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금 차를 돌리셨잖아요."
미국 텍사스주 엘 인디오.
필자는 얼마 전 고향인 이곳을 방문했다. 강을 따라 120 ㎞를 내려가면 멕시코 국경이 나오는 작은 도시 엘 인디오에서 무인항공기(UAV)가 날아다닌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서였다. 작년 여름쯤 멕시코와 접한 국경의 보안을 위해 프레데터 UAV를 투입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그 일환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프레데터는 비행고도가 매우 높아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실체를 직접 조사해보기로 결심했다.
렌트한 미니밴을 몰고 국경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녹색 줄무늬가 그려진 미국 국경순찰대 차량들이 여러 번 지나쳐 갔다. 왠지 모르게 감시를 당하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얼마간 달리자 하늘에 하얀색 점이 보였다. 할머니가 무인기라고 지칭한 비행체였다.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쌍안경을 꺼내들었다. 살펴본 바로는 그 비행체는 UAV가 아니었다.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거나 들어본 지식으로는 그랬다. UAV라기 보다는 비행선에 가까웠다. 아쉬움에 쌍안경을 내려놓는데 국경순찰대의 픽업트럭이 옆에 멈춰섰다.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에 답하고 필자는 유창한(?) 텍사스 사투리로 하얀색 비행체의 정체를 물었다. 순찰대원은 미소를 지으며 '기상관측용 기구'라고 알려줬다.
차를 계속 달려 엘 인디오에 도착한 후 음료수를 사면서 상점 여주인에게 하얀 비행체에 대해 물어봤다. 그녀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우체국에서 조사를 해보고자 했지만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성 운전자에게 질문을 하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마약밀수 감시용 인공위성이에요. 제 시동생이 저 비행선 운용과 관련된 일을 해요."
그녀는 남쪽 도로로 계속 가면 시동생이 근무하는 건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았고 문제의 건물에 이르자 하늘에서 봤던 비행체의 실체가 명확해졌다. UAV도, 인공위성도 아닌 지상의 철제 구조물과 로프로 연결된 비행선이었다.
그 순간 한쪽에서 순찰대 차량이 다가와 건물근처로는 다가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진땀이 났다. 길을 따라 좀 더 이동하자 여러 동의 흰색 건물이 나왔고 정문의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미 공군 계류형 비행선 레이더 기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계류형 레이더 비행선은 비교적 오래된 감시 장비다. 마약 밀수꾼들이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던 수십년 전부터 쓰였던 감시 장비의 하나다. 그런데 큰 의문이 사라지자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국경순찰대가 정말 필자를 쫓아다니며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였다.
예전에 이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었던 터라 다음 마을이 나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차를 돌릴 수 있는 곳이 나오면서 엘 인디오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차량을 U턴하자마자 뒤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사이렌이 울렸다. 국경순찰대였다. 순찰대원 중 한명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방금 저희를 보고 차를 돌리셨잖아요."
그들의 어투는 친절했지만 또한 집요했다. 도대체 멕시코 국경과 멀지 않은 고속도로의 끝에서 뭘 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25년 전 대학 진학 이후 지금까지 줄곧 국경보안시설에 큰 관심이 있었고 하얀색 비행체의 정체를 알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설명했지만 별로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필자는 모든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고속도로를 달릴 권리가 있다고 강력히 항의했고 순찰대원은 필자를 구금시킬 어떤 구실도 찾지 못한 채 돌아갔다.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길. 국경을 따라 설치된 5.5m 높이의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 모습에 방금 전 국경 순찰대가 보여준 집요함의 의미가 되새겨졌다.
국경은 장애물일까, 아니면 소통의 통로일까. 군대, 민간, 기업 중 누구의 영역일까.
2. SBInet 가상 장벽 프로젝트
필자가 막 성년이 됐을 무렵까지만 해도 엘 인디오의 주민이라면 매주 한번쯤 별다른 제재 없이 강을 건너 멕시코로 놀러 갔다. 그러나 이제 그런 허술한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이번 기회에 현대 국경의 복잡성과 최신 감시·보안시스템을 취재하기로 작정했다. 수상한 관광객이 아닌 전문 저널리스트의 신분으로 말이다.
취재를 시작하며 가진 기본적 의문은 꽤 단순했다. 국경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리고 수백 년간 자유롭게 왕래했던 강과 계곡, 산과 사막을 가로지른 미국-멕시코 국경의 보안을 위해 어떤 장비와 시스템을 개발·적용해 왔는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수개월의 취재로 발견한 사실은 뜻밖이었다.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국경의 명확한 정의조차 내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구석구석 샅샅이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인 텍사스주 러레이도 인근 리오그란데강 상공을 순찰중인 헬리콥터. 국경 순찰대원들은 헬리콥터에 장착된 카메라를 활용, 불법 입국자를 적발하고 있다.
국경은 뭔가를 막는 장애물일까, 아니면 소통의 통로일까. 군대, 민간, 기업 중 누구의 영역일까.
그리고 국경은 지역공동체를 결속시켜줄까. 오히려 분열시키는 존재일까.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정치인들이 쏟아낸 방대한 양의 발표와 선언문을 뒤졌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이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2003년 이후 국토안보부(DHS)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 예산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CBP의 주 업무는 국경 치안유지와 감시 활동. 국경순찰대도 이 기관 소속이다. 현재 CBP는 그동안 도입을 확대해온 첨단장비를 무기로 막대한 양의 불법 마약과 밀입국자들을 조사·검색·압류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보된 데이터들을 적절한 곳으로 보내 자료화한다. 데이터에는 전자 적하목록, 여행자 명단 및 입국일자, 테라바이트 용량의 동영상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이 정보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분석, 정량화, 색인화, 디지털화 등이 필요한 탓이다. 특히 감시·통제기기들이 보내온 방대한 데이터는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켜 아예 기기의 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2006년 보잉이 DHS에게 수주 받은 '안전한 국경 감시 전자시설망(SBInet)'은 이의 해결을 위한 방책이었다. 첨단장비를 활용해 국경 지대에 일종의 '가상 장벽'을 설치하는 이 프로젝트의 최대 목표는 국경 감시·통제장비들이 생성한 데이터를 한데 모아 직관적 운용이 가능한 통합형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만드는 것. 그러나 SBInet은 비용의 과도한 증가로 2011년 1월 공식 폐기됐다. 후속 계획의 출범 역시 불확실하다. DHS가 5년간 10억 달러 이상을 퍼부어 완성된 것은 애리조나주 남부의 국경선 85㎞에 불완전한 인프라시스템이 구축된 것뿐이다.
이처럼 SBInet은 실패했지만 국경은 지리적 요소나 전쟁, 정부의 입법 행위보다는 기술적 혁신에 의해 정의 내려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레이더 비행선에서 프레데터 무인기, 가상 장벽, 그리고 무수한 군용 감시장비들에 이르기까지 각종 국경 감시·통제 기술이 급속도로 진화하면서 이들 자산 자체가 국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국경은 지도상에 그어진 선이라기보다 감시·통제장비들의 작전 구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국경은 지도상에 그어진 선이 아닌 감시·통제 장비들의 작전 구역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3. "잠깐 얘기 좀 하실까요?"
필자는 텍사스주의 최남단이자 리오그란데 강의 바로 위에 위치한 인구수 120만명의 소도시 브라운스 빌에서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이른바 '국경 전쟁 (border war)'의 최전방 중 한곳이다. 첫 목적지는 이 곳 국경 순찰대 기지에 있는 최첨단 지휘통제센터.
현장에 도착하니 하루 3교대 중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는 마지막 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점호 시간을 지켜보며 왜 국경 전쟁이라는 단어가 생겼는지 이해가 됐다. 그날 순찰대장이 가장 오랜 시간 언급한 것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특수요원 하이메 자파타였다.
그는 일주일 전 이곳에서 수백㎞ 떨어진 국경 검문소에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로스 세타스(Los Zetas)' 조직원들에게 사살 당했다.
필자가 인터뷰 한 몇몇 국경 순찰대원들은 사고 후 일주일 정도 국경이 평화로웠다고 전했다. 당시 로스 세타스는 미국측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법 국경 통과 시장의 이권을 놓고 이들과 전쟁을 벌이던 경쟁조직 '걸프 카르텔'은 로스 세타스를 맹렬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하루속히 저들 살인자 집단에 대해 보복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걸프 카르텔은 작년에만 1,000명이 넘는 인명을 살상한 집단이다.
필자는 CBP 산하 항공해양사무소(OAM)의 항공보안 작전책임자 케니스 나이트가 개발한 국경 감시 네트워크인 '빅 파이프(Big Pipe)'의 웹 포털시스템으로 자파타의 장례식 영상을 봤다. CBP의 국경 감시 헬리콥터가 촬영한 것인데 추도객들은 촬영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장례식장에서 5㎞나 떨어진 곳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OAM의 조종사들이 입는 카키색 조종복 차림의 나이트를 브라운스 빌에서 만났다. 장례식 항공지원 감독을 위해 이곳에 온 그와 "잠깐 얘기 좀 하실까요?"로 시작된 대화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유의미한 것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던 터라 그는 빅 파이프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을 해주고는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줄 테니 워싱턴의 OAM에 오라고 초청했다.
빅 파이프는 과연 무엇일까. 처음에는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트는 '국경지대 전체에 대한 완벽한 상황 인식 능력 확보'라는 개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빅 파이프가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브리핑 내용으로 미뤄볼 때 빅 파이프는 공통적 작전 상황도를 시현, 갈수록 다루기 힘들어지는 고해상도 감시·통제시스템의 데이터 흐름을 통합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체계인 듯 보였다. 그렇다면 빅 파이프가 SBInet의 후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감시 종결자
텍사스주 브룩스 카운티의 팔푸리아스 검문소는 미국 검문소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마약 76.3톤, 밀입국자 6,000명을 압수·적발했다는
표지판이 이채롭다.
4. 강 건너편의 통제자
저무는 해가 짙은 땅거미를 드리우던 그날 오후. 브라운스빌의 국경 순찰대원 댄 밀리언은 국경을 가까이에서 보여주겠다며 리오그란데 강으로 안내했다. 둑길은 구불거렸고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로 통행은 쉽지 않았지만 덤불 사이로는 좁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밀입국자들이 애용하는 '상륙 지점'은 번들번들하게 젖어 한눈에 드러났다. 컴컴한 밤에 시커먼 강을 건넌 밀입국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잠시 쉬면서 쓰레기봉투에 담아온 깨끗한 옷과 개인 물품들을 꺼내 착용한다. 그런 다음 낮은 포복으로 혹은 뛰어서 울타리까지 간다. 울타리는 강을 건너는 것보다 훨씬 쉽게 넘을 수 있어 그간 꽤 많은 사람들이 밀입국에 성공했다.
그래서 2006년 미 의회는 남서부 일대의 국경에 새로운 울타리 건설을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새 울타리로 교체된 구간은 총 1,120㎞가 채 되지 않는다. 1마일(1.6㎞)당 평균 건설비용이 무려 280만 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운동가들과 주민들은 새 울타리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새 울타리로 인해 농지가 반토막이 난 농부들은 격분하고 있으며 고양이과 포유류인 오셀롯을 비롯해 여러 야생동물들의 이동도 힘들어졌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밀수업자들에게는 이 울타리가 별 제약 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새총으로 밀수품을 국경너머로 쏘아 보내며 이동식 경사로를 울타리에 걸치고 차를 타고 월경(越境)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군데군데 끊어진 현재의 울타리를 보고 비웃기는 쉽다. 하지만 국경 순찰대원들은 그나마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밀입국을 지체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브라운스빌에서는 밀입국 시도를 1초 단위로 탐지하는데 울타리가 있으면 적어도 1분의 대응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게 밀리언의 설명이다. 특히 울타리는 밀입국자들이 인구밀집지역에 곧장 도달하는 루트가 아닌 풀숲을 통과해야 하도록 만들어 최대 수 시간에서 수일까지 시간을 벌어주기도 한다.
브라운스빌의 울타리를 따라 나 있는 길에는 두텁게 흙이 쌓여 있다.
순찰대원들은 이 흙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밀입국 시도를 파악한다. 발자국만큼 명백한 증거는 없다. 이를 위해 순찰대원들은 이 길을 순찰할 때면 차량 뒤에 타이어를 매달아 자신들의 발자국과 타이어 자국을 지운다. 밀리언에 의하면 뛰어난 대원들은 발자국만 보고도 밀입국자의 체중, 탈진 상태, 연령, 신장 등을 추측할 수 있다. 짐을 지고 있는지, 짐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도 예상 가능하다.
더 아래로 내려가자 화물열차를 위한 통관사무소 건물이 나타났다.
이곳의 강폭은 약 9m였는데 여기서도 밀입국자들은 강을 건넌다. 흙길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불과 수백m 떨어진 강 건너편이 멕시코의 국경도시 마타모로스다.
밀리언은 그곳에서 활동하는 마약 카르텔은 강의 상황을 감시할 감시원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감시원들은 대개 강둑에 올라와 미국측 국경 수비대의 활동을 살피며 그들이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카르텔이 강을 건널 시간과 장소를 택한다는 설명이다. 강 건너에서 강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각 카르텔들은 마약의 유통을 독점했듯 밀입국도 독점적으로 관리해요. 개인 프리랜서가 낄 자리는 전혀 없죠."
개코 스캐너
국경 순찰대는 공항의 알몸 투시기에 쓰이는 '후방 산란 X레이'로 사람, 마약, 현금, 무기 등의 불법 반입을 검색한다. 하지만 현존 최고의 스캐너는 탐지견이다.
5. 감시 벌레
물론 국경 순찰대에게도 감시원은 있다. 단지 사람이 아닌 카메라다. 울타리 안쪽에 18m 높이의 카메라 감시탑을 세워 24시간 내내 강을 샅샅이 살피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 후 지휘통제센터로 돌아온 필자는 이들 카메라가 촬영한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었다. 통제실 전면에 가득 찬 20개의 대형 스크린에 각 카메라의 영상이 순차적으로 비춰졌고 모니터 요원들은 스크린을 주시하며 시시때때로 현장 요원과 무전 연락을 취했다. 브라운스빌 국경순찰대가 관리하는 리오그란데 계곡에만 이런 '원격 비디오 감시 카메라 시스템(RVSS)'이 수십개소 설치돼 있다. 각 RVSS는 4개의 카메라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2개는 야간용 적외선 투시 카메라다.
통제실의 모니터 요원들은 필요할 경우 카메라의 촬영 방향을 제어하거나 줌 기능을 이용해 특정 지점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야간에는 적외선 영상의 색 대비도 조절된다. 온도가 높은 곳은 검은색, 낮은 곳은 흰색으로 보이게 해 생명체를 한층 신속 히 분별할 수 있다. 바위, 콘크리트 벽돌, 식물들도 열을 발산하지만 가장 선명히 보이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온혈동물이다. 더욱이 이들은 움직이기 때문에 파악이 더 용이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울타리 옆 흙길 인근에는 지진파 센서가 묻혀있다.
사람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진동을 감지, 통제센터로 관련정보를 무선 전송한다. 무인 지진파 센서는 수십년 전부터 쓰였던 장비지만 크기는 작아졌고 효율성은 일취월장했다. 국경 수비대가 미국 국경에 매설한 센서는 약 1만1,000개로서 밀입국 루트의 변화에 맞춰 매설 위치도 수시로 바꾸고 있다.
설명을 듣던 중 실제 상황이 벌어졌다. 국경 순찰대에서 '벌레(bug)'라고 부르는 지진파 센서로부터 경고 신호가 접수된 것. 통제실의 모니터 요원 호세 만실라스는 즉각 신호를 보낸 센서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대형 모니터 하나에 해당 센서가 위치한 곳의 RVSS 영상이 시현됐다. 리오그란데 강에서 4.8㎞ 떨어진 곳이었다.
만실라스는 조이스틱 컨트롤러로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고 줌을 당겼다. 처음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밀입국 현장이 확인됐다. 8개의 유령 같은 흰색 형체가 풀숲 밖으로 뛰쳐나오더니 재빨리 울타리로 이동한 것이다.
밀입국 시도임을 확신한 만실라스는 무전기를 들어 현장에 나가 있는 순찰대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밀입국자들이 울타리를 넘는 도중 순찰대를 보고 되돌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다. 한 밀입국자는 거의 울타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혹여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됐지만 그는 일행들과 함께 무사히 멕시코로 돌아갔다.
하얀색 형체가 보이더라도 대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숙련된 모니터 요원의 눈이다. 카메라는 분명 좋은 감시 도구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남부 텍사스의 혹독한 기후는 카메라의 성능을 저하시킨다. 작년 1월 엄청난 한파가 몰아쳤을 때는 카메라들이 얼어붙어 꼼짝 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세관과 국경 순찰대는 모든 밀수와 밀입국의 차단을 기대하거나, 원하는 게 아니에요."
압수합니다!
작년 미국 관계당국은 멕시코와의 국경에서만 마리화나 1,088톤, 코카인 4,618㎏, 헤로인 2,075㎏, 메타암페타민(필로폰) 423㎏을 압수했다.
6. 대낮처럼 밝은 밤
브라운스빌에서 상류로 올라가면 맥알렌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곳은 울창한 숲과 고도 제한이라는 자연적·법률적 규제 때문에 고정식 RVSS의 설치가 불가하다. 그래서 RVSS 대신 이동식 감시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맥알렌에 도착하자 담당 순찰대원 제이미 메디나가 합류, 리오그란데 강의 제방을 따라 나 있는 넓은 들판으로 필자와 밀리언을 데려갔다.
마치 여느 아열대 지역처럼 시끄럽게 울어대는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플래시라이트와 본능적 방향감각에 의존해 어둠 속을 걸으면서 순찰대원들의 고충이 여실히 체감됐다. 얼마쯤 걸었을까.
우리 일행은 '스코프 트럭(scope truck)'이라 불리는 차량에 도착했다. 화물칸에 6m 높이의 접이식 카메라 '스카이 박스(Sky Box)'를 탑재한 픽업 트럭이다. 용도가 동일한 만큼 스카이 박스도 RVSS와 마찬가지로 주· 야간 촬영이 모두 가능하다.
트럭을 몰고 제방 끝 벼랑 근처로 간 메디나는 이 일대가 주요 감시지역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순찰대원들은 스카이 박스의 카메라와 개인용 단거리 야간투시경(TAM-14), 삼각대에 얹어 사용하는 대형 열 감지 쌍안경(리콘 Ⅲ 라이트)을 사용해 밀입국자를 찾는다. 열 감지 쌍안경의 경우 레이저 타깃팅 시스템이 채용돼 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야간투시경을 써야만 보이는 레이저를 목표물에 발사, 순찰대원들이 밀입국자를 쉽고 빠르게 추적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군용 항공기, 헬리콥터, UAV의 표적 타깃팅에도 활용되는 이 기술은 몇년 전만해도 보급률이 낮았지만 요즘은 널리 쓰인다고 한다.
다음날 필자는 열화상 카메라 전문기업 플리어의 고해상도(HD) 카메라가 탑재된 CBP의 국경 감시 헬리콥터에 탑승해 보기도 했다. 이 카메라는 사람이 풀밭에 누웠다가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잔열까지 탐지한다. 또한 레이저 타깃팅 시스템이나 카메라와 연동되는 적외선 스포트라이트도 달려 있어 야간투시경을 쓴 대원들을 위해 밀입국자 주변을 서치 라이트로 비추듯 환하게 밝혀준다. 만실라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 장비들 덕분에 야간 감시 능력이 주간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7. 물류의 기적
CBP는 밀입국자나 밀수품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임무의 최대 핵심은 밀입국과 밀수의 감시가 아니라 무역을 위한 물류를 원활히 하는 것이다. 리오그란데 강에 접해 있는 러레이도가 미국에서 가장 분주한 육상 상업도시 중 하나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멕시코의 누에보라레도와 연결된 '월드 트레이드 브리지'의 확장공사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공사 후 차로가 두 배로 늘면서 이제는 연간 150만대의 대형 물류 트럭 통관이 가능하다.
통관사무소의 호세 우리베 부소장을 만나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이 마치 괴물 같은 대형트럭과 거대한 검색 스캐너들이 벌이는 피튀기는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평균 5,000대의 트럭이 이곳을 지납니다. 청바지, 노트북, 자동차 부품 등 없는 것이 없죠. 1970년대 후반에는 대다수가 기념품이고 가끔 철강이 들어오는 정도였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뒤부터는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해졌어요."
러레이도 통관사무소의 업무는 가히 물류의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각 트럭들은 여러 단계의 검색을 거치는데 트럭이 당도하기 최소 1시간 전까지 통관사무소에 전달해야 하는 전자 화물목록을 살펴보는 것으로 통관절차가 시작된다. 이때 세관원들이 철저한 검색이 필요한 화물을 지정하면 고해상도 X레이 스캐너로 검색하거나 일일이 전수검사를 시행한다.
검사관들이 보유한 장비는 놀라운 수준이다. 구식 저에너지 X레이 장비를 위시해 공항의 알몸 투시기와 동일한 후방 산란 X레이 스캐너, 감마선 스캐너 등 첨단장비를 갖고 있다. 검사관이 육안으로 보기에 의심스러운 화물이 있을 때 고에너지 X레이 장비가 투입된다.
그러면 트럭과 컨테이너의 내부를 환상적인 화질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미술관에 걸어놓아도 될 정도로 고화질이다. 운전석의 변속기나 엔진 속의 부품들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우리베 부소장은 과거에 검색했던 도로공사용 로드롤러의 사진을 보여줬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다지는 이 중장비의 사진 속에는 거대한 롤러 내부에 무언가 숨겨져 있었다. 사진에 근거해 정밀 검색을 했더니 마리화나가 나왔다고 한다.
"한번은 트럭에 실린 직물의 롤 속에 밀도가 다른 것이 포착됐어요. 확인해봤더니 120만 달러의 현금이더군요."
이동식 감시초소
이동식 감시 카메라 플랫폼 '스카이 박스(Sky Box)'. 이 같은 최신 장비들 덕분에 국경 순찰대의 밀입국 감시 능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이렇게 압수된 현금이 1억4,70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에게 이 정도의 돈은 시쳇말로 껌값에 불과하다. 매년 국경 너머로 불법 송금하는 자금이 180~390억 달러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밀수꾼들은 종종 멍청하거나 과도한 욕심을 부려 자멸한다. 차량 내부의 숨겨진 공간에 밀수품이나 현금뭉치를 무리해서 한두 개 더 넣으려다가 검사관들에게 쉽게 적발당할 때가 그렇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폐유가 가득 들어 있는 드럼통 속에 마약을 넣어 밀반입하려는 시도가 그 실례다.
"폐유는 스캐너로도 내부를 보기 어려워요.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현대 과학기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들도 속이기 힘든 존재가 있다. 바로 탐지견이다. 고도로 훈련된 탐지견의 후각은 그 어떤 첨단장비보다 정확하다. 러레이도 검문소의 탐지견만 해도 트럭 엔진실에 숨어있던 사람, 좌석 속에 꿰매 넣은 밀수품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밀수꾼들은 멍청하고 탐욕스러울 때가 많지만 가끔은 정말 기발한 생각도 해내죠."
8. 현대판 판옵티콘
이 같은 일반적인 통관사무소들과 달리 텍사스주 델 리오의 통관사무소는 한층 초현대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는 물건은 물론 사람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색이 이뤄진다. 사람들의 표정, 자세, 의복, 감정까지 모두 살핀다.
일례로 통관시설에 들어온 모든 차량은 예외 없이 번호판과 운전자의 얼굴이 촬영된다. 이에 더해 최근 미국 정부가 발급한 모든 여권과 영주권, 1일 입국 카드에는 무선인식(RFID) 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운전자 및 탑승자의 신원이 신속히 파악된다. 델 리오에서는 출입국 절차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의 하이패스 서비스처럼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탑승객이 소지한 신분증의 RFID 정보를 제공받는 전용차로도 운용하고 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등록·기록·관찰되며 통제받는다. 어떤 차량도 허락 없이 나갈 수 없고, 그러려고 시도했다가는 도주 차량 차단장치인 로드 스파이크(road spike)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이렇게 극도로 제한돼 있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전술물류지원 책임자인 샤론 앤식은 이를 가리켜 '수동적 보안'이라 표현했다.
이를 증명하듯 시설을 견학하는 동안 필자는 어디에서나 비디오카메라를 볼 수 있었다. 앤식은 전체 시설 내에 150대가 설치돼 있다고 밝혔다. 모든 문과 창문에는 보안장치가 부착돼 있었으며 특정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됐다. 통관사무소 시설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든 못하든 일종의 '판옵티콘(panopticon)'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통행량이 많지 않았는지 통관을 기다리는 차량들의 줄이 짧았다. 하지만 시설 전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M4 카빈 소총으로 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들이 돌발상황에 대응키 위해 주변에서 대기 중에 있었고 책임자들은 유리벽이 쳐진 통제실 안에서 카메라 영상 등을 보며 전반적인 상황을 살피면서 현장 요원들과 무전 연락을 주고 받았다.
매년 평균 200만명이 자동차로, 5만명이 도보로 이곳을 통과한다. 이들 모두를 철저히 검색하는 것은 아니지만 CBP 요원들이 운전자를 인터뷰하고 볼록거울로 차량 하부를 검색한다. 탐지견의 후각 검색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 또는 차량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거나 평범하지 않은 지역에서 온 차량들은 추가검색이 진행되며 이때는 밀도계, 거울, X레이 스캐너 등 CBP가 보유한 검색 장비가 총동원된다. 앤식은 최근 있었던 한 사례를 말해줬다.
"한 요원이 깔끔한 모습의 남성이 혼자 타고 있는 차량을 이상하게 여겨 압수 수색을 실시했어요. 여기서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거든요. 결국 X레이 스캐너가 의문을 해결해줬죠. 차 안에서 수㎏의 헤로인과 메타 암페타민이 발견됐어요."
이 같은 수동적 보안시스템과 시설 전체를 아우르는 감시체계야말로, 앞서 OAM의 항공보안 작전책임자 케니스 나이트가 주창한 '영역 전체에 대한 완벽한 상황 인식 능력'을 현실에서 가장 잘 구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필자의 머릿속에 재차 근본적 의문이 떠올랐다. 국경의 영역은 어떻게 정해질까. 그 영역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소리 없이 품은 의문을 듣기라도 한 듯 앤식은 CBP가 미 식품의약국(FDA), 환경보호청(EPA), 농무부(USDA) 등 44개의 정부기관을 대표해 법을 집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CBP의 조사관들은 마약이나 무기뿐만 아니라 농산물을 맨 손으로 뒤져가며 잎사귀에 붙은 작은 벌레나 알, 해충처럼 적법한 수입 품에 묻어오는 불청객들을 찾기도 한다. 동물들은 진드기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 검역을 시행해야 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중에는 즙이 줄줄 흐르는 발효 치즈와 핏물이 흐르는 사슴 머리를 들고 오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멸종위기종 바다거북이 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신은 사람도 있었죠. 부츠는 압류창고로 들어갔고, 순진하게도 진실을 순순히 말해버린 그 불쌍한 사람은 양말만 신고 가야했어요."
판옵티콘 (panopticon) - 1791년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의 효과적 감시를 위해 고안한 원형 감옥.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의 합성어로서 '모든 것을 감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거리 감시
미 항공해양사무소(OAM)의 국경 감시 네트워크 '빅 파이프(Big Pipe)'는 머지않아 국경에 설치된 원격 감시카메라 시스템과 UAV의 영상을 통합 운용하게 될 것이다.
9. 무인기의 비상
리오그란데 강을 따라 여러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국경 감시· 통제장비들에 대해 물어볼 때면 당시 동행했던 사람들은 꼭 한번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건 보르코프스키에게 물어보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보르코프스키는 CBP 기술혁신국 부국장인 마크 보르코프스키를 지칭한다. CBP의 모든 첨단 장비 도입과 계약이 그의 손을 거쳐 이뤄진다. 드디어 워싱턴에서 그와의 미팅이 잡히고 그를 대면했을 때 필자는 가장 먼저 SBInet에 대해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팅 일주일 전 SBInet 의 실패에 대해 의회에서 증언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판단으로는 대중과 언론, 정부가 갖고 있던 막연한 믿음, 다시 말해 첨단기술이 골치 아픈 정치적 문제를 모조리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SBInet의 원죄였다.
"9·11 테러 이후 수년간 사람들은 국경을 위험 지대로 여기기 시작했고 뭔가 대단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기술이 어떻게든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점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했죠."
하지만 보르코프스키는 해답을 얻기 위해 정확히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SBInet의 실패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해답을 줄 수 있는 만능 기술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보잉과 DHS의 잘못도 있다. 보잉의 잘못은 예산 초과, 납기일 지연, 부실한 설계였고 DHS는 형편없는 프로젝트 관리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사실상 의회가 진즉에 불법이민자들이 합법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면, 혹은 미등록 외국인 고용을 불허하는 법을 꾸준히 시행했다면 밀입국자 숫자는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겁니다. 그런 다음 어떤 시점에 마약상이나 테러리스트 같은 정말로 질 나쁜 사람들만 철저히 가려내 추방시키면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기술은 여전히 국경 보안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라는 부분에는 보르코프스키도 동의한다. 제공권이 군대의 전략·전술을 바꿔놓았듯 기술도 이미 국경 보안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는 상태다. 그는 특히 UAV의 운용이 국경 보안 업무의 급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BInet은 실패했지만 최대한 넓은 국경 지대를 상시 감시한다는 기본 아이디어는 현 시대에 적절하다는 것. 단지 UAV는 넓은 지역의 상시 감시보다는 특정 표적의 추적·감시 임무에 더 부합하는 장비라고 본다. 기존 시스템을 대체한다기 보다는 보완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다.
"유인항공기와 비교해 UAV는 목표지점으로 빠르게 날아가 훨씬 오래 머물 수 있죠. 그러나 감시 시야는 빨대 구멍처럼 좁아요. 기존 시스템과는 운용 목적과 임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보르코프스키는 국경과 그 이외의 장소에 UAV를 투입한 공적을 전직 공군 장군이자 OAM의 책임자였던 코스텔닉 부국장의 공으로 돌렸다. OAM은 현재까지 6년째 프레데터 UAV를 미국 내에서 운용 중이다.
국경 경비와는 상관없는 허리케인, 산불, 홍수 등의 재난 구호 임무에도 프레데터를 투입한다.
평상시 국경 경비 임무에서 OAM의 UAV 운용 인가는 연방공항청 (FAA)에서 해준다. 임무를 위해 특정 지역 상공의 UAV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때도 FAA 인가가 필요하다. 활용 가능 구역은 남서부 국경 전역과 멕시코만 해안, 그리고 워싱턴주 동부의 스포캔에서 오대호의 서쪽 끝에 이르는 캐나다와 맞닿은 북쪽 국경이다.
이와 관련 고스텔닉 부국장은 FAA가 앞으로도 주요 대도시에서만큼은 UAV의 정기운행을 허용치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오작동, 추락, 하이재킹의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도 비상상황에서는 FAA의 인가를 받아 24시간 내에 미국 전역 어디에라도 프레데터를 보낼 수 있습니다."
"24시간 내에 미국 전역 어디에든 프레데터 무인기를 보낼 수 있습니다."
첨단 국경보안 장비?!
국경 순찰대는 차량 후미에 타이어를 매달아 흙길을 평평하게 만든다. 여기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면 밀입국이 시도됐다는 증거다.
10. 그들이 할 수 없는 것
취재 초반 브라운스빌에서 만난 OAM의 케니스 나이트가 자파타 요원의 장례식 공중지원 임무에서 수행해야 했던 과제 중 하나는 헬리콥터가 촬영한 영상을 국경 순찰대 기지의 지붕에 설치한 극초단파 안테나로 다운링크 받기 위한 적절한 세팅이었다.
당시 그는 국경 순찰대의 PC로 자신이 개발한 빅 파이프에 접속, 몇 차례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설정을 마치고 화면에 영상을 띄우는데 성공했다. 이 영상은 빅 파이프를 통해 각 지역의 보안관서와 미 연방수사국(FBI)에 보낼 수 있다. 또한 나이트는 자신과 주기적인 업무협력 관계에 있는 수백군데에 이르는 지방과 주, 연방의 고객들에게도 영상을 전송할 수 있다.
몇 주가 흘러 워싱턴의 OAM에서 만난 그는 빅 파이프와 관련해 필자에게 약속했던 자세한 브리핑을 해줬다.
"저는 사무실에서는 물론 전 세계 어디서나, 언제든 국경 감시 헬리콥터, 프레데터 UAV, P-3 해군 초계기를 포함해 어떤 소스의 영상이라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 등록된 컴퓨터나 태블릿 PC, 스마트폰만 있으면 애틀란타의 하츠필드잭슨국제공항에서 시험 운용 중인 DHS의 보안카메라 영상도 가능해요."
빅 파이프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운용되는지 묻자 그는 프레데터가 해상에서 미확인 선박을 발견했을 때를 가정해 설명했다. 빅 파이프는 이 작전에 연관된 모든 기관의 직원들이 작전 내용을 실시간 기록할 수 있게 해주고, 프레데터가 촬영한 동일한 동영상 피드도 실시간 제공한다. 동영상에 더해 임무와 관련한 차트, 지도 등의 데이터도 볼 수 있다.
이때 프레데터를 조종하는 OAM의 조종사는 미확인 선박의 정체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과 자료가 실시간 공유되기 때문에 해안경비대의 분석관이 영상 속 선박을 보고 판단한 자신의 생각을 프레데터 조종사에게 알려줄 수 있다.
아직은 국가 전체를 감시·통제하는 통합시스템 운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까?
가상 장벽 프로젝트 (SBInet)
SBInet은 당초 첨단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 국경 전체를 통합 감시·통제하는 시스템을 표방했다. 하지만 과도한 사업비 증가 등으로 작년 1월 공식 폐기됐다.
이 정도만 해도 빅 파이프는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메리트는 따로 있다. 단순히 상황을 생중계하는 것을 넘어 상황이 진행 중일 때 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생성해내는 주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게 그것이다.
"만일 해상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선박이 연안도시인 마이애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이애미는 대도시여서 UAV가 접근할 수 없어요. 이 경우 마이애미 인근 해안에서 프레데터의 추적 임무를 대시-8 유인항공기로 인계시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박이 항구에 들어갔다면 촬영조건이 더 유리한 항구의 고정식 감시카메라로 촬영할 수 있죠."
이는 기존에 구축된 단일 플랫폼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항공기는 영원히 체공할 수도, 모든 곳을 갈 수도 없으며 고정식 카메라는 위치이동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빅 파이프는 이들의 카메라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운용, 각 시스템의 빈틈을 효과적으로 메울 수 있다.
필요한 모든 부분을 끊임없이 감시할 수 있는 능력과 생성된 모든 것을 임무 데이터 패키지로 전환, 접속과 분석이 용이하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빅 파이프는 아마도 머지않아 세계 각지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이 현재 사용 중인 군사지휘통제 소프트웨 어를 능가할 것이다.
결국 빅 파이프의 궁극적 지향점은 리오그란데 계곡과 같은 특정 작전 구역에서만 적용되는 통합 감시·통제시스템이 아니다. 나이트는 미 전역의 공중 레이더와 해상 레이더, 항구와 국경의 감시카메라, 그리고 공항·철도역·빌딩 등 대도시에 설치된 모든 감시카메라를 포괄하는 웅대한 시스템을 꿈꾼다.
또한 이 도구들을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미국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영역 전체에 대한 완벽한 상황 인식 능력'이라는 그의 발언도 이렇게 미 전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광역 감시 체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렇지만 이토록 강력한 빅 파이프조차 아직은 국경 보안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나이트의 꿈이 실현되더라도 국경에서 적용하는 엄격한 잣대를 영토 내의 사람과 물품에 대입해도 될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아직까지는 영화 다이하드4에서 악당들이 했던 것과 같은 국가 전체를 감시·통제하는 통합시스템 운용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 아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작년 10월 DHS의 마리코 실버 차관보도 미 의회에 출석, 국경 보안에 대해 증언하며 비슷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그날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국경 보안 정책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경계선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지하다시피 국경과 본토의 보안은 불가분의 관계다. 국경을 지키는 임무는 본토의 안보와 직결된다. 이 점에서 국경은 새로운 보안 기술을 적용해 다듬고, 여기서 얻은 군사적 전술을 본토에 적용하는 시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위시한 각 국가들이 생각하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점차 내륙 전체로 넓어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이트의 말이다.
"군대도 우리와 똑같은 장비를 가지고 우리가 하는 임무 중 일부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죠. 군대는 특정 영역에서 일하지만 우리는 여러 영역을 넘나듭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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