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파퓰러사이언스는 99호의 성공비결로 경량 프레임과 340마력급 엔진, 그리고 저중심 설계를 꼽았다.
특히 이례적으로 서스펜션의 높이를 앞바퀴 45.7㎝, 뒷바퀴 50.8㎝로 낮게 설계함으로써 폭이 좁은 타이어를 장착하고도 고속 회전 시 전복되지 않는다.
99호는 1954년을 끝으로 레이싱 트랙을 떠났지만 1962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의 명예의 전당에 전시돼 있다.
벨랑제의 경우 99호가 은퇴한 2년 뒤인 1956년 레이싱 업계를 떠났으며 1977년 사망했다.
홈메이드 레이싱카
1952년 5월호에는 전미 조립자동차 경주대회(Soap Box Derby)의 일환으로 11~15세의 학생들이 펼친 레이싱 기사도 실렸다.
이 대회의 규정은 엄격했다. 차량 제작비가 10달러 이하여야 하고 참가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차량을 제작해야만 했다. 우승은 드라이아이스로 타이어를 냉각시킨 학생의 차지였다.
타이어 고무가 단단해지면 주행 중 지면과의 접촉면이 줄고, 이는 마찰력 저하로 이어져 경쟁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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