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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우주인 고산 창업전도사로 거듭나다


불운의 우주인 고산. 러시아 유리 가가린 센터에서 1년간 우주인 훈련을 받다가 1개월을 남기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 자리를 이소연에게 내줘야 했던 그가 올 2월 벤처 창업 컨설팅 회사 타이드인스티튜트를 차렸다. 포춘코리아가 그를 직접 만나 갑작스런 변신의 이유를 들어봤다.
한정연 기자 jayhan@hmgp.co.kr
photograph by Lee Jong Chul

성북구 평창동
골목에서 한 손에는 커피가 든 텀블러 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주 머니에 찔러 넣고 내려오 는 고산(35)을 만났다. 그 런 그의 당당한 제스처는 사진촬영을 할 때도 계속 됐다. 상당히 높은 곳 에서 뛰어내리는 포즈를 자처하더니 몇 차례고 다시 뛰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도 고산은 뛰고 또 뛰었다. 기자가 말릴 때까지 십 여 차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1m가 넘는 축대 였으니 발목이 시큰거릴 법도 한데, 얼굴에 가득 한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 에 자리를 잡았을 때도 그는 햇빛을 마주보고 앉았다. 햇빛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젠가는 우주 에 갈 것”이라고 말할 때였다. 대한민국 과학기 술 정책을 만들고 싶다는 건강한 청년 고산. 그 는 왜 창업 전도사로 나선 것일까? 그와의 대화 가 이어졌다.

> 타이드인스티튜트는 어떤 회사인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타이드는 창업의 판을 벌 이는 곳이다. 창업자가 한 발짝 내딛기 쉽게 하 는 플랫폼을 만들어 벤처캐피털이나 인큐베이 터 업체 그리고 창업자가 한데 모이게 하고 싶 었다. 일반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 에 판을 자체적으로 크게 벌이지 못한다. 비슷 한 단체가 미국에 있긴 하지만, 그런 단체는 자 체적인 투자를 하는 곳이다. 타이드는 기존에 없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수익성이 없으니까 지금껏 아무도 안 한 것 아닌가?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창업경진대회 등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구현할 때 얼마나 잘 되느 냐가 문제다. 우리 프로그램은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행사를 주최하 면 우리가 운영을 맡아서 하는 식이다. 지난 7 월에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10년째 해온 영제네레이션포럼을 우리가 운영했다. 해외에 있는 한인 1.5세나 2세 이공계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행사가 잘 돼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 기업가는 결국 수익창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려는 단체 가 수익을 못 내고 돈이 없다면 문제 아닌가?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론 우리를 통해서 창업에 성공한 기업으로부터 상징적으로 지분의 1%를 기부받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기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도 펀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가자는 어떻게 모집할 것인가?

미국 싱귤래리티 대학 모델을 먼저 설명하겠다. 먼저 각 분야 교수나 창업자 등 전문가들을 모 두 불러서 트렌드에 대해 강의를 한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 직접 찾아가 실제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 3주 동안은 참 가자들이 창업 아이템을 만들어서 벤처캐피털 앞에서 발표를 한다. 올겨울 연세대에서 이와 똑같은 프로그램을 계절학기 때 열기로 했다.

> 왜 하버드 대학을 휴학하면서까지 타이드 를 만들었나?

과학기술 정책을 공부하고 싶어 하버드 대학 케 네디 스쿨에 갔다. 과학기술 정책에선 인재 정책 이 무척 중요하다. 학생들이 이공계에 많이 안 오기 때문이다. 창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 고 답답해 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실리콘밸리 의 활발한 분위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 10월에 미국에서 ‘제1회 미주 한인 기업 가정신(Entrepreneurship) 대회’를 연 다. 어떤 대회인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크게 보면 미국 싱귤래 리티 대학의 창업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다. 그 런데 진행을 하다 보니 똑똑한 친구들은 다 외 국에 나가 있었다. 이들을 흡수하고 싶었다. 나 가면 안 들어오려 하니까 국가적으론 두뇌 유 출 아닌가. 이들은 국제적인 창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시 품어서 데리고 오려 한다. 그 첫걸음이 이번 대회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베이 에어리어 Bay Area 코리안 그룹이라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모임이 많은 도움을 줬다. 타이드와 희망제작소가 함께 주최한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늘고 있는데, 희망 제작소가 그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비 용은 투자를 받아서 해결했다. 한국전자인증, 스마일게이트, 한국연구재단, 한국청년기업가정 신재단 등이 참여했다. 앞으로 중국과 유럽 등 으로 판을 키울 생각이다.

> 고산 씨는 대기업 출신이다. 삼성 연구원 생 활은 어땠나?

2005년 입사해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충분하게 자유롭진 못했 다.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연구를 하는 곳임에 도 윗사람들은 성과를 내는 데 조급해했다. 당 시 3D 콘텐츠에 집중해보자고 제안했지만, 3D TV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왜 그런 것에 집 착하느냐고 핀잔만 들었다. 삼성이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연구 환경이 더 자유로워져야 한 다. 연구원들의 상상력을 더 풀어놔 줘야 한다. 연구자들의 천국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성과가 나오는 것은 사 업부에서 하면 된다. 삼성종합기술원 같은 곳 에선 뜬금없는 황당한 이야기라도 미래를 보 고 했으면 좋겠다.

> 대기업과는 앞으로 행사를 같이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대기업에서도 창의력을 요구한 다. 중소기업과의 상생 노력도 한다고 하지 않는 가? 대기업이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젠 이런 프로 젝트를 제안할 때가 됐다고 본다. 지금 나이도 적지는 않지만, 한 분야 전문가 로 보긴 어렵다. 게다가 지금은 학생이다. 이런 판을 벌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

맞다. 내가 멘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엮어줄 수는 있다. 나는 판을 벌이기에 적합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는 점이나 내 성향을 봐도 그렇다. 무엇보 다 나는 이런 일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 러시아 생활을 통해 국가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러시아 생활이 어땠기에 이렇게 사람을 바꿔놓은 것인가?

나는 한국과 러시아가 닿는 접점에 있었다. 스 스로 나는 ‘한국 대표’라고 나 자신을 규정했다. 행동을 할 때도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경쟁을 해 도 소연(우주인 이소연 씨)이랑 하는 게 아니라 그곳 러시아 사람들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러 시아어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교관이 물어보면 대답을 러시아어로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러시아의 기술력은 굉장히 앞서 있었다. 러시아 생활은 어땠나?

유리 가가린 우주훈련센터에서 생활했다. 이 센 터는 군부대 안에 있었다. 한국인은 사무를 봐 주는 사람과 이소연 씨를 포함해 셋이었다. 시 간이 정말 없었다. 몇 달 동안은 밖에 나가보지 도 못했다. 주말에는 러시아어 단어를 외우고 시험공부를 했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하고 싶 었다. 한국 사람 모두가 이 정도는 된다는 걸 보 여주고 싶었다. 그때 친해진 러시아 사람들과 지 금까지 이메일을 교환한다. 그곳에서 나와 같이 사업하자는 친구도 있다.

> 우주인이 못된 상처는 아물었나?

상처가 별로 심하지 않았다. 잠깐 실수로 그렇 게 된 게 아니었다. 물론 고민은 많았다. 내 신 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면 우주에 안 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주변의 걱정이 부담 이었다. 주변에서 몇 천 명이나 괜찮냐고 물어오 면 내가 진짜 괜찮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내 생각이 옳았다고 판 단한다. 자기 신념만 있다면, 모두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끌고 나가보는 게 좋다. (고산 씨는 우 주선 발사 1개월 전에 훈련 교본을 외부로 가지 고 나간 점이 문제가 되어 예비 우주인이었던 이소연 씨와 교체됐다.)

> 창업을 북돋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후 도 전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에서의 경험이 여기에 작용했나?

(우주인 교체 후) 마지막 1개월은 다시 한번 지 난 11개월간 벌어졌던 일과 사건을 정리하는 기 간이었다. 내가 잘 한 건가, 내가 정말 믿음이 있 어서 그렇게 한 걸까 등 많은 생각을 했다. 당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라 불렸던 타이틀에 걸맞 은 역할을 해줘야 했다. 지금은 내가 나 스스로 를 많이 찾은 것 같다. 만약 우주인이 됐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는 언젠가 갈 것이다. 미국에선 2억 원 가량만 내면 우주에 갈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 자체 기술로 만든 우주선을 타고 가서 내려다 본 지구와 그냥 돈 내고 가서 구경하는 지구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서 우주인은 꽃 같은 존재였다. 과학자들이 다 쌓아놓은 기술 위에 마지막으로 올라타는 꽃과 같았다. 식물이 성장하려면 줄기 와 뿌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꽃만 있는 상 황이다. 누군가 진짜 꽃이 되면 그게 꼭 내가 아 니더라도 굉장히 감동적일 것이다.

> 꽃과 줄기, 뿌리에 대한 얘기는 창업 과정에 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싶다. 뿌리도 식물의 일부 다. 어찌 보면 뿌리가 더 주인공일 수 있다. 우주 인은 단순한 기계부품 같은 존재다. 매뉴얼대로 하나하나 버튼 누르는 연습만 반복적으로 한다. 상징적이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다. 우리 가 만든 기술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술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

이 사업을 5년 이내에 정착시키고 다시 복학해 서 공부를 마치고 싶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5년 까지 휴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살 아온 길은 한 걸음만 내디뎌도 거기서부터 완전 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 졌던 것 같다. 5년 뒤에 내 바람대로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전체적인 방향은 있다. 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에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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