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1.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 모군은 따뜻한 봄이 무섭다. 이때만 되면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져 하루하루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코가 막히고 머리가 아파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고, 밤에 잠을 이루기도 어렵다. 병원을 찾아가 봐도 임시방편일 뿐 매년 증상이 반복되고 있어 그야말로 '짜증 지대로'다.
#2. 직장인 조 모씨는 환절기만 되면 장소를 불문하고 터져 나오는 재채기로 직장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다. 중요한 고객을 앞에 놓고도 재채기 때문에 제대로 대화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해를 해줬던 직장상사도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이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환절기 불청객
환절기만 되면 불청객처럼 여지없이 찾아오는 알레르기성 비염. 코 막힘과 콧물, 재채기 등의 증상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전 세계 인구의 10~25%, 한국인의 16%가 겪고 있는 흔한 호흡기 질환이지만 쉽사리 치료되지 않는 만성질환인 탓에 환자들의 고통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알레르기성 비염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10년간 환자가 10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기존의 서양의학이 아닌 대체의학을 통해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알레르기 비염의 치료법은 원인물질과의 접촉을 막는 회피요법을 필두로 약물요법, 면역요법, 수술치료 등이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완전한 치료가 어렵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한 마디로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앞으로는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한방 치료, 정확히 말해 침술을 이용해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입증됐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의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최선미 박사팀. 최 박사팀은 최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진행된 임상연구를 바탕으로 침 치료가 알레르기 비염 증상을 완화한다는 사실을 규명해냈다.
이번 연구는 6년 전 시작됐다. 2008년 3월 한국에서 한·중 공동 알레르기 비염 임상연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서 예비연구가 수행됐다. 이후 그해 7월 중국에서 임상연구의 타당성을 조사한 뒤 양국 연구진이 합의 내용을 검토, 이듬해 1월 공동 연구에 돌입한 것. 한국에서는 한의학연 임상연구센터와 경희대학 한방병원, 중국에서는 중의과학원 광안문 병원, 북경 중의약대학 부속 동직문병원 등 4개 임상센터가 참여했다.
최 박사에 따르면 연구는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언어가 다른 만큼 용어도 달랐기에 협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 최 박사는 "정확한 프로토콜을 위해서는 환자관리, 침 기록 등에서 양국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하는데 용어가 달라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양국 연구진 20명이 통역을 대동하고 모여 연구내용을 조율했고, 기록하는 방법과 치료하는 방법 등을 표준화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냈다.
침술 치료 후 36.4% 증상 호전
임상연구는 총 238명의 알레르기 비염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를 위해 침술 치료를 수행할 실험군 97명, 플라시보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가짜 침술 치료군 94명,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을 대조군 47명이 무작위로 선정됐다.
실험군의 치료는 영향(迎香), 상성(上星), 인당(印堂), 합곡(合谷), 사백(四白), 족삼리(足三里) 혈을 4주일 동안 주 3회 시침했다. 가짜 침술 치료군의 경우 혈자리가 아닌 곳을 얕게 시침하는 방식을 취했다. 당연히 대조군은 평상시의 일상생활을 유지토록 했다.
그러는 동안 연구팀은 코막힘, 콧물, 가려움, 재채기 등 코와 관련된 알레르기성 비염의 대표적 증상들과 눈물, 두통, 가려움, 통증 등 2차적 증상을 면밀히 관찰했다. 또한 침술 치료가 유발할 수 있는 부작용을 확인하고자 활동, 수면, 감정 등의 기복이나 여타 불편한 사항들을 측정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두 달에 한번 꼴이었던 모니터링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중국 연구진이 기록한 데이터와 자료를 꼼꼼히 확인하고 분석하는 일은 난관 중의 난관이었다.
최 박사는 "데이터 분석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 한글로 표현된 내용이 모두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했다"면서 "이처럼 표준화된 데이터 관리가 중국 연구진에게는 낯선 작업이었지만 이번 연구로 그들도 많이 배웠다면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빠듯한 시간으로 인해 최 박사팀은 워커홀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계획된 일정을 처리해야했던 만큼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일쑤였다는 후문이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노력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실험군과 대조군은 물론 가짜 침술군과의 차이도 확연하게 나타났다. 코 관련 증상에서 대조군은 실험기간 동안 2.4%, 가짜 침술군은 24.6% 호전됐지만 실험군은 호전된 환자가 36.4%에 달한 것이다. 특히 이런 효과는 침술 치료가 종료된 뒤 4주일 이후에 재측정했을 때도 여전히 유지됐다.
2차적 증상 역시 가짜 침술군은 28.7%, 대조군은 4.1% 감소했지만 실험군은 29.8%나 감소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덧붙여 수면 등의 삶의 질 평가에서도 모든 항목에서 실험군이 치료 전과 비교해 37.4% 호전되면서 가짜 침술군(29.1%)과 대조군(4.6%)보다 눈에 띄게 향상됐다.
과연 침술이 어떤 기전을 거쳐 이 같은 효과를 낸 것일까. 최 박사는 "침술 치료가 코 점막 섬모들의 수송능력을 높이고, 호산성 백혈구(Eosinophil)와 면역글로블린을 감소시켜 항염 및 면역조절에 기여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면서 "침술이 향후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알러지(Allergy)'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최 박사는 "국제보완의학연구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반응이 고무적이었다"며 "알레르기성 비염 연구를 계기로 올해는 중국과 침술의 변비 치료 효과에 대해 공동연구를 수행키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침술의 효과는 치료가 종료된 뒤 4주일 이후에 재측정했을 때도 여전히 유지됐다.
플라시보 효과 (placebo effect) 약효가 없는 약을 진짜 약이라고 속여서 환자에게 복용시켰을 때 환자의 심리적 믿음에 의해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 ‘위약 효과’라고도 한다.
호산성 (acidophil, 好酸性) 산성 색소에 의해 염색되기 쉬운 성질.
면역글로블린 (immunoglobulin) 국부적 염증 반응과 내부 기생충에 반응하는 항체.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