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 서양의학에 비해 과학적 근거가 취약한 한의학의 우수성을 입증해내는데 주력하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또한 최 원장은 이러한 과학적·체계적인 연구는 곧 국제표준 획득으로 이어져 한의학의 품질과 신뢰도가 다시 한번 향상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Q. 최근 하버드대학에서의 강연이 화제가 된바 있습니다.
이번 한의학 특강은 미국 하버드 의대의 대표적 암센터인 다나-파버 암 연구소에 속한 '레너 드 자킴 통합치료센터(ZCIT)'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ZCIT는 현재 암환자의 증상 완화와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침술과 요가, 명상, 한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등 보완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연을 계기로 향후 한의학 분야에서 한의학연구원과 하버드대학 간의 구체적 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얼마 전 한의학연구원이 ISCMR 아시아 지역 커뮤니티 주관기관에도 선정됐는데.
2004년 설립된 국제보완의학회(ISCMR)는 전통 의학(보완대체의학)과 관련해 최근 북미, 유럽 등을 중심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 분야 세계 최대 학회 중 하나입니다. 사실 중국 주도의 국제적인 학회나 커뮤니티는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것은 부족한 실정인데 한의학연구원의 주관기관 선정을 통해 국내 연구자들을 포함, 동북아 국가들의 연구자 간 학술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는 9월 17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실무 회의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Q. 한의학의 과학화와 표준화에 주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한의학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효능이 입증된 의학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국내에 서양의학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한의학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의학이 과연 믿을만한지를 말입니다.
이렇듯 제기된 한의학의 의학적 신뢰성을 인정받으려면 전 세계 공통언어를 사용해야합니다. 그 언어가 바로 '현대 과학'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의학의 우수성을 현대 과학이라는 언어로 설명하고, 입증하는 과학화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과학화가 바탕이 돼야만 한의학의 표준화와 산업화, 세계화도 가능합니다. 최근 천연물 신약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확산되는 등 2050년 전 세계 전통의학 시장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5,000조원 규모로 형성될 전망입니다. 이런 거대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면 표준화가 필수입니다. 자국의 표준이 국제표준이 되면 현재의 인프라와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산업적 장점이 큽니 다. 따라서 향후 한의학이 중국의 중의학(中醫 學)과 일본의 한방의학(漢方醫學)을 능가하는 많은 국제표준 획득에 성공할수록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도 커질 수 있습니다.
Q. 중의학, 한방의학과 비교해 한의학이 지닌 강점은 무엇인지요?
한의학의 뿌리는 고대 중국대륙을 포함한 동아시아 의학입니다. 고대 중국의 영역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해도 중의학은 한국, 일본 뿐만 아니라 베트남, 티베트 등 아시아권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의학은 조선시대 이후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 땅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鄕藥)이 강조됐으며 광해군 시절에는 기존 중국 의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집대성한 동의보감이 편찬된 바 있습니다. 또한 조선말기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주창되는 등 독창적 이론체계를 갖춘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의학이 됩니다.
이런 한의학은 이론과 임상이 전통적 동양 철학과 전통의학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한때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유불선의 전통이 비교적 잘 보존·계승됐고, 한의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덕분입니다. 반면 일본은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제도적으로 한의사 제도가 사라졌고 중국은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유물론적 입장에서 전통의학이 실용주의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덧붙여 우리나라는 한의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 우수한 인력이 지속적으로 충원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됩니다.
유불선 (儒佛仙) - 유교(儒敎), 불교(佛敎), 선교(仙敎)를 아울러 이르는 말.
Q. 3국의 국제표준 경쟁이 치열할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세계 전통의학 시장 선점을 목표로 국가차원에서 중의학의 세계화, 표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47억 위안(약 7,700억원)을 중의학에 투자했고, 얼마 전 대전에서 개최된 국제표준화기구(ISO) TC249 3차 총회에도 53명이라는 최대 규모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중의학의 국제 표준화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일본의 경우는 매출규모가 1조원이 넘는 세계적 한방제제 생산기업 쯔무라 제약 등 대형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을 주도하면서 한약제제 생산과 고품질 한약 개발을 통해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나가는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이에 맞서 우리나라도 국제표준 확보를 위해 정부와 한의학연구원, 학계, 산업계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다양한 용구와 의료기기들에 대한 체계적 표준 개발과 국제표준 획득을 위해 다각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Q. ISO 3차 총회에서는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ISO TC249는 전통의학 분야 국제표준 제정을 위한 ISO의 전문 협의체로서 협의체 회원국들의 합의를 통해 전통의학 분야의 국제표준 제정이 이뤄지는 중요한 회의입니다. 그만큼 각국의 자존심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이번 3차 총회에서 중국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고려인삼을 겨냥, 인삼 종자 및 종묘의 국제표준 제정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 공세를 취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24건의 국제표준 중 우리가 제안한 7건이 관철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전침기, 설진기, 피내침, 이침, 뜸, 약탕기, 맥진기 등이 그것으로 피내침과 이침을 제외한 5건은 한의학연구원이 제안한 것입니다.
이중 맥진기는 환자의 맥진, 혈압, 혈액순환 상태 등 심혈관계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장비로 세계시장 규모가 약 4조원에 달하는 혈압계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침, 뜸, 약탕기 등 한방 의료기기의 국제표준 채택으로 국내기업들은 제조공정의 변경 없이 관련제품의 수출이 가능해졌습니다.
Q. 기술위원회의 명칭을 놓고도 격론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기술위원회의 명칭은 한·중·일 전통의학계의 자존심이 걸린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어요. 3차 회의에서 중국은 침술, 뜸, 한약 등의 원조가 중의학이니 만큼 현재의 '전통중 의학' 명칭이 합당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한국과 일본은 한의학과 한방의학이 수백년간 자국 내에서 독자 발전해왔음을 들어 '전통의학' 또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으로의 개정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남아프리가공화국에서 열릴 차기총회로 안건이 넘어간 상황입니다.
Q. 표준화와 관련해 최근 가동에 돌입한 한의기술표준센터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지난 5월 한의계의 숙원 사업이자 연구원의 중점 추진사항이었던 한의기술표준센터가 준공됐습니다. 지상 3층 규모의 센터는 현대과학 기반에서 한의학 과학화와 객관화, 한약재의 규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 한방 의료기기 관련 표준 확보 등 한의학 분야의 다양한 표준 확보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표준화는 한의기술의 신뢰성과 재현성, 효과성, 품질 수준의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향후 센터는 국제표준 확보를 위한 전초기지 역할도 함께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한의학연구원의 올해 중점 추진 사항이 있다면.
2012년은 한의학연구원에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먼저 한의기술표준센터의 준공을 계기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국가적 이익과 한의계의 현안인 국제표준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연구원은 연구성과가 좋아야 합니다. 오는 8월이면 취임 1년을 맞게 되는 데 지난 1년간 연구원에 대한 리셋을 마쳤고,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연구성과 창출을 위해 올인할 계획입니다. 미래 선도형 한의치료원천 기술 개발과 국가 어젠다 해결형 한약제제 핵심 기술 개발, 그리고 한의지식정보 인프라 구축이라는 각 분야별 추진 계획에 따라 진행사항을 점검할 것입니다. 덧붙여 취임이후 추진하고 있는 미병, 어혈, 신동의보감 사업 등에 대해 서도 연구기반 확보에 나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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