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투명 엘리베이터 밖으로 도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즐비하게 늘어선 마천루들 사이로 건물 전체가 식물로 덮여 있는 빌딩형 실내 농장들이 눈에 띠었고 촘촘히 연결된 도로 위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또 공중 철로에는 자기부상열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1층에 도착한 리는 태블릿 PC를 꺼내 목적지의 최단 경로를 탐색한다.
그 시각 리의 할아버지 준은 마당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집은 도심에서 40㎞ 떨어진 목조 전원주택단지에 있으며 도심과는 달리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단층 주택들과 작은 정원들이 들어선 이곳은 주변의 도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동안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준은 그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여긴다. 빡빡한 도시생활과 연계된 것들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찻물 끓는 소리에 천천히 일어난 그의 행동에도 한껏 여유가 배어 있었다.
반면 그 시각 리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교통 체증으로 30분 동안 도로에 꼼짝없이 잡혀있었던 것. 그는 재빨리 모바일 앱을 이용해 경로를 재탐색했다. 그러자 앱은 자기부상열차 정거장으로 안내했다.
열차에 오른 리는 이동하는 동안 태블릿 PC로 간단한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리와 같은 세대에게는 전통적 사무실 개념이 없을 뿐더러 업무와 여가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후 앱의 지시에 따라 열차에서 내린 그는 전기자전거를 빌려 탄 후 공원을 가로질러 사전 예약한 전기자동차에 올랐다. 이 전기차는 전자동 운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동시간을 이용해 남은 업무를 좀 더 처리할 수 있었다.
몇 ㎞ 떨어진 곳의 준은 이제 차 마실 준비를 모두 끝냈다. 차와 찻잔을 세팅한 뒤 마당의 의자에 앉아 손자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 손자의 건강을 가장 걱정하지만 손자가 권한 디지털 의료보조기를 손목에 차고 있다. 이 기기는 맥박과 혈압, 체온 등의 바이탈 사인을 실시간 측정해 주치의에게 전송한다.
바로 그때 골목으로 전기차 한 대가 들어선다.
손자가 탑승한 차다. 차창 안으로 바쁘게 태플릿 PC를 타이핑하고 있는 손자가 보인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도시 한복판에 있다가 불쑥 느림의 미학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 들어와 버린 리는 어색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차에서 내렸다. 준이 이런 손자를 반갑게 맞는다.
"안색이 좋지 않구나. 네가 이곳으로 이사 오면 좋을 텐데. 복잡한 일은 조금 뒤로하고 말이야."
할아버지의 충고에 리는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저는 하루만 있어도 답답해서 미쳐버릴 거예요"
2040년의 도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한다. 한 공간 안에 분주함과 고요함, 미래와 현재가 교차하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