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직경 2m의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바라본다면 인공위성의 모양을 식별할 수 있다. 국내 연구팀이 이 같은 직경 2m급 천체·우주용 망원경의 핵심 부품인 대구경 광학거울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
일반적으로 인공위성에 탑재되는 고해상도 카메라의 기본원리는 디지털 카메라와 유사하다. 하지만 성능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지상 200~300 ㎞ 상공에서 수십㎢ 이상의 넓은 범위를 고해상도로 촬영해야 하니 말이다.
이런 인공위성용 카메라의 제작에는 직경 2m급 대구경 광학거울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디지털 카메라처럼 직접 렌즈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공위성 대부분은 천문대의 천체관측용 망원경과 마찬가지로 거울에 반사된 영상을 한 지점으로 모아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피사체를 촬영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다.
이렇게 카메라에 2m급 이상의 대구경 광학 거울을 장착하면 가로, 세로 10㎠의 공간이 하나의 점(픽셀)으로 표시되는 해상도 10㎝급 영상 촬영이 가능해진다. 이는 지상에 있는 차량의 번호판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운용 중인 천체망원경 가운데 가장 큰 광학거울을 지닌 것은 보현산 천문대의 1.8m급에 불과하다. 2006년 발사된 아리랑 2호에는 0.7m급 광학거울이, 올 5월 발사돼 해상도 70㎝급 위성영상을 보내오고 있는 아리랑 3호의 광학거울도 0.9m 정도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8m급 광학거울 천체 망원경으로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구를 시 간당 7바퀴 가량이나 공전하고 있는 인공위성의 모양을 정확히 구별할 수 없다. 단순히 인공위성의 존재 유무를 넘어 어느 나라가 운용하는 어떤 목적의 위성인지 정체를 파악하고 움직임을 관찰하려면 직경이 광학거울 2m는 돼야 한다.
2m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2m급 대구경 광학거울 제작 능력을 확보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극소수의 우주선진국들 뿐이다. 또한 군사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전략물자로 분류, 타국으로의 기술이전이나 수출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100% 자동 가공 시스템
그렇다면 우리나라에게 2m급 광학거울은 요원한 꿈일까. 그렇지 않다. 국내 연구팀이 최근 이와 관련한 상용 제작기술을 확보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주광학센터의 양호순 박사팀. 양 박사팀은 이미 2m급 연마기와 8m 높이의 측정탑, 광학 박막 증착기로 구성된 가공시설 구축을 완료하고 제품 생산에 나선 상태다. 양 박사는 "지상에서와 달리 우주에서는 중력이 사라진다"며 "우주 광학 망원경 개발을 위해서는 무중력 상태를 구현해야하는데 이것이 기술개발의 최대 난제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2m급 대구경 광학거울 제작 기술 개발에는 표준연이 보유한 정밀 측정기술이 큰 몫을 했다. 사실 표준연의 핵심 연구 분야는 시간, 힘, 질량, 길이 등을 정밀 측정하여 표준을 찾아 내는 것이다. 1초나 1m라는 단위는 시계나 측정자만으로도 측정할 수 있지만 각종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이보다 정밀한 측정 단위가 필요해 표준연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바로 이 초정밀 측정기술을 토대로 광학거울 표면의 정밀도와 최적의 비구면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것이 2m 광학거울 제작기술 확보의 원천이 됐다.
양 박사는 "대형 광학 가공동의 설비는 직경 1~2m급 광학거울이 요구되는 국내 천체망 원경 수요를 독자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특히 광학 박막 증착시설은 국내 광학 코팅장비 중 가장 무거운 유리에 가장 정밀한 코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 박사는 또 "직경 2m급 광학거울의 가공면적은 1m급의 4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며 "이 때문에 사람의 손이 전체 영역에 미치기 어려운 만큼 100% 자동장치로 가공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시설에서 생산된 2m급 광학거울을 장착한 인공위성 카메라나 천체망 원경들은 해상도 0.1m급 이하의 초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다.
광학 박막 증착기 가공된 거울면의 반사율 향상을 위해 금속 박막을 코팅하는 장치. 내부를 고 진공 상태로 유지, 금속입자가 공기분자와의 충돌 없이 거울면에 깨끗하게 코팅된다.
비구면 (非球面) 구면이나 평면이 아닌 모든 곡면. 비구면 광학거울은 유입되는 빛을 한 점으로 모아주는 능력이 탁월해 고화질 이미지 촬영에 효과적이다.
개발에 쓴 접착제 가격만 2억원
일반적으로 광학거울은 고강도 유리나 세라믹 재료의 표면을 15나노미터(㎚)의 정밀도로 깎아낸 뒤 금속 박막 코팅을 거쳐 거울 같은 표면을 구현해야 한다. 특히 일반 거울처럼 평면 형태가 아니라 거울로 들어오는 빛을 한 점으로 반사시킬 수 있도록 위성통신용 접시안테나처럼 비구면 형태로의 정밀 가공이 필요하다. 완전한 구면 거울은 영상이 닿는 부분의 초점이 달라져 영상이 왜곡되지만 비구면은 중심부와 외곽의 초점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이미지의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양 박사는 "1m급 대구경 광학거울을 제조할 때는 우주에서의 활용성을 고려, 경량화 패턴 설계를 한다"며 "거울을 가공한 후 뒷면의 중량을 줄인 다음 앞면의 가공 구조물 접착, 시스템 환경시험 등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중량이 600㎏ 이상인 직경 2m급 비구면 거울은 이 같은 가공과 측정이 수백 번 이상 이뤄진다.
대개 가공 공정은 보통의 공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진행되므로 정밀한 측정을 위해 거울의 가공은 별도의 측정실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가공이 끝난 후에 광학 박막 증착기가 있는 장소로 이동시켜 금속코팅을 실시, 반사율을 높인다. 이때 인공위성용 광학거울에는 금속 코팅 위에 산화 및 오염방지를 위한 보호막을 추가로 입힌다. 천체망원경은 거울의 코팅이 오염되면 벗겨낸 뒤 다시 입히면 되지만 우주에 나가있는 인공위성용은 재코팅 작업이 불가능 해 이중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하나의 광학거울이 완성되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 양 박사는 "대형 광학거울 제조를 위한 거울과 금속구조물 결합에는 공업용 접착제가 사용된다"며 "거울의 표면처리, 접착제를 붙일 때의 환경 등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기 위해 약 2년 동안 2억원 이상의 접착제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광학거울은 육중한 중량과 몸집을 자랑하는지라 작업 과정에서 자주 이동하면 예민한 거울면에 손상이 생길 개연성이 있다. 이때는 자칫 수십억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직경 1m급 대구경 광학거울이 소재 비용만 약 2억원, 금속 구조물과 결합시킨 최종 제품은 무려 30억원을 호가하는 탓이다.
이에 연구팀은 이런 사태를 원천 봉쇄하고자 직경 2m급 연마기, 형상 측정 장비, 광학 박막 증착기, 광학계 조립 및 성능 평가 장치 등을 모두 한곳에 구비해 놓았다. 이동거리를 최소 화함으로써 안전하고 신속한 제작을 꾀하기 위함이다.
양 박사는 "현재 연간 1m급 대구경 광학거울 3개를 제작·공급하고 있다"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지상 시험 데모용, 지상 시험 망원경 등에 탑재돼 있다"고 말했다.
GMT 프로젝트
연구팀은 이 대구경 광학거울 기술을 활용해 한국천문연구원과 공동으로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 프로젝트에 참여할 계획이다. GMT 프로젝트는 미국 카네기 천문대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국제 컨소시엄으로 오는 2018년 칠레에 직경 25m급 초대형 천체망원경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천문연구원은 이 프로젝트에 총 740억원의 분담금을 지불하고 10%의 지분을 확보, 연간 30일의 관측일수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25m급 천체망원경의 경우 25m 크기의 광학거울 제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8.4m급 거울 7장을 원형으로 배열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의 제작에 표준연팀이 공동참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양 박사는 "GMT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광학 가동 능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대형 광학거울의 해외수출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향후 광(光)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팀은 0.8m급 우주용 광학망원경의 국산화를 위해 항우연과 공동 연구에 착수한 상태다. 이를 통해 오는 2014년 발사 예정인 아리랑 3A호에 표준연에서 가공·조립한 IR 광학계가 탑재될 예정이다.
양 박사는 "아리랑 3A호에 쓰일 고해상도 광학 탑재체는 첫 번째 국산화 사례가 될 것"이라며 "향후 고해상도 위성 카메라용 비구면 광학 거울, 지상용 대형 천체 망원경, 인공위성 추적용 망원경, 반도체 및 평판디스플레이용 노광기 등 광학부품의 국산화 실현에 주력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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