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BY Ryan Snook
올 3월 개봉한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는 오사마 빈 라덴의 추적과정을 그린 영화다. 유력 오스카상 후보로 꼽히는 이 영화에 대해 비평가들은 이 영화의 사실성에 갈채를 보냈다. 반면 일부 사람들은 미국 정보요원들이 고문과 협박을 통해 핵심 정보를 얻어내는 초기장면에 심한 거부감을 표명한다. 뉴욕타임즈는 이 장면을 놓고 '고문이라는 논란 많은 주제에 대한 전 국민 대상의 로르샤크 테스트'라고 평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커트 그레이 박사와 다니엘 웨그너 박사는 이와 관련해 좀 더 과학적인 실험을 수행한 바 있다. 두 사람은 피실험자의 손을 얼음물에 담그게 하는 고통을 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별도의 자원자들을 두 팀으로 나눠 A팀에게는 고문 과정을 옆방에서 모두 듣게 했고, B팀에게는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고서 피실험자가 정말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물론 피실험자는 실제 고문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두 연구자가 알고 싶었던 것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는 주변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달라지는 지였다.
실험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A팀은 피실험자가 유죄, B팀은 무죄라고 여긴 것이다. 필자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레이 박사에게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된 이유를 물었다.
"이것이 바로 인지 부조화에요. 고통 받는 사람과 가까이 있을수록 고통을 더 끔찍하게 느끼게 되면서 그 사람이 고통을 받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 녹음된 소리를 들을 경우 인지 부조화와 정반대의 효과가 발현된다고 한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고문행위에 대한 강한 반감이 오히려 고문을 정당화시켜주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끔찍한 고문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는 얘기다. 특히 영화에서는 이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고문장면이 관객들에게 가깝게 전달되고, 영화가 가진 친밀감 덕분에 관객들은 자신이 고문 행위에 연루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고문을 용납하게 되죠."
이를 확증 편향의 변형인 '근접 편향(proximity bias)'이라 하며, 모든 종류의 관측과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경계해야할 요소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든, 실제로든 고문을 바라보는 우리 일반인들도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로르샤크 테스트(Rorschach test) 좌우가 대칭인 데칼코마니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것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설명하도록 하는 방식의 심리검사법.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신념과 신념 또는 신념과 실제로 보거나 행동하는 것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는 현상.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을 바꿔서 이 불일치를 제거하려 한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가설이나 명제를 정답이라 확증해놓고,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 찾기에만 주력하는 경향. 쉽게 말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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