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최고 속도가 다른 참가차량들은 총 4개 그룹으로 구분돼 경주를 벌인다. 이중 가장 빠른 차량들은 세간에 잘 알려진 데로 24시간 동안 밤낮 없이 트랙을 돌며 누가 더 긴 거리를 주행했는지로 자웅을 가리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목적의 4개 종목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참가차량들의 선두는 이 대회를 위해 특별 제작된 전용 레이싱카들의 차지였다. 이들은 최대 시속이 335㎞를 넘나드는 괴물이다. 그리고 페라리나 애스턴 마틴, 포르쉐 등의 상용모델을 경주용으로 개조한 일명 GT 카들이 이들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형국이다.
그런데 28번째로 출발한 검은색 차량 한 대는 두 부류 중 어디에서 속하지 않았다. '델타윙(DeltaWing)'이라는 명칭의 이 차량은 차체가 무척 날씬했고, 앞부분은 바늘처럼 뾰족한 모습이다. 수직꼬리날개가 뒤로 뻗어있어 레이싱카라기 보다는 미사일을 연상시키는 외관을 가졌다. 만일 델타윙의 속도와 연비가 개발자들이 주장한 만큼 나와 준다면 지난 100년간 이어진 레이싱카의 설계 관행에 대변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델타윙은 완전히 다른 차량입니다. 가족용 세단 엔진을 가지고도 시속 315㎞를 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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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24시는 새로 개발된 혁신적 자동차 기술의 시험대 역할을 해왔다. 올해 참가차량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상위 2대는 놀랍게도 모두 하이브리드카다. 아우디의 'R18 e-트론 콰트로'와 토요타의 'TS030 하이브리드'가 그 주인공. 이는 10여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두 차량도 텔타윙과 비교하면 그리 혁신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텔타윙은 독특한 외형 디자인에 힘입어 일반 가정용 세단에 들어간 엔진보다 조금 더 센 정도의 엔진을 가지고도 여타 레이싱카와 경쟁이 가능한 수준의 속도를 낸다. 설계자인 벤 보울비의 설명을 빌자면 기존 레이싱카와 동일한 속도를 내지만 중량, 엔진 출력, 연료 소비량, 공기저항은 모두 절반에 불과하다.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델타윙은 르망 24시에 출전한 어떤 차량과도 경쟁하고 있지 않다. 공식적으로도 55대의 차량들이 벌이는 경주에 성능시범을 보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56번째 선수가 된 실험 차량일 뿐이다.
델타윙 팀의 오늘 목표는 13.6㎞의 트랙을 3분 45초 내에 주파하는 것. 기록상으로는 이 목표에 성공하더라도 아우디나 토요타에 비해 20초나 느린 것이지만 사실 델타윙은 원래 이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터보차저 엔진을 풀가동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보선수 격인 델타윙이 정식 주자들보다 돋보이는 사태를 막기 위한 주최측의 요청으로 평균 주행속도를 시속 217㎞로 제한했다.
본연의 성능보다 목표치가 낮다보니 목표 속도에는 어렵지 않게 도달했다. 그러나 경주에서 끝까지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델타윙의 핵심 설계진 4명은 1년을 꼬박 매달려 설계를 완성했는데 차량의 모든 구성품은 '무'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게다가 르망 24시의 경주일은 델타윙이 첫 주행에 성공한지 4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엔지니어들은 경기 전날도 부품을 조립하느라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르망 24시에 출전하는 세계 최고의 팀들은 보통 경기일 이전에 24시간, 경우에 따라 36시간이나 쉬지 않고 주행시험을 해본다. 반면 델타윙은 참가 전까지의 주행시간을 모두 합쳐도 12시간이 안 된다. 메인스폰서이자 차량의 엔진을 공급한 닛산이 조립을 끝낸 델타윙의 처녀주행 성공 전 때까지 관련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과연 이렇게 급조(?)된 프로토타입 차량이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내구성 경주대회를 치르며 중도탈락하지 않고 버텨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닛산의 수석엔지니어 제리 하드캐슬은 이렇게 표현했다.
"르망 24시에 참가한 모든 팀들은 완주를 원합니다. 하지만 저는 델타윙이 2시간만 제대로 달려준다면 그 다음부터는 매 분, 매 초마다 미소를 지을 겁니다."
상황이 이랬던 만큼 아찔했던 순간도 많았다. 일례로 첫 차량 검증 세션에서 델타윙은 고속 회전 도중 트랙 사이드의 경계석을 타고 올라가 하늘로 점프했다. 그리고 무려 6m를 날아나서는 거칠게 떨어졌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차량의 자동 화재 진압시스템이 고장 났을 정도였다.
이것이 하나의 징조였던지 경기 시작 후 30여분이 지나며 첫 문제가 발발했다. 경기장 내 정비창에서 10여대의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엔지니어들이 델타윙의 실시간 주행 데이터를 확인하던 중 냉각수 과열을 감지한 것.
"이건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냥 주행을 계속 시키죠."
"아니에요. 이대로 놔두면 걷잡을 수 없이 과열될 겁니다. 지금 당장 멈춰 세워야 해요."
엔지니어들 사이에 몇 분간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차량을 피트인 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엔지니어들이 예정에 없던 피트인을 다급히 준비하는 동안 델타윙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열의 원인은 생각보다 쉽게 밝혀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비닐봉지가 라디에이터의 공기흡입구를 막고 있었다. 간단히 문제를 해결한 델타윙은 다시 굉음을 뿜어내며 트랙으로 달려 나갔다. 경기 종료까지는 아직 23시간이 남아 있었다.
피트인 (fit in) 레이싱 도중 경주차가 차량 정비, 타이어 교체, 연료 주입 등을 위해 트랙 외곽의 정비장소로 들어오는 것.
개봉박두
메인 스폰서인 닛산의 이름을 새긴 델타윙이 베일을 벗고 세상에 자신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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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레이싱카의 설계가 나타났다. 그때마다 차량의 외형은 물론 모터스포츠의 본질마저 바꿔 놓는 일대 혁신이 이뤄졌다.
1950년대의 혁신은 레이싱카의 엔진이 전방에서 후방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로써 구동축이 사라지고, 중량 배분이 최적화돼 조향능력이 향상됐다. 1960년대는 공기흐름을 이용, 다운포스를 높여 견인력과 회전 속도 증진에 도움이 되는 후방 날개가 채용됐고 1970년대는 차량 설계에 지면 효과 개념이 도입되며 차체 전방 하부에도 날개를 장착해 다운포스를 더욱 강화했다. 1980년대의 경우 경량 고강도 탄소섬유 차체가 모든 레이싱카의 기본이 됐다.
1990년대는 어땠을까. 공기역학 설계의 고도화와 함께 액추에이터 등을 이용해 능동적으로 진동을 억제해주는 액티스 서스펜션과 같은 전자식 시스템의 도입이 확대됐다. 다만 90년대의 혁신은 부작용도 유발했다. 차량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서 위험성이 함께 커진 것이다. 당대를 주름잡던 F1 레이싱 세계 챔피언 아일톤 세나가 1994년 3억명의 TV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에 사고로 숨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사고는 레이싱 대회의 경기규칙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빠르게, 빠르게를 외쳤던 것에서 벗어나 최고 속도를 제한하기 시작했고, 몇몇 전자시스템의 활용이 금지됐으며, 공기역학 효율도 일부러 낮췄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레이싱카의 설계학적 진보는 정체기를 겪고 있다. 모터스포츠의 정점에 서 있는 F1 머신을 비롯해 다수의 레이싱카 설계에 참여한 브라질의 설계엔지니어 리카르도 디빌라는 현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레이싱카들은 기존의 외모를 유지한 채, 내적인 발전에 주력하고 있어요. 제한된 성능 안에서 최적화된 상태를 구현하기 위한 거죠."
이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델타윙의 외관은 수십년간 등장한 차량 중 가장 혁신적이다. 델타윙의 공차 중량은 475㎏로 운전자와 연료를 탑재한 상태에서도 575㎏에 지나지 않는다. 르망 24시에 참가한 어지간한 프로토타입 모델의 절반 수준이다. 뾰족한 앞부분과 군더더기 없는 차체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해 300마력급 엔진으로 최대 시속 315㎞를 낸다.
이는 최근 등장한 레이싱카 중 호불호가 가장 분명히 갈리는 차량이기도 하다. 2010년 델타윙 개발 프로젝트가 처음 발표됐을 때 엔지니어들은 전방이 좁고, 앞 타이어의 폭이 4인치(10.1㎝)에 불과해 선회 성능이 떨어질 것이며 다운포스를 위한 전·후방 날개가 없어 고속 주행 시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매몰찬 의견을 피력했다.
미학적 측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델타윙을 좋아하는 팬들은 영화 배트맨의 배트모빌 혹은 SR-71 블랙버드 항공기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훼방꾼들은 끔찍이도 못생겼다며 '하늘을 나는 남근(男根)'이라 부르며 놀려댔다.
그러나 보울비와 그의 개발팀은 델타윙이야 말로 화석연료를 쓰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대를 맞아 팬과 스폰서를 잃고 있는 모터스포츠 업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줄 존재라고 믿는다. 미국 르망시리즈의 오너이자 델타윙 프로젝트의 투자자인 던컨 데이턴도 "신세대 모터스포츠 팬들의 꿈을 따라잡지 못하면 자동차 경주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20세기의 대다수 시간 동안 레이싱카 설계자들은 자신들이 인류의 자동차 기술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실제로 연료 분사시스템, 트윈 캠 엔진, 디 스크 브레이크, 안전벨트 같은 기술들이 레이싱을 통해 진화하고 다듬어져 모든 일반 차량으로 전파됐다. 하지만 기술 혁신 속도가 저하되면서 기술 이전의 속도도 더뎌지고 있다. 현재의 레이싱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스포츠로 여겨질 정도로 레이싱카와 일반 자동차의 연관성이 대폭 약화됐다.
데이턴의 바람대로 낮은 출력의 엔진을 가지고 엄청난 속도를 구현하는 델타윙이 둘 사이를 다시 이어줄 수 있을까. 물론 상용차가 델타윙의 외관을 그대로 이식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속도와 경제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이제껏 존재했던 그 어떤 차량보다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수는 있다.
다운포스 (down force) 차량을 지면 방향으로 내리누르는 힘. 차체의 형상, 후방 날개, 스포일러 등을 통해 증진시킬 수 있다.
지면 효과 (ground effect) 지면에 가까이 있는 자동차, 항공기 등이 지면의 간섭에 의해 받는 영향. 대개 양력(揚力), 즉 위로 떠오르려는 힘이 커진다.
계체량
엔지니어들이 델타윙을 트레일러에 싣고 정비창으로 향하고 있다. 그곳에서 주최측으로부터 정확한 크기와 중량 등을 측정 받는다.
"델타윙은 절반의 엔진 출력, 절반의 연료를 소비하면서도 관중들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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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윙을 설계한 영국 출신의 보울비는 16살 무렵 런던의 부모님 댁 작업실에서 BMW 미니 2대를 용접해 붙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다. 그는 직접 설계한 차량으로 경주에 참가했으며 영국의 세계적 레이싱카 섀시 기업 롤라자동차에서 10여년간 설계사로도 일했다.
그러던 2003년 보울비는 전직 레이서였던 칩 가나시의 지휘 아래 번영을 누리는 모터스포츠 제국에 합류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인디카, 스프린트컵, 데이토나 등의 레이싱 대회에서 가나시팀의 기술부장으로 일하며 능력을 발휘했지만 2008년 미국 모터사이클 그랑프리 대회에서 불현듯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라이더들이 시속 160㎞의 속도에서 모터사이클을 땅에 닿을 듯이 기울여 선회하는 모습에 프로 라이더의 기량과 용기에 새삼 감탄을 느낀 것이다.
이는 레이싱도 마찬가지지만 모터사이클과 달리 레이싱카는 레이서의 능력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전·후방 날개에 의한 막강한 다운포스가 눈에 보일 리 없는 관중들에게는 레이싱카가 마치 누구나 어려움 없이 운전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보울비는 이를 개선, 경기에 생동감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후방 날개도 아예 없애면 좋겠다고 여겼다. 이는 다운포스 구현에는 탁월하지만 엄청난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켜 차량들이 서로 가까이 붙지 못하도록 해 레이싱의 극적 요소를 반감시킨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문득 차량의 전방을 좁게 만들고, 앞바퀴를 하나만 채용한 삼륜 레이싱카를 개발하면 어떨지 상상했다. 항력과 중량은 대폭 줄어들 것이고, 레이서의 기량은 한층 세밀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코너링을 할 때는 더욱 거칠게 차량을 몰아붙일 수 있고, 차량 사이의 안전거리를 줄여 터프함도 배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델타 윙 플랫폼'이라고 명명된 델타윙의 삼각형 차체는 지상 속도기록 경신용 차량에는 흔한 디자인이다. 다만 그런 차량들은 오직 일직선으로 빨리 달리면 될 뿐 선회 능력은 전혀 필요가 없다. 보울비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혹시 고속 선회를 하면 하릴 없이 전복되지는 않을까.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할수록 그는 삼륜차가 지닌 설계학적 한계가 단순히 바퀴가 하나 적거나 바퀴의 배치를 잘못한데 있지 않음을 알아챘다. 최대 문제는 형편없이 높은 무게중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무선조종 자동차를 두 대 구입해 그중 한 대를 저중심 삼륜차로 개조, 집 주변에서 시험주행을 한 것.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륜차보다 선회 속도가 빨랐고, 전복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물 크기의 차량도 선회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이즈음 2012년 인디카 레이싱 대회에 참가할 차량을 선발하는 위원회가 조직되면서 가나 시는 보울비의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제작하는 자금을 지원했다. 인디카의 규칙상 삼륜차는 차량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좁아진 차량의 앞부분에 소형 바퀴 두 개를 부착키로 결정했다. 델타윙의 설계학적 이점과 안정적 선회 능력, 레이싱카로서의 자격을 모두 갖출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앞바퀴가 작아지자 차량 중량을 줄일 굵직굵직한 방법들이 속속 도출됐다. 작은 바퀴 덕분에 브레이크도, 서스펜션 구성품도, 차대도, 그리고 엔진과 기어박스도 소형화가 가능했다. 그 외에도 몸무게를 줄일 방법은 더 있었다. 계산기를 두들기던 보울비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평범한 4실린더 엔진으로도 충분히 레이싱에 나갈 만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그것이었다. 이에 그는 설계에 본격 착수했다.
그런데 인디카의 위원회는 레이싱카의 일반적 형상을 벗어난 델타윙을 선발하지 않았고, 가나시는 보울비의 프로그램을 중단시켜 버렸다. 결국 1년 뒤 보울비는 직접 델타윙을 제작하기 위해 회사를 떠난다.
"델타윙으로 떼돈 벌고자 했던 것은 아니에요. 그저 끝을 보고 싶었을 뿐이죠. 저는 사람들에게 멍청한 아이디어를 추종하는 바보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했어요."
보울비는 일단 자신의 발명품을 데뷔시킬 다른 무대를 물색했다. 르망24시가 안성맞춤이었다. 1923년 세계 최초의 24시간 경주를 펼친 이래 서부자동차클럽(ACO)이 주최하는 르망24시는 신기술 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대회에서는 수년 동안 속도, 경량화, 연비 등으로 차량의 열효율 지수를 측정해 우수한 차량에게 상을 수여해왔다. 좀 더 최근에는 '개라지 56' 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의해 혁신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차량은 55대로 제한된 공식 참가 차량 선정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성능시범 차원에서 경주 참가가 허용된다. 그래서 보울비는 델타윙 완성에 더욱 피치를 가했고, ACO는 그의 기대에 부응해 다수의 하이브리드카를 제치고 델타윙을 선택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니까 저희라도 해야죠. 그렇지 않나요?"
호불호
델타윙의 팬들은 외형이 영화 속 배트맨의 배트모빌을 닮았다고 말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남근을 연상시킨다며 존재만으로도 성희롱이라고 폄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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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윙이 르망 24시의 출발선을 떠난 지 2시간 쯤 지났을 때 드라이버인 마이클 크럼은 좌회전을 하며 가슴 철렁한 순간을 겪었다.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으며 기어를 저단으로 조작했는데 기어가 부드럽게 제어되지 않았던 것. 뒷바퀴가 순간적으로 멈추며 차량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크럼은 미끄러지는 쪽으로 신속히 방향을 틀어서 차체를 안정시키고는 안전하게 선회했지만 무전기로 기어박스의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는 분명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 기어박스는 델타윙만을 위해 제작된 수제품이었고, 자주 말썽을 일으키던 녀석이었다. 크럼은 신속히 피트인을 해서 수리를 받고, 트랙으로 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재차 피트인을 해야 했다.
엔지니어가 차량으로 몰려들어 이곳저곳을 점검하면서 공압식 변속기의 구동에 관여하는 솔레노이드 밸브가 망가졌음을 발견했다. 과열에 의한 것은 아니고 부품 결함 때문이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설계팀은 즉각 이를 해결해야 했다. 결국 설계팀의 잭 에킨이 전동톱을 가져와 차체의 일부를 절단, 차량 내부로 더 많은 공기가 유입돼 냉각효과를 높이도록 조치했다. 수리가 완료되기까지 30분이 소요됐지만 보울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 솔레노이드 밸브는 다른 회사에서 공급한 거예요. 결코 델타윙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크럼은 트랙에 진입하는 즉시 전속력을 냈다. 결승선 지점을 스쳐지나갈 때 그가 낸 속도는 시속 305㎞에 달했다. 이때까지 델타윙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우디와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카들보다 14바퀴나 뒤져 있었지만 이미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예상한 거리를 훌쩍 뛰어넘고도 여전히 트랙 위에서 굉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역사 속에 묻힐 뻔 했던 델타윙의 탄생은 온전히 보울비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어렵사리 ACO의 간택을 받은 그는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 두목 격은 니코틴 패치 특허를 보유한 돈 파노즈였다. 이후 미국 르망시리즈의 던컨 데이턴이 합류했고, 가나시도 투자 의사를 밝혔다. 그중에서도 81세의 댄 거니는 보울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투자자였다. 모터스포츠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올 아메리칸 레이서스(AAR)팀의 창립자인 그가 투자하면서 델타윙에 대한 대내외의 기술적·설계적 신뢰도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거니의 아들이자 현 AAR팀 경영주인 댄 저스틴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델타윙처럼 기존 통념을 벗어난 물건의 제작이야말로 AAR의 취향에 정확히 부응합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니까 저희라도 해야죠. 그렇지 않나요?"
이후 보울비와 에킨은 인디애나주, 마셜은 애틀랜타의 집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모였다. 그곳의 AAR의 창고에서 월화수목금금금의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럼에도 손이 모자라 전직 AAR 설계자 존 워드가 하루 7시간씩 설계를 도왔다.
"델타윙을 설계할 때 기존 레이싱카의 부품 구조도나 캐드(CAD) 설계도는 필요 없었어요. 컴퓨터가 도착했을 때 그 속은 텅 비어 있었죠."
F1 머신을 제외하면 현 레이싱카의 제작은 모터스포츠 협력업체들이 공급하는 부품에 의존한다. 델타윙에 맞는 부품을 생산하는 곳은 당연히 어디에도 없었다. 때문에 에킨은 고급 고카트에 쓰인 것과 유사한 공간절약형 조향시스템을 직접 설계했고, 서스펜션의 모든 부품도 맞춤 제작했다. 차량 전방은 모양이 너무나 혁신적이었던 탓에 부품 하나를 설계하고 제작하는데 한 달씩이나 걸렸다.
파이오니아
경기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는 델타윙 팀원들.
첫 부품을 설계한지 7개월이 흐른 올해 3월초. 르망24시 개막이 3개월 남은 시점에 델타윙은 역사적인 주행시험 준비를 마쳤다. 보울비 팀은 아직 외부 도장도차 하지 않은 델타윙을 가지고 LA 북쪽의 버튼윌로우 레이스웨이 파크를 찾았다. 부품을 납품했던 회사의 대표자들도 그 자리에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의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말 선회를 할 수 있을까?'
처녀 주행의 영광은 거니의 아들이자 유명 스포츠카 레이서인 알렉스에게 돌아갔다. 운전석에 오른 그는 엔진을 두어 번 꺼뜨리고 난 후에야 1단 기어로 트랙을 천천히 한 바퀴 천천히 도는데 성공했다. 출발장소로 돌아온 그를 보울비가 맞았다. 그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앞바퀴 서스펜션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핸들 조향능력이 저하되는 것이었다.
"조향은 어땠죠? 가볍게 돌아가던가요?"
"마음먹은 대로 정확히 반응해주던데요."
그 순간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 차가 제대로 돈데!"
주변에 모인 관계자들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날 LA에서는 알렉스 외에도 2명의 레이서가 델타윙을 테스트하며 조금씩 주행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보울비는 완성차메이커 닛산의 기술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닛산측 직원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기술 데이터들을 확보했다.
이윽고 르망24시 출전을 앞두고 닛산의 엠블럼을 붙인 델타윙이 일반에 공개됐다. 하지만 LA의 처녀주행 장소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델타윙의 진정한 데뷔는 3월 초였다. 거니의 책임설계사였던 피터 브록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마치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을 본 듯한 느낌이었지."
고카트 (GoKart) 유원지 같은 곳에서 일반인들이 놀이용으로 타는 단순한 구조의 1인승 경주차.
전용 주차장
델타윙의 피트에는 차량 모양에 맞춰 정차 위치가 그려져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항공기나 우주선 주차장으로 오인할 만하다.
몇몇 창의적 설계자들은 레이싱카의 최소 중량이나 최대 에너지 정도만 지정한 채 나머지는 모두 설계자의 재량에 맡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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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레이서 모토야마 사토시가 크럼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은 지 2시간 반이 지났다. 총 주행시간은 6시간으로 트랙 75바퀴를 주행했지만 델타윙의 질주본능은 멈출 줄 몰랐다. 이제는 야간경주를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곧 재난 같은 상황을 맞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선두권 차량들이 후미권 차량을 추월하면서 델타윙은 종종 아우디와 토요타의 차량 앞에서 서야 했다. 그러던 중 아우디 차량이 델타윙 뒤에서 달리던 포르쉐 차량을 앞지르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아우디의 뒤에는 선두 탈환을 노리는 토요타가 바짝 쫓아 붙고 있었다.
룸미러로 이들을 확인한 모토야마가 트랙 우측으로 길을 터주는 순간 옆을 지나던 토요타의 차량이 갑자기 우측으로 돌진하며 델타윙의 좌측 앞부분을 들이받는 사고가 터졌다.
300㎏ 이상 무거운 상대에게 받힌 델타윙은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트랙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풀밭을 미끄러지는 차량을 제어할 방법은 없었기에 델타윙은 결국 벽을 들이받고서야 멈춰 섰다. 정비창에 있던 설계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스크린에 나타난 이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르망 24시의 규정에 따르면 사고차량은 트랙 밖으로 나가야 하며, 반드시 운전자가 차량을 수리해야만 트랙에 다시 나설 수 있다. 하지만 모토야마는 공구도 없었고, 정비사도 아니었다. 게다가 영어 실력은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였다.
데뷔 무대
르망24시 출전을 위해 엔지니어들이 정비창 밖으로 델타윙을 끌어내고 있다.
팀 매니저인 필 베이커가 스쿠터를 타고 충돌 현장으로 다가와 피해를 살폈다. 수석 정비사인 릭 페리가 피트에서 무전으로 물었다. "필, 차의 상태는 어때요?"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손 쓸 길이 없어 보였다. 충돌 시의 충격으로 전방과 후방 서스펜션이 제자리를 이탈한 것이다. 정비창에서는 보울비와 동료들이 수리 계획을 짜느라 분주해졌고 에킨과 정비사들은 통역관 역할을 한 일본인 엔지니어를 통해 철망 울타리 너머의 모토야마에게 수리방법을 전달키로 했다.
모토야마는 한 시간 넘게 정비공의 임무를 수행했다. 조언에 따라 차체를 분리하고, 부품을 분해하고,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내 견인력을 높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언을 듣기 위해 울타리를 향하는 그의 발길도 잦아졌다.
수리가 차질을 빚을 때마다 정비창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고, 울타리 앞의 통역관이 무전으로 지시를 전달받아 모토야마에게 전했다. 놀랍게도 모토야마는 수동 차 동잠금장치(differential lock)의 설치에 성공했다. 이로써 델타윙은 왼쪽 뒷바퀴에 다시 동력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동을 걸고 차량을 움직여보니 간신히 옆으로 찔끔 거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조향시스템이 수리가 불가능할 만큼 심하게 망가진 탓이었다.
이쯤에서 경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 분명해지자 모토야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는 바커가 타고 온 스쿠터에 올랐고, 관중석에서는 위로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정비창의 분위기는 다소 오묘했다. 실망감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이런 식으로 끝이 나다니. 창피해."
"지금껏 우리가 보여준 것만으로도 오늘의 도전은 자긍심을 가져도 돼. 이게 끝이 아니잖아?"
출돌사고의 원인에 대한 논쟁은 없었다. 토요타측 레이서의 실수가 분명했다. 굳이 정상참작을 해주자면 레이싱카들은 본래 측면 시야가 극도로 제한돼 있는 데다 델타윙의 차체가 작아 위치 확인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정도다.
어쨌든 피트로 돌아온 모토야마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보울비가 그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보울비는 다시 답했다.
"더 튼튼하게 만들지 못한 내가 더 미안한걸."
긴급 구조대
델타윙이 제멋대로 끼어든 토요타의 차량과 충돌사고를 일으켜 트랙에서 이탈하자, 엔지니어들이 모여 비상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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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델타윙을 르망 24시에 출전시키기 위해 약 1,0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델타윙을 양산해서 여러 레이싱팀에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입할 팀이 있기나 한 걸까.
델타윙 투자자인 돈 파노즈는 주지하다시피 레이싱 대회의 주최자다. 다만 델타윙이 기존의 어떤 자동차 경주대회의 규정에도 맞지 않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따라서 델타윙이 현재의 레이싱카들과 경기장에 나서려면 누군가 규정을 고쳐야 한다.
운이 좋다면 몇몇 창의적 설계자들이 지난 수년간 부르짖어 왔던 바를 대회 주최측이 수용해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규정은 모두 폐기하고, 최소 중량이나 최대 에너지 정도만 지정한 채 나머지는 모두 설계자의 재량에 맡기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금의 분위기로서는 사실상 그처럼 혁신적인 제안을 들어줄 리는 만무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델타윙이 그토록 강렬한 여운을 오랜 시간 남긴 것은 사고의 틀을 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는 르망 24시와 F1에 참가하려면 틀을 깰 수가 없다. 규정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규정을 바꾸면 안 되는 걸까. 이들은 어떤 이유로 혁신을 허용하지 못한다는 걸까. 도대체 왜 절반의 출력과 절반의 연료를 소비하며 기존 레이싱카와 동등한 속도를 내면 안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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