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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카 설립자의 ‘인생 2막’

로빈 체이스 Robin Chase는 자동차 공유를 유행시켰다. 지금은 원래 아이디어에 변화를 가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 중이다.

로빈 체이스도 많은 기업가들처럼 개인적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54세인 그녀가 12년 전 집카 Zipcar를 만들었던 계기도 가끔 가족을 위해 쓸 차가 한 대 더 필요해서였다. 그 결과 보스턴에서 시작한 집카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공유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지난해 연 매출이 2억 4,200만 달러에 이르렀다. 2003년 CEO에서 물러난 체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부터 집카를 창업할 때까지 나는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혹은 남편의 직장에 따라 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예 일을 쉬었다.”

이스는 현재 프랑스에서 버즈카 Buzzcar-차주가 자신의 차를 빌려주는 서비스-에 힘을 쏟고 있다. 그녀가 투자금을 밝히진 않았지만 버즈카의 공동 투자업체인 모비비아 Mobivia는 여러 견실한 운수 사업에 투자하는 프랑스 기업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부친이 외교관이어서 나는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어릴 때 스와질란드에서 오래 살며 세계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는 기업가 정신이 매우 투철해서 여러 나라에서 수공예와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가내 공업을 창업했다. 나는 파리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가 1980년 웰슬리 Wellesly 대학으로 옮겨 인문학부를 졸업했다. 그 후 보스턴에서 국제개발처의 공중 보건 부문 계약을 담당하는 JSI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금융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지 보았다. 그래서 경영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1986년 MIT 슬론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나는 야심 찬 워킹맘이었다. 세 아이는 서로 세 살 터울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부터 집카를 창업할 때까지 나는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혹은 남편의 직장에 따라 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예 일을 쉬었다. 내 남편 로이 러셀 Roy Russell은 음성인식 기술팀과 일했던 전기 공학자다. 1999년 9월 나는 안티에 대니얼슨 Antje Danielson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아이는 여섯 살인 우리 애와 단짝이었다. 독일인인 안티에는 베를린에서 자동차 공동이용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일 년간 일을 쉬면서 새로 시작할 사업을 구상했다.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살았던 우리 가족에겐 차 한 대가 있었다. 나는 어쩌다가 한 번씩 운전을 했기 때문에 다른 차가 전혀 필요하지는 않았다. 대신 소유하지 않고 한 시간이나, 하루 동안 빌릴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동차 공유라는 아이디어가 곧바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999년은 닷컴 붐이 정점을 찍던 해였다. 전 국민의 50%가 직장에서 인터넷에 접속했고 25%가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무선 환경이 기업가들 사이에서 뜨고 있었다. 나는 안티에와 이야기하면서 인터넷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자원(자동차)을 공유하는 데 적합한 방법이고, 집카가 무선 환경을 잘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카가 운영되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온라인이나 전화로 사용 시간과 차를 예약한다. 그 정보는 무선으로 자동차로 전송된다. 집카 회원은 자신의 카드로 자동차 문을 연다. 차를 쓴 후에 반납하고 문을 잠그면 요금이 청구된다. 대여 거래는 30초면 끝나고 차는 빌리는 사람만 열 수 있다. 집카는 셀프 서비스이고 자율적이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에 착수했다. 안티에는 자동차 기술과 임대 차량 구하는 일을 맡았다. 나는 자금 조달과 웹사이트, 마케팅, 결제 시스템 등 다른 모든 것을 책임졌다. 1999년 12월 우리는 사업계획을 작성한 후 당시 MIT 슬론 대학원의 글렌 어번 Glen Urban 학장을 만나러 갔다. 자동차 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했던 그는 집카가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해주었다. 자금을 두 배 더 모으고, 두 배 더 빨리 움직여 바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난 그 후 3일 동안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집 앞을 서성거렸다. 열두 살짜리 딸 아이가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그 전에 유니세프에 대해 이야기


“MIT 슬론 대학원 학장이 우리에게 자금을 두 배 더 모으고, 두 배 더 빨리 움직여 곧바로 사업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나는 그 후 3일 동안 정말 이 일이 하고 싶은지 고민하며 집 앞을 서성거렸다.”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딸에게 이 회사에 전념하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딸은 “이 일을 하면 더 부자가 돼 유니세프에 돈을 더 기부하고 더 많은 어린이들을 살릴 수 있어요?”라고 재차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아이는 “그럼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2000년 1월 안티에와 나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6월 4대의 차로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7만 5,000달러를 모았다. 초기 투자금 중 5만 달러는 MIT 슬론 동기생 중 가장 먼저 백만장자가 된 진 해먼드 Jean Hammond(쿼리 테크놀로지스 Quarry Technologies와 액손 네트웍스 AXON Networks 설립자)가 투자했다. 나머지 2만 5,000달러는 오랫동안 설득한 엔젤 투자자가 마지막에 투자했다. 서비스를 시작하기 3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 수중엔 은행 계좌에 남아 있는 67달러와 베타 테스트 *역주: 회사가 제품을 내놓기 전에 고객의 만족도 및 사업의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미리 사용자들에게 서비스를 공개하는 것를 위해 산 차 한 대(계약금으로 내 집의 담보가 제공됐다)밖에 없었다. 그런데 임대차 회사에서 갑자기 계약금으로 차 한 대당 7,000달러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창업 행사에 갔는데 후안 엔리케스 Juan Enriquez (현재 엑셀 메디컬 벤처스 Excel Medical Ventures의 전무 이사)가 내게 오더니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나요?”라고 물었다. 내가 “내일 아침까지 2만 5,000달러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더니 그는 흔쾌히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안 쓰는 침실에서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했지만 재미 있었다. 2000년 9월 남편이 렌아웃 앤드 하우스파이 Lernout & Hauspie의 소프트웨어 개발 팀장을 그만두고, 집카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 남편이 집카에서 반일 근무를 하면서 우리의 역할은 바뀌었다. 남편이 주로 아이들을 돌봤다. 남편은 반일 근무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았지만 사실상 하루 종일 근무를 한 셈이었다. 집카를 시작한 첫해 나는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았다. 그해 가을 안티에가 임신을 했고, 일에 복귀했다가 2001년 1월 떠나기로 결정했다. 집카는 첫해 곧바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집카는 시작 후 매월 7~12%씩 성장했다. 우리는 시리즈 A 투자를 통해 130만 달러를 조달한 후 다른 도시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투자자들은 보스턴에서 성공한 것만으론 집카를 유망한 아이디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2001년 가을에 전환어음 형태로 200만 달러를 조달했고, 자동차 공동 이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워싱턴 D.C.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1년 9월 장부 마감을 했을 때 9·11 사태가 터져 전체 운수 업계가 마비됐지만 집카는 매달 계속 성장을 거듭했다. 우리는 집카가 사치스럽고, 불필요한

“비전을 갖는 것, 내가 만들어가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힘들고 비참한 날들도 많지만 이를 지켜보는 것은 특권이다.”

서비스가 아니라 실용적인 공공 서비스라는 점을 입증했다. 그리고 2002년 2월에는 뉴욕 시에 입성했다. 그 와중에 여러 대학 도시에서 집카 서비스를 시작했다. 집카는 출퇴근용 차량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겨냥했기 때문에 대학교는 딱 맞는 타깃이었다. 초기에 MIT와 하버드는 우리에게 주차 공간을 제공하고 광고에 도움을 주었다. 자가용 대신 집카를 쓰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한 덕분에 각 대학들은 캠퍼스에 주차장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2003년 700만 달러 투자 유치를 끝냈을 땐 집카의 수익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내 곁에는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와 열 여섯 나이에 슈퍼모델이 된 딸(이름은 캐머런 러셀 Cameron Russell이고 지금은 25세다. 캘빈 클라인, 프라다, 샤넬 등 유명 브랜드에서 모델 활동을 했다)이 있었다. 매우 쇠약한 상태였던 나는 그때 하고 싶은 건 모두 해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3년 CEO에서 물러났고, 그 후 2년 동안 이사진에 있다가 완전히 퇴사했다. 회사 지분은 아직도 약간 보유하고 있다. 집카를 떠난 후 나는 러브 Loeb 장학금으로 하버드 대학원을 다니며 도시 계획과 교통, 인터넷에 대해 많이 배웠다. 2007년에는 골로코닷컴 Goloco.com이라는 카풀 회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기상조였다. 미국에선 아직 카풀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언젠간 카풀이 널리 알려지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프랑스는 미국보다 운송 체계가 좀 더 발전했다. 프랑스는 공용 자전거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다. 나는 파리 시가 편도로 대여할 수 있는 공용 전기차를 대대적으로 도입할 때 도움을 줬다. 파리는 작년 12월에 전기차 1,800대를 도입했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카풀과 접목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6월 프랑스에서 버즈카를 시작했다. 버즈카는 자신의 차를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빌려주는 서비스다. 회사를 시작한 지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프랑스 전역에 1만 2,000여 명의 회원과 1,500대의 차를 보유하게 됐다. 모비비아라는 개인 소유의 프랑스 대형 운수회사가 공동 투자자로 나서줬다. 비전을 갖는 것,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힘들고 비참한 날들도 많지만 이를 지켜보는 건 특권이다. 나는 교통이 일상의 중심에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출퇴근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교통비는 가계 예산의 18%를 차지한다. 교통 부문이 전 세계 이산화탄소량 가운데 30%를 배출한다. 내가 설립한 회사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을 보면서 진정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로빈 체이스
집카 공동 설립자

다른 사람의 유휴 능력을 이용하라. 나는 MIT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학교는 3만 5,000명의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집카에 가입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그들에겐 거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려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걸 보완해줄 사람을 고용하라. 나는 자동차 회사를 창업했지만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허츠 Hertz의 북미 사업부를 경영했던 인물을 영업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사전에 대책을 강구하라. 집카 초기에 자동차 렌털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나중에 가격을 두 번 올려야 했다. 사람들은 요금을 올리면 우리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면 우린 파산했을 것이다.

경쟁자들과 차별화하라. 나는 집카가 다른 자동차 대여 회사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렌터카로 쓰는 자동차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타 테스트용 차로 폭스바겐에서 갓 출시한 귀엽고 눈에 확 띄는 초록색 비틀을 구입했다. 눈길을 끌고 싶어 차에 로고까지 넣었다. 덕분에 아주 큰 마케팅 효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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