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힘을 말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2008년 5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리히터 규모 7.8의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다. 약 2분간 지속된 이 지진은 원자폭탄 252개를 한꺼번에 투하한 것과 맞먹는 수준의 위력을 보이며 9만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 중국 최악의 참사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진이 발생하기 사흘 전 진앙지 부근의 한 마을에서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 것. 도로 인근을 새까맣게 뒤덮은 두꺼비 떼는 차에 치이거나 사람의 발에 밟히기도 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이동해 갔다.
이런 두꺼비의 대규모 이동을 가리켜 현지 언론은 지진의 전조현상이라고 보도했다. 두꺼비에게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다는 얘기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된 바가 없다. 단, 두꺼비뿐 아니라 많은 동물들이 어떤 특정 사건이 발생하기 전 갖가지 이상행동을 보인 사례는 이미 상당수 전해지고 있다.
살아있는 슈퍼 센서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늙은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노화로 인해 귀가 반쯤 들리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이 개는 주인의 자동차가 다가오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꼬리를 흔들었다. 깨어있을 때는 물론 수면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집의 위치가 하루에도 수백대의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 옆이었지만 개는 주인의 자동차를 족집게처럼 집어냈다.
이는 미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 윌리엄 J. 롱 박사의 저서 '동물들은 어떻게 대화할까'에 소개된 일화다. 책에서 롱 박사는 "인간은 제조사가 동일한 두 기계의 진동 차이를 구분하려면 특수장비가 필요하다"며 "수백대의 자동차 가운데 주인의 차량을 정확히 구별하는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국의 두꺼비와 미국의 늙은 개에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예지력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동물들은 각기 구조와 모양이 다른 다양한 수용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수용기는 사람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동물들이 보여준 기이한 능력은 오랜 기간 미신으로 치부돼 왔다. 나라에 변고가 생길 징조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를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한다.
각 동물들은 미세한 물리·화학적 자극을 감지하는 나름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동물들만의 '슈퍼 센서'와 유관하다. 그리고 슈퍼 센서는 특정 자극을 감지하는 기관, 즉 수용기(receptor)를 말한다.
수용기는 보통 특정한 자극을 담당하는 전문화된 '입구'로서 기능한다. 단세포 동물부터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그 구조와 모양이 서로 다른 다양한 수용기를 지니고 있으며 동물들의 수용기는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이 가진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을 신속·정확하게 감지해 내는 것이다.
청각을 예로 들면 사람의 가청 주파수는 20~2만㎐ 범위다. 하지만 개는 8만㎐, 박쥐는 10만㎐ 정도의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다. 코끼리의 경우 12㎐ 정도의 초저음파로 수㎞ 떨어진 곳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 정도로 이들의 청각 세포가 사람보다 고밀도로 분포돼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들에게는 고막이 슈퍼센서라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의 감각은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다뤄온 주제지만 그것이 환경과 맺고 있는 복잡 미묘한 상호작용은 여전히 미스터리에 가깝다.
촉각은 곤충이 으뜸이다. 그들의 슈퍼센서는 더듬이며 촉각에 대한 예민성을 극대화 해준다. 사마귀와 같은 육식곤충인 물방개붙이의 더듬이는 무려 100만분의 1㎜ 진동을 감지한다고 한다. 또한 북미 방울뱀은 단연 온도 감지의 최강자로 0.001℃의 미묘한 변화에도 반응한다.
최근 인류의 조상이 잘 발달한 전기장(electrosensor) 수용기를 지녔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작년 10월 미국 코넬대학 진화생물학자 윌리 버미스 박사팀의 연구 결과, 인류를 비롯한 현생 척추동물 6만5,000여종이 어류인 조기아강(actinopterygian)으로부터 전기장을 감지하는 감각을 전해 받았다고 발표한 것. 조기아강은 5억 년 전 지구에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진 고대생물. 진화론적 관점 하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종의 조상으로 알려진 조기아강은 시력이 좋고 턱과 치아가 발달했으며 물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측선기관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연구팀은 어류의 경우 이 측선기관이 옆구리 선으로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전기장을 감지, 먹이를 찾고 상호 소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이어지는 5억년의 진화 과정에서 측선기관과 함께 전기장 감지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설명이다. 단지 악솔로틀(axolotl)로 불리는 멕시코 도롱뇽을 비롯, 일부 육상 척추동물은 지금도 전기장 감각기관을 갖고 있다. 이번 연구는 수상생물과 육상생물 집단의 감각기관이 공동의 진화적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
진화의 산물
비단 소리, 온도, 냄새, 맛과 같은 인간에게도 일정부분 익숙한 자극만이 아니다. 동물들은 압력, 전기, 자기 등에 대한 미세 변화까지도 느낀다. 인간이 가진 오감 이외에도 여섯 번째 혹은 일곱 번째 감각을 더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장에 대한 슈퍼센서를 지닌 동물로는 새가 대표적. 잘 알려졌듯 새들은 지구 고 유의 자기장을 파악한다. 이 능력은 평소 방향의 가늠에 쓰이지만 앞서 언급한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지각에 나타난 압전효과(piezo electric) 등을 감지해 사전 대처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새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장을 감지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 안 파악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새의 부리가 슈퍼 센서의 핵심 부위임을 가까스로 알아냈다. 부리에 자성(磁性)을 띤 결정체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양생물인 거북이와 고래, 상어, 가오리 등도 새와 유사한 수용기를 지니고 있다.
동물들의 이러한 특수 수용기들은 근본적으로 수십억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다. 적자생존, 용불용설을 통해 조금씩 강화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생물학자 울리히 슈미트도 저서 '동물들의 비밀신호'에서 "주어진 환경 조건에 가장 잘 적응한 자에게 최고의 번식이 보장된다는 자연선택이론에 따라 진화과정에서 특이한 감각기관을 갖춘 종들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롱 박사는 이와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동물들의 수용기를 바라본다. 그는 동물은 사 람처럼 내적인 현상에 제지를 받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고통, 걱정, 공포, 후회, 불안과 같은 복잡한 심리를 겪지 않지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동물들이 인간에 비해 훨씬 감각에 잘 의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마치 시각을 잃은 맹인이 정상인보다 청각과 촉각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해석할 수 있다.
롱 박사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동물들은 몸으로 전해지는 것을 듣는 데도 익 숙하다. 긴장을 풀고 편안한 상태에서 최고급 수신기처럼 온몸으로 감각 인상(sense impression)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정 수용기가 아닌 온몸으로 자극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런 특성이 하등동물로 갈수록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고도 전했다.
동물들의 감각이란 지금껏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다뤄온 주제다. 출간된 서적만으로 웬만한 도서관 한 채는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하지만 동물들의 다양한 감각과 그것이 환경과 맺고 있는 복잡 미묘한 상호작용은 여전히 미스터리에 가깝다.
초능력자들
일각에서는 동물들의 이상행동을 예지력의 발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동물에게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초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은 앞서의 늙은 개가 주인의 귀가를 인지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뛰어난 진동 감지 수용기 덕분이 아니라 텔레파시를 발휘해 주인의 생각을 미리 읽어낸 결과라고 주장한다.
아닌 게 아니라 동물들의 모든 이상행동을 일반의 감각 능력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동물들은 종종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어내는 듯 보이기도 하는 탓이다.
실제로 사람만 나타났다 하면 맹렬히 짖어대는 개들도 어쩐 일인지 개장수 앞에서만큼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이리 저리 시선을 피하거나 꼬리를 내린 채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거나 심지어 오줌을 지리기도 한다. 저승사자를 대면한 것처럼 극도의 긴장과 공포를 느끼는 모습이다.
개들은 어떻게 생전 처음 맞닥뜨린 개장수의 실체를 아는 걸까. 혹여 뛰어난 후각으 로 특정한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닐까. 개는 훈련을 통해 마약, 폭약은 물론 빈대의 위치까지 정확히 탐지하며 환자의 날숨이나 대변 냄새만으로 암 발병여부를 진단할 수도 있다고 하니 완전히 황당한 생각은 아니다. 그런데 개장수가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는 등 몸에 밴 냄새를 깨끗이 제거해도 개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감안하면 이 같은 개들의 행동은 어떤 특정 수용기를 이용한 분석적이고 합리적 방법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한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육감(六感)처럼 직관적인 행동에 가까운 듯 보인다. 사전적으로 육감은 일반적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심리 작용을 뜻한다. 감각기관을 거치지 않고 내·외적 사상(事象)을 인지한다는 면에서 현대 초심리학에서 말하는 초감각적 지각(ESP)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육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육감은 보통 본능적 잠재의식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지하다시피 실체가 명확히 파악되지는 못한 상태다. 주류 학계에서는 아예 육감이라는 비이성적 현상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는 육감을 첨단 과학의 보고(寶庫)인 뇌 과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한 예로 공포심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amygdala)와 육감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공포심은 대체로 익숙한 상황보다는 갑자기 직면한 낯선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데,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이전의 본능적 반응에 가깝다는 측면에서 육감의 발현 역시 편도체가 주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일견 그럴듯한 해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편도체 외에도 뇌에서 공포심에 관여하는 부위는 존재할뿐더러, 육감이 뛰어난 동물이 사람보다 편도체가 더 발달했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동물들의 초감각을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초감각을 가졌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듯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
둔한 동물로 알려진 곰은 개보다 무려 7배 이상 뛰어난 후각으로 5㎞ 밖의 냄새도 맡는다.
특별한 뇌
한편에서는 대뇌와 중뇌 사이의 간뇌 (diencephalon)를 초감각의 발원지로 보기도 한다. 간뇌의 호흡, 체온, 혈당 등을 조절하며 활발한 신진대사를 돕는 것이 주 역할이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감각 제어실의 기능을 수행,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자극 정보를 분류·분석한 뒤 그 결과를 대뇌 피질의 담당 부위로 옮겨 인지시킨다. 외부 자극에 대응해 몸의 생체 기능을 조절하는 매우 특별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의 영역인 만큼 간뇌의 정보처리 속도는 의식 영역인 좌뇌와 우뇌보다 8만배나 빠르다. 그래서 간뇌를 활성화시키면 예지, 예감, 예견 등의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간뇌 초감각 발원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간뇌가 발달한 사람일수록 예지력이 뛰어나다고 본다.
사실상 뇌 호흡법을 수련한 사람들 중에는 투시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로 촬영하면 간뇌의 한 부위인 송과체(pineal body)의 활성화가 확인된다고 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확증된 바는 없지만, 이들은 고등동물로 진화한 인간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서서히 간뇌가 퇴화되고 있는 반면 동물들은 퇴화가 더뎌 지금까지 우수한 육감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주에 고도의 문명을 영위하는 외계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영화 속 ET처럼 큰 머리를 소유했을 것이라는 몇몇 과학자들의 생각도 간뇌의 발달을 염두에 둔 추정이다.
간뇌가 육감의 근원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동물들의 이상행동 역시 이와 연관시킨다. 간뇌가 발달한 동물들이 종종 예지력을 발휘해 지진 예측이나 주인 감지 능력을 발현한다고 본다.
동물들의 초감각을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초감각을 가졌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듯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없다.
한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전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점쟁이 문어 '파울'은 차치하고라도 2007년 로이터통신에 소개된 고양이 '오스카'의 이야기는 동물의 초감각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사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북동부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요양원에 사는 오스카는 입원 중인 환자들의 임종 시간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듯 사망 전 그 환자에게로 가 곁을 지켰다. 고양이의 신기한 능력을 눈여겨본 브라운대학의 노인의학 전문의 데이비드 도사 박사가 조사해 의학 저널에 게재한 바로는 오스카가 환자 주위에 나타난 지 1~2시간이 지나면 환자는 어김없이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이 고양이는 1년 동안 총 25차례나 환자의 임종을 예견해 환자 가족들이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과연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학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특정한 생화학적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의문을 깔끔하게 해소시켜주지는 못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 혹은 동물들만의 본능일까. 아니면 미래를 내다본 계획된 행동일까.
현재로선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동물 그 자신들 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