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둘리’와 ‘뽀로로’는 어린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라바(LARVA·애벌레)’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지지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급성장하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옐로우와 레드 속에서 다양한 창조경제의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포춘코리아가 ‘라바’의 제작자인 김광용 투바N 대표를 만나 ‘90초의 미학’ 속에 녹아 있는 창조경제의 요소들을 더듬어봤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한국 토종 캐릭터 라바는 뉴욕 52번가에 산다. 회색 빛 도시에 사는 원색(노란색과 빨간색)의 애벌레 두 마리가 다양한 에피소드로 도시를 환하게 바꿔놓는다. 대사 없이 90초 동안 행동과 표정으로만 웃기는 슬랩스틱 애니메이션 라바. 논현동 사옥에서 만난 김광용 투바N 대표는 기자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각박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라바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소 엽기적인 웃음 포인트가 꼭 하나둘씩 있습니다.” 김광용 대표는 라바 기획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라바는 지금 콘텐츠 업계에서 뜨는 캐릭터다. 아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의 적수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각박한 세상을 사는 어린이’나 ‘아이들이 좋아할 캐릭터, 색상, 단순한 반복’ 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았다. 웃음을 주고 싶은 대상이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저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 혼자보단 엄마, 아빠, 삼촌, 할머니가 함께 보는 게 더 좋잖아요. 시장 반응도 20대 이상 남성들로부터 먼저 나왔고 그 후 전 연령대로 이어졌습니다.” 김광용 대표는 라바가 짧지만 가족들이 함께 보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길 바랐다는 얘기다.
세심한 독자라면 기사의 첫 줄을 읽고 ‘왜 한국 토종 캐릭터가 뉴욕에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라바는 세계 시장을 목표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로벌 문명의 상징과 같은 뉴욕이 라바의 무대가 된 거죠.” 이 말을 듣는 순간 얼마전 인터뷰를 진행할 때 들은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형 창조경제의 성공을 위해선 세계화를 전제로 창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2011년 3월 첫 방영을 한 라바는 현재 21개국과 방영권 계약을 맺은 상태다. 또 아시아, 유럽 10여 개국과 계약을 앞두고 있다. 라이선싱 계약 역시 아시아, 남미지역을 포함한 현지 28개 에이전트를 선정해 진행했고, 미국, 일본, 중국 등과도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론칭 후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해외 진출을 성사시킨 사례는 드물다. 기획과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이미 세계를 목표로 한 김 대표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90초의 미학’이라 불리는 이 짧은 콘텐츠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첫째는 제작비의 궁핍, 다시 말해 환경의 결핍 때문이었어요. 휴대폰에 연동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두 번째 이유였고요. 90초짜리 콘텐츠는 라바 이전에 2003년부터 제작했습니다. 매체가 점점 더 다변화 될 것이라 예상했고 그에 따라 짧은 동영상이 시장에 더 적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는 통찰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실패했어요. 하지만 그 콘셉트를 유지했고 결국 빛을 보게 됐죠.”
김광용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스마트 디바이스가 콘텐츠 유통의 중심이 된 요즘, 동영상의 재생시간은 시청자들의 콘텐츠 주목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90초라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스토리는 스마트폰을 통한 재생뿐 아니라 버스, 지하철, 편의점 같은 곳에 존재하는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의 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김광용 대표는 투바N의 가장 큰 자산을 묻는 질문에 답했다.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상상력,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이 더 중요합니다. 기술력이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원천은 결국 사람이니까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라바N은 자신들의 강점인 하이테크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가치로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라바라는 콘텐츠를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로 꼽는 이유다. 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은 기기와 인력, 시간 같은 자본을 오랜 시간 투자해야 하는 산업이다. 그래서 혹자는 ‘기다림의 산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투바N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을 터이다. 김 대표는 라바 성공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제작은 자신 있었지만 실패를 거듭했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투자자나 유통업자들이) 찾아 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이었죠. 사업화를 위해선 콘텐츠 만큼이나 마케팅, 유통에 대한 이해와 기획도 필요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땐 제작비용도 늘 아쉬웠어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이런 부족한 부분을 지원받았습니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겐 그건 꿀물과도 같은 거였어요. 버틸 수 있는 힘을 거기서 얻었죠. 그 힘으로 다시 도전 할 수 있었고요.”
그럼 90초의 짧고 강렬한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스 토리 기획팀이 있긴 하지만 모든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직원들이 웃고 즐거워해야만 스토리로 선정해 제작에 들어가죠. 근무시간이든 식사시간이든 에피소드나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걸 듣고 재미나게 각색해 라바 스토리를 만들어요. 우리 회사 전 직원들은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통해 서로 교감하고 있습니다. 그 직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죠. 지금 우리 직원들 중 일부는 뉴욕에 가 있습니다. 라바의 무대를 직접보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내 의사소통과 아이디어 교류가 활성화 되어 있다면 라바 이외의 콘텐츠도 구상하고 있으리라 여겨졌다. “매 분기 각자의 새로운 캐릭터 기획안을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그 자리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발전시키는 아이템들이 있죠. 그렇게 얻은 아이템을 가지고 이미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광용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라바라는 콘텐츠가 창조경제와 부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김 대표는 쑥스러운 듯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희 직원은 현재 65명 정도예요. (제작하는 데) 충분한 인력은 아닙니다. 반드시 협력업체가 필요해요. 외부인력과 기술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있죠. 또 유통이나 제조와 관련해서도 사업의 확대에 따른 파급효과가 큽니다. 콘텐츠 산업은 다양한 산업군을 기술과 융합시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어요. 그걸 OSMU(One Source Multi Use)라고 하죠. 그 중심에 상상력이 있는 거고요. 그런 면에선 라바도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겠죠.”
콘텐츠 산업의 확장성이 크다면, 창조경제는 성장동력을 중시하는 대기업에서도 관심을 가질만한 영역이 아닐까? “콘텐츠와 애니메이션 분야는 대기업이 하기 어려운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오랜 시간 자본 투자가 필요합니다. 최소 3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죠. 성공여부는 알 수 없는 상태로요. 결과와 시간을 중시하는 대기업 조직은 그런 불확실성에 뛰어들기 쉽지 않아요. 제조업처럼 중간에 제품을 가지고 가치평가를 하기도 어렵고요.”
김광용 대표와 투바N에게 라바의 성공은 어떤 의미일까? “라바를 통해 맺어지는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만의 안정된 사업 플랫폼을 구축할 겁니다. 이를 통해 3개 정도의 성공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라바의 성공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것으로 가치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비즈니스와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열었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라바는 언제 성충이 될까? 빙그레 웃던 김 대표가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말했다.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 디지털 사이니지: 기업들의 마케팅, 광고, 트레이닝 효과 및 고객 경험을 유도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툴로 공항이나 호텔, 병원 등 공공 장소에서 방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특정한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디지털 영상 장치. 기존 상업용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DID)에 주요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관리 플랫폼까지 종합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