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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맥주 열전

국내 맥주시장이 뜨겁다. 특히 개성시대를 맞아 ‘맛’을 내세우는 수입맥주의 기세가 무섭다. 올 상반기에만 20% 넘는 폭풍성장을 했다. 현재 국내에서 팔리는 수입맥주 브랜드는 200 개가 넘는다. 세계 각국 대표 브랜드들의 각축 속에 3강 체제를 구축한 버드와이저, 아사히, 하이네켄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얼마 전 부서 야유회를 준비하던 모 기업 총무팀 마 대리는 혼이 났다. 장기자랑 상품으로 수입맥주를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수입맥주 종류별로 세 병씩만 배달해 주세요”라고 주문했을 때, “전체 종류별로 다요?”라며 놀라던 마트 직원의 태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마 대리는 쿨하게 “야유회 가서 마시려고요”라며 별 생각 없이 넘겨버렸다.

사무실에 배달된 맥주를 보며 마 대리는 기겁을 했다. 얼핏 봐도 10박스가 넘었다.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배달 직원의 설명에 부장의 분노가 폭발했다. 마 대리는 억울했지만, 속으로 삭여야 했다. “마트가 수입맥주 전문점도 아닌데, 판매하는 수입맥주 종류가 100여 개가 넘는단 말이야?”

수입맥주 시장의 성장세가 무섭다. 저도주이면서도 고품질을 원하는 소비자 트렌드, 제조사 및 유통사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등이 배경이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수입맥주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2년 동안 40%가 넘게 늘어났다. 2010년 1억4,120만 병에서 지난해 1억9,900만 병으로 5,690만 병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맥주시장은 4.2% 성장하는 데 그쳤다.

수입맥주 브랜드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서 파악한 현재 유통 중인 수입맥주 브랜드는 200여 개가 넘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유통되는 수입맥주 종류는 20여 종에 불과했다.

수입맥주 판매는 유통점의 성격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개별 유통점에 따라 수입맥주 점유율과 개별 브랜드 순위에 차이가 크다.

편의점(CVS·Convenience Store)의 경우 전체 맥주 판매량 중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19.7%(2012년 GS25 기준)이다. 브랜드 순위는 아사히가 22.3%로 가장 높고 그 뒤를 하이네켄(14.3%)과 버드와이저(12.1%)가 뒤따르고 있다.

대형마트는 편의점보다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낮다. 2012년 롯데마트 기준 16.6%다. 아사히가 17.4%로 역시 가장 많고 하이네켄(14.4%), 기네스(7.6%) 등의 순이다. 편의점과 달리 1, 2등과 3등의 격차가 크다. 세계 판매 1위 브랜드이자 편의점 판매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던 버드와이저는 점유율이 0.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유통점 판매를 종합해 순위를 매기면 다소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수입협회에 따르면, 2013년 2월 기준 버드와이저가 16%로 1위, 아사히가 같은 16%지만 소수점 이하 자리에서 밀려 2위, 하이네켄이 12%로 3위이다. 대형마트 수입맥주 점유율이 0.1%에 불과한 버드와이저가 전체 판매량에서는 1등이다.

이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류 유통시장을 알아야 한다. 복수의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보통 수입맥주 회사들은 하이퍼마켓이나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 CVS 정도에만 물건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아사히와 하이네켄하이네켄이 1, 2등이죠.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이런 업체들 외에 흔히 구멍가게라 불리는 소규모 가게에서의 매출도 상당하거든요. 개별 점포 매출이야 앞의 세 유통채널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 수가 엄청나다 보니 전체 매출량에서는 소규모 가게들 매출이 압도적입니다. 버드와이저가 이 구멍가게들을 꽉 잡고 있어요. 다른 수입맥주 회사들은 커버리지가 안돼 못 들어가고요.”

버드와이저가 작은 점포들까지 커버리지가 가능한 것은 오비맥주의 유통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사의 종류에 따라 판매 순위에 큰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 판매량에 있어서는 버드와이저, 아사히, 하이네켄 빅3 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일본 맥주들의 판매 호조 속에 아사히가 공격적인 시장 확대 정책으로 버드와이저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양상이다. 빅5에는 호가든, 밀러가 추가된다.

빅3 브랜드 중 국내 상륙이 가장 빨랐던 브랜드는 하이네켄이다. 하이네켄은 1980년부터 국내 유통을 시작했다. 당시 하이네켄은 동양맥주(현재 오비맥주)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생산과 유통을 맡겼다. 1988년 동양맥주와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되면서 소규모 사업자들의 병행수입으로 2003년까지 겨우 명맥을 이어가다 2003년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본사에서 100% 자회사인 하이네켄코리아를 설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이네켄코리아는 네덜란드 본사 공장에서 직접 맥주를 가져와 유통시키고 있다. 하이네켄 맥주는 현재 198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두 번째로 들어온 브랜드는 버드와이저다. 1987년 하이네켄과의 라이선스 계약 만료를 앞둔 동양맥주가 위탁생산 및 판매 라이선스를 맺어 국내에 유통하게 됐다. 광주광역시 오비맥주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세계 판매량 1위 맥주로 세계 8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미국이 본산지다. 미국 맥주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아사히는 3강 수입맥주 브랜드 중 가장 최근에 들어왔다. 첫 입점 시기는 2000년으로 롯데칠성음료에서 수입·유통했다. 2004년 롯데아사히주류가 설립된 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했다. 롯데아사히주류는 롯데칠성음료가 85%, 일본 아사히맥주가 1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국내 입점은 가장 늦었지만 2005년부터 연평균 40%씩 성장하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일본 No.1 맥주 브랜드다. 세계 70여 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세 브랜드는 입점부터 현재까지 각기 다른 마케팅 전략을 펼쳐왔다. 흔히 알려진 수입맥주 브랜드의 톱다운 방식 마케팅은 하이네켄이 원조다. 1980년 첫 입점 당시엔 하이네켄이 거의 유일한 수입맥주 브랜드였다.

유희문 하이네켄코리아 마케팅부 이사는 말한다. “당시 마케팅은 고급화 전략이 전부였습니다. 수입맥주라는 타이틀 자체가 이미 프리미엄이었죠. 일반 상점에서는 거의 팔지 않고 고급 식당, 호텔 등에서만 유통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동양맥주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짧은 기간에 끝나면서 유통망이 확장되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됐죠.”

2003년 하이네켄코리아가 설립된 이후부터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키면서도 판매 저변을 넓히는 전략’으로 마케팅이 이뤄졌다. 최근 수입맥주 시장이 가열되면서 여러 브랜드들이 출혈 경쟁을 하고 있지만 하이네켄은 동요하지 않는다.

유 이사는 말한다. “하이네켄은 판매에 있어서도 네임 밸류가 있는 유통사들하고만 계약을 합니다. 프리미엄 유통이죠. 단순히 ‘술을 마시고 싶어서’ 하이네켄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선택하는 거죠. 그렇다 보니 하이네켄을 판매하는 곳, 판매하는 방식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시골마을의 구멍가게에서 하이네켄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하이네켄일까요? 하이네켄은 현재 198개국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자국 소비량을 제외한 조사에서는 글로벌 톱이에요. 단순히 한 짝을 더 팔고 안 팔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브랜드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버드와이저는 국내 론칭 첫해인 1987년부터 최근까지 ‘글로벌한 맥주, 대중적인 맥주’를 모토로 마케팅 활동을 펼쳐왔다. 정통 아메리칸 라거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며 ‘수입맥주지만 비싸지 않은 맥주’로 대중적인 브랜드가 됐다. 이는 글로벌 버드와이저의 마케팅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버드와이저는 마케팅 전략을 수정했다. 국내 론칭 후 24년간 같은 이미지만 내세우다 보니 어느새 낡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좀 더 트렌디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내세울 예정이다.

버드와이저 홍보를 맡고 있는 정의현 오비맥주 프리미엄 마케팅 부장은 말한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국내 시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정통 아메리칸 라거’ 타이틀만으로도 먹히던 시절이었습니다. 경쟁하는 수입맥주 브랜드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2000년대 초부터 수입맥주가 주목 받기 시작하더니 경쟁 브랜드들이 하나둘 입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버드와이저는 마케팅 전략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어요. 글로벌 버드와이저가 마케팅 전략의 변화를 용납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전략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한 거죠. 너무 익숙한 브랜드다 보니 ‘흔한 브랜드, 특이하지 않아’ 이런 이미지가 될까 봐 걱정입니다.”

아사히는 수입맥주 시장에서 후발주자에 속한다. 아사히가 국내에 입점한 2000년에는 이미 유명 해외 브랜드 상당수가 국내에 론칭해 있었다. 같은 일본 맥주인 기린, 삿포로도 아사히보다 먼저 들어와 있었다.

아사히의 초기 마케팅 전략은 대부분의 수입맥주사 마찬가지로 톱다운 방식이었다. 유명 마트나 편의점에는 공급을 하고 있었으나, 주된 판매처로 공략한 곳은 고급 호텔들이었다. 완만한 성장을 이어가던 아사히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신우복 롯데아사히주류 마케팅 팀장은 말한다. “2004년 11월 롯데아사히주류가 탄생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롯데칠성음료 산하 주류팀에서 분리돼 독립된 사업을 하다 보니 아사히 브랜드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죠. 또 당시 일본식 식문화가 유행한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식 스타일의 음식점, 주류점이 늘기 시작했는데, ‘일본풍을 내기 위해 술도 일본 것을 쓰자’ 해서 아사히가 들어가게 됐죠. 이들 음식점이 프랜차이즈 등으로 성장하면서 아사히도 같이 성장하게 됐습니다.”

수입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 새로 론칭하는 해외 브랜드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브랜드들은 공격적인 가격 할인판매 정책과 신선한 이미지를 등에 업고 점유율을 늘려 나가고 있다.

신우복 롯데아사히주류 팀장은 말한다. “점유율이 떨어지는 건 감수해야죠. 새로 나온 상품이라면 누구든 한번 사용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니까요. 아사히를 고르려던 소비자가 옆에 새로 나온 브랜드를 보고 선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웬만큼 유명한 브랜드들은 다 들어와 있고, 상위 브랜드의 경우 충성고객도 상당히 확보된 상태이기 때문에 전체 판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정의현 오비맥주 부장도 같은 생각이다. “최근 맥주창고들의 판매 데이터를 받아보면 재밌는 현상이 있습니다. 과거엔 소비자가 선택하는 브랜드의 폭이 굉장히 넓었는데 최근 들어선 다시 상위 10개사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새로운 브랜드를) 호기심에 한번 마셔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자기가 마시던 브랜드로 되돌아가는 거죠.”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평가도 있다. 유희문 하이네켄코리아 이사는 말한다. “여러 브랜드가 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위 브랜드들에게 더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 론칭하는 브랜드 하나하나가 결국은 수입맥주 전체에 대한 광고거든요. 신규 브랜드가 론칭할 때마다 기존 브랜드들은 지속적인 반사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수입맥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도 부수적인 효과라 할 수 있죠.”

새로운 수입맥주 브랜드들이 공격적인 마케팅 드라이브를 거는 와중에도 세 브랜드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다. 신규로 진입하는 브랜드들 중에도 아직 위협이 될 만한 상대는 없다는 평가 때문이다. 현재 수입맥주 시장 열풍은 몇 해 전 먼저 일어난 와인 시장 열풍과 같다는 분석도 있다. 4~5년 전만 하더라도 와인 열풍을 타고 온갖 와인 브랜드가 난립했었으나 현재 남은 건 상위 몇 개사뿐이다. 살아남은 몇 브랜드들이 전체 파이를 나누고 있는 양상이다. 수입맥주 시장도 와인 시장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까? 그리고 현재의 빅3는 미래 파이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수입맥주 시장은 당분간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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