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12년 11%에서 2018년 14%, 2026년 20%(통계청)로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은퇴자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만들기 노력은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대간 갈등도 문제다. 청년실업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고 노인 재취업을 추진하는 건 세대간 갈등과 반목을 가져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에 기여하는 일자리를 통해 은퇴자들이 보람과 생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물론 생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또 세대간 화합을 이뤄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도 유용하다는 주장이다. 포춘코리아는 “은퇴 뒤 사회공헌형 커리어를 가지라”고 주장하는 마크 프리드먼 Marc Freedman을 만나 사회공헌형 일자리가 갖는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가치에 대해 물어보았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앙코르 커리어는 평생 업적을 다음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힘 없는 노인으로 늙지 말고 앙코르 커리어를 준비하세요.”
포춘코리아가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노년학·노인의학대회 IAGG에서 마크 프리드먼을 만났다. 마크 프리드먼은 비영리기관 앙코르 오알기 Encore.org의 창립자이자 대표이사로 은퇴 관련 베스트셀러 ‘앙코르’를 저술한 은퇴 전문가다. 그는 ‘은퇴 뒤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활동’을 ‘앙코르 커리어’로 정의하고, 앙코르 커리어가 은퇴자와 사회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말한다. “우리 시대는 장수 패러독스를 겪고 있어요. 한편에선 운동, 채식, 산책 등을 권하며 평균 수명을 늘려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노인문제가 나라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간다며 경고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사회적으로는 재앙처럼 말하죠. 장수 패러독스를 해결해야 합니다.”
은퇴는 만들어진 개념이다.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미국에서 은퇴 나이가 65세로 정해진 것도 1950년대 이후다. 평균수명이 올라가고 건강한 노인이 늘었는데, 정년이 65세로 유지되는 건 모순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은퇴 이후를 황금기(Golden Age)로 표현했다. 일에서 손을 떼고 레저를 즐기는 은퇴생활이 롤모델이었다. 사회보장체계와 개인연금이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고, 은퇴 뒤 삶이 연장되자 재정 부담이 커졌다. 인생 3분의 1을 레저로 보내기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두 답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베이비 부머의 대거 은퇴로 노년층 비중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필요와 요구는 중요한 사회적 동인이 되어가고 있다. “젊어서 벌고 나이 들면 자산으로만 살아가는 은퇴방식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아요. 오래 일하고, 의미를 찾는 노후야말로 새로운 키워드가 되고 있어요.” 프리드먼은 말한다.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여성인력과 비교해보자. 과거엔 여성이 일하기가 어려웠다.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력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노인도 마찬가지다. 고령인구를 잘 활용하면 사회적 생산성을 키울 수 있다.
앙코르 커리어는 은퇴자에게 소득을 제공하는 동시에 젊어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의미’와 ‘가치’를 제공한다. “은퇴 뒤 사람은 죽음을 절감합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깨닫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요.”
프리드먼의 말이다. 그가 수많은 은퇴자들을 만나고 조사해본 결과, 이 시기의 사람들은 사회적 봉사와 기여에서 큰 의미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리슨은 ‘나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노년기를 성공적으로 보내는 방법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에는 남길 방법이 기부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봉사할 기회가 많다. 아이를 가르치거나 청소년을 계도하는 일 등은 노인에게 적합하다. 미국에선 위탁조부모 제도가 있다. 노인과 소외 아동을 연계해준다. 청소년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 멘토링하는 프로그램이다. “효과가 매우 큽니다. 마약이나 폭력에 물든 청소년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죠. 사랑을 주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요. 사랑을 주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모든 세대는 서로 다른 세대를 필요로 합니다.” 프리드먼은 말한다.
앙코르 커리어는 단순한 세컨드 커리어가 아니다. 보다 많은 선의를 베푸는 인생 2막이다. 개인적 보람이 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가치 있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앙코르 커리어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걸 추구하는 사람은 인생 후반기에 의미 있는 인생을 가질 수 있다.
앙코르 커리어를 갖기 위해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 앙코르 커리어를 추진하는 사람은 자기가 기존에 쌓아왔던 경력과 실력을 활용하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필드에 적용하기 위해 새 기술을 익혀야 한다. 앙코르 커리어와 관련해 사회적 기관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는 성인을 위한 인턴십 제도가 있다. 노령인구가 새 교육을 받고 새로운 일자리에 정착하도록 돕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1년짜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5만 달러로 비싸다. 그 외 대학에서도 보건, 건강, 환경 분야에서 교육을 한다. 학비도 좀 더 저렴하다. 민간에서도 기금을 마련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재정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앙코르 라이프를 준비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프리드먼은 재정 지원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적 연금을 활용해 재교육 사업을 펼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개개인에게 저축도 권장하고 있다.
“앙코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꿈과 의미를 추구하는 겁니다.” 프리드먼은 강조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