것. 또 일부 학자들은 거인의 유해를 목격했다는 이들의 경험을 아예 집단 환각에 의한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거인 아닌 커다란 원숭이?

이처럼 세간의 관심과 달리 학계에서는 대체로 거인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학계에서 거인족에 대한 논의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기간토피테쿠스'가 그 실례다. 기간토피테쿠스는 네덜란드의 고인류학자 쾨니히스발트가 지난 1935년 중국과 홍콩에서 발견한 영장류의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어금니의 학명이다.

이 어금니는 사람은 물론 현존하는 가장 큰 영장류인 고릴라의 치아보다 훨씬 컸다. 이후 독일의 해부학자 바이덴라이히는 이 어금니에 인류적 특징이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즉 전설 속 거인족이 실재했으며 이 어금니가 거인족의 치아일 수 있다는 것.

그는 어금니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인류를 '기간토피테쿠스'라 명명했다. 당시 학계가 추정한 바로는 기간토피테쿠스는 신장 3~4m에 몸무게 400~500㎏으로 직립보행을 했다. 바이덴라이히는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 직립원인인 '피테칸트로 푸스 에렉투스' 이전에 이 같은 거인의 단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학설은 곧바로 부정됐다. 발견된 어금니는 기존에 알려진 유인원의 어느 치아와도 유사한 점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학자들은 이를 거인의 것이 아닌 거원(巨 猿)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거원은 수십~ 수백만 년 전에 살았던 일종의 거대 원숭이다.

인류 진화의 원인(原人)에 해당하는 직립인간 '호모 에렉투스'와 분류학상 같은 영장류에 속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게 통상의 학설이다. 그러므로 기간토피테쿠스는 오늘날 호모 에렉투스가 속한 사람속(屬)이 아닌 오랑우 탄, 즉 대형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이와는 상관없이 기간토피테쿠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유인원 중 가장 몸집이 큰 영장류임에는 틀림없다. 키는 3~4m, 몸무게는 400~500㎏에 이르렀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이들은 약 50만년 전쯤 멸종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거인족의 존재는 아직까지 신화나 전설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학계가 내세운 기간토피테쿠스에 대한 견해를 정론으로 보는 것은 다소 섣부른 구석이 있다. 문제의 어금니를 거원의 것으로 보는데 대한 논란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서 기술한 거인족의 유해 역시 기간토피테쿠스의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혹은 전혀 다른 거인의 유해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다.

현존하는 거인족

이와 관련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빅풋'은 거인족과 관련한 또 하나의 논쟁거리다. 빅풋 논란은 지난 1811년 한 상인이 캐나다의 숲속에서 길이 35㎝, 폭 20㎝의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지역 원주민들은 이 발자국이 밴쿠버섬에 사는 야생 거인의 것이라고 믿었다. 거인의 실체는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말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세계 곳곳에서는 유사한 목격담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건축가, 산악인, 광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 이 빅풋을 직접 봤다고 밝힌 것.

미국에서만 빅풋 목격자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곰 사냥을 나갔다가 다른 사냥 꾼들에게 생생한 빅풋 목격담을 들었다고 전한 바 있다.

발자국에 더해 그 주인으로 추정되는 거대 생명체를 목격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빅풋의 주인이 반인반수의 괴생물체라고 주장한다. 지난 2008년에는 빅풋의 사체라는 사진이 인터넷상에 공개되기도 했다. 사진 속에는 갈색의 털로 뒤덮인 채 사람과 흡사한 손과 발을 가진 유인원의 시신이 담겨 있었다.

사진의 공개자는 미국의 빅풋 사냥꾼 매튜 휘튼과 릭 다이어. 이들은 미국 조지아 북부의 한 숲에서 캠핑을 하던 중 우연히 희귀한 동물 사체를 발견, 포획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괴생물체는 키가 2m, 몸무게는 230㎏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또 사체를 발견한 장소 근처에 이와 비슷한 몇몇 살아있는 괴생물체들이 있다며 이를 비디오에 담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체의 DNA를 분석한 스탠포드대학 과학자들은 이것이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신종 생명체라는 결과를 내놨다.



이렇게 빅풋의 정체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것일까. 아니다. 이 괴생물체의 사체는 결국 완벽한 가짜로 드러났다. 스탠포드대학 검사 결과에 의심을 품은 아이다호주립대의 과학자가 독자적으로 DNA를 재분석한 결과, 이 샘플이 오소리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진 속 괴생물체의 사체도 할로윈 의상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빅풋 논란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거인족이나 빅풋에 대한 근본적 미스터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또 다른 목격담들이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 또한 식을 줄 모른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도 이들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빅풋의 최초 발견지로 한바탕 소란을 떨었던 캐나다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마스코트로 빅풋(콰치)을 지정하기도 했을 정도다.

거인족은 정말 존재했을까. 어쩌면 아직도 인류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에 빅풋을 남기며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재미있는 사실은 거인족의 존재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 들은 이들의 정체를 외계인의 후손이라 주장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외계인들이 우주를 여행하던 중 지구에 정착해 지구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은 것이 바로 거인족이라는 설명이다. 얼핏 터무니없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렇게 단언키도 어렵다.

과학계가 불변의 진실로 믿어왔던 통념을 깨고 비소 (As)를 기반으로 생명활동을 하는 박테리아까지 발견된 지금,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의 잠언을 우리도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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