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살아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징후가 심상치 않다. 높이 2,744m 의 휴화산이자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이 조만간 활화산 으로 바뀔 명백한 징후가 있다고 한국과 중국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일례로 익명을 요구한 기상청 소속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백두산 폭발을 가정한 대비책을 연말까지 강구할 것" 이라며 "관련기관의 화산 전문가와 관계 당국자를 소집, 대 책회의를 갖는 한편 일본과 중국의 화산을 연구해 화산에 대한 이해를 높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이 관계 자는 백두산 화산폭발 대응 계획이 대통령에게도 보고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윤성효 교수는 백두산 폭발은 멀지 않았으며 앞으로 몇 년 이내에 폭발이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고까지 단언하고 있다. 또한 문제는 폭발여부 가 아니라 정확한 폭발시기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작년 10월 백두산의 폭발 규모가 같은해 4월 유럽 항공 대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의 10배 정도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백두산은 이미 여러 차례 폭발한 전력이 있다.
평균수심 213m, 최저수심 384m의 천지는 서기 940년 대폭 발의 산물이며 이 때 발생한 화산재가 일본 홋카이도 남부 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백두산은 또 1413년, 1597년, 1668 년, 1702년에도 폭발한 적이 있고 가장 최근의 폭발은 약 100여 년 전에 불과한 1903년이다.
관광지로 여겨지는 지금도 백두산은 휴화산일 뿐 결코 사화산이 아니다. 이런 백두산에서 심상찮은 조짐이 감지 된 것은 지난 2002년부터다.
이 시기부터 백두산 인근의 지 진 활동이 조금씩 강해졌으며 그 중에는 규모 7.3의 강진도 있었다. 백두산의 높이도 2002년 이후 10㎝나 높아진 상태 다. 전문가들은 백두산 지하의 마그마가 팽창, 산을 들어 올 린 것으로 판단한다. 백두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과연 동북 아시아와 세계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화산 겨울
우리나라는 그리 화산활동이 왕성한 나라가 아니다. 따라 서 많은 사람들이 화산 폭발을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시리아 정교회의 교부였던 미 카엘이 화산폭발의 영향을 묘사한 글을 옮겨본다. "태양이 18개월이나 빛을 잃었다. 이 기간 동안 햇빛은 단지 하루 4시간만 비췄을 뿐이었다.
" 이 시기에 유럽 각국은 끔찍한 '마른 안개'와 먼지구름에 덮여 흉작을 면치 못했다. 중국에서는 한여름에 서리가 내 리고 강우량 부족으로 기근이 발생했다고 한다. 나무의 나 이테 분석 결과, 당시의 식물 성장은 형편없었으며 이때 만 들어진 그린랜드와 남극의 빙핵에는 황산 먼지의 비율이 대 단히 높았다.
이 같은 엄청난 기후 재앙을 몰고 온 범인은 서기 535년 으로 추정되는 단 한 건의 화산폭발이었다. 일각에서는 소 행성 충동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화산폭발지수(VEI) 7 정 도의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VEI는 폭발 지속시간, 분출물의 높이와 양 등을 종합해 화산폭발의 강도를 지수화한 것으로 1~8까지 있으며 지수 가 1단계 높아질수록 폭발강도는 10배씩 증가한다. VEI 7의 경우 7,000명의 사망자를 낸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의 10배에 해당하는 강도다.
이 대규모 폭발로 인해 대규모 이산화황(SO2) 가스가 성층권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햇빛을 차단, 핵겨울과 유사 한 '화산 겨울'을 유발하면서 전 세계를 어둠과 추위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대규모 화산 폭발의 영향은 지구의 기온 저하에만 머무 르지 않는다. 대기의 오존 농도를 낮춰 결과적으로 오존층 파괴를 유발한다.
피나투보 화산폭발이나 칠레 허드슨 화 산폭발 때도 해당지역 상공의 오존 농도가 15~20%나 감소 한 바 있다. 화산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화산재 는 호흡기질환, 안구 및 피부 염증 등을 일으키며 폐와 심장 질환을 악화시킨다. 또한 농업과 지구 생태계 전반에 피해 를 주고 정밀제품들의 불량률을 높인다.
항공교통 업계에 서는 화산재만큼 두려운 존재도 없다. 조종사의 시야를 방 해하는 것은 물론 정전기를 일으켜 자동운항시스템을 고장 내며 제트엔진 속에 유입될 경우 연소실에서 용융·유리화 되어 엔진을 멎게 한다.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 후 유럽지역 항공기 운항이 대거 중단된 것도 이 때문 이다.
VEI 8등급 토바 대참사
불행 중 다행으로 그나마 VEI 6~7 등급의 화산 폭발은 그 영향이 약 1~2년, 길어도 3년 정도면 소실된다. 하지만 최고 등급인 VEI 8의 화산 폭발이라면 어떨까. 이 정도의 화산 폭발이 뿜어내는 화산분출물은 부피가 무려 1,000㎦ 이상이다. 그만큼 지구 기후에 지대한 위해를 끼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는 인류 문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7만4,000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 라섬의 토바 화산 폭발이 VEI 8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다. 이는 서기 535년의 유럽 화산 폭발 이후 역사상 최대 규 모로 기록돼 있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과 비교해 폭발력이 3,500배에 달했다.
그 여파로 대기 중에 너무나 많은 SO2가 방 출됐고 이들 대부분이 산화돼 황산 에어로 졸로 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에는 무려 6~10년간의 화 산 겨울이 닥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일 기후가 간빙기 에서 빙하기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기라면 이 같은 화산 겨 울은 빙하기로의 이행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992년 라피도와 셀프 박사는 연구를 통해 토바 화산에서 나온 SO2가 만들어낸 황산이 햇빛을 반사, 지구 평균기온이 3~5℃나 낮아졌으며 이로써 지구의 마지 막 빙하기로 완전한 이행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토바 화산 폭발 후 캐나다의 여름 기온이 평균 12℃까지 떨어지면서 북아메리카 로렌타이드 빙상이 더욱 두꺼워졌고, 그에 따 라 햇빛 반사량이 늘어나 온도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 복됐다는 설명이다.
이 기후변화로 인해 당시 지구에는 아 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단 1,000~1만쌍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뷔름빙기 또는 위스콘신 빙기라 불리는 1만여년 전의 마지막 빙하기가 초래됐다는 이론을 토바 대참사 이론이라 한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한편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VEI 8 등급의 화산 폭발은 약 140만년 마다 한 번꼴로 발생한다. 이를 감안하면 향후 100 년 내 그만한 화산 폭발이 있을 가능성은 0.014%다. 앞으로 7,200년이 더 지나야 확률이 1%를 넘는다. 하지만 안심하기 는 이르다. 그 빈도를 5만년에 1번꼴로 보고 있는 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확률적으로 VEI 8등급 화산 폭발과 동일한 수준의 기후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지름 1㎞급 소행 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의 두 배나 되는 것이다. 혹시 지금 당장 VEI 8등급의 화산 폭발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폭발 후 첫해의 지구 평균 기온이 9.4℃ 떨어질 것이며 10년이 지난 후에도 예년보다 3℃ 낮 은 기온을 유질할 것으로 예견한다.
또한 기온 하강에 의 해 2년간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에 머물게 되고 그중에서도 아마존, 동남아시아, 중앙아프리카 지역은 평균 강수량의 10%에 불과한 비만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흉작과 기근이 지구촌에 만연해 적어도 수백만 명의 사람 들이 굶어 죽게 된다.
그리고 오존층 파괴로 유해 자외선이 지표면에 쏟아져 내릴 것이기에 사람들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노래가 아닌 생존기술로 습득해야 할지 모른다. 이와 관련 VEI 8등급 화산 폭발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 을 발휘한 것으로 여겨지는 지진의 종결자는 약 1억3,200만 년 전에 폭발한 파라나 에텐데카 화산이다.
대서양이 없었 던 시절 브라질-앙골라-나미비아를 잇는 지역에 위치했던 이 화산은 분출물이 8,600㎦에 달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외에도 당시 이곳에서는 이에 준하는 엄청난 규모의 화 산폭발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것이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을 갈라놓고 대서양을 만든 계기가 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가히 인류 문명에 확실한 종말을 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백두산의 경우 설령 폭발이 일어 나더라도 인류 종말의 기폭제가 될 개연성이 희박하다는 것 이다. 천지를 만들어 낸 서기 940년경의 대폭발도 VEI 6~7 등급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기는 해도 현재의 세계 정세와 기후변화 추이를 감 안하면 이 정도 폭발 또한 충분히 두려울만한 악재임에는 틀림없다.
전례로 보건대 백두산이 VEI 7등급의 폭발력을 과시하면 1~2년간 전 세계적인 기온 하강과 흉작을 불러올 것이다. 이미 세계 식량 생산이 인구 증대를 쫓아가지 못하 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후진국들을 중심으로 무수한 사람 들이 아사지경(餓死之境)에 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식량과 물 자원을 둘러싸고 주변국들 간에 치열한 국지전이 촉발될 위험도 적지 않다. 게다가 북한은 현재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 력세습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보 이고 있다. 또한 지난 10년간 인구가 61만명이나 감소했을 만큼 극심하고도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다.
체제수호 의 보루로 여겨지며 민간인들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공급받 았던 군부 내에서마저 식량부족으로 김정일에게 등을 돌리 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보도가 속출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실정에서 화산폭발이 식량난을 가중시킨다면 북한 체제의 급작스러운 붕괴, 혹은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한 전쟁 도발의 개연성이 있다. 이중 어느 것이라도 현실화되는 즉시 한반도를 놓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전투구가 벌어지면서 국 내 상황은 아수라장이 될 우려가 크다.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는 백두산. 과연 자연의 섭리는 한반도와 주변국들의 기후와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까. 우리는 물론 세계가 백두산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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