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CJ오쇼핑 이해선(56) 사장은 말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CJ오쇼핑의 도전정신입니다. 다 함께 쇼핑 히말라야의 정상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7월 CJ오쇼핑 본사에서 열린 16주년 기념행사에서였다. 이해선 사장이 표현한 히말라야는 중국, 인도, 일본, 베트남까지를 아우르는 TV 홈쇼핑 시장을 가리킨다. 홈쇼핑 업체가 해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건 히말라야의 험난한 봉우리를 정복하는 것처럼 만만치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CJ오쇼핑은 히말라야의 9부 능선에 벌써 다다랐다. 2011년 CJ오쇼핑의 국내 연간 매출은 약 2조 원이다. 상해 동방CJ의 올해 예상 매출은 1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CJ오쇼핑은 중국 천천CJ와 인도 스타CJ가 자리를 잡으면서 약 4,650억 원가량의 실적을 끌어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지르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보인다.
지난 10월 11일 때마침 CJ오쇼핑 본사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middot;태 소매업연합회(FAPRA)에서 아시아 최고 유통기업에게 수여하는 글로벌 유통혁신부문상을 받은 것이다. FAPRA 어워즈는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통 관련 시상식으로 CJ오쇼핑이 이 지역에서 새로운 글로벌 유통강자로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CJ오쇼핑의 한 관계자는 “국내 홈쇼핑업계 최초로 단행한 중국, 인도, 베트남 진출은 한국 홈쇼핑산업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미래를 보여 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 홈쇼핑 업체 가운데 해외 시장에서 CJ오쇼핑을 상대할 경쟁자는 없어 보인다. 국내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GS홈쇼핑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중국사업을 지난해 철수해 버렸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중국에 진출했지만 CJ오쇼핑을 따라잡기에는 아직까진 역부족이다. CJ오쇼핑의 거침없는 성장세는 중국시장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CJ오쇼핑은 인도, 일본 시장에 안착하자마자 바로 베트남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CJ오쇼핑의 해외시장 개척길이 곧 한국 홈쇼핑의 역사가 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홈쇼핑 업체 가운데 해외 시장에서 CJ오쇼핑을 상대할 경쟁자는 없어 보인다. 국내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GS홈쇼핑도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지난해 중국사업을 철수시켰다
중국 홈쇼핑의 신기원을 마련하다
CJ오쇼핑의 첫 해외 진출지는 중국 상해다. CJ오쇼핑과 중국 제2 미디어그룹인 상해 미디어그룹(Shanghai Media Group, 이하 SMG)이 합작해 동방CJ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4년 4월 첫 전파를 송출했다. 지난 2010년 2월부터는 전용 채널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24시간 홈쇼핑 방송은 중국 내에서도 화제였다. 심야방송까지 하면서 24시간 사람들의 쇼핑을 유도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한국식 홈쇼핑 모델이었다. 그리고 24시간 방송의 효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CJ오쇼핑은 2007년 약 1,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24시간 방송이 시작된 2010년에는 약 7,000억 원을 올리더니 올해는 매출 1조 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4년 만에 10배가량 매출을 늘린 셈이다.
동방CJ는 최근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전체 지역에 홈쇼핑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 사업권을 허가받았다. 외국계 기업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CJ오쇼핑이 추정하는 동방CJ의 시청자는 1,300만 가구에 달한다.
동방CJ의 중국 내 최대 경쟁사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계 업체 ACORN사다. 2008년까지 동방CJ는 ACORN사에 밀려 2위를 했지만 2010년 24시간 채널 개국 이후로는 중국에서 홈쇼핑 1위 업체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동방CJ의 성공은 CJ오쇼핑의 해외진출에 큰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동방CJ 유재승 부장은 말한다. “동방CJ는 한국의 선진화한 홈쇼핑 사업 모델을 해외에 수출한 첫 번째 성공 사례입니다. 동방CJ의 성공으로 아시아 각국의 우수한 파트너들로부터 공동 사업 제안이 줄을 잇고 있어요. 동방CJ의 성공 덕분에 중국 천진과 인도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동방CJ는 중국시장에서 고급 유통채널로 변신하고 있다. 동방CJ는 현재 한국에서도 팔기 힘든 고가의 제품을 자주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BMW 승용차 56대를 팔기도 했다. 수백만 원대 금괴와 다이아몬드를 단골 상품으로 내놓기도 한다. CJ오쇼핑의 한 관계자는 “동방CJ가 판매하는 제품의 평균 단가는 1,000위안으로 환율을 감안하면 약 2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라며 “한국 홈쇼핑 제품의 평균 13만 원대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상해에 위치한 백화점의 제품 평균 판매 단가가 400위안이고 일반 대형마트가 200위안 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CJ오쇼핑에겐 중국에서 운영하는 24시간 전용 채널이 하나 더 있다. 지난 2008년 천진 지역에 설립한 천천CJ다. 이 채널은 천진시에서 허가한 유일한 24시간 홈쇼핑이라는 이점도 등에 업고 있다. CJ오쇼핑이 중국 사업을 천진지역까지 넓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천진은 최근 2년간 GDP가 17%대까지 오른 중국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은 시장이다. 천진 지역의 장점은 또 있다. 한국에 비해 젊은 고객층이 두텁고 특히 남성의 구매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천천CJ의 윤도선 총경리는 말했다. “천천CJ의 구매고객을 분석해 보면 25~35세의 젊은 직장인이 전체의 35%를 차지합니다. 이들에겐 새로운 유통 채널, 새로운 상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죠. 고가 상품에 대한 저항감도 낮을 뿐만 아니라 천진지역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아주 중요한 소비층입니다.” 천진은 중국 정부의 11차 5개년 계획에 따라 경제와 물류의 중심지로 더욱 발전하고 있다. CJ오쇼핑 같은 유통업체가 성장하기에 좋은 토양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CJ오쇼핑의 공격적인 해외진출은 중국과 인도를 거쳐 올해 일본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직접 진출이 아닌 인수합병 전략으로 일본 시장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인도와 일본에 상륙한 CJ오쇼핑
CJ오쇼핑은 중국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장을 노려보고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시장인 인도와 일본이다. 우선 CJ오쇼핑은 2009년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인도 시장에 상륙했다. 스타CJ라는 이름으로 2010년 8월부터는 전용 채널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CJ오쇼핑이 예상하는 인도의 소매 시장 규모는 올해 약 4,200억 달러. 2015년에는 2배가 넘는 9,0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J오쇼핑의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인도의 TV홈쇼핑 시장은 9~15분 분량의 상업광고가 주류를 이루는 홈쇼핑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시장 규모는 약 1억 달러 정도로 아직까진 미미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대폭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특히 케이블TV 시청가구와 경제 성장세를 감안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잠재력 있는 소비시장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어요.”
CJ오쇼핑의 공격적인 해외진출은 중국과 인도를 거쳐 올해 일본으로 이어졌다. 이번엔 M&A 전략으로 일본시장에 발을 들여 놓았다. 지난 1월 CJ오쇼핑은 일본의 프라임쇼핑을 전격 인수했다. 프라임쇼핑은 2000년 12월 자스닥(JASDAQ)에 상장한 일본의 메이저 홈쇼핑 업체다. CJ오쇼핑은 프라임쇼핑의 검증된 상품 기획력과 방송 제작 역량, 탄탄한 일본 내 미디어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유통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높은 시장 장벽을 돌파하기엔 신규 진출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SCJ TV의 성공적인 방송은 앞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 진출에도 원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시장은 CJ오쇼핑의 글로벌 사업에 또 하나의 중요한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일본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상품 기획력을 보유한 유통시장도 드문 편이다. CJ오쇼핑은 앞으로 일본사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중국, 인도 등 다른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CJ오쇼핑은 중국과 인도, 일본을 잇는 해외법인 연결망을 ‘아시안 벨트’라고 부른다. CJ오쇼핑은 이러한 아시안 벨트를 더욱 단단하게 이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두보로 베트남을 지목한다. 베트남은 CJ오쇼핑이 가장 최근에 진출한 해외 진출지다. 지난 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베트남 케이블 방송사업자 SCTV의 합자법인인 SCJ TV를 통해 24시간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CJ오쇼핑은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홈쇼핑 방송을 시작했다.
SCTV는 베트남 최초의 전국구 방송사업자다. 호치민 등 베트남 남부지역과 수도 하노이 등 북부지역을 모두 맡고 있다. CJ오쇼핑에겐 협력업체로서의 상징성이 매우 높다. 베트남의 경우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계기업이 방송 사업권을 따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SCJ TV의 성공적인 방송을 계기로 앞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 진출에도 원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SCJ TV 엄주환 대표는 말했다. “베트남 유통 시장은 2000년대 들어 연평균 7%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대화된 기업형 소매업의 성장률은 연평균 39%대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커지고 있죠. 중국, 인도에서의 성공 경험과 한국형 홈쇼핑의 노하우를 살려 베트남 시장에서 이른 시일 내에 기존 사업자와 차별화한 유통업 강자로 올라설 것입니다.” 현재 SCJ TV는 내년에 약 200억 원, 2015년에 약 8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홈쇼핑 아시안 벨트 구축
CJ오쇼핑의 해외 사업 확장과 성공 원동력은 어디서 나올까. CJ오쇼핑의 해외시장 공략의 전략적인 공통점은 바로 철저한 현지화에 있었다. CJ오쇼핑은 국내 히트상품이라도 해외시장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한국식 홈쇼핑 모델을 기본으로 삼고 현지 고객들의 입맛에 맞춰 상품과 서비스를 바꿨다.
동방CJ는 PB(Private Brand)제품인 란제리 피델리아를 현지화 전략의 좋은 성공 사례로 꼽는다. 동방CJ는 2008년 12월 피델리아 첫 방송에서 45분 만에 준비한 물량 1,500세트를 모두 판매했다. 사실 화려한 데뷔무대 이면에는 혹독한 사전 준비 과정이 있었다. CJ오쇼핑은 2008년 6월부터 FIS(Fidelia In Shanghai) TF팀을 구성했다. 중국 여성들의 속옷에 대한 취향부터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조사 결과 한국의 20~40대 여성들은 디자인과 컬러를 중시하는 반면, 중국 여성들은 실용주의가 강하고 언더웨어에 패션성을 가미한 상품 자체를 생소하게 느낀다는 걸 파악했다. 이후 여러 차례 진행된 시장 조사와 소비자 품평회를 통해 중국 여성들이 찾는 디자인과 특정 사이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방CJ 언더웨어 담당 박성재 MD는 말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고객 분석 단계에서부터 현지 시장에 맞게 완전히 새로 시작했던 것이 피델리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 밖에도 해당 국가의 고유한 사회문화적 특성을 접목해 성공을 거둔 히트상품도 많이 있다. 중국인들의 유별난 금 사랑을 겨냥해 각종 상품을 개발했다. CJ오쇼핑은 2008년 순금 골드 바(Gold Bar) 100g짜리를 총 510개나 판매해 20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2009년 진출한 인도 스타CJ는 현지 식문화를 정면으로 공략한 상품을 론칭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로 빵이나 치킨을 구워 먹는 현지인들의 요리 습관에 주목한 스타CJ는 직화 방식의 오븐을 2개월 동안 방송해 2만 세트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스타CJ의 노경근 상품팀장은 “직화 오븐은 인도시장에 전혀 없던 상품을 공급한 것이었다”며 “한국에선 흔한 제품이라도 마케팅 포인트만 잘 파악하면 얼마든지 같은 제품을 가지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구매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CJ오쇼핑은 지난 2008년 중국 상해에 CJ IMC(International Merchandising Company)를 설립했다. CJ IMC는 중국과 인도를 겨냥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공동기획하고, 한국의 중소기업 상품의 해외진출도 돕고 있다. CJ IMC가 CJ오쇼핑의 현지화 전략을 완성도 있게 만들기 위해 최일선 보급부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 CJ오쇼핑 제공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