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BYVirginia Hughes
ILLUSTRATION BY Medi-Mation
1. 간질성 발작
전기 자극과 약물 방출로 흥분한 뉴런을 진정시키는 전극 어레이
지난 수년간 간질 환자들을 뇌심부 자극술(DBS)로 치료하려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환자의 뇌에 소형 전극을 이식한 뒤 발작을 일으켰을 때 전기 자극을 가해 증상을 멈추는 방법이다. 가장 최근의 임상시험 결과로는 시술 후 5년이 지나면 간질성 발작의 횟수가 69%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명 대단한 성과지만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생체의료공학자 드레이시 큐이 박사는 이보다 더 낳은 결과를 얻기 위해 전기자극과 항(抗) 발작 약물 투여를 동시에 수행하는 전극을 개발 중이다.
전극의 제조법은 이렇다. 먼저 금속 전극을 CNQX라는 약물과 모노머가 들어있는 용액 속에 담근다. 이를 전기분해하면 모노머들이 결합해 폴리머가 되는데 폴리머는 양(+)으로 대전된 전하이기 때문에 음(-) 전하인 CNQX를 끌어당긴다. 그 결과, 약물이 스며든 폴리머로 코팅된 전극이 완성된다.
"이 전극을 뇌에 이식한 뒤 발작이 일어났을 때 전류를 흘리면 폴리머 필름의 정전기 인력이 약해지면서 약물을 방출하는 원리에요. 쥐 실험에선 계속해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죠."
연구팀은 향후 간질에 걸린 쥐에게 이 전극을 실험한 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이다. 특히 연구팀은 이런 방식의 약물 투입이 간질 이외의 다른 뇌질환의 치료에도 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체의 방어기제인 혈액-뇌 장벽 때문에 뇌에는 효율적인 약물투입이 어려워요. 하지만 이 전극을 쓰면 효율적 전달이 가능합니다. "
2.치매
뇌의 정신 과정을 자극하는 전극 어레이
치매는 가장 잘 알려진 뇌질환이자 가장 치명적인 뇌질환이다. 치매에 걸리면 기억, 의사결정, 언어, 논리적 사고 등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기본 인지기능들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시어도어 버거 박사는 웨이크포레스트 의과대학 팀과 함께 지적 인지기능의 핵심 부위인 뇌의 전전두엽에 전극을 이식, 치매 증상의 악화를 막을 방법을 찾고 있다.
연구팀은 원숭이 5마리를 대상으로 전전두엽의 2번째 층과 3번째 층 사이, 그리고 5번째 층에 전극어레이를 이식했다. 두 곳을 오가는 뉴런 신호는 주의력 및 의사결정 기능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후 연구팀은 원숭이들에게 컴퓨터 게임을 가르쳤다. 트럭, 사자와 같은 만화그림을 한 장 보여준 뒤 90초가 지나서 여러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고 처음 본 그림을 찾는 게임이었다. 실험초기 두 곳을 오고간 뉴런의 전기 신호를 분석한 연구팀은 원숭이가 결정을 내리기 전 전극 어레이를 통해 그와 동일한 신호를 내보냈다. 그러자 원숭이들의 게임실력이 10% 정도 향상됐다. 특히 이 효과는 손상된 뇌에서 더 두드러졌다.
"원숭이에게 마약을 주사하고 게임을 시켰는데 실력이 약 20% 떨어졌죠. 그런데 전극 어레이로 전기 자극을 가했더니 평상시의 실력이 나오더군요."
물론 치매는 연구팀이 주목한 두 지점 외에도 뇌의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친다. 이 방식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향후 치매의 작용기전이 명백히 밝혀지면 영향을 미치는 모든 지점에 정확히 전극을 이식, 치매의 악화를 멈추거나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시각장애
유전자 요법 통해 신경절 세포를 시각세포로 변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질병에 의해 망막의 시각세포가 손상되면서 시력을 잃는다. 간상체와 추상체로 대변되는 시각세포는 인간 시력의 핵심으로, 이들이 눈으로 들어온 빛을 전기적 신경신호로 변환하면 뇌가 이 신호를 해석해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다.
이와 관련 최근 다수의 기업들이 손상된 시각세포를 우회, 시력을 높여주는 전극 어레이 임플란트를 개발했다. 카메라가 촬영한 시각정보를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전기신호로 변환, 시각세포를 포함한 망막세포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임상시험 결과, 이 장치를 장착하면 눈이 먼 사람도 사물을 식별하거나 매우 큰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장치는 극명한 단점이 있다. 10만개의 망막세포 중 약 60개만 자극하기 때문에 뚜렷한 시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미국의 레트로센스는 유전자 요법이라는 무기를 들었다. 대상은 망막의 표피층에 있는 신경절 세포(ganglion cell). 원래 신경절 세포의 역할은 시각세포의 전기신호를 뇌에 전달하는 것이지만 채널로돕신-2(ChR2) 유전자를 주입해 이들에게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이다. 수천 개의 신경절 세포를 시각세포로 변신시키는 것이라 보면 이해가 쉽다.
연구팀에 의하면 쥐와 원숭이 실험에서 주목할 만한 효과가 확인됐다. 전혀 보지 못했던 쥐가 유전자 요법 이후 자신의 주변에 있는 칸막이의 테두리를 식별했다고 한다. 이에 레트로센스는 내년 중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맹인이 된 9명을 대상으로 첫 임상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피터 프랜시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신경절 세포가 보내는 신경신호가 시각세포의 신경신호와 완벽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뇌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4.마비
팔다리를 제어하고 접촉까지 감지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척수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사지가 마비된 환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소식이 지난해 전해졌다. 뇌 임플라트, 즉 뇌에 전극어레이를 이식해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제어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 사지를 실제 인체만큼 정밀 제어하려면 인공 팔다리로부터 촉각 정보까지 전달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미국 듀크대학 미구엘 니콜렐리스 박사팀은 동작 제어와 촉감 전달이 가능한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를 연구 중이다.
연구팀은 원숭이 뇌의 두 부위, 구체적으로 근육운동을 관장하는 일차운동 피질과 촉각·압각·진동감각·온도감각 정보를 해석하는 일차 체감각 피질에 전극을 이식한 뒤 가상의 팔을 제어해 회색의 원 3개를 터치하는 컴퓨터게임을 시켰다. 초기에는 조이스틱으로 팔을 조종했지만 나중에는 생각만으로도 제어가 가능했다.
특히 연구자들은 원 3개가 서로 다른 질감을 지닌 것으로 게임을 프로그래밍 했다. 각 원을 터치할 때 전극이 원숭이의 체감각 피질에 다른 패턴의 전기신호를 보내는 것. 원숭이는 색깔이 아닌 촉감으로 먹이가 나오는 원을 찾아 터치해야 했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뇌 임플란트로 뉴런 신호를 착·발신할 수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연구팀은 올해 브라질에서 척수 손상 환자 10~20명에게 이 임플란트를 이식해 로봇 외골격을 조종하는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맞물려 니콜렐리스 박사는 양다리 마비 환자에게 외골격을 착용시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시축을 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5.청각장애
줄기세포로 손상된 청각 신경을 수리
지난 25년간 3만명 이상의 청각장애인이 달팽이관을 대체할 전자 임플란트를 이식받았다. 이 장치는 음파를 전기신호로 바꿔 청각신경에 전달하는 달팽이관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청각신경이 이 신호를 뇌로 보내 소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달팽이관과 청각신경이 모두 손상된 환자에게는 이 방법도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환자들도 청각을 회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영국 연구팀이 줄기세포를 활용, 손상된 청각신경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성장인자에 노출시켜 청각신경 뉴런의 전구체로 분화시키는 게 그것이다.
연구팀이 이렇게 만든 5만개의 전구체를 청각신경이 손상된 쥐의 달팽이관에 주입했더니 3개월 뒤 정상 쥐와 비교해 3분의 1 정도의 청각신경 뉴런이 생성되면서 평균 46%의 청력이 회복됐다.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날이 온다면 훨씬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소리를 듣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CNQX 6-cyano-7-nitroquinoxaline-2,3-dione
모노머 (monomer) 고분자화합물, 즉 폴리머(polymer)의 구성 단위가 되는 저분자량의 물질.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 뇌로 가는 모세혈관 벽의 내피세포들이 단단히 결합돼 있어 화학물질이 뇌로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보호 기제.
정신 과정 (mental process) 감각·지각을 통해 물체와 현상을 이해하고, 기억·추론 같은 사고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일련의 정보를 처리하는 정신적 과정.
간상체 (rod) 명암 식별에 관여하는 시각세포.
추상체 (cone) 색상 인식에 관여하는 시각세포.
광수용체 (photoreceptor) 광 자극을 수용하는 기관. 광 자극을 신경신호로 전환한다.
척수 (spinal cord) 척추동물의 중추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집합체. 척추의 안쪽에 위치하며 뇌와 말초신경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성장인자 (growth factor) 세포의 분열, 생장, 분화를 촉진하는 폴리펩티드(아미노산 결합체)의 총칭.
전구체 (precursor) 물질대사나 화학반응 등을 통해 특정한 물질이 되기 전 단계의 물질.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