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공학자를 위한 경제지식

경제를 알아야 한다며 온 세상이 부산하다. 많은 대학생들이 경제인증시험에 몰리고, 심지어 고등학생조차 경시대회 참가를 위해 경제학 바이블로 꼽히는 '맨큐의 경제학' 서적을 읽는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여러 실패 중에서도 경제를 살리지 못한 과오만큼은 쉽게 용서받지 못한다. 경제를 알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감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여기서 과학기술자, 엔지니어들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자료제공_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송경모 뿌브아르경제연구소장 kyungmo.song@pouvoir.co.kr


현대인이라면 비단 공학자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경영·경제 지 식과 담을 쌓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닐 듯하다. 마치 나날이 들이마셔야 하는 공기처럼 경영·경제 지식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지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의 언젠가는 경제전문가, 경영전문가라는 칭호 자체가 어색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경제라는 단어는 경영이라는 단어와 모호하게 뒤섞여 일반일들은 그 실체를 이해하기가 매우 혼란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현장에 근무하는 공학자들도 경제를 알 아야만 한다.

특히 순수 과학자와 달리 공학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생산·판매하는 제품이나 관련 기술의 개발을 주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기업 경영을 이해해야 한다. 씨티폰 등의 사례가 증명하듯 그 시대의 경제와 경영, 산업을 직시하지 못한 기술은 허울뿐인 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는 탓이다.

이와 관련 최근 각 대학의 기술경영 (MOT) 과정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공학자들이 등록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공학자들에게는 이미 학부 또는 대학원을 거치며 특정 공학 분야의 지식을 쌓았던 것도 힘겨운 기억이다. 또한 변모하고 있는 최신 기술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학습 할 시간을 내는 것도 벅찬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공부까지 해야 한다니 생각만 으로도 끔찍할 것이다.

사실이다. 시간이라는 자원은 제한돼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우선순위를 정해 당면 과제들을 처리하기에도 바쁘다. 따라서 공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먼저 알고, 나머지는 시간이 남았을 때 여기(餘技)로 알아가면 충분하리라 판단된다.

노동자와 경영자
연구개발 조직의 연구원이든 관리자든, 아니면 책임자든 공학자라면 항상 자신이 '경영자'라는 인식을 잃지 않는 것이 모든 지식 습득의 선결 요건이다.

경영자는 영어 '매니저(manager)'의 번역어로 최고경영자(CEO) 역시 수많은 형태 의 매니저 중 하나다. 말단 연구원이라 해도 사실은 매니지를 해야 한다. 자신의 활 동에 매니지먼트가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 되고 만다. 업무를 노동으로 전락 시킬지, 아니면 매니지먼트로 격상시킬지는 순전히 그 사람의 인식에 달려 있다.

매니지먼트에 대한 근대적 정의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정확하게 부여했다. 그는 현대 경영 사상의 초석을 다진 저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경영자와 노동자의 차이를 이렇게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경영자는 조직의 전체 목표 안에서 내 목표를 보는 사람이고, 노동자는 단순히 내 목표만을 보는 사람이다.'

그는 석공에 비유해 이를 설명했다. 누군가가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돌을 쪼고 있다'고 답한 석공은 노동자다. 반면 '성당을 짓고 있다'고 대답했다면 경영자다.

즉 엔지니어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전체 목표를 알고 거기에 기여하는 자신의 목표를 이해할 때 비로소 경영자가 된다.

엔지니어라면 항상 자신이 경영자인지 노동자인지 반문해봐야 한다. 상사로부터 지시 받은 과업만 수행하고 있다면 노동자일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과업이 궁극적으로 어떤 상위 목표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임하는 사람은 경 영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노동자와 경영자는 근본적으로 그 성과물이 다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조직의 전체 목표 속에서 내 목표가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아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조직의 목표 달성 과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어 전모를 이해하기 어렵 다. 게다가 모든 내·외부 환경은 고정돼 있지도 않다. 환경은 항상 변한다.

이렇듯 어려운 환경에서 엔지니어가 '나는 경영자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 면 과연 무엇부터 알아야 할까.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돌을 쪼고 있다'고 답한 석공은 노동자다. 반면 '성당을 짓고 있다'고 대답했다면 경영자다.

잘 만들면 잘 팔린다?
엔지니어의 강점은 기술과 공정에 능하다는 것이다. 개발 또는 생산에 필요한 전문 지식은 물론, 사용하는 재료와 장비의 특성, 개발 과정상의 위험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분야와 관련해 전 세계 어떤 제품과 부품이 우수한지도 손금 보듯 꿰고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의 다수는 마케팅 지식, 다른 말로 고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많은 엔지니어들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제품의 기준은 엔지니어나 제조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정하는 가치다.

그리고 설령 고객에게 호소할 수 있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했다고 해도 고객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 해진다.

잘 만들면 잘 팔릴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순간 '나는 경영자가 아니다'라고 선언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현장 엔지니어들이 경영자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직은 좋은 물건보다는 잘 팔리는 물건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은 단 두 글자지만 그 두 글자를 아는 것은 역시 두 글자에 불과한 '인생을 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마케팅은 경영의 알파(시작)이자 오메가(끝)다. 베타부터 프사이까지의 모든 활동은 궁극적으로 마케팅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이 확실히 존재한다면 자금, 조직, 전략이 부족해도 기업이 존립할 수 있지만 고객이 없는 기업은 다른 조건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존립이 불가하다. 결국 마케팅의 방향이 바로 잡히면 전략경영(strategic management)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게 된다.

경영자가 되고 싶은 공학자라면 가장 먼저 마케팅 서적을 읽자. 아울러 마케팅 차원에서 인간의 심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1차적 과제로 삼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표방한 인문학과의 융합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모든 공학자가 당 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공학자들이 그것을 잊고 있을 뿐이다.

일례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있을 당시 출시된 PDA '뉴튼'은 고객으로서의 인간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공학자의 관점에서 만든 '혁신적(?)' 제품이었다.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고 잡스는 애플 복귀 후 곧바로 뉴튼 사업을 폐기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의 주장 또는 이론의 대부분은 아무리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와도 프로페셔널 엔지니어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마케팅·조직·회계 지식 중요
마케팅 지식 다음으로 긴박한 것을 꼽자면 조직관리와 회계지식이다. 두 분야의 지식은 조직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회계지식은 실무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관리자 혹은 임원의 단계로 올라갈수록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조직관리 지식은 실무자, 관리자, 임원을 막론하고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다.

막연히 닥치는대로 일을 지시한다거나 지시받은 일만 수행하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조직관리는 의사소통(communication) 기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습성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렇듯 공학자가 알아야 할 최우선 순위의 경제지식에 해당하는 마케팅과 조직 지식까지는 아직 경제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돈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만큼 등장하는 용어들도 웬만하면 눈치껏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계로 들어오면 다르다. 회계 지식은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용어부터 생소하다. 말을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영자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면 회계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회계는 기업의 성적표다. 학생이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도무지 그곳에 쓰여 있 는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렇다고 회계 중 부기(bookkeeping)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무사무소나 전표 처리를 담당하는 회계실무 직원들이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작성된 재무제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재무제표에 서 출발해 자금의 유·출입 현황을 이해하고 조직의 가치를 화폐가치로 제대로 계산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난감한 엔지니어 출신 CEO들이 있다. 그들은 회사의 가치를 계산하는 기본 원리를 전혀 모르고 액면가의 수십 배에 달하는 투자를 막무가내로 고집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벤처투자자나 벤처캐피탈과의 협상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어떤 자금이든지 내 돈이 아니라면 자금은 위험하다. 특히 대출 또는 보증을 통해 얻은 자금은 가시를 숨긴 장미와 같다.

따라서 타인 자본의 무서운 속성을 알고 성장단계별로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지식 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신용불량자는 공학자들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경제보다 경영이 우선
사실상 경제지식이라는 막연한 어휘처럼 사람을 오도하는 것도 없다. 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융자산 관리(asset management) 지식, 속된 표현으로는 재테크 지식이다. 경제 지식이라는 다소 고상해 보이는 어휘로 둔갑한 채 베스트셀러 코너의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MOT 과정을 철저하게 수료할 여력이 안된다면 공학자로서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경제보다는 경영 지식이다. 그 중에서도 마케팅, 조직, 회계 지식이 특히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경제 지식, 즉 자산관리와 관련된 지식은 공학자의 미션과는 큰 상관이 없다. 그것은 공학자가 일개 자연인으로서 재산 증식에 관심이 있을 때에만 필요한 지식이다. 자산관리 지식이 생활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무기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적어도 특정 분야의 프로페셔널 직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으로서는 우선순위가 매우 낮다.

주식과 부동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은행, 증권사, 보험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이름조차 복잡한 상품들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전문적 학습을 요한다. 기술개발을 위한 자금조달, 나아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자금을 맞춰가는 일은 금융시장과 상품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되는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세계 경제를 전망한다거나 전문적인 경제학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 지식들은 경제 지식 중에서도 가장 낮은 우선순위에 놓아도 좋 다. 어차피 전망이라는 것은 본인의 생각과 맞는지 안 맞는지만 견주어 보는 정도면 족할 것이다.

특히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의 주장 또는 이론의 대부분은 아무리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와도 프로페셔널 엔지니어가 성과를 내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이론은 조직인으로서 엔지니어가 추구하는 현실과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이런 종류의 지식 습득은 여유 시간이 있을 때로 한정하자. 물론 이 지식이 마케팅 차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면 우선순위를 다시 위로 올려도 좋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