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의 일상 생활용품들을 저렴한 값에 파는 곳은 없나? 노 브랜드 제품으로 이를 실현하는 업체가 있다. 바로 무인양품이다.
정경원 카이스트 디자인학과장
영어로는 ‘MUJI’, 한자로는 ‘無印良品’이라 표기하는 이 일본의 유통업체는 의식주 전반에서 쓰임새가 좋은 노브랜드(No Brand)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가격(affordable and reasonable price)’이라는 철학을 추구하는 무인양품은 개성과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단조롭게 보일 만큼 간결하게 디자인된 제품들을 직영 및 제휴 매장을 통해 공급한다.
다양한 브랜드의 공존
제품이라면 으레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있다손 치더라도 여러 종류의 브랜드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제조업체가 고유의 상표를 붙여서 널리 판매하는 것을 ‘내셔널 브랜드(national brand: NB)라고 한다. NB는 전국적으로 이름과 특성을 알려야만 판매가 되므로 광고비 등 부대비용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유통업체가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제품을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 PB)’라고 한다. PB는 생산원가를 절감하고 광고비를 없애 판매가격을 낮춘 브랜드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층을 파고들겠다는 판촉 전략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그렇다면 노 브랜드는? 아예 독자적인 브랜드를 붙이지 않음으로써 제품의 가격을 낮춘 상품이다. 1976년 프랑스의 하이퍼마켓에서 시작된 노 브랜드 운동은 브랜딩 비용을 절약해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재화를 서비스하자는 취지에서 전개되었다. 만일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거나 사고가 생겼을 때에는 판매점이 책임지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제네릭 브랜드(generic brand)라고 하는데, 제품에 브랜드 이름, 로고, 마크 등을 일체 표시하지 않고 아주 단순한 보통명사-예를 들어 간장, 비누, 수건 등-로만 표기하여 판매한다. 따라서 단순히 마진을 줄여 판매량을 늘리려는 ‘가격 파괴’와는 구분된다.
노 브랜드 전문 업체의 등장
무인양품은 1970년대 초반 일본의 슈퍼마켓 체인점 ‘세이유(Seiyu)’가 처음 PB를 만든 데서 태동되었다. 1973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제2차 오일 쇼크 여파로 일본 소비자들의 저가 상품 구매 경향이 높아짐에 따라, 세이유는 자체 PB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물건의 가격을 낮추느라 품질까지 저하된 NB를 납품 받아 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제품의 핵심가치에 중점을 두고 품질관리와 가격인하를 함께 도모했다. PB를 잘 개발해 거품을 걷어내면 30% 정도 가격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이유는 1980년 ‘무지’라는 PB제품 라인을 특성화했는데, 그 사업이 날로 번창해 1983년 노 브랜드 전문업체인 무인양품(이하 무지)을 설립했다. 무지의 창업을 주도한 기우치 마사오 대표는 유통 전문가답게 고객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비즈니스에 제대로 활용했다. 그는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과도한 소비를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일상용품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고객들이 그것을 아무런 가식 없이 사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CEO의 철학은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형성시켰다.
‘브랜드는 없지만 품질과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표방하는 무지는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간소화하는 등 가격에 낀 거품을 걷어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일본 내에 250여 개, 런던,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 160여 개, 국내에도 11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무인양품 디자인 철학의 진화
창립 당시부터 무지의 디자인 총괄책임을 맡은 사람은 저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이코 다나카였다. 아트디렉터로서 다나카는 무지가 추구하는 비전에 부응할 수 있게 제품, 매장, 광고 등 모든 요소들이 표현될 수 있도록 ‘간결’을 키워드로 디자인 전략을 수립했다. 무엇을 디자인하든 본질에 충실한, 다시 말해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함(simplicity)’의 디자인 철학을 정립했다. 표준적인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노 브랜드’의 정신을 디자인으로 잘 구현해낸 것이다.
그 후 2001년 무지의 제2대 아트 디렉터로 임명된 하라 켄야가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광고부터 제품 라벨까지 무지의 디자인 전략을 업데이트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까지 무지가 표방한 ‘이유가 있어서 싸다’는 철학은 값을 싸게 한다는 데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다. 반면에 켄야의 전략은 합리적인 낮은 가격대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싸구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디자인을 이성적으로 잘함으로써 가격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고가보다 더 멋지게 느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가구든 일상 용품이든 제품 하나 하나를 고가품처럼 보이게 하기보다는 ‘이 정도면 디자인도 적절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비운다’는 의미의 ‘공(空, emptiness)’을 키워드로 내세우고 장식이나 군더더기가 전혀 없도록 미니멀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무지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위기 극복에 기여하는 디자인경영
무지는 2000년대에 들어 수천 종에 달하는 거대한 제품군을 보유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도전에도 직면했다. 우선 성공을 경험한 직원들이 자기만족에 빠졌고,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조직구조가 관료화되어 기업문화가 경직되기 시작했다. 다이소나 유니클로처럼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무장한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나 매출이 줄어들자,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기적인 의사결정이 자주 이뤄졌다. 자체 브랜드 이미지의 관리는 물론 매장전략에서도 실패하여 규모와 물량만 커질 뿐 본연의 제품 아이덴티티를 잃기 시작했다.
무지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객과의 소통 확대, 자사 제품에 대한 치밀한 관찰, 외부 디자이너들과의 적극 협력을 추진했다. 우선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 고객들의 반응과 아이디어를 청취했다. 고객들이 갖고 싶은 제품의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올리면, 디자이너들이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제품을 디자인한 후 인터넷을 통해 고객들의 의견을 조사한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샘플을 만들어서 고객들의 선호도를 세밀하게 조사하고 상품화 여부를 결정한다. 휴대용 램프와 몸에 잘 맞는 소파(tight-fitting couch )처럼 100억 엔 이상 팔린 제품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발되었다.
둘째, 내부 관찰단을 매장에 파견해 고객들의 구매행태는 물론 매장의 관리상태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보고서를 기초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신상품을 기획했다. 나오토 후카사와가 디자인하여 유명해진 ‘벽에 거는 CD 플레이어’도 그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셋째, 15명의 상근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외부 디자이너들과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내부 상근 인력을 최소화하면서 재능이 뛰어난 외부 디자이너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무지는 창업에서부터 위기 극복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을 핵심 역량으로 활용하고 있다. 7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제품평가위원회’가 신제품 개발에서 최종평가까지 담당하며 무지답게 제품이 디자인되었는지 등을 판단하고 있다. 노 브랜드로 시작한 무지가 위기를 잘 극복하고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 비결은 바로 ‘굿 디자인’이 있었기 때문이란 얘기다.
정경원 교수는…
한국 디자인 진흥원장을 역임한 정경원 교수는 국내 산업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 본부장(부시장)을 지냈으며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