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지난 11월 3일 LG전자가 이사회를 열고 1조6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자 증권가는 한때 혼란에 빠졌다. 매일매일 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에게 갑자기 날아든 LG전자의 유상증자 소식은 곤혹스러운 변수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보통 기업의 유상증자는 증권사를 통해 사전 시장조사를 하고 주간사를 선정하는 등 절차를 밟죠. 그런데 LG전자의 유상증자는 전격적이고 파격적이었어요. 증권가의 관행을 깨고 기업이 선제적으로 움직인 거죠. 뒤통수를 얻어 맞은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후 11월 7일 LG전자는 1조600억 원의 자금 사용 세부내역을 공시했다. 스마트폰, TV, 가전 등 주력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에 주로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업 공시 이후유상증자 이슈는 증권가와 시장에선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LG전자를 둘러싼 여러 이슈들이 향후 경영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 어떤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인지를 파악하려는 애널리스트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포춘코리아는 지난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LG전자를 담당하고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전화인터뷰를 실시했다. LG전자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 속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번 조사에는 대신, 동양종금, 미래에셋, 신한투자, 신영, 키움, 하나대투, 한화, HMC투자, NH투자 등 10개 증권사가 참여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유상증자 자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LG전자의 유상증자는 불가피한 결정이었고, 이젠 내년도 LG전자의 실적개선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때"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상증자로 마련한 약 1조 원의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애널리스트들 간에 의견이 달랐다. 크게는 LG전자가 공시한 투자 내용에 주목하자는 쪽과 공시 사항 이외에 다른 영역에도 투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렸다. 하나대투증권 전성훈 IT팀장은 말한다. "회사가 구체적인 금액까지 작성해서 공시했습니다. 사실 공시된 세부내역의신뢰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일단 저희로서는 공시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LG전자는 자금 사용처 가운데 휴대폰 사업부문에만 약 6,109억 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장기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휴대폰 사업의 R&D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다. 대신증권 박강호 연구원도 "스마트폰의 경쟁력 확대와 OS부문에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전망했다.
그렇다고 모두 LG전자의 발표에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1조 원 넘는 자금이 다른 명목을 위한 선행적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영증권 이승우 IT팀장은 "LG전자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엔진은 휴대폰 사업의 마진"이라며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현금유동성을 확보한 LG전자가 괜찮은 기술업체를 발굴해 인수합병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LG전자의 신규 현금유동성이 다양한 경영전략을 펼치는 데 사용될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NH투자증권 강윤흠 연구원은 "유상증자의 목적이 회사채 발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며 "추가적인 펀딩도 예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LG전자의 부채 상환계획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1조 원의 자금이 내년을 미리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키움증권 김지산 연구원은 그룹의 계열사 쪽으로 LG전자의 지원사격이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는 "최근 LG디스플레이에 대한 증자설이 나오고 있다"며 "아직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증권가에서는 4분기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가 조만간 유상증자에 나설 때를 대비해 LG전자가 이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 확보를 미리 한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해석도 나오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최근 유상증자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중국 사업 확대등을 고려하면 충분한 자금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결국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들은 유상증자는 단기적인 이슈일 뿐이며, 현금유동성을 확보한 LG전자가 다양한 변수에 대응할 것이라는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도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최대 변수인 LTE 시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대부분 LTE 시장에서 LG전자의 선전을 기대했다. 내년도 전 세계 LTE 시장이 1억 대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HMC투자증권의 노근창 연구원은 "LG전자의 주력 해외 시장인 북미에서 버라이즌이 LTE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LG전자 LTE폰 보급에 추진력이 생길 것"이라며 "LG전자는 LTE에 들어가는 여러 칩 부문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기존 경쟁사를 위협할 정도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한화증권 김운호 연구원도 "LG전자가 LTE 특허를 기반으로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LG전자가 LTE 표준을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무선통신 등 1,400개 이상의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양증권 최남곤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LTE 모델과 비교해봐도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어떤 특허를 가지고 있느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노키아, 림과 같은 글로벌 제조사와의 대결에서도 경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최남곤 연구원은 LG전자의 분기별 전세계 휴대폰 판매 대수가 3,000만 대에 근접해야 적자를 털어내고 상승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내년에 활짝 문이 열리게 되는 LTE 시장이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최대 승부처가 될 것이란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취임 1년이 조금 넘은 구본준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유보적이었다. 신한투자증권 소현철 IT팀장은 말한다. "적어도 3년이 지난 2013년은 돼야 구 부회장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기록되는 숫자들은 전임 CEO인 남용 부회장의 성적표라고 할 수 있어요." 미래에셋증권 이순학 연구원도 "지금의 고전은 전임 CEO가 스마트폰 전략을 잘못 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구 부회장이 지난 1년간 보여준 행보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HMC투자증권 노근창 연구원은 "오너 경영인을 통해 체질개선을 이루는 시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반기에는 MC사업 본부의 턴어라운드가 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증권가에선 대부분 LG전자의 회생 시그널이 유상증자로 시작해 LTE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질적인 MC사업본부의 실적개선이 내년 안에 충분히 이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동양증권 최남곤 연구원은 "스마트폰이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LG전자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며 "내년도 MC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은 3,500억 원, 전체 LG전자 영업이익은 1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HOTOGRAPHY LEE J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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