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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힘, 융합형 원천기술

CONVERGENCE TECH INNOVATION

서로 다른 분야를 유기적으로 접목시킨 융합기술은 21세기 과학기술의 핵심 키워드다.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막강한 파급력의 혁신기술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국가경제·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 허브로써 융합형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또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 나노기반 정보·에너지사업본부,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 바이오제약사업본부가 관련연구를 주도하며 오는 2018년 61조 달러로 예상되는 융합산업 시장의 선점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서울경제신문은 이들 4개 사업본부를 중심으로 국내 융합형 원천기술 개발 현황과 그들이 바꿔놓을 미래상을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
1. 삶의 질 향상 위한 융합기술 개발 주력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중에서도 정보기술(IT), 바이오(BT), 나노(NT), 환경(GT) 등 분야의 경계를 아우른 융합형 원천기술은 세계 톱클래스 과학기술 강국 진입을 목표로 선진국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최고의 약방문으로 꼽힌다.

교과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09년 출범한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 나노기반 정보·에너지사업본부,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 바이오제약사업본부는 이 같은 국내 융합형 원천기술 연구의 최일선에 서 있는 첨병이다. 오는 2013년까지 5년간 2,5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기술분야별로 14개 융합연구단이 4개 사업본부에 분산 배치돼 있다.

61조 달러의 시장을 선점하라

사업종료 1년 6개월을 앞둔 현재 각 사업본부에서는 다양한 유·무형적 성과들이 속속 도출되고 있다. 특허 출원만 1,183건에 달하며 SCI급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도 1,359편이나 된다. 기술이전, 상품출원 등으로 84억원 수준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했다.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는 IT, BT, NT, 인지과학(CS)을 모태로 4개 연구단이 인간과 인지시스템, 환경 분야의 융합형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신경모방소자 및 인지시스템 연구단'은 사람의 인지 메커니즘 연구를 통한 장애인용 생체모방 시각·청각·촉각 센서와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의료인지 연구단’은 오감 인지 능력과 관련된 만성·난치성 질환의 조기진단 센싱 기술을 집중 연구 중이다.

또한 '실내공기청정 연구단'은 실내공간의 유해물질 탐지·제거 기술, '자기냉각 액화물질 연구단'은 수소경제시대에 대비한 신개념 액체수소 저장·배송 기술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번영과 삶의 질을 극대화할 기술 개발이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의 궁극적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우삼용 본부장은 "5~10년 후 세계를 선도할 핵심 융합원천기술을 최소 4개 이상 확보할 계획"이라며 "오는 2018년 61조 달러로 예상되는 글로벌 융합산업 시장을 우리나라가 선점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또 "이를 위해 34개 산·학·연에 소속된 다양한 전문분야의 연구원 700여명이 힘을 모으고 있다"면서 "출범 후 SCI급 논문 299건과 335건의 국내외 특허출원, 5건의 기술이전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감성까지 전해주는 감각 도우미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의 연구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경모방소자 및 인지시스템 연구단의 감각 보조 장치다. 시·청각 장애인이나 노인들의 손실된 감각을 보충해주는 기계로 감각도우미라고도 불린다.

물론 지금도 보청기 등의 보조기가 존재하지만 감각도우미는 감각센서와 인지기능을 융합해 사용자에게 2개 이상의 감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주변상황을 복합적으로, 즉 한층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이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특히 연구단은 사람의 피부처럼 물질의 표면 느낌을 감지하는 촉각센서를 활용하는 등 시·청각 정보에 담긴 감성까지 전달하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

감각도우미는 크게 시각장애인용 '아이헬퍼(eye-helper)'와 청각장애인용 '이어헬퍼(ear-helper)'로 구분된다. 이중 아이헬퍼는 시각센서와 촉각센서를 결합, 시각 정보를 청각과 촉각 정보로 변환해주는 장치다.

소형카메라, GPS, 마이크로폰 등이 장착된 특수안경과 핸드헬드 단말기로 구성돼 있으며 GPS 및 적외선 초음파 센서로 파악한 거리 정보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동시에 단말기를 진동시켜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때문에 아이헬퍼가 상용화되면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이 대폭 증진될 수 있다.



촉각센서 개발을 맡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연규 박사는 "실내의 경우 아이헬퍼의 정확도가 90%에 도달했다"며 "다만 야외에선 소음 등의 영향에 의해 일부 인식오류가 나타나 이의 개선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헬퍼 역시 기본 메커니즘은 유사하다. 미세전자제어기술(MEMS)이 적용된 초소형 마이크로폰이 소리를 감지하면 특수안경의 디스플레이에 해당 소리의 크기와 발생위치가 시각적으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우 본부장은 "감각보조기기에 채용된 소자와 인지시스템은 인간의 감각 및 감정 정보 처리체계를 모방했다"며 "때문에 차세대 멀티미디어, 가상·증강현실, 지능형 로봇, 게임 등 다른 산업에서의 활용도도 매우 높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5년 내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

의료인지 연구단의 조기 질병 진단 기술, 특히 국내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15만명 이상이 앓고 있는 대표적 노인성 난치성 질환인 알츠하이머의 조기 진단 기술도 미래가 촉망되는 대표적 연구 분야다.

현재 연구단은 면봉에 코나 입 부위의 상피세포를 묻혀서 스마트폰의 센서에 가져다 대는 쉽고 단순한 방법으로 지금보다 조기에 알츠하이머 발병 개연성을 진단하려 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소속 송기봉 연구단장은 "알츠하이머는 기억력 감퇴 등 인지기능보다 감각기능이 먼저 저하된다"며 "이 점에 기반한 새로운 바이오 마커를 발굴하면 조기진단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송 단장은 이어 "이렇게 조기 진단이 이뤄지면 선제적 치료를 통해 완치는 아니더라도 증상 발현을 5~10년 이상 지연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대 서유헌 교수팀이 'S100a9'라는 새로운 알츠하이머 발병 유전자를 찾아 성분과 특이조직, 작용기전, 대사산물 등을 규명하는 성과를 올렸다. 실제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형질전환 쥐에서 이 유전자의 단백질 발현을 억제하자 발병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송 단장이 이끄는 ETRI 연구팀 또한 특정 세포에 내재된 극미량의 알츠하이머 발병 물질을 선택적으로 검출하는 '광필터 어레이 마이크로 유체칩' 개발에 성공했다. 살아있는 세포를 직접 활용하는 만큼 기존 진단 칩보다 감도가 월등히 높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송 단장은 "알츠하이머 환자 200여명의 타액을 확보해 정상인과 비교실험한 결과, 타액만으로도 알츠하이머 발병 여부를 정확히 판독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며 "5년 내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노령 인구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바이오 메디컬, 생체 조직분석, 질병진단, 신약개발 등 다각적 분야에서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 본부장은 "2014년 6월이면 5년간의 프로젝트가 종료된다"며 "도출된 연구성과 중 사회적·산업적 파급력이 큰 기술들을 선별, 추가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기술이전으로 상용화 타진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 산하 4개 융합연구단에서 지금껏 개발된 융합형원천기술 중 일부가 민간으로 기술이전이 이뤄지며 상용화 가능성을 본격 타진하고 있다.

먼저 신경모방소자 및 인지시스템 융합연구단의 ETRI 정명애 박사팀이 개발한 유럽식 표준 번호판 인식기술이 한일에스티엠에 기술 이전됐다. 이 기술은 일반 도로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자, 기호 등을 자동으로 검출해 인식하는 것으로 ETRI의 이동식 차량 번호판 인식기술을 개량해 한글과 영문의 인식이 가능하며 문자의 크기나 기울어짐 여부와 상관없이 정확한 인식률을 자랑한다. 한일에스티엠은 현재 이 기술을 차세대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분야에 적용할 계획이다.

정 박사는 "영상과 음성 인식에 기반한 인지 응용기술은 이미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일상화돼 있다"며 "이번 번호판 인식기술이 상용화되면 수억달러 이상의 수입대체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실내공기청정 연구단 국민대 한화택 교수팀이 개발한 석면섬유 자동 계수 기술도 패이스라는 국내 기업에 기술이전이 이뤄졌다.

이 기술은 공기시료의 광학현미경 영상을 분석, 석면을 자동 계수하는 것으로 기존 방법 대비 분석 속도가 10배나 빠르고 검출의 객관성과 효율도 대폭 향상됐다. 연구팀은 장기적으로 공기 중의 석면에 더해 토양과 지하수에 함유된 석면 검출에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패이스는 이 기술을 적용한 석면 자동계수기를 공기업과 학교를 중심으로 유통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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