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dam Lashinsky
Photographs by CODY PICKENS
어느 포근한 봄날 저녁, 마이클 모리츠와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멋진 언덕 퍼시픽 하이츠 Pacific Heights에 있는 대궐같이 으리으리한 그의 집에서 드라이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창 밖의 탁트인 풍경과 현대 미술 작품들로 빼곡한 벽, 넓은 공간 중앙에 자리한 그랜드 피아노 등 거실의 온갖 장식품들을 구경하는 중에도 내 머릿속은 한가지 의문과 씨름하느라 분주했다.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 투자자로 유명세를 떨친 이 남자가 왜 지금 시 노동조합, 그리고 더 나아가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억만장자인 사모펀드계의 거물 워런 헬먼 Warren Hellman과 샌프란시스코 시의 공공 정책을 두고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있냐는 것이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선 건물 관리인부터 경찰관, 소방관, 시청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샌프란시스코 모든 시 공무원들의 연금 납부금을 대폭 상향해 부족한 연금기금을 증액하자는 시민발의가 제안되었다. 모리츠(56)는 이 발의의 주요 재정후원자였다. 그러나 시민 단체의 오랜 지도자이자 사모펀드전문회사 헬먼 앤 프리드먼 Hellman & Friedman의 공동설립자인 헬먼은 이 발의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지원해 결국 발의를 백지화 시켰다. "워런은 지난해 선거일 전에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고 모리츠는 말한다. 그가 공무원 연금 납부금 인상을 고집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연금제도가 납세자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불공평"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워런에게 쓸데없는데 힘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과 합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 실제로도 없었다. 그들은 그 이후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자료를 찾는데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금융가에 있는 헬먼(76)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롱글러스 Wronglers'라는 블루그래스 bluegrass 밴드를 이끌며 매년 수십만 달러를 지출한다. 골든 게이트 파크에서 열리는 '블루그래스답지 않은 블루그래스 페스티벌 Hardly Strictly Bluegrass Festival'을 후원하는 사람답게 그는 밴조*역주: 블루그래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악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투자자이자 자선사업가인 이 노신사는 모리츠의 발의를 무효화시킨데 대해 전혀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마이크가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헬먼은 "어느 모로 보나 압도적인 차이였다"라고 말하며 모리츠의 발의가 1만 8,000표나 적게 득표했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했다. 엄청난 부를 소유하면서도 교양을 극히 중시하는 금융인들 사회에서 이정도 발언이라면 거의 서로 치고받는 말다툼 수준이다. 모리츠와 헬먼의 대결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시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의 방향성에 대한 토론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그 결과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는 한때 탄탄했던 연금 재정에 큰 타격을 가했고, 그 와중에 일부 경찰들이 상상 이상으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연금을 받는다는 사실과 갈수록 증가하는 연금지급액을 보전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샌프란시스코 공무원 퇴직 연금기금은 공무원 가입자 편의적인 기금 운영 설계와 낮은 투자이익 탓에 향후 약속한 연금 지급을 위해 필요한 금액보다 약 15억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다. 부족한 연금기금을 보전하기 위해 마련되는 시 예산은 2000년 이후 세 배 이상 증가해 현재 3억 5,700만 달러에 이른다. 대대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금액은 몇 년 안에 다시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 연금제도에 대한 토론은 당연히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전역의 주 및 지방 정부들은 예산 급감과 연금 기금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미국의 모든 주와 지방 연금기금 부족액을 합치면 최대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극좌파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대결 구도는 타지역과 차별화된다. 연금제도 개혁과 관련해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뉴저지 주와 위스콘신 주와는 달리, 샌프란시스코에는 민주당원들과 연금제도 개혁안을 놓고 맞서 싸울 공화당원이 없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이 도시는 시카고나 세인트 루이스에서라면 '좌파' 딱지가 붙었을 법한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 Board of Supervisors 위원들이 우익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서로 대결을 벌이며 맞서는 세력들이 같은 정치적 성향을 공유하고 있기에 순수한 정당 대 정당 간 적의는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20대 시 July 2011 FORTUNE KOREA 119 절 타임지 기자로 활동했던 모리츠의 말처럼 "전미총기협회 NRA를 지지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일단의 운동가들이 마약을 재배하면서 늙어가는 일단의 히피들을 상대로 벌이는 성전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샌프란시스코 연금제도 개혁을 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현재 미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갈등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통제된 실험과도 같다. 이 갈등이란 한 정부의 국민들과 이들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 간의 사회적 계약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라 할 수 있다. 모리츠와 헬먼이 각각 양 진영을 대표해 대결을 주도하면서 먼 변방의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이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다른 도시나 지역에선 여전히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8년에 있었던 한 국민투표 발의로 공무원들의 연금 수령 방식이 크게 달라진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연금제도 개혁은 항상 정치적 의제였다. 2009년에는 한 민간 대배심 civil grand jury이 연금기금 부족으로 인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상세히 정리해 '연금 쓰나미'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선출된 국선 변호인 제프 아다치 Jeff Adachi(51)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당시 연금과 건강보험기금에 대한 시 보전금이 증가하면서 사무실 예산이 삭감되어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제프는 주 업무 외에 따로 시간을 내어 개혁안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2010년 선거에 맞춰 시 공무원들의 연금 및 건강 보험 납부금을 인상하는 내용의 시민발의를 기안하기로 결심했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있기 전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던 아다치는 이미 방송 출연 준비를 끝내고 활동에 나서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Secramento에서 태어난 아다치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부르는 운동가였다. 그의 부모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포로로 억류를 당한 적도 있었다. 무스를 듬뿍 발라 머리를 뒤로 넘기고 8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멜빵바지를 입은 아다치는 전업 국선 변호인으로, 바니 밀러 Barney Miller TV *역주: 70~80년대에 방영됐던 TV시트콤를 통해 TV스타로 떠오른 고(故) 잭 수 Jack Soo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middot;감독하기도 했다. '당신은 잭을 모른다 You don't know Jack' 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얼마 전 PBS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아다치는 샌프란시스코 경찰관들이 경찰서 유치장 수감자들로부터 소지품을 훔치는 상황으로 보이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최근 공개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아다치는 두 방향에서 경찰을 압박했다. 그는 "시 정부가 여름 학교 프로그램 예산을 감축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 어떤 경찰관이 50만 달러의 소득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나는 단지 이런 상황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정부 복지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는 서명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가장 취약하지 않은 계층과 손을 잡았다. 그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모리츠에게 접근했고, 모리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다치의 재정 후원 요청을 승낙했다. 자신의 사재를 투입해 캠페인을 전개하면 변화를 이끌 만한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모리츠는 야후와 구글에 대한 세콰이어 캐피털 Sequoia Capital의 투자를 성사시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실리콘 밸리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재 링크드인 LinkedIn이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 링크드인은 지난 5월 엄청난 관심 속에 기업 공개를 마쳤고, 링크드인의 최대 투자자인 세콰이어캐피털은 이를 통해 막대한 투자이익을 챙겼다. 모리츠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양당을 불문하고 다양한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박력 부족에 환멸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을 "슈워제네거 민주당원"이라고 부르는 모리츠는 (전 캘리포니아 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숨겨둔 아이가 폭로되기 이전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영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으면서 '귀족노조'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하루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는 돈 없는 사람들이 많다. 수세대에 걸쳐 정치가들이 내놓은 연금지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매년 삭감되었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전체적인 삶의 질은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대규모 조직을 갖춘 시 공무원 노조에 대항한 모리츠는 그에 따르는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싼 토론이 특히 격렬했던 어느 날, 노조는 모리츠의 집 바로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세콰이어 캐피털이 그들의 연금기금을 운용하는지 여부를 파악하려 했다. 만약 운용한다면 이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사를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모리츠는 기자에게 강조했다. 세콰이어는 절대 연금기금을 운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바로 자신의 집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 모리츠의 반응은 어땠을까? "단지 내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모리츠가 합류하고 연금개혁에 대한 토론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아다치의 노력은 차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워렌 헬먼마저도 아다치의 연금제도 개혁 캠페인에 관심을 가졌다. 또 이를 지원하기 위해 2010년 8월 5만 달러짜리 수표를 보내주기도 했다.
억만장자인 헬먼이 아다치를 지원한다는 것은 그를 친구로 여겨왔던 샌프란시스코 소방관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헬먼은 사실 태생적으로 지역사회 지도자의 운명을 타고 난 인물이다. 그의 선조 I.W.헬먼은 18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은행가였다. 게다가 헬먼 자신도 시 공무원들과 꾸준히 좋은 관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수년에 걸쳐 자신이 후원하는 음악 페스티벌의 원활한 개최를 위해 시 치안당국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소방관이 되어 현재는 소방관 노동조합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톰 오코너 Tom O'Connor는 헬먼과 함께 한 아침식사 자리에서 아다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헬먼은 한 가지 조건을 수용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조건은 바로 노조가 아다치의 개혁안을 무력화시키는 즉시 헬먼과 노조가 그들 나름대로의 개혁안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는 설명한 대로다. 노조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며 아다치-모리츠 제안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올해 투표에 대비하기 위해 헬먼의 사무실에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을 개혁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 '헬먼파'는 그의 사무실에서 총 60시간 이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했다. 에드윈 리 임시 시장이 시청에서 회의를 하라는 제안을 할 때까지 이 사무실 모임은 계속되었다. 이 노조 심의에서 철저히 배제된 한 사람은 바로 제프 아다치였다. 오코너 소방관 노동조합장은 이에 콧방귀를 뀌었다.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연금제도에 문제가 있으니 국선 변호인을 부르자'고 한답니까?"
그에 비해 헬먼은 훨씬 아다치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리 시장은 일부 회의에 그를 초대하기도 했다. 헬먼은 "제프 아다치 없이 우리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방안이 현실화될지 미심쩍다"라고 말했다. 아다치와 노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서도 헬먼은 소란에서 약간 벗어나 능력 있 고 경륜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헬먼은 특히 지역 정치를 전문으로 보도하는 비영리 온라인 언론 단체 베이 시티즌 Bay Citizen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단체의 설립 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후원했다. (베이 시티즌은 시 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논란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헬먼의 역할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지난 5월 말 포춘 5월호 인쇄가 시작됐을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었다. 헬먼과 노조는 공무원 연금에 대한 공무원 가입자의 납부액을 현재 월 보수의 7.5%에서 최대 11% 이상 올리는 방안을 담은 절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방안은 연금기금의 투자 손실액을 10년에 걸쳐 배분해 단기적으로 연금 비용을 낮추는 보험계리 기법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 기법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현업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은 기법이다. 게다가 노조는 연 7.75% 라는 매우 공격적인 투자 수익 추정치를 기반으로 연금계획을 작성했다(아다치의 한 컨설턴트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우 동종 펀드에 대해 그보다 훨씬 낮은 6.2%로 투자 수익 목표치를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다치는 이 기법이 결국 미래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그가 새롭게 제시한 방안은 공무원 가입자들의 연금 납부액을 최대 16%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연금기금에만 관련된 것으로, 그가 2010년에 제시했던 제안에서 의료비 항목을 삭제한 것이다. 리 시장은 100 페이지가 넘는 시민발의 제안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제안서는 투표에 부쳐지기 전에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의 철저한 정밀 검토를 거치게 된다.
이론상으론 현재 대결을 벌이고 있는 모든 세력들이 11월 이전에 공통의 개혁방안에 합의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적인 개혁방안을 담고 있고 모두가 동의하는 제안이 있다면 나는 내 제안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고 아다치는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모리츠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샌프란시스코 공무원 연금기금이 최근 다른 투자 기금들이 그랬던 것처럼 올해 높은 투자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2010년 6월 시작된 올해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연금기금 수탁액은 23% 증가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소식은 연금기금 개혁을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이 들어간 덕분에, 주식시장이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샌프란시스코의 연금제도를 손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샌프란시스코의 연금제도 개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드라이 와인을 한 잔씩 들고 샌프란시스코를 축하하며 건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도시의 모범사례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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