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약트먼은 뇌졸중에서 회복 중인 딸을 병구완하는 와중에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두 개의 주식형 펀드를 이끌었다. By Scott cendrowski
오스틴에 위치한 카운티라인 County Line 바비큐 매장은 점심 때 매우 북적거린다. 반 마일 밖에서도 숯불에 구운 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돈 약트먼 Don Yacktman은 늘 한쪽 구석에 앉아 양지머리, 후추를 친 칠면조 가슴살, 감자 샐러드, 구운 콩 한 접시를 즐긴다. 지역 은행가들이 무리 지어 약트먼을 둘러싸고, 과잉 친절을 베풀며 열심히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비트더마켓 beat the market *역주: 투자수익률이 S&P500 지수의 수익률을 넘는 경우를 말한다 기록을 세웠나, 비결이 무엇인가 따위를 묻는다.
피콜로 피트 Piccolo Pete's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잡담하는 워런 버핏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은 비슷하다. 당신은 전혀 모르겠지만 약트먼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뮤추얼펀드 매니저 중 한 명이다. 그는 카키 바지를 입고 타이멕스시계를 찬다. 그는 조용히 말하며 남의 관심 받기를 꺼린다. 은행가들이 끈질기게 투자 조언을 해달라고 하면 약트먼은 먼저 썰렁한 농담을 건넨다. 그는 바비큐 소스 통을 건네며 “비밀은 소스에 있다”고 말한 후 “간단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탄탄한 회사들이 위기에 처하면 주식을 매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복할 때까지 보유 전략을 구사한다. 좋은 회사들은 거의 항상 제자리를 찾기 때문이다.그는 주식을 사고 팔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정말 많이 참을성을 가져야 한다.”
약트먼보다 더 참을성 있는 투자자를 찾긴 쉽지 않다. 그는 현재 재정 절벽과 수익불확실성 때문에 휩소 whipsaw *역주: 타인에게 거래를 유도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에 빠진 주식 시장을 견디도록 프로그램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체격이 좋고 대머리인 약트먼(71)은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진 주식형 뮤추얼펀드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그의 대표 펀드인 약트먼 펀드는 S&P 500 연간 수익률의 두 배에 달하는 10.5%의 성과를 올렸다. 특정 종목들에 더욱 집중하는 약트먼 포커스드 펀드 Yacktman Focused Fund의 수익률은 11%다. 그가 보여준 금융위기 이후의 이력은 더욱 화려하다.약트먼 펀드는 앞을 내다보고 비아콤 Viacom과 뉴스 코프 News Corp. 등 하락세인 주식에 투자해 2008년 말부터 이듬해 11월 중순까지 99%라는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전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최상위 2%에 들었다.
약트먼 펀드는 엄청난 수익률과 보수적인 접근 방법 덕분에 엄청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펀드평가사인 모닝스타의 추정치에 따르면, 두 펀드는 2008년 이후 129억 달러를 유치했다. 블랙록의 배당주 펀드를 제외하고 주식 펀드 중 가장 큰 액수다.
놀라운 사실은, 약트먼이 오늘날 가장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중 한 명이지만, 몇 년 전 켄 히브너 Ken Heebner와 빌 밀러 Bill Miller 같은 스타 펀드매니저들처럼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성적을 거뒀다고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트먼은 허세를 부리지 않고, 해마다 S&P 500 지수를 누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그의 의견도 쉽사리 들을 수 없다. 사실 CNBC에 잠깐 출연하는 것을 빼면 전혀 약트먼을 만날 수 없다.
또 이례적인 점은 가족에 대한 약트먼의 헌신적인 태도다. 그가 지난 2005년 38년간 살았던 시카고를 떠나 오스틴으로 올 때 7명의 자녀 중 6명이 함께 이사를 왔다. 그는 둘째 아들 스티브(42)에게 펀드 경영권을 이양해 왔다. 또 지난 7년간 치명적인 뇌졸중을 일으킨 후 감금 증후군(a locked-instate)에 걸린 딸의 재활을 돌봐왔다.
약트먼을 만나면 절로 겸손을 배우게 된다. 그는 수십억 달러를 버는 스타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교회 주교처럼 행동한다(그는 과거 우연히 모르몬교에서 주교를 지내기도 했다). 조용한 대화 수준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다. 전화도 직접 받는다. 홍보 업무를 하는 직원도 없다. 딸 멜리사(35)는 여름방학에 아버지와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지나가는 노숙자를 초대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나, 아버지, 노숙자 이렇게 셋이 웬디스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약트먼은 모르몬교를 믿기 때문에 술과 도박을 하지 않는다(그는 부모님이 이혼 후 여러 번 재혼하자 안정을 찾기 위해 15세 때 모르몬교로 개종했다). 그는 실적이나 아이디어를 내세우길 꺼린다. 반면 다른 펀드매니저들은 약트먼의 펀드처럼 급성장할 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스틴의 서쪽 언덕에 위치한 조촐한 사무실 3층에서 그는 “거만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수수한 사무실 한쪽 벽엔 풍경 판화가 걸려 있었다.
자녀들은 그의 검소함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고 있다. 아들 브라이언(23)은 대학원을 다닐 때 아버지가 3만 5,000달러에 자신을 고용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MBA를 따는 데 드는 돈보다 저렴한 액수였다. 약트먼은 두 달에 한 번씩 오스틴에 있는 자녀들과 모여서 가족식사를 하는데, 한 번은 아들 롭의 부인이 빈 탄산음료 캔이 든 재활용 가방을 버렸다. 돈은 차고로 나가서 그 가방을 가져왔다. 그는 “좋은 가방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약트먼의 투자 방식은 매우 조심스럽다. 거래소 풍경이나 헤지펀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매일같이 다른 투자가들을 속이거나 앞서려 하지 않는다. 대신 수익성 좋은 사업이 월가를 실망시킬 때 꾸준히 투자한다. 그의 두 펀드는 루퍼트 머독 RupertMurdoch의 뉴스 코프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전체 자산에서 약 10%의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프록터 앤드 갬블과 펩시코를 각각 8%씩 갖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스코처럼 한때 잘나가던 IT 기업들도 보유하고 있다. 약트먼의 회사에는 흥미로운 일이 거의 없다. 리퍼 Lipper의 애널리스트인톰 로신 Tom Roseen 은 “그의 투자 행태를 보면 ‘흠’이란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지난 2008~2009년 당시, 약트먼 펀드투자자들은 그의 전략이 얼마나 수익성이 좋은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P&G 등 위기에 직면한 전통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10월 무렵 약트먼 부자는 비아콤과 뉴스 코프처럼 폭락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주가가 낮아져 두 배는 오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뉴스 코프 주가는 6달러에서 24달러로 폭등했고, 비아콤 주가는 15달러에서 50달러로 세 배 이상 올랐다. 아메리크레딧 AmeriCredit의 주가는 13달러에서 24달러로 치솟았다.
오리건의 가치주 펀드매니저인 그의 동료 제프 옥시어 Jeff Auxier 는 “약트먼은 증시가 안 좋아도 겁먹지 않는다. 뛰어난 투자자들은 대중이 패닉에 빠져 황급히 달아날 때(run for the hills) 더 자극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월가나 자신이 거의 평생 살았던 시카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고 있다. 그는 웬만하면 다른 펀드매니저들과 교류하는 것을 피했다. 그중 대다수는 금융위기 전 AIG와 은행에 끌려 투자하는 바람에 처참한 결과를 맛봤다. 하지만 약트먼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7년 전 오스틴으로 이사했는데, 단지 ‘집단 순응 사고’(thegroupthink) *역주: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여함으로써 초래되는 개인의 창의성과 책임감 결여 현상를 피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닷컴버블의 여파로 그의 펀드는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은 약트먼은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딸 제니가 2004년 30세의 나이에 뇌졸중을 일으켰다.처음에 의사들은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24시간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에는 영영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약트먼은 제니 가족이 그녀의 재활을 거들 수 있도록 기후가 따뜻한 오스틴으로 이사하는 것을 도왔다. 그 자신도 이사했고, 사업도 전부 오스틴으로 옮겼다.
11월의 어느 따뜻한 저녁, 시장에 대한 토론을 마친 후 약트먼은 현관 의자에 기대 앉아 땅거미가 지면서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던 오스틴의 구불구불한 언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딸을 잃을 뻔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금융 버블도, 금융 위기도,심지어 전 이사회가 자신을 펀드 회사에서 쫓아내려던 것도 이겨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딸의 죽음에 대한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아무도 요즘 세상에 자식이 먼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3월 16일, 돈은 사위 마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마크는 제니가 경미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말했다. 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혈전용해제 *역주: 혈액 응고에 의해 형성된 덩어리를 녹이는 약물 처리제 tPA를 투여하면 금방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불과 서른 살의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 약트먼은 회의에 참석하러 애틀랜타로 날아갔다. 하지만 하룻밤이 지나자 약효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제니 가족이 사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커뮤니티 호스피털 ‘노스North ’ 의사들은 그녀의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좁아서 뇌가 너무 빨리 부풀기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24시간이 남았다고 얘기했다. 돈은 다음날 아침 딸 멜리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 사실을 알았다. 멜리사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골드만삭스의 스타 자산 관리가 출신으로 현재는 약트만 펀드의 공동 경영자인 제이슨 스보츠키 Jason Subotky도 이 심각한 진단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이 자선 기부를 하는 클리블랜드 클리닉 Cleveland Clinic의 최고 신경의들에게 제니를 보일 준비를 했다. 제니와 마크는 다음날 이 병원으로 날아갔고, 인디애나폴리스에 모여 있던 돈과 다른 가족들은 봄철의 눈보라를 뚫고 5시간 동안 차를 몰았다. 그는 “정말 힘든 운전이었다”고 회상했다.
의사는 환자의 예후에 대해 뒤섞인 진단을 내놨다. 안정을 취하면 살아날 수 있고, 팽창 증세도 한풀 꺾여 앞으로 뇌 손상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인해 뇌교(척추 근처에 있는 뇌의 한 부분으로 자율 신경계를 통제한다)가 거의 파괴되는 바람에 눈 밑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도 했다. 그녀는 영화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의 실제 주인공 장 도미니크 보비 Jean-Dominique Bauby와 흡사한 감금증후군에 걸린 것이었다. 이 증후군은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처음 며칠간 제니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깜빡이는 일이 전부였다. 의사들은 제니가 그 이상의 움직임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마크에게 그녀의 영양공급 튜브를 떼고 결국 죽게 내버려 두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믿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마크는 그녀의 병실에 세 번이나 들어가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살고 싶다는 것이고, 두 번은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물어볼 때마다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처음에 내가 말을 못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제니는 오스틴에 있는 저택 거실에서 휠체어에 앉아 말했다. 탁 트인 거실 창문으로 20마일 정도 떨어진 지평선이 보였다. 금발의 생머리인, 줄무늬 셔츠와 코듀로이 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L.L. 빈 L.L. Bean의 카탈로그 모델처럼 보였다.
돈은 그녀가 침대에서 꼼짝 못할 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이 집을 지었다. 하지만 요즘 그녀는 경치를 감상할 시간이 없다. 마크는 그녀가 수화로 말하는 일상 생활을 듣는다. 그녀는 휠체어에 탄 채 집을 돌아다니면서 학교에 가기 전에 아이들을 안아준다. 또 64인치 모니터를 갖춘 지하 사무실에서 블로그에 게시물을 올리고(오른손에는 감각이 돌아왔다) 페이스북과 핀터레스트를 업데이트한다.
그녀의 회복은 의사들과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던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제니는 뇌졸중을 일으킨지 두 달 만에 퇴원했다. 7개월 후에는 영양공급 튜브를 제거했다. 곧 오른손을 약간 꼼지락거릴 수 있게 됐고, 그 후에는 오른쪽 몸 전체를 움직이게 됐다. 케이스 웨스턴리저브 의과대학(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의 신경과 교수이자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그녀의 담당의사였던 마이클 A. 드 조지아 Michael A. De Georgia 는 “1년 전에 마크로부터 그녀의 회복에 대한 동영상을 메일로 받았다.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그 동영상을 레지던트들에게 보여준다.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내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제니는 여전히 왼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미국식 수화(American Sign Language)로 소통한다. 알아듣기 힘들고 목소리가 작지만 완전한 문장을 말할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하루에 두 시간만 말해도 녹초가 된다. 제니는 먼저 생각한 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면서 약한 입 근육으로 단어를 말하는 것이 자신이 아는 가장 힘든 운동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매일 평범한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현실에 점점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녀 는 최근 블로그에 장애인 전용 구역에 ‘잠깐’주차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11월 수화를 잘 모르는 인척이 방문했는데 다가오는 대선이나 가족들에 대해선 편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남편은 그녀의 회복에 전념했다. 카운슬링 업무를 보기 위해 한주에 10시간만 집 밖에 있다. 아버지 돈과 어머니, 거의 모든 가족들이 그녀의 곁에 있다. 하지만 닥터 드 조지아는 제니가 앞으로 더 회복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 상태가 이제까지 호전된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겐 재력, 사랑하는 가족, 젊은 신체가 있다. 닥터 드 조지아는 “제니의 경우가 회복 가능성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설명했다.
돈은 이런 와중에서도 쭉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자신 또한 언젠가 죽는다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됐다. 1999년부터 회사의 공동책임자인 아들 스티브가 지난 10여 년 동안거의 매일 펀드를 운용했다. 수년 전에 돈은 자신이 죽어도 회사는 존속하도록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당시에는 이미 스티브가 포트폴리오에 편입될 주식들을 대부분 결정하고 있었다. (돈은 또 사망 후에도 회사를 존속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지난 여름 지배주주 지분을 어필리에이티드 매니저스 그룹 (Affiliated Managers Group)에 매각했다. 트위디 브라운 Tweedy Browne같은 여러 훌륭한 자산운용회사를 소유한 AMG는 수수료의 일부를 떼가지만 영업활동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보다 더 다를 순 없을 것이다. 돈은 상냥하고 인터뷰어에게 따뜻 하지만 스티브는 가끔 경솔하다는 인상을 준다(한 번은 텍사스 대학교의 청중들에게 절대 투자에 실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돈은 코스트코에서 신형 혼다 어코드를 산 반면, 스티브는 560마력의 코르벳 Corvette 엔진을 장착한 캐딜락 CTS-V 신형을 몬다. 하와이 마우이 섬으로 휴가를 갔을 땐 카이트 서핑 kite-surfing *역주: 서핑과 패러글라이딩을 접목한 레저스포츠을 즐기며, 시속 30마일로 물위를 질주하고, 바다 위 40피트 상공을 날았다.
스티브는 수년간 아버지 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뼈 빠지게 일하며 가치 투자의 원리와 어떻게 회사들이 수익을 끌어올리는 지를 배웠다. 그는 현재 주식 시장이 고평가 상태지만 (스스로 영업이익을 계산한 결과 S&P 500의 주가수익비율(P/E)이 20으로 너무 높다고 했다) 약트먼 펀드는 연간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 주식이 다른 주식만큼 주가가 빨리 오르지 않아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 예로 이들 부자는 최근 P&G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스티브는 P&G의 마진이 줄어드는 주기가 거의 끝났다고 말한다. 그는 향후 5년간 P&G 주식이 마진, 수익 성장률, 3% 배당률을 개선하면 두 자릿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약트먼 펀드가 10대 주주 중 한 곳으로 투자하고 있는 펩시코도 마찬가지다. 스티브는 CEO 인드라 누이 Indra Nooyi 를 겨냥한 언론의 비난을 일축하며, 펩시코가 인플레이션을 이겨낼 강력한 브랜드로 재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많은 포트폴리오 내의 주식들(휴렛팩커드, RIM, 아폴로 그룹 등이다)에 대해선 나중에 이익이 생길 가능성을 엿보는 가치 투자라고 말했다. 블랙잭 플레이어가 이기기 전에 계속 지듯이 펀드는 매년 실패를 보게 된다. 휴렛팩커드의 경우 지난해 주가가 50%나 폭락했다. 서버와 프린터를 꾸준히 판매하는 휴렛팩커드의 주가가 낮아지면서 스티브에게 매수할 마음이 생겼다.하지만 그는 부도덕한 경영진 때문에 포지션을 줄였다. 스티브는 “사실 불행하게도 무모한 우리 예측이 거의 다 맞아떨어졌다.오히려 그보다도 안 좋았다”고 말했다.
블랙베리 제조회사 RIM은 포트폴리오에서 더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미 수익으로 그 힘을 입증했다. 약트먼의 펀드는 지난 몇 달간 주당 약 7달러에 RIM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그 후 주가가 12달러로 올랐다. “사람들이 정말로 블랙베리10이 출시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가가 움직였다.”
주식 이야기를 끝낸 후 스티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약트먼 펀드의 다른 큰 투자를 자랑했다. 바로 뜯어내고 개조하고 있던 새 사무실이었다. 회사 자산이 늘어나면서 부자 듀오를 만나려는 고객들도 늘어났다. 스티브와 회사의 또 다른 경영자인 제이슨 수보츠키가 함께 이 사무실을 설계했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래 두 층과는 달랐다. 한쪽 끝에는 시스코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TV 스크린이 들어찬 화상 회의실이 있었다. 또 매우 넓은 부엌과 반짝반짝 빛나는 현관 로비가 눈에 띄었다.
당연히 새 사무실은 검소한 곳에서 일하는 것을 가치투자자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돈과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돈도 유럽으로 잦은 출장을 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회의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완전히 반길 순 없지만 스티브와 제이슨이 더 현대적인 사무실을 갖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는 웃으면서 “비용이 일곱 자릿수를 넘어가면 둘이 그 돈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만족한 고객들이 기꺼이 돈을 보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