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행선 제작업체 에어로스의 이고르 파스테르나크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 리비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집 근처에 기상대가 있었는데 6살 무렵 기상관들을 설득해 기상관측 기구를 타본 뒤 비행선에 꽂혀버렸고, 지금까지 비행선은 그의 삶 자체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에어로스 본사를 찾은 필자에게 이고르는 최신 비행선이 조립되고 있다는 대형 격납고를 보여줬다. 그곳에는 알루미늄 및 탄소섬유 프레임으로 만든 거대한 골조가 높이 솟아있었다. 길이 120m의 비행선 뼈대였다. 이고르에 따르면 이는 '에어로스크래프트(Aeroscraft)'로 명명된 부력 조절이 가능한 초대형 수직이착륙 화물비행선의 프로토타입 모델이자 비행선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 그의 야 심작이다. 그는 비행선이 항공기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도 비행선의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지금 저는 100년 이상 지속된 난제를 해결하는 중입니다." 이고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밸러스트 제어 문제(Ballast control matters)'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이것이 그가 말한 난제의 요체다.
"헬륨가스의 부력을 이용하는 비행선은 착륙 후 로프로 동체를 고정하고 밸러스트 용수를 넣어줄 지상요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물이 하역되면서 중량이 가벼워져 하늘로 떠오르게 되죠. 저는 비행선 내부의 헬륨가스를 압축, 사람의 도움 없이 부력을 실시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 같은 이고르의 부력 조절시스템이 예상대로 작동한다면 에어로스크래프트의 조종사는 일체의 외부 지원 없이 수직·수평 상의 모든 방향으로 비행선을 이동시킬 수 있게 된다.
사실 비행선을 활용, 항공운송의 혁명을 꾀하자는 발상은 꽤나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진척은 매우 더뎠다. 그나마 군사 분야에서 있었던 몇몇 시도 역시 용두사미로 끝나기 일쑤였다.
일례로 2005년 펜타곤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바다코끼리(Walrus) 프로젝트'를 런칭, 500톤의 화물을 싣고 1만2,000해리(2만 2,224㎞)의 비행이 가능한 초대형 하이브리드 항공기의 개발에 나섰지만 2010년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며 흐지부지됐다.
비행선 관련 프로젝트에서 이런 식의 중도 폐기는 흔하디흔한 일이다. 물론 그럼에도 전 세계 비행선 제작사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노스롭그루먼, 록히드마틴 등 거대 항공기업들과 에어로스와 같은 중소기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비행선의 르네상스를 재현코자 연구개발을 지속했다. 필자와 함께 에어로스크래프트 격납고를 둘러본 물류전문가 빌 크라우더는 거대한 비행선들이 전 세계의 하늘을 누빈다고 생각하 면 기대감에 웃음이 절로 난다고 했다.
"비행선은 항공기와 달리 수주일간 대륙을 횡단하며 대형 화물을 옮길 수 있어요. 50톤짜리 크레인을 북극까지 나르는 것도 가능해요."
"제 꿈은 언제나 에어로스크래프트 같은 비행선의 개발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 그동안 번 모든 수익을 털어 넣었죠."
이고르가 에어로스를 창립한 것은 1987년 우크라이나에서였다. 그러던 중 구 소련이 붕괴된 직후 미국으로 회사를 옮겼고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 시절, 펜타곤에 비행선 납품을 이끌었다. 현재 펜타곤 외에도 여러 나라의 군 기관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에어로스는 경비행기와 유인 비행선 분야에서 세계 최대 판매실적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그러나 이고르는 이 성공이 자신의 궁극적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제 꿈은 언제나 에어로스크래프트 같은 비행선의 개발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 그동안 번 모든 수익을 털어 넣었죠. 모든 수익을 말이에요."
에어로스의 비행선은 업계의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존재다. 과거에 치열하게 경쟁했던 중소업체들은 이미 문을 닫았으며 록히드마틴과 노스롭그루먼은 항공기와 비행선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비행선, 즉 여전히 수직이착륙이 불가능한 모델의 개발에만 주력하고 있다.
향후 에어로스크래프트의 프로토타입 모델이 제대로 작동해 길이 240m의 상용모델 개발에 성공한다면 항공물류의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군용수송기의 대표주자인 보잉 C-17은 화 물탑재량이 75톤, 현존 세계 최대 수송기인 안토노프 An-225도 최대 탑재량은 275톤에 불과하지만 상용 에어로스크래프트는 무려 500톤의 화물을 장거리 수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직이착륙과 정지비행 능력에 힘입어 효용성도 뛰어나다. 크라우더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비행선이 나온다면 물류업계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밸러스트 (ballast) - 비행선의 고도 제어, 선박의 균형 유지 등을 위해 동체 내부에 주입하는 중량물.
5,000개
체중 68㎏의 사람 한 명을 하늘에 띄우는데 필요한 헬륨 풍선의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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