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초·원천연구를 총괄 지원하는 컨트롤타워인 한국연구재단의 새 수장으로 선임된 이승종 이사장은 연구자들이 우수한 연구성과를 도출하면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또 임기 내 역점사업으로 연구자 중심의 창의적 연구환경 조성, 학문분야별 특성과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연구지원 체계 구축, 글로벌·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융합연구 촉진, 우수 연구성과 창출을 위한 평가제도 선진화 등 4가지를 꼽았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Q. 신임 이사장으로서 포부는
최근 국내외적 환경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대한민국은 경제적· 사회적·문화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지난해 무역규모가 지난해 1조 달러를 기록, 세계 9위권에 진입했고 국내총 생산(GDP)은 1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 되는 사회적 소통구조의 변화가 거세게 진행되고 있고 융합과 통섭이라는 학문적 화두는 모든 사회영역으로 확대됐습니다.
학술과 R&D 환경에서 보면 기초과학 진흥과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됐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개편도 실시됩니다. 아울러 국제적으로 경제위기, 빈곤, 분쟁, 에너지와 환경, 역사 논쟁 등 글로벌 이슈 해결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가·사회적 문제에 더해 인류와 문명사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연구지원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재단의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하고 맡은 바 역할을 착실히 완수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임기 중 중점추진 사항이 있다면
연구자들이 창의적·도전적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에 힘쓸 것입니다. 이는 재단의 최대 임무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는 기초연구자들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한국형 그랜트(Grant) 제도'와 관련 이공분야는 일반연구자지원사업과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에, 인문사회분야는 신진연구지원사업에 우선적으로 도입·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학문분야별 특성과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연구지원체계'를 구축할 생각입니다. 일례로 수학은 연구장비가 아닌 국내외 우수연구자들과의 교류가 중요하고 생명공학은 초기에 고가의 연구 기자재가 필요하듯 학문분야별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업별로 예산이 배분돼 있어 분야별 특성에 맞춘 지원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종축으로는 연구자의 발전단계 및 집단연구, 횡축으로는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매트릭스 시스템(Matrix System)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분야의 수요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R&D지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Q. 한국형 그랜트제도란 무엇입니까
이 제도는 주요 연구성과만 온라인에 등록하는 것으로 기존의 결과보고서를 대체하고 정산 보고서 제출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골자입니 다. 행정업무나 성과 창출에 대한 연구자들의 부담을 줄여 창의적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1년차 단계평가를 폐지하고 지원기간을 3년으로 확대하며 연구비 규모를 최대 1억5,000만원까지 확대 지원하는 등 모험 연구 체제도 강화됩니다. 그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우려도 있지만 이는 해당 연구자가 다음번 과제를 신청할 때 과거의 성과를 집중 분석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덧붙여 단순히 논문의 숫자를 헤아리는 정량 평가에서 탈피해 질과 영향력,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성실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성과창출에 실패한 연구자들을 위한 '성실실패 용인 제도' 확대에도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Q. 우수연구성과 창출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우수연구성과 창출을 위해 투명하고 전문적인 과제심사와 선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소수에 의해 심사결과가 좌우되지 않고, 학문적·경제적·사회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우수한 연구성과의 창출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매년 일정수준 이상의 평가자 풀(Pool)과 사업별·학문분야별 특성에 따른 다양한 우수 평가자 풀을 각각 구축·운영하는 한편 '평가자 사전 안내 동영상'을 배포, 공정한 평가가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할 방침입니다.
또한 평가자들의 책임의식을 고양하면서 불성실한 평가로 평가과정과 결과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평가의 적정성 제고를 목표로 평가자 이력시스템도 구축·운영할 예정입니다.
Q. 현재 재단의 최대 선결과제는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재단은 3개 기관이 통합한 기관입니다. 오랜 숙원이었던 3개 노조가 불협화음 없이 통합됐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닌 세 기관 직원들의 화학적 결합과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문에 조직의 역량을 결집하고 새로운 활력을 도모할 수 있는 확실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올해는 직원들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연구재단을 만드는 것이 재단 내적으로 주어진 최대 과제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 구성원들이 상호 소통하고 신뢰·화합하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킬 계획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조직 통합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시행, 상생의 조직문화를 견고히 구축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Q. 기초·원천연구 기반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기초연구는 산업화·응용화 성과가 창출되지 않는 연구,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연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등 세계적인 기초연구기관들은 연구성과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초기술 강국 일본은 사업화 가능성이 없고 실험결과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기초과학을 지원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일생동안 중성미자(neutrino)를 연구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도쿄대학 고시바 마사토시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고시바 교수는 이 연구를 위해 폐광의 지하에 수천 톤의 물을 담은 특수검출기를 건설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검출한 중성미자는 12개에 불과했지만 일본 정부는 장기간 막대한 연구비를 끊임없이 지원했습니다.
이렇듯 연구자의 열정과 노력에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며 노벨 물리학상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Q. 우리나라도 지원을 더 확대해야한다는 의미인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현 정부 출범 이후 기초·원천연구 지원 확대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정부 R&D 예산의 기초·원천연구비 비중을 지속적으로 증액해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이공계 교수 6명 중 1명(16.4%)이었던 연구비 수혜율이 올해 3명 중 1명으로 확대되는 등 기초연구 저변이 크게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투자는 앞으로도 더 확대돼야 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응용연구와 제품개발은 기업에서, 기초·원천연구와 인재양성은 정부에서 전적으로 지원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우수한 연구성과를 쫓아가기 위해 정부가 대부분의 응용연구를 지원해왔고 최근까지도 이런 경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원천연구 투자 확대가 필요합니다.
Q. 국내 첫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연구의욕이 가장 왕성한 신진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노벨 과학상 수상의 토대를 마련코자 합니다.
1907년부터 1972년 사이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을 보면 노벨상 수상의 단초가 된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을 당시의 평균 연령이 38.7세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48세로 대기만성형 과학자들이 증가했지만 박사학위자의 연령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를 고려하면 창의적 아이디어와 도전적 의지로 충만한 박사학위 취득 후 10년 내외의 신진 연구자들이 획기적 연구를 시작해 노벨상 수상에 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진 연구자 지원을 더 강화할 것입니다. 우선 1980년대 시작된 학문후속세대양성과 신진연구자지원 예산을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확대했고 최근에는 다양한 신진연구인력을 집중적·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하여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기초과학분야 석박사과정의 우수 인재를 조기 발굴,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세계적인 과학자로 육성하는 '미래 기초과학 핵심리더 양성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Q. 신진 연구자 지원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우선 작년부터 만 39세 이하의 우수 이공분야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초기 일자리 정착과 자립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매년 1.5억원의 연구비를 최장 5년(2+3년)간 지원하는 '대통령 Post- Doc. 펠로우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의 박사급 연구원에게 창의적인 연구기회 제공을 목표로 연간 5,000만원의 독자적 연구비를 최장 3년까지 지원하는 '대학연구원 지원사업'이 올해 처음 시행됩니다.
아울러 연구 장비비를 포함, 3년간 최대 7억 5,000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을 지난해에 이어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우수 대학원생들이 학업과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박사과정 및 석·박사통합과정 신입생을 대상으로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사업'을 수행 중입니다.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사업의 경우 대학원생 개인에게 월 250만원, 매년 3,000만원의 연구 장학금을 직접 지원함으로써 재정적인 안정에 더해 국가 장학생으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효과도 얻고 있습니다.
Q. 연구성과 평가방식의 개선 방안은
재단이 지원하는 학술·R&D 활동과 인력 양성 예산규모가 지난해 2조8,958억원에서 올해 3조 517억원으로 증액된 바 있습니다. 정부 R&D 예산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단은 창의적 연구, 인재양성, 산학협력, 국제협력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사업들은 사업 목적에 맞는 성과 창출을 유도하고, 결과를 적절히 평가하도록 다양한 평가지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세계를 선도하는 성과를 창출하려면 양적 지표만으로의 평가는 충분치 않음을 공감합니다.
기초연구사업의 특성상 논문이 주된 성과지만 특허, 학술 발표, 기술이전 실적도 분명한 성과입니다. 때문에 논문의 경우 영향력 지수 (impact factor) 등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정보를 기재, 단순히 논문이나 특허 숫자와 같은 양적 지표로만 평가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량화된 가시적 업적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결과 자체를 좌우하지는 않으며 성과평가와 관련해 연구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수렴·반영함으로써 지속적인 개선·보완노력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Q. 기초과학연구원과의 차별화 계획은 무엇인지
지난해 기초과학연구원(기초과학연)이 설립됐고 분산된 R&D 예산의 배분·조정과 성과평가 업무를 체계적·통합적으로 수행하고자 국가과 학기술위원회도 출범했습니다.
재단은 대학, 출연연 등의 연구기관을 적극 지원하면서 기초과학연과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정립하여 협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일반적으로 정부주도형 중장기적 대형과제인 원천연구는 출연연에서, 단기적 소형과제인 기초연구는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어 출연연과 대학은 차별화되면서도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초과학연은 출연연이나 대학에서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장기적인 대규모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역시 차별성과 보완성을 갖습니다.
재단과 기초과학연은 우리나라 기초연구를 지원·육성함에 있어 경쟁관계라기 보다는 역할분담을 통해 상호 보완적인, 다시 말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재단은 대학과 출연연을 포함한 모든 연구기관을 지원하고, 기초 과학연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대규모 연구와 재단의 지원 수준을 넘어서는 연구를 지원한다면 양 기관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올해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기초연구자들의 창의성이 한껏 발휘될 수 있도록 한국형 그랜트 제도를 시행합니다. 또한 복잡한 세부유형을 통합하는 등 사업구조를 개편하여 간소화하고, 신진·여성·지역 등 상대적 연구소외 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합니다.
아울러 상위 15% 내외의 우수한 성과를 창출한 연구자는 추가 지원(3+3년)하고, 이들 중 우수과제는 차상위 사업에서 계속 지원 받을 수 있도록 사업 간의 연계도 강화했습니다.
즉 연구자들은 우수 연구성과를 도출하기만 하면 연구비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구비 규모도 자연스럽게 확대됩니다.
현재 재단은 기존에 연구자들의 불만사항이었던 각종 제한사항을 완화해 연구자의 자율성을 크게 확대했습니다. 향후에는 실패사례를 확산해 실패로부터 얻은 경험과 교훈을 동료 연구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운영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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