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부대개발 경제 권역의 축이자 포춘 500대 기업 중 200개 이상의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지금도 글로벌 IT기업들이 몰려드는 곳. 청두는 톈푸(하늘이 내린 곳간)라는 별칭이 말해주듯이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으로 IT 기업 육성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쓰촨성의 성도다. 포춘코리아 기자가 ‘중국의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로 포춘 글로벌 포럼이 열리는 청두를 다녀왔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포춘은 매년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핫한 곳을 선정해 글로벌 포럼을 연다. 1995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개최했고, 중국에선 상하이, 홍콩, 베이징에 이어 청두에서 네 번째로 글로벌 포럼을 연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고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은 동부 연안의 풍부한 자금력과 중서부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지난 10년간 도로, 철도, 항공 등 교통·물류 인프라 구축해왔다. 앞으로는 이를 기초로 특색 산업을 육성하고 산업화, 시장화와 함께 대외개방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동부·중부와의 경제협력, 대외개방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서부권역과 동부권역의 격차를 해소해 현대화를 이룩한다는 것이 서부대개발의 발전 방식이다.
지금은 서부대개발 발전 단계 중 산업화와 시장화에 접어든 시기다. 포춘이 이런 시기에 서부대개발의 전진 기지인 청두로 세계의 리더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포춘 글로벌 포럼의 주제가 ‘중국의 새로운 미래’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번 포럼은 최근 주춤하고 있는 중국 경제가 ‘서부’라는 엔진을 달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 향방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 개발은 동부연안에 위치한 환발해(베이징, 칭다오, 선양, 다롄), 화동(상하이, 난징, 항저우), 화남(광저우, 홍콩, 타이베이)과 유일한 내륙 권역인 중서부(청두, 시안, 충칭, 정저우, 창사) 4대 권역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중서부 개발은 서삼각 경제권(청두, 시안, 충칭)이라 불리지만 청위 경제권과 관중-텐수이 경제권을 묶어서 칭하는 말이다. 청위 경제권은 쓰촨성과 충칭을 포함한다. 청두는 서삼각 경제권의 축이면서 동시에 충위 경제권에 속하는 인구 1,400만 명의 도시다.
“이곳은 거대한 IT기업 인큐베이터입니다.” 톈푸 소프트웨어파크의 CEO 크리스틴 두는 청두의 신도시에 위치한 중국판 실리콘밸리를 이렇게 소개했다. 430만㎡에 400여 개 기업, 4만 명이 근무하고 있는 이 곳은 근무자 평균 연령이 28~29세일 정도로 젊고 활력이 넘친다. 지금도 계속 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고 있어 추가로 단지를 건설 중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개발자금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경쟁력은 인력입니다. 51개 대학에서 매년 10만 명의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있고, 베이징, 상하이 등 동부로 진출했던 인재들도 다시 서부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IT산업이 특화되어 있고 주변 환경과 근무 여건이 좋은 이곳으로 우수한 인재가 유입되고 있죠. 그것이 바로 글로벌 기업들이 소프트웨어파크에 입주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크리스틴 두 대표는 중국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도 서부로 몰려드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도시화 속에서 자라난 지금의 젊은 층은 동부권의 각박해진 환경보단 삶의 질을 더 갈구하기 때문에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인프라와 새로운 기회가 많은 서부 지역으로 눈을 돌린다는 설명이다. 소프트웨어파크 내에 위치한 직원 기숙사는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면 이용할 수 있다. 냉장고, TV 등 각종 편의시설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또 청두시가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3개월마다 교통상황을 점검해 대중교통 노선을 재조정하고 있다. 소프트웨어파크에는 제너럴 일렉트로닉스, IBM, 인텔, 휼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지멘스, 머스크 같은 외국 기업과 레노보, 화웨이, ZTE 같은 대표적인 중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A, B, C단지까지 입주를 마치고 지금은 D단지를 건설 중에 있다.
C단지에는 현대상선이 입주해 있다. 해운업계에도 IT 바람이 불면서 이석희 대표이사(당시 현대상선 부회장)가 주도해 설립됐다. 현대상선은 작년 매출 8조 원의 절반 정도를 중국 기반으로 올렸고, 그 비중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곳은 해외 수금 및 선하증권(B/L) 데이터화 등 도큐멘테이션 센터 역할을 하고 있죠. 선하증권은 연간 48만 건 정도 취급하고 있는데 해운업 특성상 팩스로 자료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어와 컴퓨터에 능숙한 100여 명의 현지인을 채용했어요.” 설립부터 지금까지 법인을 이끌고 있는 정봉수 청두 법인장은 말한다. “중국의 상징은 판다인데, 판다는 온순함을 표시해요. 이곳 사람들은 판다를 닮았죠. 온순하고 가족 중심적이에요. 남자들은 가정에 충실하고 부드럽습니다. 여성의 지위도 상당히 높아요. 이곳에 들어오면 정부가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해주기 때문에 채용도 편리합니다. 동부 지역에 비해 인건비도 15% 정도는 저렴하고요.”
정 법인장은 입주의 가장 큰 매력이 인재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내 아쉬움도 드러냈다. “채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많으니 자연스레 이직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중국 특유의 만만디 정신이 여기에도 있어요. 고용하는 입장에선 인력 가동이 좀 불안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무실 분양과는 환경이 다르죠. 이곳에서 사무실 분양을 받으면 말 그대로 콘크리트 공간이 전부예요. 페인트, 전기시설 등 인테리어를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내륙임에도 현대상선이 청두를 선택한 이유는 풍부한 인력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와 독일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철도, 중서부 최대 공항인 솽류국제공항, 장강을 통한 내륙 물류 시스템 등 서부권 물류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 청두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 건물에는 세계최대 해운회사 머스크가 입주해 있었다.
포춘코리아가 청두를 방문하기 하루 전날 쓰촨성 야안시 루산현(청두에서 남서쪽 170km거리)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며칠간 수차례의 강한 여진이 계속됐지만 정부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피해는 거의 없었다. 9명의 인명 피해자는 모두 2008년 원촨 대지진에 대한 기억으로 건물에서 뛰어내리면서 사망한 경우라고 한다. 직접 목격한 청두 역시 평온했다. 오히려 지진 피해자를 돕자는 문구와 앰뷸런스에게 길을 양보하자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토마스 탕 청두시 고신구 개발국장 겸 대변인은 “이렇게 좋은 곳을 선택해 준 조상들에게 감사한다. 여긴 안전한 곳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두시 주변이 모래분지로 이뤄져 충격을 흡수했기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탕 개발국장은 또 “2008년 원촨대지진 이후 청두에 건설된 건축물은 대부분 규모 8.0이상을 버텨낼 수 있도록 내진 설계를 했다”고 설명했다.
청두는 지금 온 지역이 공사판이다. 60층 이상 초고층 빌딩 16개가 공사 중이고 단위면적으로 세계최대 규모의 글로벌센터가 완성단계까지 와 있다. 도심과 사방을 잇는 방사형 순환도로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지하철은 동시에 10개의 노선이 건설되고 있다. 올해만 3개(포춘 글로벌 포럼, 세계화상회의, 서부박람회)의 국제행사가 개최되기 때문에 도심 정비, 미화사업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강도 7.0짜리 지진이 청두시를 덮친 것이다. 청두 도심에 위치한 쓰촨성 한국인상회(한인회)에서 만난 신현종 회장은 “지진이 발생하고 나니 관광객 감소가 제일 걱정입니다. 방금 전에도 한국 항공사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항공권 취소가 계속되고 있다고 해요. 보시다시피 아무런 피해도 없고 평온한데 말입니다. 교민들이 1차 피해는 없어 다행이지만 2차 피해는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번 지진이 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인회 방문 후 곧바로 찾아가 만난 정만영 청두 한국총영사는 청두가 지진 안전지대라고 설명하며 “이번 지진이 안타까운 재해이긴 하지만 청두 경제에는 활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2008년 원촨대지진 때 투입된 막대한 복구 지원금(1조 7,000억 위안, 한화 300조 원)이 결과적으로 청두 GDP를 급상승시켰고 청두 시민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청두시에 운행되는 구식버스가 친환경 버스로 교체된 것도 그 자금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루산 지진 때문에 투입될 중앙정부의 지원금과 복구 사업이 청두를 비롯한 청위 경제권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다. 정만영 총영사는 우리 기업들이 지진 복구에 나서 청두 시장 진출에 도움을 받은 사례도 소개했다. “당시 두산인프라코어와 락앤락 등이 지진 복구를 지원하면서 인지도와 함께 입지를 다졌죠.” 두산인프라코어는 쓰촨성 대지진 당시 지역 주민들을 위해 굴착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와 물품 등을 지원했고, 이 같은 활동은 이후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계기가 됐다.
청두는 서부 지역 중에서도 소비성향이 가장 강한 도시다. “청두 사람들은 5,000위안을 벌면 1만 위안을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도심에만 26개의 대형 백화점이 있고, 각종 SPA 브랜드 가운데 매출액 세계 1위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에스티로더와 같은 명품 화장품 최고 매출점도 청두에 있다. 시내엔 주로 폭스바겐, BMW, 벤츠, 렉서스 등 대형 세단이 넘쳐난다. 도시화율은 67%로 서부대개발 7가지 중점 목표 중 하나인 도시화율 45%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롯데그룹은 이런 청두의 내수 시장을 겨냥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진장구에 50만㎡ (약 15만 평)에 달하는 부지를 매입해 백화점, 호텔, 대형마트, 영화관, 테마파크 등이 들어서는 롯데타운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올 8월에는 세계최대 규모의 컨벤션 센터인 글로벌 센터 내에 롯데백화점을 오픈한다.
진장구 롯데타운 건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청두롯데자산개발 민경태 사장은 “한마디로 개발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라고 청두를 평가했다. 구매력이 있는 젊은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체 경제성장률과 서부지역 성장률을 상회하는 청두의 GDP 증가율과 도시화율 또한 매력적이다. 롯데그룹은 매출 부진으로 2012년 베이징 롯데백화점을 철수시킨 과거의 아픈 기억을 청두에서 날려보내려는 듯했다.
마지막 취재지로 찾은 영사관에서 정만영 청두 총영사는 청두의 지리적 이점을 강조했다. “지난 10년 동안 청두는 철도와 항공, 도로 등 기본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해안이 아닌 내륙에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유는 지도를 보시면 알게 됩니다. 주변의 좋은 시장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요.”
청두-유럽 유라시아 화물철도가 완성되면 청두에서 독일까지 13일이면 갈 수 있다. 운송시간이 20일, 경비는 30%가 절감되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선 대단히 유리하다. 솽류 국제공항은 중국 4대, 중서부 최대 국제공항으로 현재 24개 국제 여객 및 화물 노선에 취항 중이다. 앞으로 국제선 54개, 국내선 141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이미 화물 정기편을 취항 중이다. 또 쓰촨성 주변 4대강 정비와 루저우항 운송루트 정비 등 장강 수운을 통해 내륙 간 물류 이동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 정만영 총영사는 말한다. “청두에는 중서부 중 가장 많은 12개국 영사관이 위치하고 있어 기업들에겐 유리한 점이 많죠. 기업들이 이렇게 한 지역에 영사관이 몰려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쓰촨성에선 전 세계 아이패드의 70% 이상, 전 세계에 공급되는 인텔 칩 2개 중 1개가 만들어진다. 시안에 짓고 있는 단일규모 최대인 삼성 반도체 공장, 쯔양에 준비 중인 현대자동차 상용차 공장 등 서부권 주요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물류도 청두를 통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제갈량은 유비의 신하가 된 후 ‘천하삼분’의 책략을 유비에게 진언했다. 그 후 유비가 세운 촉의 수도가 청두다. 중국은 공산화 이후 줄곧 청두를 통신, 전자부문의 R&D 거점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이제 서부대개발의 중심축이 된 청두는 IT와 물류를 선택했다. 중국의 새로운 미래가 이젠 청두에서 싹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