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를 인수한 동부그룹은 오랜 꿈이었던 전자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됐다. 워크아웃 13년 만에 새 주인을 찾은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동부대우전자로 이름을 바꾸고 종합가전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길고도 혹독한 시절이었다. 대우전자는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2002년 회사 이름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바꾸고 구조조정을 세 번이나 해야 했다. 15개였던 사업부는 3개로 줄었고 매출액은 4조 원에서 1조 2,000억 원대까지 떨어졌다. 임직원 임금도 동결됐다. 한때 1만 명이 넘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1,450명만 남았다. 오랜 기간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대우일렉트로닉스에게 지난 2월 15일은 부활절과 같았다. 13년 만에 새주인을 맞았다. 동부그룹이 대우일렉트로닉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동부, 전자사업 수직계열화 구축
지난 4월 1일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에 동부그룹과 대우일렉트로닉스 임직원 10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동부대우전자로 이름을 바꾸고 글로벌 톱 수준의 종합전자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2017년까지 매출액 5조 원, 영업이익 3,000억 원 달성이라는 목표도 천명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신입사원 공채도 5년 만에 재개했다. 동부대우전자는 4월 1일을 새로운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말한다. “대우일렉트로닉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대환영입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피땀 흘려가며 2009년 이후 5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어요. 그래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일를 하면서도 불안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해결된 느낌입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동부그룹이라는 새 주인을 얻었고, 동부그룹은 대우일렉트로 닉스를 통해 종합전자회사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동부그룹은 앞으로 전자사업을 그룹의 핵심 주력사업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는 전자산업 확장을 위한 동부그룹의 ‘화룡점정’이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1983년 반도체 웨이퍼 사업에 진출할 때부터 종합전자회사를 꿈꿔왔다. 2002년 아남반도체(현 동부하이텍)를 시작으로 2010년에는 다사로봇과 에이테크(현 동부로봇), 2011년에는 화우테크(현 동부라이텍), 알티반도체(현 동부LED)를 인수하는 등 전자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동부는 시스템 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을 비롯해 LED 패키징과 응용제품을 생산하는 동부LED, 정밀소재 기업인 동부CNI 등 전자소재와 부품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말한다. “동부그룹 전자부문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소비재는 동부LED의 LED 조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면 전자사업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죠.”
동부그룹은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이 생산한 반도체를 동부대우전자의 가전기기에 사용하고, 동부로봇이 만든 산업용 로봇을 동부대우전자 생산라인에 설치할 수 있다. 전자 계열사가 아니더라도 동부제철이 생산하는 냉연강판 역시 가전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사업연관성이 큰 편이다. NICE신용평가는 동부그룹이 전자부문에서 오랜 사업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동부대우전자와 향후 밀접한 영업관계를 맺어 전자 부문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평가했다.
동부그룹은 ‘탱크주의 부활’을 꿈꾼다. 대우전자는 1990년대 초·중반 국내 가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탱크주의를 내세웠던 대우전자는 백색가전 제품, 특히 냉장고와 세탁기 등에서 시장점유율 30% 수준을 확보하며 시장 선두를 다투기도 했다.
매출액도 4조 원대에 이르렀다.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PDP TV 양산 제품을 출시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우사태로 1999년 그룹에서 분리,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반도체, 무선중계기, 방위산업 등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사업 구조를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청소기, 에어컨 등 가전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후 다시 한번 TV와 에어컨 사업부를 매각했다.
대우, 종합가전회사로 성장
이재형 동부대우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4월 1일 사명 변경을 발표한 뒤 “큰 폭의 매출 확대보다는 질적인 변화와 수익성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종합가전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세부 전략을 내놨다.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 중저가 제품시장 지배력 강화와 신규 브랜드 개발, 중남미 등 이머징마켓 시장 확대, 신제품·신모델·핵심기술 개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생산구조 전환 등이다. 올해는 12~13%매출 성장을 목표로 잡았다. 동부대우전자는 지난해 매출 1조9,000억 원에 영업이익 128억 원을 거뒀다.
동부가 꿈꾸는 종합 전자 업체의 면모를 갖추려면 갈 길이 멀다. 일부에선 동부그룹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목표를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전자업계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하고 있다. 두 회사는 냉장고, 세탁기, TV와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자제품 시장을 최소 90%이상 점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프리미엄 백색가전 분야에 집중하면서 고가의 럭셔리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말한다. “올해 매출 목표 2조 원 달성이 쉬운 게 아닙니다. 수출기업이다 보니 환율 등이 불리한 상황입니다. 내수도 LG나 삼성이 가격할인정책을 펼치고 있어 상대하기가 버겁습니다. 과거 LG나 삼성이 프리미엄정책으로 밀고 나갈 때 대우는 실속형 제품을 내놨어요. 경쟁사들이 주요 선진 시장의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을 때 신흥 시장에 주력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오히려 수출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가전시장이 이원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프리미엄 백색가전에 집중하는 사이 동부대우전자는 중저가 시장을 집중 공략할 것이란 예상이다. 국내 가전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프리미엄 제품이 전체가전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품질이 뒷받침되는 중저가 제품이 다양해지면 앞으로 중저가 가전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할 거예요.”
이에 대해 삼성과 LG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큰 부담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 관계자가 말한다. “디지털 가전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옮겨진 상태입니다. 동부대우전자가 국내 가전시장 판도를 변화시키기는 힘들 거라고 봐요.” 전통적인 가전 개념으로는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동부대우전자도 백색가전에만 머물러서는 생존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2015년부터 청소 로봇, LED 조명, 소형 가전을 선보이고 2017년까지 가정 의료기기, 스마트 가전으로 제품군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말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동부그룹의 투자로 경영이 정상화되면 동부대우전자의 제품력, 브랜드 가치로 세계적인 가전회사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과거 영광 찾을 수 있을까
동부대우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중심에서 종합가전 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동부대우전자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아웃소싱OS팀이다. 이들의 역할은 우수한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를 찾는 것이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설명한다.
“아직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동부대우전자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우수한 ODM업체를 발굴할 겁니다.” 동부대우전자가 OS팀을 신설한 것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성장잠재력이 높은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확대하려는 의도다. 우선 1단계는 에어컨, 청소기, TV, 전기오븐, 식기세척기로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그 이후 청소로봇, 종합주방가전, 소형가전 등으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이 때문에 OS팀은 에어컨, 청소기 등 동부대우전자가 밝힌 제품 포트폴리오 1단계를 제조할 수 있는 업체들을 주로 찾을 것이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동부그룹이 자신감을 갖고 있는 배경에는 동부대우전자가 가진 해외 네트워크와 브랜드가 있다. 회사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장점을 살려 일단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승부를 펼칠 예정이다. 동부대우전자는 경기도 광주를 포함해 중국 톈진(2개)과 멕시코, 말레이시아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고 해외 30여 곳에 판매법인도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동부그룹 계열사 제품의 해외마케팅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말한다. “과거 대우전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중동이나 동유럽, 중남미지역에서 대우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요. 워크아웃 기간 중에도 수출로 먹고 살았을 정돕니다. 일단 해외시장 개척으로 자신감을 얻은 뒤 국내 시장에서 삼성, LG와 경쟁할 겁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신흥 시장에서 현지 특화제품을 많이 판매한다. 베트남에서는 냉장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전자레인지, 칠레에서는 세탁기, 페루에서는 양문형 냉장고가 각각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오랜 워크아웃과 5차례 매각 무산 속에서도 제품력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벽걸이형 드럼세탁기가 대표적이다. 김치냉장고가 빌트인으로 들어간 3 도어 냉장고와 싱글족을 겨냥해 냉장실을 위로 배치한 콤비 냉장고도 빼놓을 수 없다.
동부그룹은 내년까지 대우일렉트로닉스 설비투자와 신제품 연구개발에 1,5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가 말한다. “워크아웃 이후 삼성, LG 등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기술개발에도 꾸준히 매진해 왔습니다. 홈네트워크와 홀로그램, PDP 등의 기술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어요.” 가전제품군에서 는 대부분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대우의 고급 백색가전 브랜드인 ‘클라쎄’ 냉장고 제품은 시장점유율 10%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인기다. 여기에 본격적인 마케팅 활동이 이뤄지면 과거 대우전자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게 동부대우전자의 설명이다.
동부대우전자가 가전시장에서 과거 ‘탱크주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여부는 얼마나 빨리 시장 변화를 따라잡느냐, 또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부의 옷을 입은 대우전자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