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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시대의 역외탈세 방지법

김승열의 ‘Law & Business’

조세 피난처로 널리 알려진 버진아일랜드의 비밀계좌에 한국인 명의의 검은 돈이 대거 예치된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크다. 스타벅스나 구글, 아마존 등 다국적 기업의 경우, 유럽에서 올린 막대한 수익을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국가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금융의 세계화와 함께 국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는 조세피난처 문제와 역외탈세에 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겸 KAIST 겸직 교수


OECD는 조세 피난처를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세금이 없거나 명목상의 세율만을 적용하는 곳, 둘째, 세법 적용상 투명성이 결여된 곳, 마지막으론 다른 정부와 정보공유가 제한된 곳이다. 통상적으로 라구안, 케이만, 버뮤다, 마살, 바하마, 버진 아일랜드 등이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조세피난처는 세제유인책이나 금융정보 비밀 보장 등의 유인책으로 해외자금을 끌어들임으로써, 여기서 발생하는 은행계좌 유지 수수료나 법인 설립 수수료 등을 주된 수입원으로 삼는다. 영국 자치령 버진 아일랜드의 경우, 카리브해에 위치한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개의 회사가 등록되어 있다. 소득세 등을 부과하지 않는 방법으로 유치한 수많은 해외기업들이 납부하는 막대한 수수료 수입 덕분에 이 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은닉 자산규모 세계 3위
이들 피난처에 유입되는 자금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대략 전 세계 GDP의 30%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국외 소득의 43%에 이르는 금액이 이들 피난처에 은닉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합법적으로 신고된 금액만 약 2조 원가량(2012년 기준)이 조세피난처에 송금되고 있으며, 이는 해외 직접투자액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유감스러운 건 우리나라의 조세피난처 은닉 자산 규모가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라는 사실이다.


탈세 유형과 추징 가능성
조세피난처 등을 통한 탈세 유형을 살펴보면, 전통적으론 해외 현지 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이를 스위스 비밀계좌에 입금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세피난처에 역외펀드를 설립해 계열회사에 부당자금 지원을 하거나, 외자유치를 가장해 주가를 조작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소위 ‘이전가격 조작’을 이용한 유형이다. 국내 법인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인 계열회사나 자회사를 세워 이 회사에 물건을 정상가보다 현저히 싸게 팔고, 그 회사가 다시 구매자에게 매우 비싸게 팔아 이에 따른 차액을 비자금으로 획득, 관리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해외투자는 외국환거래법상 한국은행의 승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를 거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이전가격 조작의 경우에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또는 현행 법인세법상 추징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정보 비밀주의의 완화
스위스은행의 고객 금융정보 비밀주의는 많은 불법자금이 스위스로 유입되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이에 미국정부는 스위스은행에 거액을 맡긴 자국민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고, 이들의 조세포탈을 도운 혐의로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에 7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비밀계좌를 소유한 자국민의 명단을 넘겨받기도 했다. 이후 스위스은행은 일부 세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비밀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나머지 조세피난처에서도 유사한 국제적 비난이 일어 점차 조세정보 공유의 확대 등 금융정보 비밀주의를 완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OECD 역시 조세피난처에 금융정보 제공 의무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각국 정부 또한 조세피난처와 조세정보 공유협정을 지속적으로 체결해오고 있다.


우리의 역외탈세방지 대책
조세피난처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론 해외 계좌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관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작년부터 잔액기준 10억 원 이상의 해외 계좌에 대해 신고 의무가 부과되었고, 내년부터는 예금계좌뿐만 아니라 채권, 파생상품으로도 확대되어 합계액이 50억 원을 넘으면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만약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이 가해진다.

미국은 모든 해외 금융기관에 대해 미국인 소유 은행계좌 정보를미 국세청에 통보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미국내 해당은행 이익의 30%를 과징금으로 매긴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시행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지만 해외 금융기관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조세피난처와의 조세정보공유협정이다. OECD가 지정한 35개 조세피난처 가운데 우리나라가 현재 가협정을 맺은 곳은 17개 정도다. 해외 금융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나머지 조세피난처들과의 정보공유 협정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내조세법령도 개인의 경우 ‘거주자’의 의미를 좀더 명확히 해야 하고, 법인의 경우 OECD의 조세조약 모델 등을 참조해 사업의 ‘실질적 관리장소’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남용되고 있는 이른바 ‘이중과세 방지조약’도 수익자 소유개념에 미비된 부분을 보완하고, 조세혜택 적격자의 범위를 보다 합리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인 역외탈세관리의 중요성
과거에는 경제범죄 사범이 해외로 도피한 후 공소시효만 넘기면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해외 도피기간에 공소시효를 중단시키는 입법 및 적극적인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을 통해 적절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외탈세 문제 또한 해외금융의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한 입법과 국가 간 협정을 통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불법자금의 은닉처를 차단시켜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자산의 유출을 방지함으로써 성장 잠재력의 저하 또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오늘날 세계 금융의 특징은 글로벌화, 디지털화로 요약된다. 국가 상호간 투명한 금융정보의 이동 역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재정위기에 직면한 많은 국가들 사이에서 역외자산관리 협력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역외탈세 방지대책을 수립하기에 좋은 타이밍으로 보인다. 다만, 무리한 법집행은 국제차명계좌를 통한 자금은닉 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불법에 대해선 엄격하게 처단하되, 역외계좌에 대한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등 정책집행과 운영에선 유연성과 합리성이 담보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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