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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유해 발굴단

DOWNED<br>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락해 70년 가까이 태평양 해저에 잠들어 있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자율무인잠수정(AUV)의 활약상.

20013년 3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아마추어 고고학자 패트릭 스캐넌이 길이 12m의 쌍동선 갑판 위에 서서 팔라우 제도 서쪽의 석호(潟湖) 속에 가라앉은 항공기를 찾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필리핀에서 800㎞ 정도 떨어진 이곳으로 달려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 중에 격추된 미군 항공기를 수색하고 있다. 항공기의 잔해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를 조종사의 유해를 찾기 위함이다.

그가 속한 벤트프롭(BentProp)이라는 단체에서는 ‘프로젝트 리커버(Project Recover)’라는 이름으로 이들 전사자의 유해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스캐넌은 수색할 곳을 정하기 위해 2차 대전을 겪은 인근주민들과의 면담과 군사 기록 분석, 전쟁 이후 손으로 그린 지도 등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이날 탐색에는 새로운 믿음직스러운 도구가 하나 추가됐다. ‘레무스(Remus)’라는 이름의 지능형 자율무인잠수정(AUV)이 바로 그 주인공.

쌍동선 근처의 보트에서 두 명의 기술자가 어뢰처럼 생긴 레무스를 꺼내 물속에 넣자 후방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레무스는 해저면 3m 정도 위에서 로봇청소기처럼 스스로 석호 이곳저곳을 잠항하면서 측면주사 소나를 이용해 해저의 2차원 지도를 매핑했다. 스캐넌에 의하면 반사파의 강도 분석을 통해 지도상에서 금속(항공기)의 존재를 파악할 수도 있다.

첨단 해양연구장비는 벤트프롭 같은 단체의 작업능률을 크게 향상시켜준다. 하지만 웬만한 중소단체에서 보유하기에는 그 가격이 너무 고가다. 레무스, 쌍동선 등 스캐넌이 가져온 장비들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하 스크립스해양과학연구소(SIO), 미 해군연구소의 자금지원을 받는 델라웨어대학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두 대학의 해양학자들은 이렇게 벤트프롭의 활동을 도우며 해저 유해 수색과 관련한 신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이날 탐색의 수석과학자로 참석한 스크립스 해안관측 연구개발센터(CORDC)의 에릭 테릴 박사는 지난 몇 년간 레무스를 활용, 팔라우 제도 주변의 해수 순환을 연구했었다.

“과거에는 무인 수중 플랫폼을 운용하려면 센서의 작동 상태와 플랫폼의 위치 확인, 그리고 배터리 교체를 위해 연구시간 대부분을 투입해야 했죠. 그러나 오늘날의 시스템은 마음껏 거칠게 운용해도 무방할 만큼 기술이 발전했어요. 현재 해양학계는 이들 기기를 위한 고감도 센서 개발과 지능화·자율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테릴 박사와 스캐넌이 팔라우 제도에서 만났을 때 벤트프롭은 까다로운 해저환경, 다시말해 빠른 해류와 굴곡이 심하면서 산호초가 즐비한 지형에서 항공기 잔해를 찾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었고, SIO는 그런 환경에서 해양순환모델 및 첨단 이미징 시스템을 시험 중이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이 협력자적 관계로 발전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는 게 테릴 박사의 전언이다. 이후 SIO와 델라웨어 대학은 레무스, 카메라, 소나, 무인기 등 무려 60패키지의 장비를 팔라우 제도의 프로젝트 리커버팀에게 보냈다.

“해저의 항공기를 찾는데 왜 무인기가 필요하냐고요? 팔라우 제도에는 맹그로브 나무들로 빽빽한 습지가 많아 항공기 잔해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을 때도 있어요. 이때는 무인기가 가장 효과적인 수색장비죠.”

올해 스캐넌의 목표는 레무스를 투입했던 팔라우 제도 서쪽에서 격추당한 것으로 판단되는 B-24 폭격기를 찾는 것. 해양학자들과 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이전보다 한결 수색이 용이해지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상에선 마체테, 바다에선 스쿠버 장비가 저희가 가진 최첨단 도구였죠.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요. 두발로 걸어 다녔던 사람이 갑자기 초음속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팔라우 제도는 1920년대에 상품과 용역을 태평양을 건너 전달하는 데 활용됐던 일본의 주요항구 중 하나였다. 전략적 가치를 인식한 일본이 이곳에 비행장을 건설했고,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해안에 수백개의 벙커, 터널 등 방어시설도 구축했다.

그러던 1944년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 공격의 교두보를 구축하고자 팔라우 제도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다. 그리고 지상군의 상륙작전에 앞서 팔라우 제도 서쪽의 산호초 지대와 항구에 모여 있던 일본 군함들을 격침시키기 위한 항공작전을 펼쳤다.

그해 9월 미 해병대가 펠렐리우섬에 상륙했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끔찍했다. 일본군 1만명과 미군 1,700여명이 전사하며 2차 대전 동안 태평양 전투에서 벌어진 군사작전 가운데 최대 인명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벤트프롭의 추산에 따르면 팔라우 제도에서 항공작전이 개시된 시점부터 종전시까지 미군 항공기 200여대가 격추됐다. 이중 40~50대의 항공기와 그 항공기의 승무원 70~80명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스캐넌은 사실 해양학이나 고고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는 의사이자 바이오기업 조마(XOMA)의 설립자다. 그런 그가 팔라우 제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33년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당시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 중에 2차대전 중 미국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호가 격침시킨 일본 군함을 찾으러 온 탐사팀이 있었어요.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현지 안내인을 고용해 또 다른 잔해가 있는지 찾아봤죠. 그때 B-24 폭격기의 한쪽 날개를 발견했어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팔라우 제도의 역사를 공부했고, 그곳에 더 많은 항공기 잔해가 수장돼 있음을 알게 됐다.

“추락한 항공기의 승무원 중 대다수가 추락 시의 충격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가능하다면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그들을 고향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여정이 시작됐다. 수년간 팔라우 제도를 홀로 찾아가 단서를 찾아 헤맸고, 급기야 1996년 벤트프롭을 창립해 자신과 뜻을 함께 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그들과 함께 지금까지 만리타국의 정글과 바다를 종횡무진하며 60대 이상의 항공기 잔해 위치를 확보했다.

“지난해 현지의 어부들이 팔라우 제도 서쪽 수중에서 우연히 손상이 거의 없는 항공기의 잔해를 발견했어요. 그 사실이 다이빙 샵에 전해졌고, 다이빙 샵 사장이 잔해의 사진을 벤트프롭으로 보내줬죠.”

사진을 판독한 결과, 코르세어 전투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왼쪽 날개에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지만 캐노피가 열려 있었다. 이는 조종사가 탈출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였다.

“무려 65년 만에 발견된 겁니다. 이 사례만 봐도 전사자의 유해를 품고 있는 멀쩡한 상태의 항공기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돼요. 저희 추산으로는 팔라우 제도 서쪽 바다에만 B-24 폭격기 1대를 포함, 미군용기 8대가 미발견된 채 잠들어 있습니다.”

이중 벤트프롭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B-24. 조종사, 부조종사, 기관총수, 폭격수, 무전수, 항법수 등 10~11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기에 유해발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팔라우 제도 인근 해역에서 총 4대의 B-24가 격추됐고, 2대는 전쟁 후 발견됐다. 그리고 지난 2004년 세 번째 B-24의 위치가 바로 벤트프롭에 의해 확인됐다.

“이 항공기의 발견 사실을 펜타곤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에 알렸고, 잔해 속에서 8명의 유골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회수된 유골들은 본국으로 송환돼 알링턴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어요.”

벤트프롭은 2차 대전 중 촬영된 사진을 통해 마지막 네 번째 B-24가 팔라우 제도 서쪽의 산호초 지대로 향하고 있었음을 알아냈다. 추가 조사결과, 승무원 중 2명은 낙하산으로 탈출했지만 일본군에 체포됐고, 나머지는 항공기와 운명을 함께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선 갑판 위에서 스캐넌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그 B-24의 비행루트를 잘 알고 있어요. 승무원 2명이 탈출한 시점의 진행방향도 정확히 알죠. 이 두 가지 정보를 더해서 수색에 나서고 있는 만큼 멀지 않아 추락지점을 정확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팔라우 제도에 배치된 수색팀의 공식 본부는 산호초연구재단(CRRF)의 2층에 있다. 그러나 드롭 오프(Drop Off)라는 노천 식당이 팀원들에게는 실질적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원정이 시작되고 며칠 뒤부터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은 매일 저녁식사를 위해 이곳으로 몰려와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델라웨어 대학의 해양학자 마크 몰린 박사가 노트북을 열더니 레무스 AUV가 촬영한 소나 이미지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거칠고도 붉은색을 띤 이미지가 마치 화성을 촬영한 듯한 느낌을 줬다. 어떤 이미지에는 깊은 세굴(洗掘)이 보였고, 어두운 해구(海溝)가 나타난 이미지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특징적 지형지물에 호머 심슨, 크라잉 베이비, 스폰지밥 무덤 등 나름대로의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무튼 이처럼 레무스 등을 통해 항공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질이 탐지되면 다이버가 직접 그곳으로 들어가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그때 몰린 박사가 직사각형 물체가 보이는 이미지를 한동안 들여다본 후 소리쳤다.

“항공기를 발견했어요!”

사람들이 몰려와 이미지를 확대해보니 항공기의 날개와 동체 뒷부분이 확실해 보였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그들의 모습은 옆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어떤 일본인의 눈길을 끌었다. 그가 다가와서 목을 내밀어 컴퓨터를 보려고 하는 순간 몰린 박사가 급히 노트북을 닫았다. 자칫 항공기 잔해의 위치가 공개되면 일반인 다이버들과 유물탐사꾼들이 몰려들어 훼손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CRRF의 본부에서는 잔해 발견 내용에 대한 브리핑이 이뤄졌다. 먼저 SIO의 프로그래머인 폴 로이터가 구글 어스 영상을 스크린에 띄운 다음 잔해의 위치를 표시했고, 그 위에 소나로 스캔한 잔해 이미지를 오버랩시켰다. 그러자 테릴이 레이저포인터로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직선의 테두리가 밝게 보이죠? 그리고 여기와 여기에 긴 그림자가 있네요.”



그는 레이저포인터로 잔해에서 약 45m 떨어진 곳을 다시 가리키며 그것이 수상항공기의 플로트(float)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전직 스카이다이버이자 할리우드 스턴트맨이었던 자원봉사자 다니엘 오브라이언이 그 말을 받았다.

“플로트가 저렇게 멀쩡하다면 동체가 수면에 닿았을 때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자 해군조종사로 퇴역해 델타항공에서 기장으로 일하고 있는 플립 콜머가 수상항공기 관련 서적을 뒤적이더니 덧붙였다.

“처음에는 일본군의 장거리 전투기 ‘제로(Zero)’라고 생각했는데 저게 수상항공기라면 형체가 비슷한 미국 항공기는 하나밖에 없어요. 바로 ‘OS2U 킹피셔(Kingfisher)’죠.”

오브라이언의 설명에 따르면 2차 대전 중 킹피셔 항공기는 대개 적진의 관측이나 조종사 구조 임무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당시 항구에 정박해 있던 군함에 대공화기가 있었어요. 격추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날아와 수면에 내려앉는 위험을 감수했다면 물에 빠진 누군가를 구조하려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벤트프롭은 2대의 킹피셔가 임무 수행 중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서쪽 산호초 지대는 가장 유력한 추락 지점 가운데 하나였다. 항공기 잔해가 킹피셔가 맞는지, 그리고 실종된 2대 중 어느 것인지 파악하려면 다이버가 들어가 항공기 내부에서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 금속패널을 가져와야 한다. 동체 외부에 페인트로 칠해진 인식번호는 이미 지워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콜머가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군도 수상항공기가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종석 내부에 방청도료인 ‘프라이머(primer)’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어느 국적의 항공기인지는 식별할 수 있어요. 미국은 라임그린색을, 일본은 붉은색의 프라이머를 사용했으니까요.”



브리핑을 마치고 연구자들은 레무스에서 얻은 GPS 정보를 활용, 문제의 항공기가 있는 곳으로 연구선을 몰아갔다. 현장 인근에 도착한 뒤 테릴 박사가 멀티빔 소나인 ‘에코스코프(Echoscope)’를 수중으로 내려 보냈고, 연구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이 장비는 해저의 모습을 3D 이미지로 실시간 매핑했다.

“레무스의 측면주사 소나는 해저의 대략적 모습을 보여줄 뿐 지형의 고저 차이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반면 에코스코프는 고저 차이까지 알 수 있죠. 해저에 있는 인공물체를 고해상도로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레무스와 에코스코프를 병용함으로써 항공기 잔해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선이 잔해의 바로 위에 도착하자 스코트 박사를 포함해 테릴, 콜머, 오브라이언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스코트 박사는 휴대형 소나를 착용한 채였다. 이 기기를 사용하면 시계가 1.5m에 불과한 상황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갈 수 있다. 약 20분이 흐르고 오브라이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킹피셔가 아니었어요. 조종실의 바람막이 위치가 날개 뒤쪽에 있네요.”

킹피셔는 바람막이가 조종실 앞쪽이다. 이윽고 필자는 직접 잔해를 보고 싶어 하던 스캐넌과 함께 물에 몸을 던졌다. 먼저 간 사람들이 설치해놓은 밧줄을 따라 내려가니 두터운 퇴적물 위에 올라앉은 잔해가 나타났다. 시계가 많이 흐렸지만 엔진과 프로펠러가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스캐넌이 손짓으로 부르더니 항공기의 기관총을 만져보게 했다. 나중에 들은 설명으로는 일본해군이 개발한 총이었다.

다음날 연구자들이 모여 어제 확인한 항공기를 100여종의 구식 항공기와 비교해 정체를 밝혀냈다. 최종 결론은 일본 가와니시가 제작한 정찰용 수상항공기 ‘E15K1 시운(Shiun)’이었다. 연합군이 ‘놈(Norm)’이라는 암호명으로 부른 녀석이다. 벤트프롭에 의하면 일본이 총 9대의 시제기를 제작, 6대를 팔라우 제도에서 시험했는데 모두 미군에 의해 격추됐다. 비록 미국 항공기는 아니었지만 스캐넌은 상당히 기뻐했다.

“아주 희귀한 항공기예요. 게다가 내부에 유골이 남아있을 개연성도 높아요.”

벤트프롭은 항공기 잔해 발견 사실을 팔라우 정부에 알렸다. 팔라우 정부에서는 이를 다시 일본 대사관에 전달할 것이다.

지금까지 벤트프롭이 팔라우 제도 인근에서 찾아낸 60여대의 항공기 중 절반 이상이 일본 것이었다. 앞서 팔라우 제도의 어부들이 우연히 발견했던 코르세어 전투기의 경우 일련번호가 적힌 금속패널을 회수, 정확한 이력을 파악하기도 했다.

이 전투기는 일본 군함을 공격하라는 임무를 받고 1944년 11월 21일 출격했다. 조종사는 캐롤 맥쿨라라는 해병대 대위.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는 일본군의 탄약 더미를 발견하고 기총소사를 가했는데 폭발한 탄약 더미의 파편이 전투기의 오일냉각기에 박혀버렸다.

구조요청을 보낸 그는 섬의 서쪽 산호초 지대로 날아가 캐노피를 열고 엔진을 끈 다음 수면 위에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다행히 전투기는 큰 충격 없이 수면에 안착했고, 맥쿨라 대위는 구명보트를 전개해 옮겨 타고 산호초 사이를 빠져나갔다. 얼마 뒤 구조용 수상항공기가 오면서 부대로 복귀한 그는 브랜디를 한 잔 마시고 다음날 바로 임무에 복귀했다.

현재 그의 전투기는 여전히 해저에 머물러 있다. 막다른 길까지 몰고 갔다가 버려놓은 자동차와 같은 꼴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해저 생태계와 하나로 어우러진 유물이 됐다. 금속은 부식됐고, 산호초들이 프로펠러와 엔진 속으로 들어와 있다. 조종석에도 둥근 산호가 자리 잡았다. SIO는 잔해가 완전히 부식돼 무너지기 전에 이 같은 코르세어 전투기의 바닷속 역사도 기록하고 싶어 한다. 테릴 박사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수중의 잔해들을 발견하는 것에 더해 잔해들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부식되어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역사적 유물들의 수중생활을 파악하는 작업은 완전히 새로운 연구분야죠. 저는 이를 ‘디지털 보존’이라 부릅니다.”

팔라우 제도에서의 일정이 끝나갈 무렵 팔라우 예술문화청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고고학자 수잔 피니 박사가 코르세어 전투기의 잔해로 가는 45분간의 보트 여행에 동참했다.

AUV에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팔라우의 풍부한 수중 관광 자원에 항공기 잔해를 포함시킬 수 있을지를 타진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분명 보트를 띄울 연료비조차 간신히 마련했을만큼 재정이 빈약한 팔라우 정부가 스스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정보임에 틀림없었다. 이동 중 그녀는 과학적 발전에 의해 해양고고학이 얻은 이익은 별로 없었다고 토로했다.

“제가 그동안 했던 작업의 대부분은 줄자와 끈, 수중 칠판, 연필 정도만 있으면 됐어요. 사진촬영이나 기록도 모두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해야 했죠.”

그랬다. 레무스는 이번 원정 기간 동안에만 10㎝급 고해상도로 19㎢에 달하는 면적의 해저를 스캔해냈다. 다이버들이 직접 들어가서 탐사하려면 족히 10년은 걸려야 되는 넓은 면적이다. 이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보트가 코르세어 전투기 잔해에 도착했고, 연구자들은 레무스를 투입시켜 재차 철저한 탐사를 벌였다.

원정을 끝내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테릴 박사와 연구팀은 레무스 및 다이버들이 촬영한 수백 장의 이미를 조합해 항공기 잔해의 3D모델을 만들어냈다. 이와 관련 테릴 박사는 오토데스크가 개발한 ‘리캡(ReCap)’이라는 알고리즘을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다.

“원래 사적지나 공장 내부 등을 모델링하는 알고리즘인데 빛이 왜곡되는 수중 환경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새로운 해양고고학 도구가 하나 더 생기는 거죠.”

실제로 과학자들과 해군 역사학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잔해물의 부식 정도를 문서화할 수 있고, 산호초같이 살아있는 조직을 연구하는 해양학자와 생물학자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D 모델을 통해 해양산성화나 태풍 등이 장기간 산호초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스캐넌은 언젠가 레무스 등의 AUV에 힘입어 벤트프롭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보물인 마지막 B-24 폭격기를 찾아낼 것으로 믿고 있다. 그날이 오면 그는 잔해의 완벽한 복제품을 제작해 후대를 위한 역사적 사료로 남겨놓을 계획이다.



현장 답사

해양 탐사에 활용되는 장비는 대개 전문엔지니어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팔라우 제도에서의 수색에는 미국 미시건주 스톡브리지고교의 첨단수중로봇공학팀 소속 학생 8명이 만든 원격조종 무인잠수정(ROV)이 투입된다. 소나와 비디오카메라가 부착된 중량 18㎏의 이 ROV는 최대 수심 42m까지 들어가 정체불명의 선박과 코르세어 전투기의 잔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수준급 성과를 올렸다.

이는 미시건주에 거주하던 자원봉사자 한 명이 벤트프롭의 장비 실태를 듣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결과였다. 도움을 수락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3D 소프트웨어와 납땜 기술, 로봇공학 지식 등을 토대로 ROV를 제작했다.

부품 구입비는 물론 제작된 ROV를 팔라우 제도까지 보내기 위해 필요한 4만5,000달러의 예산도 스스로 확보했다. 지도교사인 로버트 리차드에 따르면 시골학교라 교내에 수영장이 없었던 탓에 대형 가축음수대에서 ROV의 시험항해를 했다고 한다.

“평범한 학급이라기보다는 작은 회사나 연구소처럼 움직였죠.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ROV를 만들고자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스톡브리지 재단은 초·중·고교를 모두 운영하고 있는데 3학년에서 12학년까지 팔라우 프로젝트가 정식 커리큘럼에 들어있다. 지금껏 300여명의 학생들이 섬의 생물학과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의 역사 등을 배웠다. 학생들은 내년에 자율무인잠수정(AUV)과 헥사콥터를 들고 세 번째 팔라우 제도 현장답사에 나설 계획이다.

측면주사 소나 (side scan sonar) 해저면에 비스듬히 음파를 발사하고, 반사파를 이용해 주변 지형을 매핑하는 음향장비.
마체테 (machete) 밀림에서 빽빽한 수풀을 베고 나갈 때 사용하는 넓고 무거운 칼.
산호초연구재단 (Coral Reef Research Foundation)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팔라우공화국이 산호초 및 열대 해양환경 지식증대를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
세굴 (scour) 흐르는 물에 의해 강이나 바다의 기슭, 바닥면의 바위 및 토사가 씻겨 파이는 현상.
헥사콥터 (hexacopter) 로터(roter)가 6개(hexa)인 헬리콥터형 무인기.
방청도료 (anticorrosive paint) 금속 소재에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료.
10㎝급 해상도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각각 10㎝인 10㎠의 면적을 하나의 점(화소)으로 표시하는 수준의 해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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