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 과학칼럼니스트 noisepark510@hanmail.net
심령학에서는 이런 능력을 염력(念力)이라 칭한다. 정신이 물체나 사람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 즉 '정신동력'이라 할 수 있다.
염력을 이야기할 때 맨 처음 떠오르는 이는 한때 유명세를 떨쳤던 유리 겔라다. 그는 1970년대부터 40여년간 세계 각국을 누비며 숟가락을 구부리고, 고장 난 시계를 움직이게 하면서 당대 최고의 염력자이자 초능력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전직 마술사 출신의 초능력 사냥꾼 제임스 랜디에 의해 눈속임이 밝혀진 이래 실수를 거듭하면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해 무대를 떠났다. 얼마 전 개봉했던 심령술사와 과학자의 대결을 다룬 영화 '레드라이트'의 모티브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랜디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영화에서도 숟가락 구부리기, 손대지 않고 물건 옮기기 등 다양한 염력들이 등장한다. 다만 한 가지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염력이 하나있다. 오직 생각만으로 필름을 감광시켜 특정 상(像)을 맺히게 하는 염사(thoughtography)가 그것이다.
심령사진의 핵심은 염력?
몇 달 전 '제주도 심령사진'이라는 검색어가 포털 상위에 랭크되는 일이 있었다.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내용 때문이었다. 내용인 즉, 한 남성이 제주도의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가장자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이 함께 찍혔다는 것이다. 그가 공개한 사진에는 창백한 얼굴에 긴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의 얼굴이 흐릿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위치한 곳은 수풀이 무성한 절벽. 귀신이라면 모를까, 사람이 도무지 서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제작진이 전문가에게 사진 분석을 의뢰하자 "합성이나 조작으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결과, 20여년 전 한 일본 관광객이 성산일출봉에서 분화구를 돌다가 추락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가족을 수소문해 확인해 보니 사망한 일본인은 사진에 찍힌 미지의 인물과 많은 부분 닮아 있었다.
인간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혼령을 카메라가 잡아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초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심령사진을 염력에 의해 만들어진 염사의 일종으로 본다. 사전적 의미의 염사는 특정한 상에 정신을 모아 카메라나 필름, 건판 등에 직접 감광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염력 외에는 어떤 물리적 수단도 동원되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거나 노출을 조절하지 않고 생각으로 이미지를 촬영(?)하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염사 능력자는 피사체의 모습을 실제 그대로 나타낼 수도,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물건은 물론 산 사람이나 죽은 이의 영혼도 촬영이 가능하다. 죽은 이의 영혼을 사진에 담아내는 경우는 물건 등에 비해 한층 뛰어난 염력을 요한다고 한다.
염사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9세기 중엽에 있었다. 이후 관련 연구가 꾸준히 이뤄졌다. 특히 일본에서의 연구가 가장 활발했는데 1911년 염사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일본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의 후쿠라이 도모이치 교수가 이 분야의 대표적 권위자로 꼽힌다. 최면심리학자인 그는 투시력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한 여성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던 중 우연히 밀봉된 건판을 꺼냈고, 그 순간 건판이 변형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여성과 함께 각종 실험에 돌입했다. 주로 했던 실험은 도모이치 교수의 지시를 받은 여성이 '심(心)'이나 '천(天)' 같은 글자를 마음속에 새긴 다음 건판에 형상화시키는 형태였다. 놀랍게도 실험은 성공했고, 이후 도모이치 교수는 여러 명의 염사 능력자를 추가 발굴했다. 그중 한명은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불과 몇 분만에 특정 인물의 얼굴을 염사해내기도 했다.
미스터리 신봉자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사건은 한 일본인 염사 능력자가 달의 이면을 염사해낸 일이다. 그것도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30여 년 전에 말이다. 영국심령학회가 아폴로 우주선에서 촬영한 실제 달의 이면 사진과 염사 사진을 대조, 거의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일련의 사례들은 공신력 있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마치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에 가깝다. 때문에 도모이치 교수가 발굴한 염사 능력자들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였는지, 세간에 전해진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등은 확인이 쉽지 않다.
염사 능력자의 다수는 여성 혹은 어린 아이며 일정 순간에 이르면 저절로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영파(靈波)가 일치하는 순간
지금껏 가장 확실한 염사 능력을 보여 준 사람은 미국인 테드 세리오스다. 1963년 미국의 정신의학자 줄 아이젠버드 박사가 발굴한 그는 수많은 관중 앞에서 철저한 통제를 받으며 염사를 선보였다. 당시 세리오스는 자동차와 같은 물건을 비롯해 사람, 건물, 풍경 등 각양각색의 상을 염사로 찍어냈다.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 어느 순간 능력을 소진한 후 더 이상은 염사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각국에서 염사 능력자의 존재가 심심찮게 확인된다. 그렇지만 사실 염사는 그 어떤 종류의 초능력, 혹은 심령술보다 희귀한 능력이다. 그만큼 접하기도, 능력자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또한 정확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염사 능력자의 다수는 여성 혹은 어린아이며 일정 순간에 이르면 저절로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초심리학계에서는 심령사진을 모두 염사 능력자들의 작품으로 본다. 조작된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심령사진에 대한 학술적 자료를 찾는 것 역시 쉽지는 않지만 '심령의 세계', '영혼과 전생 이야기' 등의 저서를 펴낸 국내 심령학자 안동민 박사는 심령술을 다룬 책 '업장소멸'에 이와 관련해 짤막한 설명을 해놓았다. 그는 염사 능력자가 찍은 사진 속에 지박령이나 부유령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심령사진이라고 밝혔다.
"지박령은 자살을 하거나 살해를 당한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부유령은 죽은 장소와는 관계없이 졸업식이나 수학여행 사진 같은 데 잘 나타납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안 박사는 "사진을 촬영한 사람과 망자와의 영파(靈波)가 일치된 탓이 아닌가 한다"고 조심스레 추정한다. 그렇다. 안 박사의 설명대로라면 비단 염사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망자들과 영파, 즉 영혼의 파장이 우연히 일치할 경우 귀신을 모습을 사진에 담게 될 수 있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촬영한 많은 심령사진 속 영혼이 촬영자의 가족이나 친구처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아닌 낯선 인물인 것도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우연히 찍힌 심령사진이든, 의도적인 염사이든 그 기본 원리는 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지하듯 이들 사진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 사실 사진 기술이 워낙 정교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귀신 이미지 정도는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합성할 수 있다.
이는 필름카메라나 100여전 전의 롤 필름(roll film) 카메라도 예외가 아니다. 19세기의 유명 심령사진 촬영가 월리엄 호프는 1905년부터 1933년까지 무려 3,000여장의 심령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그는 사진을 찍어서 현상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다른 사진을 찍는 일명 '이중 노출' 기법으로 심령사진을 만들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염력, 그리고 염사의 실재
염사의 실재 여부는 당연히 해당 사진의 조작 여부와 직결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염력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염력이 가능하다면 염사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염력 또한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미스터리의 영역에 남아있지만 적어도 염사보다는 사례가 많다. 한창 심령주의 붐이 일던 18세기에 이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계통의 대표주자는 미국의 생물학자 메인 코라. 그는 사람이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면 '생체전기(bio-electricity)'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이를 염력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생체전기는 여러 생물의 기관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기는 하다. 그런데 생체전기가 어떻게 염력으로 변환된다는 걸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물체의 고유주파수(natural frequency)를 거론한다. 각 물체는 형태, 탄성, 밀도 등에 의해 고유한 주파수를 지니는데 외부에서 동일한 주파수가 가해지면 형태 등이 변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고음으로 노래할 때 유리잔이 흔들리거나 깨지는 '공진 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유리의 고유 주파수와 목소리의 주파수가 일치한 결과로서 앞서 심령학계가 주창한 '영파의 일치' 개념과 유사한 원리로 보인다.
하지만 생체전기가 염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직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염력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고, 염사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현 시대에 통용되는 물리학의 법칙을 모조리 파괴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과학은 아직 답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계속해서 의심하고 연구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정답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면 그 실체에 대해 합리적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실체가 불분명한 미지의 대상을 규명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과학이 그동안 해왔던 역할이자 본연의 의무이기도 하다.
다수의 과학자들은 생체 전기의 존재를 인정한다. 비운의 천재과학자인 니콜라 테슬라 역시 생체전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사람의 몸은 램프에 불을 켤 만큼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어느 날 괴상한 발명품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정신을 고도로 집중시켜 염력을 일으킨다는 '정신증폭기'였다. 까다롭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테슬라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뉴욕 시내의 한 식당 앞에서 이 기기를 작동시켜 유리창을 모조리 부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용자의 의도대도 작동되지 않는 등 정확성이 떨어져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25개국에서 272개의 특허를 획득한 그에게도 염력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나 보다. 1910년대 일본의 다카하시 사다코라는 여성은 염사 능력자로 명성을 떨쳤다. 여러 차례 공개 무대에 올라 개봉도 안 된 필름에 수만 장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3~4분 분량의 영상까지 찍어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후 그녀의 염력이 모두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다코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시연회를 개최했지만, 잇따라 염사에 실패하며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녀는 누군가가 필름 상자 위에 납을 놓아둬서 염사에 실패한 것이라 주장했다. 영파는 납을 뚫지 못해 염력자들에게 '금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무시됐고 사다코는 어딘가로 종적을 감췄다. 진짜 미스터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사다코를 비방한 몇몇 인물이 연이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것. 사람들은 이를 '사다코의 저주'라고 여겼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 이는 한 영화의 소재가 됐다. 비디오를 염사해서 저주를 남기는 공포영화의 걸작 '링'이 바로 그것이다. |
건판 (乾板) 사진에 쓰는 감광판의 하나. 유리, 셀룰로이드 따위의 투명한 판에 감광 재료를 바른 뒤 암실에서 말린다.
지박령(地縛靈)·부유령(浮遊靈)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숨진 장소 주변에 머무는 영혼을 지박령, 특정 장소에 머물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을 부유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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