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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동설과 지구 종말의 진실

남극과 북극이 바뀐다

올해 안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2012년 종말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세상사다. 행여 마야달력에 근거한 이 예언이 적중하기라도 한다면? 극이동설은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유의미하게 여기는 지구 종말 시나리오의 하나다. 남극과 북극의 위치가 뒤바뀌면서 대재앙이 일어난다는 것.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박소란 과학칼럼니스트 noisepark510@hanmail.net

운명의 날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익히 알려진 2012년 종말론에 따르면 고대 마야력이 끝나는 오는 12월 21일 지구의 운명이 막을 내린다. 물론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것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낭설이라 일축했고, NASA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이 예언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은 마야인들이 당시 직접 천체를 관측해 행성의 공전주기까지 예측했던 과학적 능력이 탁월한 부족이었다는 점에서 100%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만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종말론 신봉자들이 2012년 지구 종말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원인으로 거론하는 가설은 크게 세 가지다. 행성 충돌설, 태양 폭발설, 그리고 극이동설(hypothesis of polar wandering)이 그것. 이중 가장 난해한 것이 바로 극이동설이다. NASA 역시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소행성이 날아오고 있다면 이미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 것이다", 혹은 "각국의 천문학자들이 지켜보고 있지만 지구를 날려버릴 만한 강력한 태양 폭발의 징후는 찾을 수 없다"는 등의 말로 행성 충동설과 태양 폭발설을 반박한 바 있지만 극이동설에 대해서만큼은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예고 없는 급격한 대이변

극이동설은 간단히 말해 자전축과 지표면이 만나는 극점이 대규모 이동을 한다는 가설이다. 초자연주의를 신봉하는 예언가들은 물론이고 주류 학계에서도 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각종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극이동설은 베일에 싸여있다.

학계에서 처음 극이동설을 주창한 사람은 미국 킨주립대학의 지질학자 찰스 햅굿 교수다. 1958년 그는 '지구의 지각 이동(The Earth’s Shifting Crust)'이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지구의 가장 바깥쪽 표면인 지각이 이동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극점이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지구 내부의 어떤 운동에 의해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그는 또 지각운동에 의한 극이동이 과거에도 이미 200회 이상 발생한 바 있다고 피력했다.

이는 얼핏 고교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베게너의 '대륙이동설(continental drift theory)'을 연상케 한다. 대륙이동설은 현재의 7개 대륙이 '판게아(Pangaea)'라는 하나의 커다란 초대륙에서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론이다. 지구상의 대륙이 기존의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극이동설과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대륙이동설은 대륙이 수억 년에 걸쳐 조금씩 이동한다는 학설이라면 극이동설은 지각 전체가 대규모로 순식간에 급격히 이동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과 극은 1년에 몇 ㎝ 단위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지만, 종말과 관련해 거론되는 극이동설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사전에 아무런 조짐이 없는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극이동이 벌어져 손쓸 틈도 없이 대재앙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이유에서든 급격한 극이동이 발발하면 지구 전역에서 대형 지진과 해일, 화산폭발 등의 천재지변이 연이어 유발될 것이라는 부분에는 학자들의 이견이 없다. 지구 전체가 생지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설령 고지대 등으로 몸을 피해 운 좋게 살아남았더라도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식량 등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생존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런 공상과학 영화같은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길 원한다면 20세기 최고의 예언가이자 심령술사로 불리는 에드가 케이시의 예언을 참고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는 세계적인 이변들, 그중에서도 극이동과 그로 인한 각 대륙의 변화와 관련해 23.5℃인 지구의 자전축이 바뀔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또한 이러한 지축의 뒤바뀜으로 극이 이동함으로써 세상의 질서가 재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여러 저서에서 기술한 바에 따르면 극이동 직전의 며칠간은 약간의 진동이 감지될 따름이다. 그러나 이후 극이동 자체는 눈 깜짝할 사이, 마치 지구가 한쪽으로 넘어지듯 일어나게 된다. 이때 각 대륙은 산산이 부서지며 섬들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다. 뉴욕, 로스엔젤리스,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도시가 순차적으로 파괴되고 섬나라 일본은 그대로 침몰하고 만다.

그는 이 모든 대이변이 자신의 다음 세대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가 1945년 세상을 떠났으니 다음 세대는 다름 아닌 지금의 우리들이다.





원인은 빙하? 혹은 혜성?

햅굿 교수의 극이동 이론은 발표 당시 주류 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몇몇 명민한 학자들을 통해 명맥이 이어졌다. 다만 극이동의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극이동설을 주창한 학자들마다 다소간의 견해 차이를 보인다. 햅굿 교수처럼 지구의 표지각이 움직여 남극과 북극이 자리를 바꾼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지각보다 깊은 곳의 맨틀이 움직인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차분히 생각했을 때 두 현상은 상호간 연쇄작용을 일으킬 확률도 높다. 그것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특히 극이동의 원인을 놓고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햅굿 교수는 지구 내부의 어떤 운동에 의해 지각이 이동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신과 의사이자 역사연구가, '충돌하는 세상(Worlds in Collision)'의 저자인 러시아의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 박사는 극이동의 원인이 지구에 접근하는 행성이나 혜성의 영향 때문이라 분석했다. 지구 바깥의 어떤 힘에 의해 지축의 이동과 지각의 변동이 일어나며 그 여파로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 기후, 환경 등이 모조리 바뀌게 된다는 것.

반면 미국의 전기기사 오틴클로스 브라운은 극이동의 원인을 지구의 자전이 남극과 북극 빙하의 무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전력이 남·북극에 불균등하게 분포돼 있는 빙하에 작용해 원심력을 일으키면서 지각이 미끄러지듯 이동해 극이동이 촉발된다는 설명이다.

극이동이 불러일으키는 현상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장이 나왔는데, 영국 킬대학의 물리학자 피터 워로우 교수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아종(亞種)의 출현이나 다음 문화기로의 전환이 극이동과 관련이 깊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극이동설 연구자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는 극이동이 지구 종말로 이어질 만큼의 대격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견했다. 설령 하루 사이에 극이동이 일어나더라도 최대가속도는 중력가속도의 1,000분의 1 정도가 증가할 뿐이라는 계산한 근거한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극이동의 진위를 속 시원히 풀어내지는 못한다. 어느것 하나 정확한 증명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이동이 실제 가능한지, 과거 극이동은 정말로 일어났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인지, 극이동의 정확한 원인과 파괴력 등의 논점들이 모두 그렇다.



일본침몰 20세기의 대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는 극이동에 의해 대륙이 산산이 부서지고 섬나라들은 바다에 침몰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진실은 미궁 속

이와 관련 지구 종말의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되는 극이동설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지리학자 아담 멀루프 교수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가장 대표적 인물이다.

대륙의 이동 방법을 연구하는 멀루프 교수는 급격한 극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단지 그는 만에 하나라도 급격한 극이동이 단시일 내에 일어난다면 종말에 버금하는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앞서 소개한 피터 워로우 교수의 이론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한편 다큐멘터리 전문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멀루프 교수의 스토리를 다룬 적이 있는데 그는 급격한 극이동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각 분야의 권위자들을 만나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끝내 급격한 극이동이 불가능하다는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는 못한 듯하다.



사실 멀루프 교수의 연구는 극이동설 자체보다는 마야 문명과 지구 종말설의 진위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5,200년 전 급격한 빙하기를 초래한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건이 발생하던 시기는 마야력이 시작하는 때와 일치한다는 것도. 그는 이 같은 갑작스런 기후 변화가 일어난 시기와 마야력의 시작점이 일치하는 것을 우연이라고 보지 않았다. 변덕스런 기후에 시달리던 마야인들이 그 사실을 기록하고, 나름의 주기를 구해 달력에 남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로 마야의 예언은 극이동으로 인한 종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극이동설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이론인지는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단지 '극이동이 아주 급격히 일어난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뿐이다. 혹시 12월 21일이 되면 극이동설의 진실을 경험하게 될 수 있을까.

과학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도 좋지만 인류를 위해 그런 경험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자전축(rotation axis) 지구의 남극과 북극을 일직선으로 연결한 선. 지구는 이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한다.
맨틀(mantle) 지구의 지하 약 30㎞의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변과 지하 약 2,900㎞의 구텐베르크 불연속변의 사이. 지구의 내부는 크게 지각, 맨틀, 외핵, 내핵으로 나뉘며 맨틀은 지각과 외핵의 사이를 지칭한다.
아종(subspecies) 생물분류학상 종(種)의 하위단계. 독립 종으로 보기에는 개체간의 차이가 크지 않고, 변종으로 보기에는 차이점이 많은 생물종을 이른다.







지구 종말 페스티벌

2012년 종말론은 중앙아메리카에서 발견된 고대 마야 왕조 시대의 문건에서 유래됐다. 그 문건은 1960년대 멕시코 남부의 엘 토르투게로에서 건설 공사 도중 발견된 모뉴먼트6(Monument6)을 말한다. 이는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 즉 마야력이 새겨진 돌이다. 이 달력에 의하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제 5시대며, 이 시대는 오는 12월 21일 끝이난다.

주지하다시피 모뉴먼트6에 종말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다만 마야력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은 그곳에 그려진 갖가지 그림으로부터 재앙에 대한 암시를 읽어냈다. 일부 학자는 모뉴먼트6을 비롯한 마야인들의 유물 어디에서도 지구 종말을 암시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욱이 그것이 극이동과 유관하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2012년 12월 21일은 지구 종말의 날이 아닌 또 다른 주기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종말 예고일이 임박한 지금, 마야 문명권에 속하는 국가들의 분위기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종말로 인해 관광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최근 AF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과테말라는 12월 21일에 즈음해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관광명소 13곳에서 공식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과테말라 전체 인구 1,500만명 중 절반을 차지하는 마야 후손들은 자체 행사도 준비 중이다. 이들에게 종말은 최고의 축제인 셈이다.



급격한 극이동의 역사?!

극이동을 주창하는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과거 수십 수백 차례의 급격한 극이동이 일어났다고 믿는다. 이들은 주로 옛 문헌에서 그 증거를 찾는데, 기원전 만들어진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는 '지구가 거꾸로 되었다'든가 '남쪽이 북쪽으로 되어 지구가 완전히 뒤집혔다'고 적혀 있다는 것.

장르가 좀 다르지만 플라톤의 '국가론' 역시 즐겨 인용된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시기 우주는 오늘날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과거 다른 어떤 시기에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이변은 우주 속 여타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규모가 큰 것이었다. 이때 많은 동물들은 대량으로 사멸했으며 인류도 극소수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한편 영국의 괴짜 작가이자 기자인 그레이엄 핸콕은 현재의 남극이 전설 속 고대문명 발상지인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 피웠던 아틀란티스 대륙은 급작스런 극이동으로 인해 남극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빙하에 덮여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베게너와 대륙이동설

왜 대륙의 해양선 모양은 서로 비슷할까. 마치 처음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을 누군가 떨어뜨려 놓은 건 아닐까. 독일의 기상학자이이자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드 로타어 베게너(1880~1930)의 대륙이동설은 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됐다.

베게너는 2억 년 전의 지구는 판게아라는 하나의 초대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리돼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그가 처음 이런 대륙이동설을 공표한 것은 191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지질학회에서였다.

그런데 베게너의 학설은 대륙이 예전부터 동일한 위치에 있었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에 정면 위배된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유사한 학설을 제기한 학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학설은 대체로 노아의 방주나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과 같은 신화적이고 초자연적 내용에 기반한 것이었다.

베게너는 최선을 다해 지질학적 증거들을 찾아 제시했다. 대륙들의 해안선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점,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공통적인 생물화석이 발견된다는 점, 북미와 유럽의 지질구조가 연속적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내놓았다. 그럼에도 대륙이동설은 오랫동안 학계의 외면을 받았다. 대륙 이동의 이유, 즉 대륙을 이동하게 만든 힘을 설명할 수 없어서였다.

대륙이동설을 굳건히 확신했지만 베게너는 끝내 이를 설명하지 못하면서 몽상가로 치부됐고 50세에 탐험을 떠났다가 실종되고 만다. 하지만 진실은 승리하는 법. 이후 대륙이동설에 흥미를 가진 학자들을 통해 풍부한 증거들이 확보됐고, 1960년대 말 대륙이동설은 판구조론(plate tectonic)으로 계승 발전됐다. 판구조론은 지표면이 여러 개의 딱딱한 판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판이 수평 이동한다는 점에 바탕을 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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