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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의 FIU 금융정보 활용에 대한 제언

김승열의 'Law & Business'

국세청이 FIU(Financial Intelligence Unit·금융정보분석원)가 수집하는 금융정보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안을 제출했다. 이에 관해 최근 국회 청문회가 열리는 등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법리적인 관점에서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 교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세청이 FIU의 금융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에 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디지털 시대의 빅데이터 활용이나 사생활 보호, 금융의 '빅브라더'를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의 문제 등 법리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허용하는 국가들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국내 환경과의 차이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 미국은 법으로 금융정보 보호

먼저 미국의 케이스를 살펴보자. 과거 미국은 소위 '밀러 Miller 판례법'에 따라 금융정보 기록을 은행의 영업문서(Business Records)로 보고, 이에 대한 기관들의 접근을 폭넓게 인정한 바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국회는 이 판결이 부당하다며 관련법 제정(The Right to Financial Privacy Act)을 통해 금융정보에 대한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에 따르면 금융기관이 개인의 금융정보를 제공할 경우, 그 기관은 즉시 해당 개인정보의 주체에게 이를 통보해야 한다. 통보받은 개인은 이의신청을 통해 정보제공 행위를 중지시킬 수 있다. 금융정보를 보관하는 기관이 바뀌는 경우에도 역시 통보 의무가 주어진다. 다만 금융기관이 FINCEN(Financial Crime Enforcement Network: FIU에 해당되는 미국 기관)에 보고하는 경우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 국내 법이 규정한 개인 프라이버시권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금융정보에 대한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미국과는 그 접근방향과 시각에서 기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된 불행한 역사 때문에 국내에선 프라이버시 보호와 영장주의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가 되어 왔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7조에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2조에서 "압수, 수색 등 강제처분의 경우에는 반드시 영장에 의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프라이버시권과 영장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이 지닌 논란의 소지


금융정보에 대한 개인 프라이버시권 측면에서 현행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을 살펴보자. 이 법률의 핵심을 이루는 행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보고행위', '제공행위', 그리고 '요구행위'다. 고액거래 및 의심거래에 관해 금융기관이 FIU에 '보고'하고, FIU는 이를 분석하여 국세청 및 수사기관 등에 '제공'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이들 기관이 FIU에 해당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각 행위의 타당성을 보다 엄밀한 잣대로 따져 보자. 먼저 금융기관이 FIU에 일정한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는 한, 이를 인정하는 것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FIU가 이를 분석해 범죄 혐의가 높은 자료를 각 기관에 제공하는 것 역시 범죄예방 차원에서 그 타당성이 인정된다.

다만, 각 기관이 FIU에 일정한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선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수사'의 일환이어서 다소 강제처분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사기관이 특정 금융정보를 확인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더라도, 이러한 행위가 허용된다면 현행법상 규정된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는 이른바 '사후 영장'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규정에 배치된다. 헌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에도 이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요구' 행위는 프라이버시권의 측면에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 금융 '빅브라더' 등장에 대한 우려


이처럼 현행규정 자체에 위헌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 등 기관들에게 특정 금융정보에 대한 광범위한 직접 접근을 허용하려는 입법적 시도가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프라이버시권)을 부당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영장주의의 대원칙을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직접 접근을 허용하면, 경찰이나 검찰, 관세청 등 타 기관의 접근까지도 점진적으로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있다. 이럴 경우 국민의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가 가능할지 의심스러워진다.

권한 집중으로 국세청이 비대화될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대두된다. 이른바 빅데이터 시대를 뒤흔들 금융 '빅브라더'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세청이 조사 대상자 선정 등을 위해 이를 활용하기 시작할 경우, 자의적인 권한 행사 내지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지게 된다. 극단적으론 이러한 권한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탈세방지와 사생활 보호 '두 마리 토끼 몰이'


그렇다면 이 모든 우려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FIU의 인력과 기능을 대폭 확충하고, 그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이 될 것이다. FIU 스스로가 국세청이 금융정보에 직접 접근해 얻을 수 있는 분석결과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굳이 국세청의 접근성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FIU와 국세청과의 상호 피드백을 활성화하는 등 원활한 협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절한 견제와 균형 관계를 도모함으로써 FIU의 '중간분석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현행 특정거래정보보고법을 개정해, 국세청의 금융정보 요청이 있을 경우 사후 통보의무를 신설하거나 이의신청이 가능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탈세방지와 국민의 사생활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된 불행한 역사 때문에 국내에선 프라이버시 보호와 영장주의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가 되어 왔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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