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우주선은 우주개발 초창기부터 철저한 국가 주도적 프로젝트였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들에게 우주선을 이용한 우주개발은 불확실성과 비 상업성으로 점철된 리스크 덩어리일 뿐이었다.
나가봤자 어떤 이득이 있을지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할 바보는 없었으며, 설령 그러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우주선 개발에 투입되는 자본과 기술은 일개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미국이나 구 소련 같은 강대국조차 우주선, 발사기지, 그리고 각종 지원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끌어 모아야만 했으니 두말해서 무엇 할까.
이런 이유로 우주개발은 지금껏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기술력과 하드웨어를 장기간 집적시켜야 하는 비영리 거대과학의 정점에 있었다.
우주왕복선의 공백을 메워라
그러나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가 50년이 넘어가면서 일반인들의 생활 편의 증대와 기업의 이윤 창출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항공우주 활동이 늘어났다. 통신, 기상 관측, GPS, 지도 제작 등을 위한 민간 인공위성 발사가 그 실례다.
또한 우주개발 노하우의 축적과 기술발전 덕분에 과거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성 높은 로켓과 우주선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는 민간기업들이 우주선 개발을 절대로 넘볼 수 없는 금단의 영역에서 도전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버진 갤럭틱 등 몇몇 기업들이 우주관광 사업을 천명하며 우주여객선 개발에 뛰어든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런 와중에 NASA의 우주왕복선이 후계자를 보지 못한 채 영욕의 생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때는 NASA, 아니 미국은 스스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사람과 물자를 수송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러시아에 돈을 지불하고 우주선을 빌려 써야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민간우주기업들에게 기회였다. 우주왕복선의 공백을 메워줄 우주화물선 또는 유인 우주선을 개발, NASA의 운송업무를 대행할 경우 최소 수십억 달러의 수익이 가능했다. 또한 이렇게 개발된 우주선은 우주과학실험, 우주 관광 등 민간분야에서의 효용성도 높아 투자비를 뽑는 것은 물론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NASA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었다. 우주왕복선 퇴역을 앞두고 러시아와 소유즈 우주선을 이용한 ISS 도킹을 위해 3억6,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해놓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었기에 민간우주선은 오히려 NASA가 부추기기라도 해야 할 입장이었다. 결국 NASA는 2006년 상업궤도운송서비스(COTS)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고 스페이스X를 포함, 현재까지 총 7개 민간기업과 계약을 체결해 우주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룰루랄라~
우주비행사 안드레 쿠니퍼스가 드래곤이 가져온 식품 등의 화물을 나르고 있다. ISS에서는 이날 파티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용의 승천
스페이스X가 드래곤의 개발에 처음 나선 것은 2004년 말부터다. 이 회사는 NASA가 COTS 프로젝트를 런칭하자 캐나다의 MD 로보틱스 등 여러 기업들과 제휴, 드래곤의 개발안을 확정하고 NASA의 문을 두드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NASA의 간택을 받은 것은 스페이스X의 드래곤과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 로켓플레인(Rocketplane)이었다.
NASA의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면 두 기업은 각각 2억7,800만 달러와 2억700만 달러를 지급받기로 했지만 키슬러는 결국 조건충족에 실패, 2007년 계약이 해지됐다. 이렇게 유일하게 최종 낙점을 받은 스페이스X는 2008년 12월 총 12회의 우주비행을 통해 최소 20톤의 물자를 ISS에 수송한다는 내용의 16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하고 2010년까지 3회의 시험발사를 실시키로 합의했다. 이 계약은 양사간 합의에 따라 최대 31억 달러로 증대될 수 있다. 즉, 드래곤 우주선은 단순한 민간 우주선이 아니라 처음부터 NASA가 우주왕복선의 대체를 염두에 두고 민간에 외주를 줘서 개발한 우주선이라 할 수 있다.
이후 2009년 2월 스페이스X는 NASA의 열보호소재인 PICA(페놀수지 함침 탄소 애블레이터)보다 10배나 저렴한 PICA-X의 열응력 실험에 통과했고, 같은 해 내비게이션 센서 '드래곤 아이(DragonEye)'의 우주공간 실험을 마치는 등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0년, 드디어 우주선이 완성됐다.
드래곤은 발사 시 공기저항을 줄여주는 노즈콘과 우주비행사가 탑승하는 여압식 캡슐, 그리고 화물을 싣는 트렁크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캡슐에는 앞서 말한 PICA-X가 입혀져 있어 지구 대기권 재돌입 시의 공기 마찰열로부터 캡슐을 보호한다.
드래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의 하나는 바로 이 캡슐 부분을 수차례 재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폴로, 소유즈 등 드래곤과 동일한 캡슐형 우주선들은 다수 개발?운용됐지만 이들은 대개 대기 재진입 마찰열에 의해 심하게 타버려 재사용이 불가능한 1회용이었다. 그만큼 드래곤은 우주선 건조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상당히 줄일 수 있어 경제성이 높다. 참고로 소유즈 우주선의 경우 건조에 보통 2년이 소요된다.
트렁크의 내용적은 14㎥로써 필요에 따라 34㎥의 트렁크를 장착, 더 많은 화물운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드래곤은 또 캡슐에 장착된 12~18개의 드레이코 추진기를 통해 피칭, 요잉, 롤링 등을 펼치며 자세를 제어한다. 추진기들이 중복 배치돼 있어 18개 중 2개 정도는 작동이 멈춰도 원활한 제어가 이뤄진다는 게 스페이스X의 설명이다.
노즈콘 (nose cone) - 원추형 모양의 로켓?항공기 등의 앞부분.
용의 아버지
스페이스X의 창립자 엘론 머스크가 지난 6월 13일 드래곤의 성공적 임무수행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ISS와 도킹, 520㎏의 물자 전달
특히 현재의 드래곤은 임무 종료 후 지구로 귀환할 때 아폴로 우주선처럼 태평양에 착수해 선박에 의해 회수되는 시스템이지만 스페이스X는 향후 드래곤에 전개식 착륙장치와 8개의 슈퍼 드레이코 추진기를 채용, 육상 착륙 기능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의 드래곤 활용도가 단순히 ISS로의 물자와 인력 수송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스페이스X는 중장기적으로 드래곤을 달, 화성 등 외계행성 유인탐사에 투입하고자 추가적인 기술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드래곤을 우주로 데려다줄 발사체는 팰콘 9호가 쓰인다. 이 또한 스페이스X가 개발한 것으로 최초의 상업용 민간 로켓이다.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재사용도 가능한 이 로켓은 지난 2010년 6월 테스트용 드래곤 캡슐을 짊어지고 첫 실증비행에 성공하며 세상의 주목을 한껏 받은 바 있다. 당시 연구팀은 드래곤 캡슐에 성능검증 유닛을 장착, 발사과정에서 각종 하부시스템들의 성능을 검증하고 공기역학 데이터를 측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22일 NASA는 미 연방항공청(FAA)이 드래곤 캡슐에 지구대기권 재돌입 면허를 부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민간 우주선으로서는 처음 받는 면허였다. 같은 해 12월 COTS 제1회 시범 비행에서는 무인 상태의 드래곤을 팰콘 9호에 실어 우주로 발사한 뒤 귀환하는 실험에 성공,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스페이스X는 드래곤과 팰콘 9호 로켓을 3개월에 하나씩 생산할 능력을 갖췄다.
이윽고 지난 5월 22일 오전 3시34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미 공군기지에서 드래곤은 팰콘 9호와 결착된 채 역사적인 발사에 성공했다. 우주에서 발사체와 분리된 드래곤은 궤도상에 올라 항법체계와 임무취소 절차 등을 시험하고 25일 ISS에 접근, MD 로보틱스가 개발한 로봇 팔의 도움을 받아 한국시간으로 오전 1시2분경 안전하게 도킹했다.
당시 드래곤에는 ISS의 우주비행사들에게 전달할 음식과 물, 실험도구 등 520㎏의 화물이 실려 있었으며 낡은 실험장비 등 660㎏의 화물을 되 싣고 31일 오전 11시42분(미국 동부시간 기준) 멕시코 북서부 마하칼리포르니아주에서 서쪽으로 약 900㎞ 떨어진 태평양 해상에 착수, 회수됐다.
이로써 민간 우주선의 발사와 ISS 도킹, 물자 전달, 지구 귀환에 이르는 모든 과정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료됐다. 민간우주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용의 승천이 이뤄진 것이다.
드래곤의 형제들
이번에 발사된 실용형 드래곤은 무인 버전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스페이스X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ISS로의 인력 수송, 그리고 더 나아가 화성탐사에까지 대비해 다양한 형제 모델들을 준비해 놓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 모델은 ISS에 최대 30일간 도킹해 있을 수 있고, 캡슐에 약 3.3톤 6.8㎥의 화물을 여압 상태로 실어 ISS에 전달 가능하다. 지구로 돌아올 때도 2.5톤의 화물을 ISS에서 회수해 가져올 수 있다. 또한 트렁크 부분에는 14㎥ 부피의 저장소에 비여압 상태의 화물을 실을 수 있으며, 2.6톤의 쓰레기를 회수해 지구 재돌입 시 마찰열로 소각시켜 버릴 수 있다.
인력 수송을 위한 드래곤 라이더 버전은 최대 7명의 우주비행사, 또는 그 이하 숫자의 우주비행사와 화물을 수송하는 게 목적이다. NASA 도킹 시스템을 사용, 완전 자동으로 ISS에 도킹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수동 도킹도 가능하다. 기존의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과 마찬가지로 ISS에 180~210일간 도킹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드래곤 라이더는 비상 탈출 시스템으로 기존에 다른 유인우주선들이 사용하던 견인식 분리형 타워 방식보다 발전된 통합형 추진식 발사 시스템을 사용한다. 때문에 비상시 탈출한 승무원들이 바로 궤도로 나갈 수 있으며, 단분리 과정이 없어 안전성이 높다. 또 탈출용 엔진을 지상 정밀착륙용 엔진으로 재사용할 수 있다. 해상 착수에 대비해 감속 낙하산이 구비돼 있음은 물론이다.
올 5월 18일 NASA의 발표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드래곤 라이더의 발사 비용을 7인 탑승 기준 탑승자 1인당 1억4,000만~2억 달러로 잡고 있다. 소유즈 우주선의 탑승자 1인당 발사비용이 6,300만 달러인 것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그러나 드래곤 라이더는 재사용이 가능하고, 사람을 3명밖에 태울 수 없는 소유즈에 비해 수송능력도 월등하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 고개를 조아릴 필요가 전혀 없는 미국산 우주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감내할만한 수준이다.
스페이스X는 드래곤의 우주 실험실 버전인 '드래곤 랩'도 제안하고 있다. NASA나 ISS에서의 운용을 전제로 하지 않는 무인운용 및 재사용이 가능한 모델이다.
자체 동력과 자가발전 능력, 내부 환경 제어, 항공전자장비, 통신장비, 열 보호장비, 비행제어 소프트웨어, 유도 및 항법장치, 대기권 재돌입 및 하강·착지·회수를 담당하는 하부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사실상 모든 과학 임무를 무인 상태에서 해낸다는 설명이다. 스페이스X는 오는 2014년과 2015년에 한 차례씩 드래곤 랩을 발사한다는 방침이다.
민간우주기업 전성시대
그런가 하면 화성탐사가 주목적인 '레드 드래곤(Red Dragon)'도 있다. 이 모델은 팰콘 9호의 사이즈업 버전인 '팰콘 헤비'를 발사체로 운용하는 저가형 화성 착륙선이다. 오는 2018년 발사 예정인 NASA 디스커버리 임무를 위해 제안됐다. 모든 것이 스페이스X의 생각대로 진행되면 레드 드래곤은 화성에 착륙해 과거 또는 현존 생명체의 생물학적 징후를 탐사하게 된다. 자체 공기 저항이 심한데다 역분사 추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낙하산이 없이도 1톤의 화물을 싣고 화성 표면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주장이다.
올해 9월 24일 드래곤은 다시 한번 ISS를 향해 창공을 가를 예정이다. 이후 2015년까지 총 12차례의 임무가 예정돼 있다. 국가가 아닌, 민간 우주선이 ISS에 물자와 인원을 수송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우주개발에 나선 민간 우주선은 드래곤 하나 뿐이 아니다. 보잉, 블루 오리진, 시에라 네바다, ATK 등 NASA와 협력 중인 7개사 외에도 다양한 민간업체들이 우주선을 개발해 우주 공략을 노리고 있다.
향후 이들 모두가 실용화된다면 우주 개발에도 시장 논리가 적용되고, 가격 경쟁도 일어날 것이다. 이때는 NASA를 비롯한 각 국가의 우주기구들은 민간기업에 지구저궤도 임무 등 비용과 난이도가 낮은 우주개발을 위임하는 한편 더 먼 우주를 타깃으로 한차원 힘들고 어려운 우주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민간기업들의 잇단 등장은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과 우주 사이의 거리도 줄어줄 수 있다. 금세기가 끝나기 전 우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관광상품이 등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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