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실 자본주의가 판치는 한국과 일본 주식회사

글 김방희

한국과 일본 재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4위 대기업 집단인 SK그룹이 검찰 수사를 받 고 있다. 일본에서는 세계적인 광학기기 그룹인 올림푸스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해외 사 법당국의 수사와 집단소송도 진행 중이다. SK그룹은 오너 형제가 개인 투자를 위해 회사 자 금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그룹 측은 혐의를 부인하는 공시를 했다). 반면 올림푸스 는 막대한 손실을 감추기 위한 위장용 인수합병 (M&A) 거래를 했다. 전자가 횡령 혐의에 대 한 수사라면, 후자는 회계부정 추문이다.

사건의 발단에도 차이가 있다. SK그룹 사건은 오너 형제의 실패한 선물 투자에서 비롯됐 다. 올림푸스 건은 올해 5월 고용한 영국인 사장을 다섯 달 만에 해임하면서 시작됐다. 영국인 사장은 곧바로 의문투성이인 M&A 거래에 대해 폭로했다. 올림푸스가 2006년부터 3년간 진 행한 4건의 대형 M&A 가운데 3건은 터무니없는 거래였다. 회사의 핵심 사업과도 무관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회사를 엄청난 자금을 주고 사들이는가 하면, M&A를 주도한 컨설팅 회 사에 막대한 자문료를 지불했다는 주장이었다. 영국인 사장은 해당 거래에 대해 의문을 제기 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초 이 사안은 일본과 서구 기업문화의 차이 가 발단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해당 M&A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자, 올림푸스는 이 거래가 대규모 손실을 숨기기 위한 거래였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사건의 동기와 경과는 판이하지만, 두 나라 핵심 기업에서 벌어진 일은 유사한 점도 많다. 우선 대기업 집단 최고 권력자의 주변 인물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그룹 총수의 영향력은 종종 과거 제국의 황제에 비유된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올림푸스 회장이었 던 기쿠가와 쓰요시(菊川剛)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사회 임원의 대부분을 자신의 측근으 로 채워넣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SK 횡령 혐의 건에는 자금을 빼돌려 개인 투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너 측근 소유의 투자사와 전직 임원 출신 무속인이 등장한다. 올림푸스 회계부정 건에는 회장 지인의 컨설팅사가 주역이었다. 두 건 모두 회사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서 이뤄졌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주식회사 외부의 측근이나 지인들을 통해 일을 처리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한일 양국이 여전히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틀을 벗어나지 못 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최고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부족

최고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와 주주의 감시와 견제 가 부족했다는 사실도 공통적인 특성이다. 사실 두 사 안 모두 진작에 다른 경영진이나 주주들이 문제 삼았 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 최상층부의 핵심 소수가 벌이 는 일을 다른 경영진이나 주주들이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문제로 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절대적인 권력을 쥔 이에게 맞서거나 모두 복 종적인 상황에서 혼자 반기를 들기 어려운 것은 기업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동양 기업이라면 더 그렇 다. 이 점은 오랫동안 서구 기업이나 시장에서 문제로 삼아온 부분이기도 하다. 올림푸스 회계부정 건을 회 사 내부는 물론 외부로 최초로 발설한 이가 오랫동안 영국에서 활동해온 ‘가이진(外人·외국인)’이라는 점 을 생각해보자. 그가 일본인 혹은 한국인이었다고 해 도 자신의 상사와 맞서 폭로를 감행할 수 있었을까?

희대의 회계부정 사건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올림 푸스의 운명은 점차 위태로워지고 있다. 사건이 외부 로 드러난 후 주가는 70% 이상 떨어졌다. 증시에서는 상장 폐지 가능성마저 점칠 정도다. 반면 한국 재계 에선 이런 일로 대기업 집단이 흔들리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대기업 총수들은 시시때때로 사법 처리 되고, 그들에 대한 수사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SK 그룹만 해도 이미 2003년 총수가 분식회계 혐의로 실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부정회계 역시 대기업들의 관 행에 가까워서, 자진해서 신고할 경우 처벌 없이 유예 기간 내에 바로잡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서는 어떤 대기업이 문제가 되면 일종의 정치적 희생 양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마저 있다. 한국 주식회사는 일본과 쏙 빼닮았지만 그보다도 더 불투명한 내부 구 조를 갖고 있다. 한국의 주식회사들이 경쟁력 면에서 일본을 앞질렀다는 평판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김방희(생활경제연구소. KBS 1라디오 ‘성공 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