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다 그룹 Wanda Group의 창업주 왕젠린 Wang Jianlin회장은 세계적인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 왕국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위상도 제고하려 하고 있다.
왕젠린은 비상장업체인 완다 그룹의 설립자이자 회장으로, 중국 최고 부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손님의 여행 일정을 챙기는 법을 알고 있다. 지난 4월 어느 날, 그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역주: 오스카상을 수여하는 미 영화인 단체의 호크 코치 Hawk Kock 회장을 자신의 걸프스트림 G550 전용기로 베이징에서 황해의 항구 도시인 다롄 Dalian으로 초대했다. 다롄 국제영화제를 한창 준비 중에 있는 왕은 아카데미 영화제(Oscar)가 공동 브랜드로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왕은 코치에게 자신이 건설한 미래 스타일의 해안가 컨벤션 센터, 별 5개짜리 힐튼 호텔, 완다 그룹 사무실용 건물, 쇼핑 센터,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 단지 등을 소개했다. 중국 동북부에서 히말라야까지, 내몽골(Inner Mongolia)에서 남중국해(South China Sea)에 이르기까지 그가 건설한 부동산 왕국의 독보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다롄 정부 관계자를 만나 12가지 코스의 만찬을 하고 늦게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왕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사교 클럽에 가자고 권했다.
왕은 사교 클럽 회원이고, 그의 아내 린닝 Lin Ning은 그 클럽의 주인이다. VIP 라운지에는 댄스 플로어와 대형 TV,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다. 커피 테이블은 접시에 담긴 파인애플과 수박, 육포, 아몬드, 그리고 레드 와인 잔들로 가득했다. 마이크 스탠드에는 가라오케 마이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치는 그날 새벽 5시 30분 LA공항을 출발해 중국에 도착했기 때문에 피곤할 만도 했다. 그런데도 ‘When Sunny Gets Blue’라는 곡을 제법 잘 부르는 모습이 의외였다. 하지만 왕의 공연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더 놀라웠다. 올해 58세인 이 부동산 거물은 일류 테너이기도 하다. 그는 끊임없는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몽골부터 티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방 민요들을 소화했다. ‘The Beautiful Grassland Is My Home’이라는 곡을 저렇게 잘 부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지게 보였다.
왕은 포기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영리하고, 기회를 잘 포착하고, 야망이 무척 큰 인물이다. 반면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임에도 중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동시대 중국 신흥 재벌들처럼 왕은 변방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의 성장 과정을 잘 포착해 큰돈을 벌었다(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왕의 재산은 83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최고 부자이자 주류업계의 거물인 종칭허우 Zong Qinghou보다 20억 달러 정도 적다).
왕은 진화하는 중국 소비자 기호를 이용하는 전략으로 돈을 벌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파트, 그리고 사무실과 상점, 레스토랑, 영화관, 가라오케 센터를 차례대로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시설을 한곳에 아우른 주상복합을 건설했다. 왕의 상징물이 된 69곳의 완다 플라자 Wanda Plazas는 고층건물이자 다목적 자생 소도시 같은 개념이다. 완다 플라자는 중국에서 2~3주마다 하나씩 세워지고 있다. 왕은 현재 많은 완다 플라자를 건설 중이다. 그는 이를 통해 향후 3년간 회사 매출(top line)이 연간 30%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쯤이면 완다그룹이 500억 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현재 왕은 대담하고 다소 모험적인 신사업에 착수했다. 이번에도 중국 정부가 기업과 국민들을 위해 최근 구체화한 국가 비전에 코드를 맞추려 한다. 그는 국제 투자를 장려하는 중국 정부의 희망에 따라 해외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캔자스 시티에 위치한 에이엠시 엔터테인먼트 AMC Entertainment를 27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역사상 비상장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가장 비싸게 인수한 사례다. 왕은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영관을 보유한 인물이 됐다. 그는 올 하반기 런던과 로스앤젤레스에 완다 호텔을 신축할 예정이다. 환하게 불을 밝힌 완다 그룹 로고를 영어와 중국어로 세계 주요 도시의 고급 호텔에 달겠다는 그의 계획의 일환이다.
그는 또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소비재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여행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완다그룹은 북한 접경 지역에 스키 리조트를 오픈했다. 향후 몇 년간 중국 남부와 중부 지역에 3개 리조트를 추가 건설해 고급 해안가 호텔, 디즈니 스타일의 놀이 공원, 라스베이거스 스타일의 공연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다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제작소를 세울 계획이다. 영화와 TV 공연에 대한 완다그룹의 관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후속 조치인 셈이다.
자신의 목표에 관한 질문에, 왕은 통역사를 통해 완다그룹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더불어 중국의 위상도 한 단계 올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 전 대통령 캘빈 쿨리지 Calvin Coolidge의 발언을 인용하며, 미국과 영국 같은 강대국의 권력과 영향력은 위대한 기업의 권력과 영향력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즉, 위대한 기업들이 ‘나라를 성장시켜 강대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왕은 중국 기업들도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가 꿈꾸는 차이니스 드림의 핵심이다. 자신의 기업처럼 모든 기업들이 부를 축적해 영향력을 확대하면,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왕의 성공 스토리는 대단히 중국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자수성가한 인물과 매우 흡사하다. 그는 시골에서 성장했다. 나이를 속여 15세에 군입대를 했고, 군사학교와 통신과정을 통해 대학을 마쳤다. 30대에 사업을 시작한 그는 25년이 지난 현재 중국 최고의 상업 부동산 제국-총 자산규모가 600억 달러에 달한다-을 보유하고 있다. 근소한 차이로, 세계 2위의 부동산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거의 70여 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향후 몇 년 이내에 세계 1위 부동산기업이자 미국쇼핑몰 개발사인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 Simon Property Group을 제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왕은 지난 2010년 베이징에서 기업가들로부터 평생 업적상을 수상했다. 시상을 한 인물은 왕의 오랜 친구이자 가끔 공동 투자를 하는 류찬즈 Liu Chuanzhi였다. 그는 레노버의 창업주이자 회장이기도 하다(추가 정보를 원하면 ‘Can Lenovo Do It?’ 기사를 참고하라). 류는 참석자들에게 왕의 아버지가 부르주아와 싸웠던 붉은 군대(Red Army)의 전역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왕을 쳐다보며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부친이 당신을 싫어하는가? 아니면 좋아하는가?”라고 농담을 던졌다.
중국판 트위터에 잇따라 올라온 글에 따르면, 왕은 당시 크게 놀랐다. “류가 원래 나를 위해 준비했던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왕은 곧 정신을 차리고, 가벼운 농담으로 그 순간을 넘기려 했다. 그는 연로한 부모를 위해 (청두 쓰촨시의 보안시설이 잘 갖춰진 완다 커뮤니티에) 집 한 채를 지어드렸더니, 그들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왕은 “그들이 비록 과거에는 부르주아 타파를 목표로 살았지만, 지금은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의 부친 왕의권은 102세 노인으로, 쓰촨성의 외진 시골에서 태어난 농부 출신이다. 그는 매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군대에 입대했다. 대장정(Long March)에서 살아남은 그는 국민당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고, 한국전에서 미군과 싸우기 직전에 제대했다. 그리고 티벳 근처에 있는 쓰촨성의 아바 Aba라는 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삼림 관리직을 맡았고 당의 지시로 아내 진가린 Qin Jialin과 결혼했다. 부부는 5명의 아들을 키웠고, 그중 젠린이 장남이다.
진가린은 통역을 통해 왕이 “형제들의 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오전에 일하러 나가면 나머지 동생들을 잘 보살폈다. 부모가 심야 정치회의에 참석하는 날이면 마을 식당에서 저녁을 나르기까지 했다.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의 장남으로서 왕도 군인의 운명이었다. 그는 1969년 입대한 후 빠르게 진급했다(27세에 연대장이 됐다). 그 과정에서 개인 성취와 보상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됐다. 추후 기업가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이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1985년, 군사력 증강보다는 경제 발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군인 100만 명 감축을 요구했다. 왕은 사직서를 내고 다롄시 정부의 국장직을 맡았다. 시를 위해 일하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느 국영부동산개발 회사를 알게 됐다. 초기 투자금은 필요 없고, 부채만 떠안으면 되는 조건이었다. 왕은 인수 후 회사를 회생시켰지만 한계를 느꼈다. 결정 과정에서 정부 간섭이 너무 심하고, 보상과 인센티브에 대한 통제도 과도했다. 그는 1992년 민영화를 위한 시범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회사 이름을 다롄 완다그룹으로 짓고, 본사를 베이징으로 옮겼다. 완다그룹이라는 이름은 장수, 풍요로움, 그리고 번영을 의미하는 두 단어를 합친 것이다.
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왕은 엄청나게 부유하지만, 그의 재산이 부모의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큰아들이 지난 4월 쓰촨성을 강타한 지진 피해자를 위해 160만 달러의 성금을 약속했고, 매년 중국의 최대 기부자 리스트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기업가 양성과 교육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2년 전에는 1억 5,600만 달러를 난징에 있는 15세기 사찰 복원에 쓰도록 기부하기도 했다. 이는 단일 기부금액으로 중국 역대 최대 규모였다(왕은 자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당시 약간 ‘들뜬(carried away)’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왕은 “과거에는 대개 부자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젠 부자가 원한다면 성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왕은 군대의 엄격함과 정확성을 완다그룹 경영에 적용했다. 현재 회사 임원들 대부분은 남자다. 왕처럼 그들 모두 검은색 머리를 하고 있다(왕의 경우는 지나치게 검다. 또 올백으로 넘긴 헤어스타일을 고집한다). 대체적으로 검은색 양복과 하얀색 셔츠, 검은색 넥타이를 착용한다. 본사 구내 식당은 모든 직원들에게 하루 세끼를 무료로 제공한다. 물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한다. 실리콘 밸리처럼 아무 때나 여러 번 식사하지(grazing) 않는다. 왕은 출근은 일찍 하고 퇴근은 늦게 한다. 일년에 띄엄띄엄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한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예술품 수집과 가라오케다. 왕은 완다 그룹의 송년 모임에서 매년 노래를 부른다.
일주일에 한 번, 보통 토요일 오전에 왕은 모든 완다 프로젝트를 검토한다. 회의는 몇 시간씩 지속된다. 왕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 기획 담당자와 건축가들이 오가며 보고를 한다. 물론 앉지 않고 선 채로, 왕 앞에서 기획안을 설명한다. 그는 금테안경 너머로 하나하나씩 기획안을 검토한다. 하얀색 플라스틱 줄자로 보행자 도로를 재보고 인상을 쓴다. 다시 보행자 도로를 그려본 뒤, 기획안을 옆으로 밀쳐두고 지도를 살펴본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옆으로 치우고 기획안을 본다. 만족할 때만 승인 사인을 낸다.
왕의 업무 스타일이 지나치게 꼼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완다그룹에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성과로 보여왔다. 아울러 이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할 때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처음 기획 단계부터 토지 매입, 그리고 마무리 건축 단계까지 완다 프로젝트는 보통 18~28개월가량 걸린다. 자체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자료를 분석하고, 왕이 새로운 건물이나 복합단지에 필요한 수백 가지의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준다. 완다 임원들은 프로젝트가 늦거나 예산을 초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설명한다. 수십 개의 중국 회사들이 매년 완다 그룹을 방문해 경영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지금까지 왕의 평판은 스캔들로 훼손된 적이 없다. 부와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특히 부동산 업계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모든 완다 프로젝트는 토지 매입부터 시작한다. 알다시피, 중국의 모든 토지는 정부 소유다. 완다 그룹의 사업이 정부 관료의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사업 협조 대가로 뇌물을 기대한다(완다 그룹은 원래 다롄을 기반으로 1990년대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다롄 시장은 나중에 랴오닝성 성장이 된 보시라이 Bo Xilai였다. 한때 공산당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던 보와 그의 아내 구카라이 Gu Kailai는 2011년 영국 사업가 살인 사건에 연루됐다. 보는 공산당에서 출당된 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왕은 사업 초기부터 부패를 경계했다고 강조한다. 정부 관료에게 뇌물을 제공하면 단기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공을 이룰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직원들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완다 그룹에선 임의대로 쓸 수 있는 현금출납이 거의 없다. 모든 지출은 그 내역이 기록된다.
왕은 지금까지 외부 자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간혹, 그는 레노버의 류 회장과 이팡 그룹 Yifang Group의 창업주 선 서썅 Sun Xishuang 등 기업가 친구들에게 공동 투자를 제안했다. 왕은 “모든 사람들이 자주 모여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은 매우 좋은 기회”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조만간 완다그룹은 아마도 홍콩에서 기업 공개를 할 것이다. 지난봄 완다그룹은 상장기업 헨리 커머셜 프로퍼티 Hengli Commercial Properties의 지분 65%를 인수, 우회상장(Backdoor listing)의 길을 열어두었다. 지분 인수 발표 다음 날, 헨리 주가는 거의 5배나 폭등했다.
완다그룹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외부 자본뿐만 아니라 전문성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 관광과 엔터테인먼트에 승부수를 던진 완다그룹의 핵심 사업은 우한 지역의 80억 달러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복합 단지다. 우한은 상하이에서 서쪽으로 500마일 떨어진 후베이성의 수도다. 우한에는 이미 대형 완다 프라자가 들어서 있다. 고급 호텔과 놀이 공원, 그리고 첨단 기술 무대 공연이 뒤를 이을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 파트너로는 영국 건축가 마크 피셔 Mark Fisher가 참여하고 있다(그의 회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회식 무대를 꾸몄다). 또 한 사람은 벨기에 출신의 프랑코 드라곤 Franco Dragone이다. 초대형 뮤지컬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에 참여했던 인물로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공연 기획자”를 자칭하고 있다.
드라곤이 4월 어느 오후에 사업진행 보고를 위해 완다 이사회실로 들어갔다. 그는 “앞으로 우리가 청중들에게 보여줄 내용을 미리 화면으로 시연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문을 연 뒤 맥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안전줄도 없이 8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번지 다이버들, 개폐식 대형 공연장, 보디 수트 *역주: 원피스 형식의 수영복 스타일 속옷를 입은 댄서들, 온갖 종류의 특수효과 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펼쳐졌다. 드라곤은 “중국 전체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는 “여러 요소를 한데 묶어 좀 더 단순한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가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왕은 사업 초창기 이후 프로젝트에 이토록 흥미를 느껴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당시는 완다그룹이 주택용 부동산 개발에서 레스토랑과 쇼핑몰 등 상업용 부동산 개발로 첫 도약을 했을 때다. 그때처럼 지금도 비슷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규모는 월등히 커졌다. 그의 신규 투자 프로젝트가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부자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동산이 갖는 한계를 넘어, 디즈니와 뉴스 코퍼레이션같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원대한 포부다. 이 두 회사는 그가 항상 언급하는 롤 모델이다. 왕은 “상업 부동산 개발에서 문화와 여행으로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왕은 최근 미국에 다녀왔다. 투자에 적합한 부동산을 알아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 뉴욕 시장과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Antonio Villaraigosa LA 시장을 만났다. 또 프로듀서 하비 웨인스타인 Harvey Weinstein과 마이클 린튼 Michael Lynton 소니 픽처스 CEO 같은 엔터테인먼트 거물들과도 회동을 가졌다. 제이미 다이먼 Jamie Dimon 제이피모건 CEO도 만났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만석인 G550 전용기가 한 번 주유로 베이징에서 뉴욕까지 날아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결국 앵커리지 Anchorage에 기착해 재급유를 해야 했다.
이를 은유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에서 아파트와 사무실 건설로 큰돈을 번 부자가 있다.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하면 재산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멀리 나갈 수 있을까? 그는 초장거리 G650 비행기를 추가로 구매하고자 한다. 이 전용기를 타고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멀리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말이다.
"왕 회장은 위대한 기업이 한 나라의 국격을 올리고 강대국을 만든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